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원동 단단집(aoa건축사사무소, 건축가 서재원)
밤늦게 산책이라도 한답시고 아파트 단지를 돌다 보면 가끔 마주하는 것들이 있는데, 나는 이 재활용 쓰레기라 불리는 것들을 보면 여간 슬프지 않을 때가 많다. 책상이나 책장 같은 가구들이 나와 있을 때도 있지만 밥통이나 가죽소파 같은 바깥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나무 아래 풀밭에 놓여 있을 때면 생을 마감하기 전 마지막 밤을 보내는 사형수 같은 느낌이 들어 마음이 먹먹해질 때도 있다. 집에서 한참 사랑 받고 있다가 그 쓸모가 다하니 매몰차게 바깥으로 내던져진 모습에 우리네 사람 사는 모습과 똑 닮은 것 같기도 하고.
나이가 들어 호르몬 분비가 이상해진 탓인지 이런 쓸데없는 감성이 몸 속 깊숙이 파고들어선 건지, 요즘은 동네를 걷다가도 못생긴 ‘궁전메카빌라’ 같은 친구들한테도 말을 건네기도 한다. 시대의 유행에 따라 만들어진 기와지붕 파라펫이며, 십장생 철제 대문, 지금은 아무도 만들려고 하진 않을 콘크리트 복숭아 난간들을 보고 있자면 그 조잡함과 난잡함에 꼴도 보기 싫다가도 우리 어머니, 아버지 세대의 피와 땀이 온몸으로 스며있는 것 같아 어느새 측은함을 넘어 사랑으로 때묻은 벽돌들을 보듬고 싶어지기도 한다. 시대의 수준이 그랬던 걸 지금 넌 왜 그러냐고 질책해봤자 결국 내 얼굴에 침 뱉는 격이 되어 금새 말을 거두게 된다.
몇 해전 아현 고가가 철거될 때도 마지막 교각 만이라도 남겨지길 간절히 고대했는데 어느 날 지나다 보니 흔적도 없이 싸 그리 사라진 걸 보고 그래도 한참 동안 우리나라 근대화에 일조한 그 친구한테 그렇게까지 해야 했나 하는 미안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며칠 전엔 신문기사를 보니 서울의 전깃줄들을 삼백이십구 킬로나 땅속에 묻는다고 하는데 도통 지저분한 것들은 모두 하루 빨리 숨기고 싶은 건지 오랜 세월 서울 풍경의 스크래치 하나가 사라진다고 생각하면 이 또한 너무 밋밋한 찍어낸듯한 그림이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서운함이 인다. 급속도로 근대화된 서울이기에 전통적인 것과 현대적인 것,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그리고 지저분한 것과 말끔한 것들이 산 아래 강 위에 뒤범벅되있는 것이 서울 아니었던가? 나는 이러한 서울이 개선 혹은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말끔하게 표백되는 것이 왠지 열등감에 스스로를 부정하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 지금의 나는 내가 살아온 삶의 총체이듯 도시 또한 그러할 건데 지금 눈에 보이는 것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하되 정작 중요한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에 더 많은 관심을 둬야 하지 않을까. 시민들은 영문도 모르는 광화문 광장을 옮긴다고 쓸데없는 데 돈 쓰지 말고 사회안전 망과 복지에 힘써 옆집 정신분열증 주민 때문에 불안해하지 않으며, 맘놓고 딸아이를 바깥에 내 보낼 수 있다면 건물이 못생겼든, 전깃줄이 거미줄처럼 날라 다니든 무슨 상관 이겠는가? 단지 바라는 건 미세먼지 없는 푸르른 서울 하늘을 더 많은 날 볼 수 있다면 그 만으로도 충분히 족할 뿐이다.
-한양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서재원-
개인적으로 감명깊게 읽은 글이라 한번 올려봅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 도시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게 된다면 삶이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글 출처:노블레스맨 사진 출처:SPACE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