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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조회 896 출처
이 글은 7년 전 (2019/3/21) 게시물이에요























-  전문가들의 평가를 많이 참고했으며, 영상으로 볼 수 있는 선수들은 최대한 보려고 노력했습니다.

- 경력, 기록, 우승 커리어는 국가대표 시절만입니다

- 개인 정보는 생 / 국적 / 포지션 / 국가대표 경력 / 국가대표 기록 순서입니다

- 밸런스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 어떤 기관이나 전문가가 선정한게 아닌 일개 축구팬이 뽑은 것들이니 재미로만 봐주세요

- 호주와 이스라엘은 제외했습니다









아시아 역대 베스트 11 | 인스티즈











아시아 역대 베스트 11 | 인스티즈

모하메드 알 데아예아

1972년생 / 사우디아라비아 / 골키퍼 / 1993-2006 / 178경기

주요 클럽 : 알 힐랄

월드컵 16강 1회, 아시안컵 우승 1회, 준우승 1회, 걸프컵 2회

아시안컵 최우수 골키퍼 2회


한창 전성기이던 1999년 IFFHS에서 선정한 20세기 아시아 최고의 골키퍼. 큰 키(191cm)를 바탕으로 뛰어난 공중볼 능력과 안정감을 지니고 있었으며, 멋있는 다이빙으로 골키퍼도 주목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렸던 선수였다. 사우디 국가대표로 무려 178경기에 출전한 그는 94년 월드컵 16강, 96년 아시안컵 우승, 99년 컨페더레이션스컵 4위, 아시안컵 올해의 골키퍼 2회 등 아시아에서 손에 꼽힐만한 뛰어난 커리어를 쌓았다.


아시아 역대 베스트 11 | 인스티즈

메디 마다비키아

1977년생 / 이란 / 라이트백 / 1996-2009 / 110경기 13골

주요 클럽 : 함부르크

아시안컵 3위 2회, 아시안게임 금메달 1회

아시아 올해의 선수 1회


라이트백부터 윙어까지 오른쪽 라인을 모두 뛸 수 있었던 멀티플레이어. 강력한 공격력과 뛰어난 크로스 실력을 지니고 있던 선수로 2000년대 함부르크의 주전 선수였다. 그는 함부르크 소속으로 8시즌간 229경기에 출전해 29골을 넣었으며, 함부르크 올해의 선수를 2차례 수상했다. 또한 2012년 함부르크내에서 진행된 '함부르크 세기의 팀'에 이름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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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보

1969년생 / 대한민국 / 리베로(센터백) / 1990-2002 / 136경기 10골

주요 클럽 : 포항

월드컵 4강 1회, 아시안컵 3위 1회

월드컵 브론즈볼 1회


반박불가 아시아 역대 최고의 수비수. '마지막 리베로'라고 불리던 그는 현대 축구에 어울릴법한 뛰어난 빌드업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수비수임에도 팀의 전술적 중심으로 활약했으며, 2002년도에는 한국 대표팀의 중심이 되어 한국을 월드컵 4강에 올려놓고 공로를 인정받아 월드컵 브론즈볼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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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레 뉘에이메흐

1960년생 / 사우디아라비아 / 센터백 / 1978-1990 / 150경기 6골

주요 클럽 : 알 힐랄

아시안컵 우승 2회


서아시아 역사상 최고의 센터백. 80년대 사우디 아라바이 전성기의 주장이자 핵심으로 84년과 88년 아시안컵에서 2연패라는 위업을 달성했으며, 본인은 88년 아시안게임 베스트팀에 이름을 올렸다. 그는 80년대 사우디의 최고의 선수였으며, 그는 사우디인들로부터 '황제'라고 불렸다.


