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호가 카드를 뒤집자, K가 나타난다. 딜러 카드 합 20, 플레이어 모두 합 19 이하. 진호의 명백한 승리였다. 진호는 한 장의 카드를 집어 각도를 70도 정도로 세운 다음, 나머지 카드를 쓸어온다. 그리고 플레이어들 앞에 있는 칩들을 쌓아 가져온다. 아 그게 또 10이 뜨냐. 플레이어들은 투덜댄다. 운 좋네, 신입. 동민은 작게 중얼댄다. 귓가에 들리는 동민의 칭찬에 진호는 웃으며 다시 딜링슈에서 카드를 꺼낸다.
오늘 오전 10시. 진호가 허겁지겁 카지노 안에 들어서자, 동민과 준석이 자신을 반겼다. 아니, 준석은 반겨주진 않았다. 어제처럼 내가 손실 채워줄 수는 없어서 출근 전에 봐드리려고 온 겁니다, 라고 했으니. 동민은 아무 말 없이 진호를 테이블에 세웠다. 그리고 진호의 두 번째 딜링을 지켜봤다. 확실히 손재간이 있네. 카드 섞는거나 칩 카운팅이나 지적할 만한 것은 없었다. 다만 가끔 짖궂은 플레이어가 진호의 멘탈을 흔들 때면, 단박에 그것이 밖으로 드러났다. 말을 씹거나, 딜링을 할 때 손이 덜덜 떨리는 것이다. 어디서 두부 멘탈이 하나 왔구먼. 동민은 생각한다.
"아니, 말도 제대로 못하는 데 딜러여! 나도 하겠네."
"ㅈ,제가 신입이라 ㅈ, 죄성항니다."
뭐라고? 라며 플레이어들은 진호를 놀리기 시작한다. 판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딜러가 놀리는 맛이 있다는 것을 플레이어들이 단박에 알아챈 것이다. 외국인 딜러야, 이 사람? 플레이어들이 낄낄대자, 진호의 관자놀이에서 땀이 삐질 솟는다. 아이씽, 그망 놀려씀 조케따... 진호는 애써 무시하며 자신의 첫 번째 카드를 오픈했다. 숫자 5. 어정쩡한 숫자다. 진호가 이길 가능성이 낮은 것을 안 플레이어들은 거만하게 의자에 기댄다. 진호는 분위기를 눈치챘다. 모든 플레이어들 카드 합이 10 후반대이다. 이렇게 나오면 웬만해선 다 이기지. 플레이어들은 이 여세를 몰아 좀 더 많이 칩을 가져가려 할 것이다. 진호의 이런 예상은 첫 번째 플레이어에서부터 들어맞았다. 그녀의 카드는 스페이드 8과 하트 8이다.
"나, 스플릿."
이 여자 플레이어는 자신의 검지손가락과 중지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탁 치더니, 양갈래로 쫙 벌린다. 스플릿(Split), 같은 카드 두 장이 있을 때 플레이어는 자신의 패를 두 개로 나누어 2인분의 게임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녀의 현재 상황을 보자. 그녀는 둘 다 8이기 때문에 합이 16이다. 그러나 그녀가 두 패로 나누어 8과 8을 별개로 게임을 진행한다면, 가치가 10인 카드나 A가 나왔을 때 합이 18 또는 19로 이전 상황보다 이득이 된다. 스플릿하겠습니다, 라고 말하며 진호는 그녀의 카드 중 하나를 손가락으로 누르고 부드럽게 쓸어 옆에 놓는다. 그러자 그녀는 같은 양의 칩을 또 한 뭉치 얹어놓는다. 진호는 불안한 마음을 애써 감추며 딜링슈에서 카드 두 장을 꺼내 오픈하여 그녀에게 내민다. 내 이럴 줄 알았어. 9와 Q가 나왔다. 이로써 그녀의 두 패의 합은 각각 17, 18이다. 난리났군.
"Hit or stay?"
"거 당연히 힛이지. 뭘 물어보고 앉았어?"
