청색 옷에 붉은 모자를 걸친 남자는 힘없이 공원 벤치에 앉아 있었다. 공허해진 눈동자에 담긴 공원의 풍경은 그의 마음마냥 고요했다. 삶의 많은 부분을 잃은 것처럼, 아무 말과 행동 없이 한참을 보내던 남자는 떨어질 듯 말 듯 위태롭게 들고 있던 핸드폰으로 시계를 확인하고는 다시 시선을 하늘로 돌렸다. 공원에는 남자 혼자뿐이었다. 늦은 밤이 되어감과 함께 쌀쌀해지는 날씨에 남자는 몸을 살짝 움츠렸다. 하지만 그 때문에 일어나고 싶지는 않았다. 차라리 이렇게 몸살이라도 났으면 하는 마음이 더 컸다. 모자를 더 푹 눌러 쓰고는 아예 벤치에 누우려고 몸을 돌리려던 찰나, 인기척이 느껴졌다. 옆에 앉은 남자는 원래 있던 그보다는 짙은 청색의 남방을 입고 있었다. "모자 잘 어울리네 오현민. 여기서 뭐 해, 감기 걸리려는 거면 사절인데." "신경 꺼. 너나 들어가." 안 그래도 힘드니까. 현민은 귀찮다는 듯 저를 못마땅하지만 걱정 섞인 눈빛으로 쳐다보는 남자를 향해 무성의하게 대꾸했다. 지금은 심신이 지친 상태였다. 여러모로 힘든 지금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 줄 처지는 되지 못했다. 하지만 그 속을 모르는 듯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도 안 해 주면 어떡하자고." "사람들은 이제 나를 머리 좋은 전략가로 여겨 주지 않아. 오히려 내 전략을 뺏어가고 나를 위협에 빠뜨린다고, 이걸 내가 너한테 말해서 뭘 얻을 수 있는데." "그래서?" "그들을 해체시켜 버렸어. 내가 따르던 사람을 내 손으로......" 현민은 그 순간을 떠올리는 것조차 힘들어 보였다. 언제나 다수에게 견제당하면서도 중요한 존재가 되던, 그리고 그것이 익숙했던 자신에게 고립이란 여러 감정들을 처음 겪게 해 주었다. 아직도 그 분노와 서러움, 제 손으로 그들을 꺾을 때의 허탈함을 주체하기 어려웠다. 이마를 짚은 현민은 제 말을 전부 들은 그의 눈빛이 무엇을 말하려는지 읽고 싶지 않았지만 읽고 말았다. "왜, 이제는 불쌍함까지 느껴져?" "나는 네가 이해가 안 간다. 네가 아무리 자만해도, 밀고 나가는 게 있어도 그걸 이해할 수 있던 이유가 뭔지 알아?" "알고 싶지 않아." "젊음과 패기. 다른 사람들에게는 절대 없는 게 오현민한테는 있었거든. 지금도 네가 썩히지만 않는다면 분명 있겠지." "... 너 뭔데 나한테 훈계야? 나랑 다를 거 없," "지금의 내가 지금의 네가 되는 사이에 넌 너무 많은 걸 잃었나 보다. 네 탓은 아니야, 그들이 너를 수단으로 이용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네 자만이 그들을 지치게 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그렇다고 그걸 안 겪으면 어른이 될 수 없어. 너는 충분히 사람들을 이끌 수 있어." 남자의 말에 현민은 더 할 말을 잃었다. 그가 틀린 말을 한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수단으로 이용된다는 생각도 분명 한 적이 있고, 자만을 부리다 문제가 생긴 적도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어른이 된다' 는 것은...... 아직 모르겠다. 분명 나이로는 미성년자를 벗어났는데, 왜 아직 어른이 되지 않았다는 걸까. 현민은 너무도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하는 그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 확신하는데?" 그리고 그 질문에 남자는 기다렸다는 듯 살짝 웃으며 대답했다. "넌 나잖아. 내가 할 수 있는 걸 네가 못 할 리 없잖아." "......" "너무 늦었네, 진짜 감기 걸리고 싶지 않으면 이제는 좀 집에 들어갑시다." 알겠으면 난 먼저 간다. 그렇게 말한 남자는 언제 옆에 있었냐는 듯 감쪽같이 사라졌다. 현민은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가 앉아 있던 옆자리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리며 집으로 가기 위해 일어났다. "... 잘 가, 시민 리더 오현민." - 쓰라는 찌민은 안 쓰고 투민을 데리고 왔습니다~~ 뭔가 갑자기 너무 쓰고 싶어서 썼는데 어후 ㅜㅜ 해피 추석 보내 갓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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