아시아 역대 베스트 11 | 인스티즈

나가토모 유토

1986년생 / 일본 / 레프트백 / 2008-현재 / 109경기 3골

주요 클럽 : 인테르

월드컵 16강 2회 아시안컵 우승 1회


2010년대 이탈리아의 명문 인테르에서 오래도록 활약한 일본의 전설. 준수한 공격력과 수비력을 지니고 있었으며 성실한 모습을 보여 인테르의 팬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그는 지난 10년간 일본의 대표로 활약하며 3개의 월드컵 대회와 2개의 아시안컵에 참가했으며, 월드컵 16강 2회(10,14)와 아시안컵 우승(11)을 경험했다.


아시아 역대 베스트 11 | 인스티즈

박지성

1981년생 / 대한민국 / 좌우 윙어 / 2000-2011 / 100경기 13골

주요 클럽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PSV

월드컵 4강 1회, 16강 1회, 아시안컵 3위 2회


아시아 역대 최고의 선수 중 하나. 그는 '산소탱크'라는 별명 답게 엄청난 체력과 활동량을 지니고 있었으며, 윙어임에도 태클이 장점인 특이한 유형의 선수였다. 또한 꾸준함과 성실함, 끈기라는 무기들로 자신의 장점을 더욱 빛냈으며, 이런 박지성만의 장점들은 박지성이라는 존재를 더욱 특별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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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타 히데토시

1977년생 / 일본 / 공격형 미드필더 / 1997-2006 / 77경기 11골

주요 클럽 : 페루자, 로마, 파르마

월드컵 16강 1회, 컨페더레이션스컵 준우승 1회


일본 축구의 상징이자 일본 역대 최고의 선수. 00년대 초 당대 최고의 리그였던 세리에에서도 통했을 만큼 엄청난 드리블과 패스, 넘어지지 않는 뛰어난 바디밸런스라는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페루자, 파르마, 로마 등에서 활약했으며, 로마 시절이던 2001년도에는 로마의 통산 3번째 스쿠데토에 공헌했다. 또한 그는 90-00년대 전성기를 보내는 동안 발롱도르 노미네이트 3회, FIFA 올해의 선수 노미네이트 4회에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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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쿠데라 야스히코

1952년생 / 일본 / 레프트 윙 / 1972-1987 / 32경기 9골

주요 클럽 : 쾰른, 베르더브레멘


분데스리가 진출 1세대로 차붐과는 라이벌 관계에 있던 존재. 1977년 분데스리가 쾰른에 진출하며 분데스리가에 진출한 역사상 최초의 아시아 선수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그는 분데스리가 진출 이후 레프트 윙, 수미, 레프트백, 중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포지션에서 활약했으며, 어떤 포지션에서건 자신의 몫을 다 해냈다. 그는 분데스리가에 있는 동안 쾰른, 브레멘 등에서 활약했는데, 쾰른 시절에는 3시즌동안 분데스리가 우승 1회, DFB-포칼 우승 1회, 유로피언컵 4강 1회에 공헌했고, 브레멘 시절에는 5시즌동안 분데스리가 준우승만 3차례를 해냈다. (쾰른 : 94경기 21골, 브레멘 : 190경기 12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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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

1992년생 / 대한민국 / 처진 공격수 / 2010-현재 / 71경기 23골

주요 클럽 : 함부르크, 레버쿠젠, 토트넘

아시안컵 준우승 1회, 3위 1회, 아시안게임 금메달 1회


아시아 역대 최고의 선수가 될 수 있는 선수. 92년생으로 현재진행형임에도 현재 유럽에서만 311경기에 출전해 97골이라는 엄청난 기록을 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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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제드 압둘라

1959년생 / 사우디아라비아 / 스트라이커 / 1977-1994 / 116경기 71골

주요 클럽 : 알 나스르

월드컵 16강 1회, 아시안컵 2회


사람들로부터 '오페르트의 펠레' 혹은 '사막의 펠레'라고 불린 서아시아 역대 최고의 선수. 뛰어난 개인기와 드리블, 빠른 스피드와 골 결정력을 지니고 있었던 선수였다. 그는 사막의 펠레라는 별명답게 골을 넣는데 능통했으며, 사우디 리그 득점왕 6회, 컵대회 득점왕 5회, 걸프컵 득점왕 3회, 아랍게임 득점왕 1회 등 현역 시절에만 무려 10번이 넘는 득점왕 경력을 가지고 있다. 또한 그는 1984년부터 1986년까지 아시아 올해의 선수를 3회 연속 수상한 역사상 유이한 선수로 남아있다. (다른 하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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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범근