내 패 합이 10인거 안보여! 두번째 남자는 자신에게 윽박지른다. 내가 어찌 아냐구요, 이 인간아. 물어보면 조용히 대답하거나 테이블을 치면 될 것이지. 진호는 짜증이 난다. 힛(Hit)은 다음 카드를 받는 것, 스테이(Stay)는 턴을 넘기는 것이다. 게임이 시작되면, 딜러는 플레이어들에게 물어보아야만 한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묻기 싫은 진호지만, 사소한 법칙을 안 지키게 되면 어제처럼 호구짓을 할 게 뻔해 그냥 카드를 내민다. 카드 A, 게임이 끝났다. 이 남자의 패는 합이 21로, 이 판의 우승자가 되었다. 아 - 이. 여자 플레이어는 남자를 조용히 노려본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 남자는 진호에게 다시 윽박지른다.
"야, 에이스 떠서 나 블랙잭이야. 칩 줘."
진호가 1배의 칩을 보상으로 주자, 남자는 진호의 손목을 덥석 잡고는 말한다. 웃기고 있네, 이게 무슨 블랙잭이야. 진호는 아무 말 없이 가만히 플레이어를 노려본다. 이렇게 말 같지도 않은 틀린 법칙으로 우기며, 신입 딜러의 기를 누르려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던데. 어떻게 나는 매일 같이 이런 놈들한테 걸리지.
"...이 경우는 블랙잭이 아닙니다."
"뭐가 아니야, 맞잖아!! 21! 칩 더 내놔!!"
아, 이게 진짜. 진호는 남자의 멍청한 얼굴을 내리치고 싶어진다. 그 때였다, 동민이 나선 것은.
"지금 경우는 블랙잭이 아니라는 건 사장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저희 신입, 그렇게 기싸움하시려 하지 않으셔도 충분히 고객분들께 즐거운 게임 한 판 진행해드릴 깜냥 됩니다."
또 사장님도 여기서 칩 얻으셔서 저랑 같이 큰 판에서 한 판 노셔야죠. 사장님 클라스에 맞게 말이죠. 동민의 말에, 남자는 머쓱하게 웃는다. 하 참, 장딜러가 와쳐로 있으니깐 장난도 못 치겠구먼, 허허! 아마 동민의 칭찬에 기분이 좋아져 제대로 세게 못 나가겠나 보다. 진호가 카드와 칩을 쓸어가자, 남자는 칩을 정리한다.
"그럼 슬슬 점심 먹으러 가야 겠구먼. 장딜러는 룰렛 쪽에 3시쯤부터 서 있던가?"
"정확히 4시 정각부터 딜링 시작합니다."
"그럼 그 때까지 포커나 하면서 돈 좀 불려야겠네. 다들 가지."
남자자 손을 까딱 하자, 진호의 앞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일어난다. 아, 더 딸 수 있는데. 라고 불평하면서도. 아마 한 회사에서 사장을 선두로 함께 놀러왔나보다. 진호는 그 무리가 사라지자 휴, 한숨을 내쉬며 테이블 위를 정리한다. 그리고는 어땠냐는 표정으로 뒤에 서 있는 두 명의 선배 딜러들을 바라본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준석이 입을 연다.
"자꾸 멘탈 흔들리는 거 티내지 마. 딜러는 능글맞아야 돼."
"......예, 죄성함니다."
준석의 지적에 진호는 서럽다. 아니, 고작 이틀째인데 저렇게 윽박지르면 전 힘들다구요! 그러나 입 다물고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진호의 정수리를 바라보며, 준석은 한 마디를 더하기 위해 입을 벌린다. 그런데 동민이 준석의 입을 텁 막아버린다. 애 울겠다. 준석은 입이 막힌 채로 가만히 동민을 바라본다.
"멘탈만 안 흔들리면 지적할 건 딱히 없네. 멘탈은 계속해서 경험 쌓으면서 강해지는 것 밖에는 없지."
"네, 감사항니다."
"........아, 지적 할 거 하나 있구나, 발음."
아예 플레이어분들한테 재일교포나 중국 혼혈이라고 해. 믿으실지도 몰라. 동민의 말에 준석은 입이 막힌 채로 킥킥 웃는다. 분명 놀리는 것인데, 진호는 그럴까? 라는 생각이 든다. 오, 그거 기발한데? 진호가 그럴 듯하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돌아보자, 동민은 씩 웃는다.
