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나폴레옹 전쟁이 향수 역사에 미친 영향은 컸다. 콜로뉴 땅이 독일이 되면서 오 드 콜로뉴를 생산하는 4711번가 공장도 독일 회사가 된 것처럼, 프랑스가 독점하던 기술이 외국으로 유출됐다. 그리하여 1800년대부터는 프랑스가 아닌 다른 나라에서도 서서히 향수 산업이 시작된다. 이제 향수는 프랑스가 아닌 다른 나라에서도 의약품이 아님은 물론이요 위생용품조차 아니게 됐다. 드디어 우리가 이해하는 개념에 가까운 향수가 시작된 것이다. 42. 1800년대엔 여러가지 일들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근대적 비누의 탄생이다. 소금에서 탄산나트륨을 뽑아낼 수 있게 되면서 비누의 대량생산이 가능해졌다. 그 결과 고급품이었던 비누가 일반에 싸게 공급되었다. 비누와 화장품에도 향을 입힐 수 있게 되면서 위생용품으로서의 향수는 완전히 기능을 잃었다. 향수의 효능 효과라고 선전되던 질병 예방 등등은 뻥이었다고 판명이 난 지 이미 오래였다. 43. 따라서 향수의 남은 기능이라고는 귀족들의 사치, 딱 하나였다. 그런데 귀족들은 다 뒈진 마당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향수는 사라지지 않았다. 유럽 각국에서 귀족이 몰락한 대신 부유하고 똑똑한 평민 출신 신흥계급이 나타났다. 이놈들을 부르주아라고 한다. 영국에선 젠트리라고도 한다. 44. 부르주아들은 옛 귀족들의 문화와 생활습관을 따라하고자 했다. 돈은 벌 만큼 벌었으니 기품 있게 살아보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철도가 있는데도 승마술을 익혔고 총이 있는데도 펜싱을 배웠다. 고전 라틴문학이 다시 유행했다. 옛 귀족풍 다기에 차를 마셨고 남자들은 비싼 수입시가를 피웠다. 이렇게 부유한 평민들이 옛 귀족들의 문화를 모방하는 것을 키치라고 한다. 45. 향수는 키치로서 살아남았다. 개 쓸 데 없지만 뿌리면 귀족적인 척 할 수 있는 것. 지금도 향수 브랜드 중에는 1800년대 중반의 키치적 컨셉이 그대로 남아있는 데가 많다. 대표적인 예가 펜할리곤스, 크리드, 아쿠아 디 파르마 등이다. 개중에는 1800년대 컨셉으로 향수를 만들면서 귀족향수, 왕실향수라고 주장하는 이상한 마케팅도 있는데 다 허언증이다. 귀족향수는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식초향수가 귀족적인 거고 1800년대식 알코올 향수는 다 키치다. 46. 향수는 점점 더 평민화, 대중화되어갔다. 기술은 더욱 일반화되었다. 그럼에도 향수는 여전히 사치재였기 때문에 어느 정도 비싼 편이었다. 그래서 1800년대 중반에 이르면 거의 집집마다 증류기를 들여놓게 된다. 교사, 기자, 변호사, 의사 등등 도시에 사는 중산층 치고 증류기 없는 집이 없었다. 그리고 집에 있는 아내를 시켜 신나게 꽃잎을 달여댔다. 집에서 증류해서 만든 향수를 직접 쓰기도 하고 내다 팔기도 했다. 그게 평민층의 쏠쏠한 부수입이었다. 47. 그러면서 자연히 지역마다 다른 향수가 생겼다. 지역마다 주로 나는 꽃과 허브와 과일이 달랐으니 당연하다. 저마다 자기 고장에서 나는 원료, 쉽게 구할 수 있는 원료를 넣어 증류했다. 오늘날 향수 이름에 지역명이 붙는 것들은 대개 이때부터 시작된 민간 레시피다. 예를 들어 향수 이름에 아말피 들어가면 무조건 시트러스다. 그 동네 주부들이 하루종일 레몬 껍질을 증류했기 때문이다. 48. 마찬가지로 향수 이름에 아일랜드라는 이름이 들어가면 무조건 허브, 잔디, 민트다. 풀을 뜯어다 증류한 것만 봐도 아일랜드가 얼마나 척박하고 가난했는지 알 수 있다. 이름에 러시아가 들어가는 향수는 무조건 우디 시프르다. 가죽향, 자작나무향, 모스향 같은 게 주된 재료가 된다. 이렇듯 1800년대 민간 레시피는 지금도 여러 현대향수의 클리셰로 흔히 볼 수 있다. 최근 향수 중에선 메모 레더 시리즈가 이런 편견과 클리셰를 웃기게 버무려 잘 만들었는데 품질도 엄청 좋다. 참고해라. 49. 무엇이든 기술의 발달은 할 수 있어야만 일어난다. 브라질 사람은 전국민이 태어나자마자 공을 찬다. 그 중에 특출난 놈이 있게 마련이고, 그 놈을 하루 종일 공만 차게 만들어 호나우딩요로 키운다. 한국 사람은 전국민이 태어나자마자 게임을 한다. 그 중에 특출난 놈이 있게 마련이고, 그 놈을 하루 종일 게임만 하게 만들어 페이커로 키운다. 이렇듯 무엇이든 발전하려면 전국민이 태어나자마자 그짓을 해야 된다. 그래서 이과충들이 맨날 기초과학이 중요하다는 얘길 하는 거다. 50. 1800년대 후반쯤 되면 온 동네 사람들이 집집마다 향수를 증류하고 자빠졌으니 그 중 특출난 놈이 쏟아져 나오게 됐다. 특출난 놈들은 하루 왼종일 향수만 달이면서 냄새를 킁킁대며 살았는데 이놈들을 일컬어 조향사라고 한다. 물론 이전에도 조향사(퍼퓨머)라는 직업은 있었다. 그러나 이전의 조향사가 목수, 우산제작자, 배관정비사 같은 기술노동직이었다면 1800년대 후반부터 조향사라는 직업은 특별한 창조적 영감을 받아 새로운 작품을 만드는 창작자가 되었다. 조향이 하나의 예술이 된 것이다. 계속... 한줄요약: 19세기엔 향수기술이 널리 보급되어 집집마다 만들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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