1953년생 / 대한민국 / 스트라이커 / 1972-1986 / 136경기 58골

주요 클럽 : 프랑크푸르트, 레버쿠젠

아시안컵 준우승 1회


모두가 인정하는 아시아 역대 최고의 선수. 보수적이였던 70년대 '해외로의 이적은 국가를 등지는 것이다'라는 말에 굴복하지 않고 해외로 나가 아시아 선수들의 가능성을 축구계에 알렸던 선구자적인 선수였다. 그는 아시아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편견과 차별이 있었음에도 기죽지 않고 분데스리가에서 맹위를 떨쳤으며, 유럽에서 11년간 무려 372경기 121골이라는 엄청난 기록을 세웠다. 80년대 후반 AC밀란으로 이적 할 수 있었으나 돈문제로 계약이 무산된 경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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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 14인

[골키퍼2, 수비수4, 미드필더4, 공격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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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운재

1973년생 / 대한민국 / 골키퍼 / 1993-2010 / 133경기

주요 클럽 : 수원삼성

월드컵 4강 1회, 16강 1회. 아시안컵 3위 2회


동아시아 최고의 골키퍼. 골키퍼치곤 작은 키(182cm)였지만 뛰어난 안정감을 지니고 있었으며, 엄청난 패널티 선방을 자랑했던 선수였다. 그는 한국 대표팀으로 2002년 월드컵에 참가해 연일 멋있는 선방과 스페인전 호아킨의 패널티 선방 등의 장면들을 남기며 한국을 월드컵 4강에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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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세르 헤자지

1949년생 / 이란 / 골키퍼 / 1968-1980 / 62경기

주요 클럽 : 타지SC, 에스테글랄

아시안컵 2회


이란 역대 최고의 골키퍼를 넘어 이란 역대 최고의 선수로 불리는 존재. 그 명성이 얼마나 대단하냐면 헤자지가 은퇴한지 수십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란을 '나세르 헤자지의 나라'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존재할 정도다. 그의 기량은 월드클래스에 근접했을 만큼 뛰어났으며, 실제로 맨유에서 헤자지에게 제안했으나 이적이 성사되기 직전 '이란 혁명'이 터지면서 무산된 적이 있다. 그는 이란 대표팀으로 12년간 62경기를 뛰었으며, 1972년과 1976년 2번의 아시안컵에서 우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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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표

1977년생 / 대한민국 / 레프트백 / 1999-2011 / 127경기 5골

주요 클럽 : PSV, 토트넘

월드컵 4위 1회, 아시안컵 3위 2회


나가토모와 함께 아시아 축구 레프트백의 양대산맥. 좋은 수비력과 눈이 어지러울만큼 뛰어난 헛다리 능력이 인상적이였던 선수였다. 그는 00년대 대한민국 축구와 PSV의 전성기를 이끌었으며, 한국 대표팀으로는 월드컵 4강, PSV에서는 에레디비지에 2회와 챔피언스 리그 4강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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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라 마사미

1967년생 / 일본 / 리베로(센터백) / 1988-1999 / 122경기 5골

주요 클럽 : 요코하마

아시안컵 우승 1회

아시아 올해의 선수 1회


홍명보의 라이벌이자 일본 역대 최고의 수비수. 홍명보와 같은 포지션인 리베로에서 활약했으며, 리베로 답게 중장거리 패스를 통한 빌드업과 뛰어난 수비력이 장점이였다. 그는 90년대 일본의 요코하마에서 활약했으며, 8년간 J리그 베스트 5회, 아시아 올해의 선수 1회를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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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만 레자에이