"나 쳐다보지 말고, 다음 손님들 받아라. 슬슬 오신다."
동민의 말에 진호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오른쪽 저 멀리에서 세 명의 남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동민은 그 사람들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옆의 머리 큰 남자와 함께 걸어오는 것은, 어제 그 귀신이랑 꼬맹이네.
빛 좋은 개살구였어. 경훈은 아침에 일어나면서 생각했다.
어젯밤, 경훈은 점찍어놨던 그녀들과의 밤자리를 성사시켰다. 하지만 문제가 발생했다. 따로따로 자고 싶었는데, 그녀들이 세 명이서 함께하는 것을 요구한 것. 경훈은 잠시 생각하다가, 뭐 그것도 좋지. 라며 흔히 오케이 했고, 새벽 내내 세 명이서 침대 위를 뒹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그녀들은 성적으로 상당히 질펀했다. 아니, 생긴 건 완전 부끄부끄였는데. 몸만 핫한 줄 알았더니 딴 판일세. 뭔가 자신이 새하얀 것을 더럽히는 느낌을 원하던 경훈은 오히려 두 명이 안달이 나 있으니, 허릿짓을 하면서도 짜증이 났다. 게다가 다 놀고 난 후, 갑자기 한 여자가 자신에게 연락처를 줄 것을 요구해왔다. 미친 거 아니야? 원나잇 주제에 웬 연락처? 경훈은 그 입 다물라는 뜻으로 여자의 입에 자신의 것을 세워 거칠게 쑤셔넣었다. 그리고는 여자의 얼굴에 대놓고 사정을 해버렸다. 그녀의 얼굴을 닦아주지도 않고 그 방을 미련 없이 나와, 자신의 방에 들어와서 잠든 것이다.
"에이, 똥 밟았네."
원나잇 타겟을 새로 잡아야겠다고 생각한 경훈은 카지노에 나가서 사람 구경이나 할 생각으로 머리를 왁스로 잔뜩 세우고 있다. 멋져, 김경훈. 그리고 까만 셔츠를 꿰어입다가, 문득 동민의 어젯밤이 궁금해진다. 어제 딴 딜러랑 술 마신다고 했는데, 설마 나처럼 원나잇한 건 아니겠지? 경훈은 불안해진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는 우리네 옛말과 같은 상황인데, 경훈은 모르나보다.
"방에 가 볼까? ...둘이 같이 있는 거 아니겠지."
경훈은 그렇게 생각하며 핸드폰을 켜 본다. 어제 동민에게 메세지를 하나 보내 놨던 것이다. 뜨거운 밤? 그런데 안 올 줄 알았던 답장이, 아침 8시경에 와 있다. 경훈은 놀라 채팅창을 켜 본다.
장♥ : 내가 너냐
장♥ : 나 곧 와쳐감 피곤해죽겠다
와쳐? 경훈은 예전에 동민이 말해주었던 것이 생각난다. 무슨 신입 봐주는 거라고 하던데. 그럼 이 사람 지금 카지노겠네. 아니, 그럼 아침부터 퇴근할 때까지 쭉 카지노에 있겠다는 거야? 이 인간, 워커홀릭이라는 거는 알아줘야 돼. 그렇게 생각하며 경훈이 시간을 보니 12시가 좀 넘었다. 사람 한참 많을 때군, 좋아.
"카지노 가서 어디 물건 좀 낚아보러 갈까 - "
내 오르가즘 친구, 장딜러도 보러 갈 겸!경훈은 휘파람을 불며 방을 나선다. 호텔에서 카지노로 향하는 내내 몸매 좋은 여자 몇 명이 눈에 보이기는 한다. 그런데 중국어를 쓰는 것을 보고 경훈은 인상을 구긴다. 몇 주 전, 중국 여자와 잠자리를 가졌다가 깎지 않은 겨드랑이 털을 보고 놀란 적이 있었다. 남자면 상관없는데, 여자는 좀 보기 그렇더라. 경훈은 머리를 흔들며 카지노로 바삐 걸음을 옮긴다. 역시, 오늘도 사람이 바글바글하다. 경훈은 스리슬쩍 블랙잭 테이블로 걸음을 옮긴다.
