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출 예약
호출 내역
추천 내역
신고
1주일 보지 않기
카카오톡 공유
주소 복사
공지가 닫혀있습니다 l 열기
양파링ll조회 2108l 2
이 글은 2년 전 (2021/9/16) 게시물이에요

늙은 개와 나, 슬픈 결말을 알면서도 쓰는 이야기 | 인스티즈만화가 정우열씨는 반려견 풋코와 올해로 열아홉 번째 여름을 함께 보냈다.©정우열 제공 

만 18살 5개월의 개와 살고 있다. 나이가 드니 아무래도 전 같진 않지만, 그래도 큰 병 없이 기특할 만큼 건강하게 살아온 편이었다. 아이구, 관리를 정말 잘 해주셨네요, 하고 사람들이 자꾸 날 칭찬하는데, 실은 내가 한 건 별로 없고 개가 알아서 잘 살아준 거라 으쓱하면서 머쓱하다. 어어, 풋코. 잘하긴 니가 잘했는데 칭찬은 내가 받네? 고마워, 미안해. 사람들이 지나가고 둘만 남으면 개에게 속삭이곤 한다. 

그런데 지난 5월,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멀쩡하던 개가 갑자기 몸을 가누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뒷다리는 땅에 질질 끌리고 고개는 푹 처진 채 헥헥거리며 같은 자리를 맴돌았다. 그 후로 한동안 매일같이 한 시간 거리의 동물병원 입원실에 가서 개는 온종일 링거를 맞았고, 나도 그 옆에 하릴없이 누워 있었다. 그땐 이상하게 마음이 편했다. 개를 돌보는 것 이외에, 그동안 내 뒤를 바짝 쫓던 근심걱정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일이 되어버렸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생각해본다.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을까. 다 큰 어른 인간이 개 한 마리 붙잡고 너무 생산력이랄까, 노동력이랄까 하여튼 무슨 력을 낭비하고 있는 건 아닐까. 과연 이러는 게 세상이 나아지는 데 먼지 한 톨만큼이라도 기여하는 바가 있을까. 동물병원은 온통 조그만 털북숭이를 끌어안고 세상 근심 다 짊어진 듯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는 사람들 천지인 곳이라, 어쩌면 생산력이나 노동력, 하여튼 그 무슨 력이 콸콸 새고 있는 구멍인지도 모른다. 누가 억지로 시킨 것도 아니고 어떤 숭고한 대의가 있는 것 같지도 않은데 이 사람들은 굳이 스스로 복실이들을 품어서 고통받고 있구나. 

사람이 죽음을 맞으면 무지개다리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던 반려동물이 마중을 나와 반겨준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게 된다. 반려동물을 떠나보낸 사람들에게 꽤 위로가 되는 이야기인 것 같다. 고마운 일이지만, 나는 어쩐지 이 이야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한 사람이 전 생애 동안 몇 마리의 (반려)동물을 보살피고 그들에게 얼마나 큰 행복을 주었든, 그러는 동안 그 몇백, 몇천 배 이상의 동물을 고통과 죽음으로 몰아넣었을 것이다. 잡아먹고, 잡아먹기 위해 고통스럽게 키우고, 그러다 수틀리면 구덩이를 파서 포클레인으로 밀어 넣고, 그래도 어떻게든 먹겠다고 또 키운다. 만약 우리에게 무지개다리 건너에서 꿈에도 그리던 반려동물과 재회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전에 마땅히 우리가 도륙한 수많은 동물들을 먼저 만나 빚부터 청산해야 할 것이다. 

개의 건강상태는 좀 나아졌다. 우리는 올해로 열아홉 번째 여름을 함께 보냈다. 여름이면 언제나 함께 바다에서 헤엄을 쳤는데, 이젠 안 될 것 같았지만 혹시나 하고 얼마 전 개를 물에 넣어보니 역시나 더는 헤엄치질 못했다. 얼른 개를 물 밖으로 꺼냈다. 응, 괜찮아, 풋코. 그동안 실컷 헤엄쳐서 행복했으니 그걸로 됐지. 앞으로도 뭐든 행복하면 하고, 행복하지 않으면 하지 말자고. 