1975년생 / 이란 / 센터백 / 2001-2009 / 56경기 3골

주요 클럽 : 페루자, 메시나, 리보르노

아시안컵 3위 1회


팬들로부터 'The Flying Carpet'(날으는 양탄자) 혹은 'Secretary of Defense'(국방부 장관)이라고 불렸던 이란 축구의 전설. 00년대 초 나카타의 뒤를 이어 이탈리아 축구계에 진출했고, 팀의 주전으로 활약하며 페루자, 메시나, 리보르노의 전성기를 이끌었다.(특히 메시나에서는 04-05 시즌 리그 7위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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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드 알-몬타샤리

1982년생 / 사우디아라비아 / 센터백 / 2002-2011 / 54경기 8골

주요 클럽 : 알-이티하드

아시아 올해의 선수


명문 알 이티하드의 원클럽맨. 15년간 300경기 넘게 출전했으며, 사우디 리그 3회, 컵대회 3회,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2회 등을 해내며 알 이티하드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또한 2005년도에는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에서 무패우승을 해냈으며, 활약을 인정받아 2005년 아시아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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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용

1989년생 / 대한민국 / 중앙 미드필더 / 2008-현재 / 105경기 10골

주요 클럽 : 셀틱, 스완지, 서울

월드컵 16강 1회, 아시안컵 준우승 1회, 3위 1회, 올림픽 동메달


아시아의 알론소, 피를로라는 별명을 얻어도 손색없는 선수. 00~10년대 아시아를 대표하는 중앙 미드필더로 뛰어난 패스가 최고의 장점이였다. 그는 10년간 유럽 생활을 하면서, 셀틱을 거쳐 스완지, 선더랜드, 뉴캐슬에 이르기까지 점점 수준높은 팀들로 이적하면서 자신의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AC밀란, 유벤투스로부터 관심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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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바드 네쿠남

1980년생 / 이란 / 중앙 미드필더 / 2000-2015 / 151경기 39골

주요 클럽 : 오사수나

아시안컵 3위 1회, 아시안게임 금메달 1회


스페인 무대에서 성공한 몇 없는 아시아인. 킥력, 수비력, 패스 어느하나 부족하지 않았던 선수로 00년대 후반~10년대 초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그는 아시아인이 거의 가지 못했던 스페인으로 진출했으며, 스페인 오사수나에서 활약하며 6시즌간 174경기 26골을 넣었다. 이후 이란, 쿠웨이트 리그를 돌아다니던 중 2014년 2부리그로 강등된 오사수나를 구하기 위해 오사수나에 재입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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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성

1966년생 / 대한민국 / 공격형 미드필더 / 1985-1996 / 76경기 14골

주요 클럽 : 부산, 보훔

아시안컵 준우승 1회


1999년 IFFHS 선정 20세기 아시아 최고의 선수 2위 (1위는 차범근). 모든 것들을 잘했던 만능형 선수였으며, 주포지션을 정하기 힘들만큼 공격 포지션부터 수비 포지션까지 모든 곳에서 잘했다. 그는 80-90년대 아시아 최고의 선수였으며, 89년부터 91년까지 아시아 올해의 선수상을 3연패하며 역사상 유이한 선수로 남게 되었다. (다른 하나는 사우디의 마제드 압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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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 파르빈

1946년생 / 이란 / 공격형 미드필더 / 1970-1980 / 76경기 8골

주요 클럽 : 페르세폴리스

아시안컵 2회, 아시안게임 금메달 1회


알리 다에이, 나세르 헤자지와 함께 이란 축구사의 삼대장격인 인물. 이란 축구팬들에게 'Sulta'(왕)이라고 불렸을 만큼 뛰어난 리더십과 카리스마, 개인 기량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70년대 이란의 중심이였으며, 이란 대표로 아시안컵 2회, 아시안게임 금메달 1회를 획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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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모토 구니시게