블랙잭이라는 게임 특성상, 쉽고 간단해서 카지노 입문들이 자주 찾는다. 그래서 여자나 애기티를 못 벗은 허연 어린 남자애들이 많이 오지. 경훈은 입맛을 다시며 테이블 하나하나를 빤히 바라본다. 어디보자, 내 취향이 어디어디 숨었나아아아아 - 바로 그 때, 경훈은 한 테이블이 눈에 들어온다. 한 멍청해보이는 딜러 뒤에 서 있는 건, 장동민. 블랙잭 딜러를 봐 주고 계셨구만. 경훈은 싱글벙글 웃으며 그 쪽으로 향한다. 그런데 동민이 옆의 딜러 얼굴에 손을 가져다대는 것을 보고, 경훈은 그 자리에 우뚝 멈추어섰다. 동민이 어떤 남자의 얼굴에 손을 가져다대고 떼지를 않고 있었다. 그런데 그 남자는 피하지도 않고 가만히 동민을 바라본다...?
"..........안 잤다며."
그럼 애무라도 했나? 왜 저렇게 스킨십이 자유분방해. 경훈은 멍하게 그 쪽을 바라본다. 동민은 그런 경훈의 눈길이 느껴지지 않는지, 앞의 딜러에게 씩 웃어보인다. 안 잤다며!! 점점 상상의 날개를 펼치며 분노가 솟아오르는 경훈이다. 아, 여기에 더 있다간 누구라도 하나 붙잡고 얼굴을 내리칠 것만 같다. 입술을 깨물며, 이 분노를 해소하기 위해 경훈은 카지노를 빠져나가려 한다. 뭐 하면서 이 화를 풀지, 어제 잤던 여자들 다시 한 번 괴롭히고 올까. 만약 경훈이 지금 오른쪽으로 몸을 돌린다면, 자신의 취향인 하얀 사람 혹은 어린 소년을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신도 무심하게, 경훈은 왼쪽으로 몸을 돌려 반대 방향으로 빠져나간다. 뭐, 이 호색한이 블랙잭 테이블로 걸어오는 유현과 현민을 발견하지 못한 것은 신이 이 둘을 굽어살핀 덕일 것이다.
현민은 뚫어지게 동민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동민은 아무 말 없이 현민에게 묻는다. Hit or stay?
진호는 당황스러웠다. 어린 플레이어가 다가오더니, 앉기도 전에 갑자기 저 뒤의 딜러분께서 해 주시면 좋겠는데요. 란다. 현민의 돌발선언에 유현은 앉다가 놀랐으며, 요환도 놀랐는지 의자에 앉으려던 것을 그 옆의 허공에 앉으려고 해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준석도 놀라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눈을 크게 떴다. 진호는 동민을 돌아보며 당황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어....어쩌죠...? 그러나 동민은 낯빛 하나 바꾸지 않으며, 후배님께 본보기를 보이려면 좋은 일이죠. 라며 진호와 딜러 자리를 교체했다.
그리고는 아무 말 없이 기계처럼 게임을 진행하고 있다. 현민은 동민의 가면을 쓴 듯한 얼굴을 무너뜨리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다. 말을 계속 시키고, 게임 진행을 방해하며 어떻게든 동민의 리액션을 보려고 애썼다. 그러나 이 방면에서 15년 동안이나 이것보다 더 심한 방해를 받아왔던 동민이다. 어린 아이의 방해에도, 무표정하게 맞받아치며 딜러의 임무를 완수했다.
"저 지금 힛이라는 뜻으로 책상 쳤는데요!"
"블랙잭에서 힛이라는 것으로 통용되는 몸짓은, 손가락으로 가볍게 플레이어님 앞의 테이블을 톡 치는 것입니다. 방금 플레이어님처럼 주먹으로 쿵 치는 것은 카지노 내에서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못합니다."
아이씨. 또 현민이 한 방 먹었다. 현민이 으르렁댈듯한 얼굴로 동민을 바라보자, 동민은 그런 현민을 무시하며 자신의 카드를 오픈했다. A, A가 떴다. 요환은 아하, 라며 탄식했고 유현은 그저 몸을 일으켜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동민은 영혼 없는 목소리로 셋에게 질문한다. Insurance 하시겠습니까.