 

https://n.news.naver.com/article/308/0000029426?cds=news_edit
추천  2

이런 글은 어떠세요?

 
마늘장인민슈가-ㅅ-  감바스해주까 -ㅅ-
👏
2년 전
로그인 후 댓글을 달아보세요
 
카테고리
  1 / 3   키보드
닉네임날짜조회
유머·감동 문학적 감이 있는지 알아보는 문제308 백챠9:2346335 9
이슈·소식 노는 사람이 더 버는 실업급여…"폐지 검토292 요원출신04.18 23:2493949 11
유머·감동 밥빵면떡죽 좋아하는 순서대로 적어보는 달글214 하루에ㄷ10:5818329 0
유머·감동 의외로 경상도VS전라도 사람들 자존심 거는 것176 원아앙10:2035589 12
이슈·소식 [단독] 수원·파주·서울서 저지당한 성인페스티벌 취소 결정184 토끼두마링04.18 22:0875811 12
현재 반응갈리는 젠틀몬스터 최애 로고.JPG1 우우아아 15:30 705 0
등드름은 2가지만 안 먹으면 사라지니까 참고하셈3 유미마이 15:26 1762 0
아이돌 최초로 청하 I'm Ready 커버한 여돌 yg지하가적격 15:25 704 0
카피바라가 등장하는 블핑 제니 × 젠틀몬스터 콜라보 티저1 락토핏127 15:07 1616 0
300만뷰 입시여신→아이유 아역 출신…'아이랜드2', 첫 방송 어땠나1 a+b=cd 14:59 3803 0
단체로 크러쉬 말리고 있는 크러쉬 팬들…jpg11 lucky today 14:50 7301 0
요즘 1020이 생각하는 트렌드의 흐름.jpg5 우우아아 14:47 4121 0
콘텐츠 때문에 유튜브 댓글창 난리난 아이돌(스압) 헬로커카 14:47 3660 0
'29일 컴백' 82메이저, 단체컷 의문의 복면 6인 정체는? 네모동표@@ 14:45 283 0
청춘 영화 남주 재질인 김연아 남편 포터스텔라 고우림.jpg3 파닥파닭 14:42 2537 1
남녀의 출산조건을 보고 화가 난 유튜버.jpg116 윤콩알 14:41 8266 4
02년생이랑 기싸움하는 68년생 (feat. 송강 닮은꼴).jpg15 천재될거야 14:40 5913 5
故 문빈 1주기 맞아 발매된 진진(ASTRO) – Fly (Duet with. 문빈..1 doremu 14:33 1175 1
드디어 어울리는 색을 찾은 거 같은 데뷔 4년 차 아이돌...jpg1 네모동표@@ 14:31 5152 2
'역대 대통령 진료' 국군서울지구병원, 용산으로 이전 검토20 담한별 14:21 5482 0
멸종예정인 생태교란식물7 kf97 14:16 6212 0
대한민국 평균 가구 금융 및 부동산자산 규모 토롱잉 14:15 1572 0
핱시 김지영이 승무원 시절 경험한 진상 탑승객1 솜마이 14:15 7037 1
웬만한 컨셉으로는 팬들도 그렇고 놀라지 않을 거 같은 그룹...jpg a+b=cd 14:14 2169 0
시구하러 갔다가 파울볼 맞고 혼절했던 여돌 근황.jpg26 마이멜오디 13:57 14028 6
전체 인기글 l 안내
4/19 15:34 ~ 4/19 15:36 기준
1 ~ 10위
11 ~ 20위
1 ~ 10위
11 ~ 20위
유머·감동 인기글 l 안내
4/19 15:34 ~ 4/19 15:36 기준
1 ~ 10위
11 ~ 20위
1 ~ 10위
11 ~ 20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