1944년생 / 일본 / 스트라이커 / 1964-1977 / 76경기 75골

주요 클럽 : 얀마 디젤

올림픽 동메달 1회


일본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하나. 60-70년대 일본 추구를 대표하던 인물로 얀마 디젤(지금의 세레소 오사카)에서 맹활약했던 인물이였다. 그는 '포쳐'(골잡이)에 어울리는 선수였을 만큼 빠르고 날카로운 슈팅이 인상적이였던 선수였으며, 그런 자신의 장점을 살려 얀마 디젤에서는 311경기 262골, 일본 대표팀에서는 76경기 75골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다. 또한 그는 리그에서 득점왕 7번, 베스트11 14번을 수상했으며, 1968년 올림픽에서는 동메달과 올림픽 득점왕을 획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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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 다에이

1969년생 / 이란 / 스트라이커 / 1993-2006 / 149경기 109골

주요 클럽 : 페르세폴리스

아시안컵 3위 2회, 아시안게임 금메달 2회


축구 역사상 유일하게 국가대표 100골을 넘긴 선수. 90-00년대  아시아의 대표적인 스트라이커 중 하나로 클럽에서의 아쉬운 활약과는 달리 국가대표로서는 좋은 활약을 펼쳤다. 그는 특히 96년 아시안컵에서는 8골로 득점왕에 오르는가 하면 98년도에는 아시안게임에서 9골을 넣었으며, 99년도에는 아시아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었다. (독일의 빌레펠트, 뮌헨, 헤르타 등에서 뛰었으나 좋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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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우라 카즈요시

1967년생 / 일본 / 스트라이커 / 1990-2000 / 89경기 55골

주요 클럽 : 도쿄 베르디

아시안컵 1회


일본 팬들로부터 'King Kazu'라고 불리며 큰 사랑을 받았던 90년대 일본 최고의 스타. 1999년 IFFHS에서 선정한 20세기 아시아 최고의 선수 4위에 오른 인물이였다. 그는 일본의 브라질 축구유학 1세대 선수로 산토스, 팔메이라스에서 뛰었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1990년 일본으로 돌아왔다. 일본으로 돌아온 이후 기량이 만개하기 시작했으며, 일본 대표팀, 베르디에서 경기당 0.5 이상의 엄청난 수의 골을 넣었다. 미우라는 자기관리가 철저한 선수로 51세인 2018년 지금 현재까지도 현역으로 뛰고 있다. (1986년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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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리노 알칸타라

1896년생 / 필리핀, 스페인 / 스트라이커 / 1917(필), 1921-1923(스) / 2경기 1골(필), 5경기 6골(스)

주요 클럽 : FC바르셀로나, 보헤미안 스포르팅 클럽


아시아 역사상 최초로 스페인에서 활약했으며, 스페인에서 큰 족적을 남긴 선수. 본래는 필리핀인으로 바르셀로나에서 살던 중 바르셀로나의 회장인 후안 감페르에 의해 발견되었다. 이후 바르셀로나에서 활약했으며, 1916년 필리핀으로 2년간 의사공부를 하기 위해 떠났다가 1918년 복귀 후 1927년까지 활약했다. 그는 초창기 스페인에서 활약하며 357경기에 출전해 무려 369골을 넣었으며, 카탈루냐 리그 10회, 코파 델 레이 5회 등의 많은 트로피를 획득했다.







기타

(위에 나오지 않은 나라의 선수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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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드 라디

1964년생 / 스트라이커 / 이라크 / 1982-1997 / 121경기 62골

주요 클럽 : 알 자우라, 알 라시드

월드컵 출전 1회


이라크 역사상 최고의 선수. 날카로운 침투와 골 결정력을 가지고 있던 선수로 80-90년대 클럽과 이라크에서 300골을 넘게 넣었다. 그는 주로 자국의 소속팀은 알 자우라, 알 라시드 등에서 활약했으며, 현역 시절 이라크 리그 5회, 이라크 컵 7회, 아랍 컵 3회  등의 트로피를 획득했다. 또한 그는 1986년 이라크를 월드컵에 진출시켰으며, 벨기에전에서 골을 넣어 이라크 역사상 유일하게 월드컵에서 골을 넣은 선수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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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꽁빈