"네!"
"..........걸죠."
요환과 유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베팅의 절반을 앞으로 내놓는다. 동민은 현민의 쪽으로 손을 내밀며 고개를 까딱, 한다. 현민은 자신의 카드를 내려다본다. K와 10. 그리고 현민은 요환과 유현의 카드도 바라본다. 요환은 10과 8, 유현은 J와 Q. 이 판에서 10이 지나치게 많이 나왔다. 상식적으로 또 10의 가치를 지닌 카드가 나올리 없다. 그렇게 자신한 현민은 고개를 젓는다.
"아뇨."
그리고 현민은 자신 있게 고개를 쳐 든다.
"저, 여기서 칩 많이 따가서 룰렛 판으로 넘어갈 거에요!"
"................."
"딜러님, 어제 봤어요. 룰렛 담당하시는 거 맞죠? 여기서 칩 엄청 불려간 다음에 제가 이따 바로 룰렛 넘어가서 엄청나게 딸 겁니다. 확률 계산도 어제 다 해봤거든요."
현민의 당찬 말에, 요환과 유현은 얘가 왜 이러나 싶다. 어젯밤에 블랙잭을 가르쳐줄 때, 현민은 묵묵히 게임 설명을 들으며 플레이할 뿐 딱히 당돌한 면모를 드러내지는 않았다. 그런데 오늘은 계속해서 딜러를 살살 긁는다. 마치 딜러의 반응을 기다리며 놀리는 어린 아이처럼. 뭐, 나도 이렇게 무표정한 딜러의 반응을 보고 싶긴 하다만. 둘은 고개를 들어 동민의 반응을 기다린다. 그런데 동민은 반응 하나 없다. 그저 빤히 현민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그럼 게임 시작합니다."
그리고 동민은 자신의 두 번째 카드를 오픈한다. 그러자 현민은 뒷머리를 미친 사람처럼 문지른다. 동민의 카드는, K.
"딜러 블랙잭, 딜러 윈."
동민은 요환과 유현의 몫인 칩을 건네고, 주저 없이 나머지 칩을 쓸어가버린다. 그리고는 카드들도 깔끔히 쓸어간다. 현민은 허무한 한숨을 내쉰다. 무슨 한 판에 10이 쏟아져내려... 현민의 반응을 보며, 동민은 귀여운 어린 아이 같다는 자신의 어제 직감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는 등 뒤에 서 있는 진호를 손짓으로 부른다. 진호가 뻘쭘한 표정으로 자신의 옆으로 다가온다. 이제 다시 홍딜러가 딜링해. 동민의 말에, 진호는 고개를 힘차게 끄덕인다. 꼬맹이랑 꼬맹이가 붙는 게 게임이 되지. 그렇게 생각하며 동민은 자신을 바라보는 현민에게로 고개를 돌린다.
"이만하면, 저희 신입 딜러가 다시 담당해서 즐겨도 될 겁니다."
"....................."
"그래도 게임 이해도는 높으신 듯 하니, 블랙잭에 대한 감을 얻는 데 그리 시간이 많이 걸리실 것 같진 않네요. 어서 블랙잭에서 칩을 모아 룰렛 판에서 뵙죠."
현민은 갑자기 이 딜러가 자신을 칭찬하자, 머쓱해진다. 내가 그래도 잘하는 편인가? 이 사람이 이렇게 추켜세워주는 걸 보면. 그러나 동민의 다음 말을 들은 현민은, 입꼬리가 위로 올라가다가 우뚝 멎었다.
"보아하니 누구보다도 빠르게 칩을 룰렛에서 다 탕진하실 것 같으니, 기대하며 기다리겠습니다."
그리고는 동민은 유유히 그 자리를 빠져나간다. 요환과 유현은 현민이 제대로 한 방 먹자, 크게 웃는다. 너 어떡하냐, 완전 무시 당했어!! 현민은 사라지는 동민의 뒷모습을 보면서,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다. 날 무시하다니, 그 예상 완전히 밟아주겠어... 진호는 얼굴이 빨개진 플레이어를 보면서, 테이블 밑으로 조용히 엄지손가락을 세운다. 크으으으으으으으으, 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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