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셔져 내린 다리 덕에 길을 더 돌아가게 됐다. 다리 밑의 참경은 둘이 봐왔던 광경 중에 가장 최악이었다. 냄새도 역했고 시체들도 많았다. 동민은 비위가 확 상하는 걸 느꼈다.속이 울렁거리더니 결국 몇 걸음 옮기지 못하고 토를 한다. 먹은 것도 없어 투명하게 위액만 쏟아진다. 홍진호는 언제부턴가 정말 무심해졌다. 동민은 그렇게 생각했다. 지금만 봐도 그랬다. 예전에는 조금만 역한 냄새가 나도 인상을 찌푸리고 코를 막으며 욕을 한다거나 했지만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 냄새나는 것들을 발로 툭툭 치고 앞으로 나가고 있었다. 동민이 너덜해진 소매로 입을 닦아내면 그걸 기다려주기는 했다. “물 마셔” 진호는 가방에서 물을 꺼내 동민에게 주지만 동민은 망설임도 없이 됐다고 거절한다. 안마시면 말고. 진호도 두 번은 권하지 않았지만 목구멍이 쓰린지 손으로 목을 꾹꾹 누르고 있는 동민이 안쓰럽기는 한지 계속 흘깃거리며 쳐다보기는 했다. 없는 식량에 물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둘 다 잘 알고 있었고 둘 성격에 그걸 쉽게 낭비하지는 않았다. 동민의 앞으로 한 두 걸음 더 앞서나가더니 발로 시체들이나 쓰레기들을 밀어내며 길을 터준다. 진호는 나쁘게 말하면 저 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성격이었는데, 동민이 꽤 신경 쓰이긴 했는지 제 나름대로의 배려를 해주고 있었다. 진호의 입장에서 동민은 조금 약해졌다. 괜찮다고 형만 믿으라고 큰 소리 치고 늘 제 앞에 서서 걷던 동민을 잠깐 떠올렸다. 뭐 딱히 상관은 없었다. 길을 그렇게 걷고 있을 때 동민은 진호의 어깨를 잡았다. 무슨 일인가 돌아본 진호에게 동민은 말없이 어딘가를 가리켰다. 조금 떨어진 곳에 여자아이 하나가 쪼그려 앉아있었다. 어쩌라고. 진호는 무표정하게 동민을 쳐다보았다. 동민은 데리고 가자는 말을 했다. 진호는 기가 찼다. 혹시나 잘못 들은 건 아닐까 싶어 되물어 보지만 고개를 끄덕인다. 입술을 꾹 깨문 진호는 가방에서 더러운 종이에 싼 더러운 주먹밥을 꺼내 여자아이 쪽으로 향했다. 쌓여있는 것들을 신경질적인 발길로 차내면서. 동민은 그걸 바라만 봤다. 진호는 여자애에게 그 주먹밥을 주고는 혼자 되돌아 왔다. “왜 혼자와?” “이정도면 됐어” “안됐어” “뭐 하자는 거야, 이걸로 충분해” “데리고 가자고” “우리도 피난 가는 거야, 형. 정신 차려. 지금 우리 상황이 남들보다 뛰어나게 좋아? 돌아다니면서 살아있는 사람들 다 구해주고 식량 배분해주러 다니는 거야?” “쟤는 어리잖아” “형이 정의의 사도라는 건 알겠는데 말도 안 되는 억지 부리지마. 형이 나한테 쓰레기라고 해도 상관없어. 난 나름대로 최대한의 배려를 한 거야. 저게 어떤 밥인지는 알아?” “진호야” “그래 내가 백번 양보할게. 데리고 가고 싶으면 데리고 가. 근데 그럼 쟤의 모든 건 다 형이 책임져야 돼. 그렇게 할 수 있으면 데리고 가” 동민은 결국 마지막 말에 고개를 숙였다. 약해진 게 맞았다. 불쌍한 형. 자존심은 남아있었지만 자신감은 이미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예전의 장동민이라면 내가 책임지겠다고 아이를 굳이 데리고 왔을 것이다. 진호는 약간 마음이 좋지 않았고 한동안 동민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진호는 동민의 손목을 잡은 채 앞만 보고 걸었고 동민은 바닥을 보며 끌려가듯 걸었다. 해가 지고 어둑어둑해지면 둘은 대충 아무 것도 없는 곳에 돌만 골라내고 자리를 잡았다. 내일 즈음엔 집이 있는 곳으로 갈 수 있을까 싶었다. 뒤쳐져도 너무 뒤쳐졌다. 얼른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가야 했다. 깜깜한 밤하늘에는 꼭 그렇게 별이 많았다. 진호는 잠이 오지 않으면 그 별들을 무식하게 일일이 세보고는 했다. 동민은 별을 세는 진호를 보며 쓸모없는 짓이라고 늘 구박했지만 오늘은 저도 하늘만 쳐다본다. “별 세냐” “어” “쓸 데 없는 짓 하네” “네가 매일 하니까...” “우냐” 동민은 울지는 않았지만 정말로 울고 싶은 기분이었다. 대답이 없자 진호는 한숨을 내쉬며 동민의 배에 손을 올린다. 자장가라도 불러줘? 장동민 애 다 됐네. 비꼬는 말을 그렇게 하고는 배에 얹은 손을 토닥거린다. 동민은 눈을 꼭 감았다가 떴다. 눈을 감자 아까 그 아이의 모습이 자꾸 아른거려서 감고 있을 수가 없었다. 컴컴해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진호는 왠지 동민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몸을 돌려 동민을 보고 누워서는 낮은 목소리로 괜찮아, 하고 말해준다. 괜찮아, 형 괜찮아. 다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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