1985년생 / 처진 공격수 / 베트남 / 2004-2016 / 83경기 51골

주요 클럽 : 하노이, 송람 응에안

아시안컵 8강 1회, 동남아 선수권 대회 1회


베트남의 축구 영웅. 주 포지션은 처진 공격수와 스트라이커였으며 빠르고 결정력이 좋은 선수로 유명했다. 그는 주로 베트남 리그에서 활약했으며, 베트남 리그 골든볼 3회, 실버볼 1회, 브론즈볼 3회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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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두익

1943년생 / 공격수 / 북한 / ?-1966-? / 5?경기 2?골


'동양의 진주'라고 불렸던 북한 축구의 상징. 1966년 월드컵 당시 팀의 중심 역할을 맡았으며, 이탈리아전에서 결승골을 넣으며 북한을 월드컵 8강에 올려 놓았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66년 월드컵 이후 김일성에게 초청받아 만찬과 칭찬을 받았으며, 군대 계급이 승진됐다고 한다. (어디까지나 들리는 소문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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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후이탕

1905년생 / 스트라이커 / 중국 / ?-? / ?-?

주요 클럽 : 사우스 차이나


중국 축구 최고의 전설로 불리는 인물. 홍콩 리그에서 무려 1260골을 넣었다고 전해진다. 그는 그물을 찢을만큼 강력한 슈팅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리 후이탕은 1920-40년대 선수로 홍콩 리그에서 1260골을 넣었다고 알려졌으며, 사우스 차이나 소속으로 홍콩 리그에서 8번 우승했다. (중국 대표팀으로는 극동아시아게임에 나가 5번 우승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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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크타르 다하리

1953년생 / 스트라이커 / 말레이시아 / 1972-185 / 111경기 50골

주요 클럽 : 슬랑오르 FA

아시안컵 3위 1회, 동남아 선수권 대회 2회


'Super Mokh'(슈퍼 모크)라고 불렸던 말레이시아 역대 최고의 선수. 또한 70-80년대 동남아 최고의 선수로 통한다. 그는 빠르고 날카로운 선수였으며, 슬랑오르 FA에서 15년간 175골을 넣었다. 그는 1978년 잉글랜드와 경기했는데, 당시 잉글랜드를 상대로 골을 넣었다. 그리고 그 경기에서 뛴 잉글랜드의 한 선수는 '영웅 다하리!'라며 그를 칭찬했다고 전해진다. 은퇴 후 이런저런 스포츠로 여가생활을 하던 중 목이 아파 병원에 갔는데 근이영양증이라는 진단을 받고 병마와 싸우다 1991년 7월 11일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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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심 샤츠키흐

1978년생 / 스트라이커 / 우즈베키스탄 / 1999-2014 / 61경기 34골

주요 클럽 : 디나모 키예프

아시안컵 4위 1회


우즈벡 축구의 전성시대를 연 우즈벡 역사상 최고의 선수이자 유럽 무대에서 크게 성공한 아시아인. 1999년 밀란으로 떠난 세브첸코의 대체자로 우크라이나의 명문 디나모키예프에 입단했고, 세브첸코의 빈자리를 모두 채웠던 선수였다. 그는 10년간 디나모에서 활약하며 328경기에 출전해 142골을 넣었으며, 우크라이나 프리미어 리그 득점왕 2회, 컵대회 득점왕 3회, 우크라이나 리그 6회, 컵 5회 등의 위대한 커리어를 쌓았다.


