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시대 사람 중 일본기록에서만 나오고 한국사에는 등장하지 않는 김태렴이라는 인물이 있는데
이 사람은 8세기경 700명의 사람을 데리고 일본으로 건너가 덴노 상대로 자기가 '신라 왕자'라고 사기를 쳤다
당시 일본 사람들이라고 죄다 바보는 아니었겠지만 당시 일본의 정치적 상황은 신라와 불편한 관계가 이어지는 상황이었던지라
신라왕자가 직접 찾아왔다는 말에 관심을 보일 수 밖에 없었고
김태렴은 귀족들에게 개쩔었던 신라명품을 보여주며 연줄을 트고
덴노를 만났을 때는 절하며 머리를 땅에 박는 퍼포먼스를 통해 신뢰를 얻는다
거기에 김태렴은 '신라가 일본에 그동안 깝쳤는데 이젠 길테니 잘 봐달라'라는 왕의 명령을 받아왔다고 전한다.
이걸 듣고 입이 귀에 걸릴만큼 기뻤던 일본 조정은 4개월동안 김태렴을 황제와 동급으로 대우해주며
김태렴과 그가 데려온 700명의 생활비를 일본 신하라는 명목으로 모두 대주었다.
덕분에 김태렴은 당대 최고의 명승지 관광과 식도락 여행을 일본 정부 돈으로 다녔으며
떠나기 1달 전에는 일본 고위귀족층을 만나 신라물건을 싸게 살 수 있게 해줄테니 돈만 먼저 달라고 하였다
그 귀족들의 해외직구 요청목록이 현재까지 남아있는데 이게 '매신라물해'라고 불리는 국보급 기록문서.(현재는 일본에 있음. 뭐 일본에서 쓴거니...)
일본 관광도 실컷 하고 귀족들에게 돈도 삥뜯어낸 김태렴은 덴노를 만나
'신라 국왕에게 대답하고 올테니 기다려주세요ㅎㅎ'
라고 답하고 기쁨에 절어 상식적인 판단이 불가능했던 일본은 그대로 김태렴을 귀족들의 돈과 함께 신라행 배에 태워보낸다.
하지만 김태렴은 당연히 일본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았고 자신들이 속았단 것조차 몰랐던 일본은 신라에 정식으로 사신을 파견하지만
"신라 너희 이젠 우리에게 엎드리겠다면서 왜 아무말도 없어?"
"??? 갑자기 와선 개1소리... 꺼져"
(삼국사기 기록 '일본국 사신이 왔는데 오만무례하므로 왕이 만나주지 않았다.')
"아니ㅣ 니네 왕자가 와서 그렇게 말했다고!!!!"
"뭔 아... 우리 임금님은 아들이 없어요!"
당시 신라 왕인 경덕왕이 최초로 아들을 본 건 758년으로,
김태렴이 방문했던 752년에는 신라에 왕자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애초에 경덕왕의 나이부터 30대 초반이었으니 외국에 파견해 외교를 맡길만한 자식이 있었을리도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김태렴은 일본에 가면서 외교문서 같은 것은 아무것도 들고가지 않았다.
결국 증명할만한 외교문서도 없고, 왕자가 없다는 사실만 들은채 문전박대당한 일본은 그때서야
자신들이 한낮 사기꾼에게 놀아났다는 것을 깨달았고 외교능력의 부재만 알려준 꼴이 되었다.
이에 화가난 덴노는 신라를 침략하려는 계획을 꾸미지만 상식적으로 그게 될리가 없었으므로 흐지부지되고
이후 일본인들은 역사서에 삼한을 정벌하는 진구황후라는 창작인물을 만들어 넣음으로써 울분을 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