아시아 역대 베스트 11 | 인스티즈

피아퐁 푸에-온

1959년생 / 스트라이커 / 태국 / 1981-1997 / 100경기 70골

주요 클럽 : 럭키 금성, 에어 포스 센트럴


태국 역대 최고의 선수로 태국에서 범국민적인 인기를 누렸던 슈퍼스타. 1980년대 동남아 최고의 선수였던 그는 태국 국가대표로 한국, 중국, 일본 등에게 골을 넣었다. 피아퐁의 활약에 반한 럭키 금성은 1984년 피아퐁을 영입했으며, 그는 1985년 리그 득점왕, 도움왕, 베스트를 모두 차지하는 엄청난 커리어를 작성했다.

(K리그 최초의 외국인 득점왕, 베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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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디 아흐마드

1962년생 / 처진 공격수 / 싱가포르 / 1979-1997 / 101경기 55골

주요 클럽 : 흐로닝헌, 쿠알라룸푸르, 싱가포르FA

동남아 선수권 대회 준우승 3회


80-90년대 동남아 축구를 대표하던 선수 중 하나. 최전방 공격수부터 공격형 미드필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포지션에서 뛰었으며, 그에 걸맞게 골 결정력은 물론 패스와 기술도 좋았다. 그는 싱가포르FA, 쿠알라룸푸르 등에서 활약했으며, 1983년에는 네덜란드의 흐로닝헌으로 진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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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딥 쿠마르 바네르지

1936년생 / 라이트 윙어 / 인도 / 1952-1967 / 84경기 20골

주요 클럽 : 인도 동부 철도FC


1950-60년대 인도 축구에서 활약한 인도의 전설. 주로 라이트 윙어와 최전방 공격수로 활약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1960년 올림픽에서 프랑스를 상대로 골을 넣었으며, 1962년 아시안게임에서는 일본, 태국, 한국을 상대로 골을 넣고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개인 수상으로는 1961년 인도 정부가 수여하는 스포츠 분야 최우수 선수상인 아르주나상을 수상했으며, 2004년도에는 FIFA에서 공로 훈장을 수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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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셈 야쿠브

1953년생 / 스트라이커 / 쿠웨이트  / 1972-1982 / 34골

주요 클럽 : 카다시야 SC


쿠웨이트 역대 최고의 선수. 1970년 브라질 대표팀 감독이였던 마리우 자갈루로부터 '서아시아에 이런 선수가 있는지 몰랐다'라는 극찬을 들었던 선수였다. 그는 14년간의 선수생활 전부를 쿠웨이트의 카다시야에서 보냈으며, 야쿠브는 14년간 리그 6회, 컵 4회를 포함 총 13개의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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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 알-합시

1981년생 / 골키퍼 / 오만 / 2002-현재 / 118경기

주요 클럽 : 위건, 레딩

걸프컵 우승 1회, 준우승 2회


아시아 골키퍼도 잉글랜드에서 통한다는걸 보여 준 골키퍼. 아시아 골키퍼라는 편견을 깨부순 선수로 2010년대 위건, 레딩 등에서 맹활약했던 선수였다. 그는 뛰어난 반사신경과 특유의 탄력있는 플레이로 위건과 레딩의 골문을 지켰으며, 국가대표로는 오만에서 활약하면서 우리에게 '오만쇼크'를 선물했다.


*오만쇼크 - 2004 아시안컵 예선에서 한국이 오만에게 1-3으로 패배한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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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엣지투 소엔투로

1941년생 / 처진 공격수 / 인도네시아 / 1965?-1970 / 68경기 57골

주요 클럽 : 페르시자 자카르타


'자카르타의 신' 혹은 '자카르타의 보물'이라고 불리던 인도네시아 역사상 최고의 선수. 알려진 바에 의하면 골 결정력이 좋고 기술적이였다고 한다. 1960년대 중반 유럽으로 원정을 떠나 브레멘, 페예노르트 등과 붙었는데, 소엔투로가 뛰어난 모습을 보이자 브레멘과 페예노르트가 그를 영입하려고 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당시 인도네시아 정부는 "그는 국민들을 위해 뛰고 싶어한다"라는 말을 전하며 그의 유럽 이적을 막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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