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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니부깅ll조회 18882l 56
이 글은 1년 전 (2023/3/25) 게시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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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이 너무 예뻐서 필사하고 싶었던 구절 있니 | 인스티즈


'글을 어떻게 이렇게 쓰지?' 하고 감탄했던 구절이나
너무 이뻐서 손으로 써보고 싶었던 구절 있으면
써주고가줘~!

내가 이번에 필사용 공책사서 써보고싶어서 글쪘어~





[사립학교 아이들 / 커티스 시튼펠드]

나는 늘 누군가가 나를 발견할까 봐 두려웠고, 막상 아무도 발견해 주지 않으면 서글펐다.



[꿈꾸는 책들의 도시 / 발터 뫼르스]

나는 지금까지 그림자 제왕보다 더 아름답고 더 거칠고 더 불안스럽고 더 슬픈 것은 보지 못했다. 그는 그 불길들 사이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그는 혼자 있지 않으려고 춤을 추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더니 그는 웃기 시작했다. 내가 오랫동안 듣지 못했던 그림자 제왕의 그 바스락거리는 웃음소리였다. 그러자 갑자기 내 눈에서 눈물이 멎었다. 왜냐하면 그가 아주 행복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행복하고 자유로워 보였다.



[위대한 유산 / 찰스 디킨스]

You have been in every line I have ever read, since I first came here, the rough common boy whose poor heart you wounded even then.

“그리고 무엇보다 넌 내가 해가 비치는 곳에 있을 때보다 어두운 구름 밑에 있을 때 날 더 편안하게 대해줬어. 내게는 그게 가장 좋았어.”



[책도둑 / 마커스 주삭]

힘멜 거리의 창문에서 별들이 내 눈에 불을 놓았다. 막스는 그렇게 썼다.



[자기만의 방 / 버지니아 울프 / 민음사]

셰익스피어 시대에 어떤 여성이 셰익스피어의 재능을 갖는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셰익스피어 같은 천재는 교육받지 못하고 노동하며 노예처럼 사는 사람들 가운데서 태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천재는 영국의 색슨족이나 브리튼족에서 태어난 적이 없으며 오늘날 노동계층에서도 태어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천재가 어떻게 여성들 가운데서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

어느 누구도 이 점에 대해 이보다 명료하게 표현할 수 없을 겁니다. “요즈음뿐 아니라 과거 이백 년 동안에도 가난한 시인들은 아주 작은 기회조차 얻을 수 없었다 …… 영국의 가난한 집 아이들은 위대한 작품들을 산출하는 지적 자유로 해방될 희망이 아테네 노예의 아들만큼이나 없는 것이다.” 바로 그것입니다. 지적 자유는 물질적인 것들에 달려 있습니다. 시는 지적 자유에 달려 있지요. 그리고 여성은 그저 이백 년 동안이 아니라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언제나 가난했습니다. 여성은 아테네 노예의 아들보다도 지적 자유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여성에게는 시를 쓸 수 있는 일말의 기회도 없었던 거지요. 이러한 이유로 나는 돈과 자기만의 방을 그토록 강조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에게 아무리 사소하고 아무리 광범위한 주제라도 망설이지 말고 어떤 종류의 책이라도 쓰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여행하고 빈둥거리며 세계의 미래와 과거를 성찰하고 책을 읽고 공상에 잠기며 길거리를 배회하고 사고의 낚싯줄을 강 속에 깊이 담글 수 있기에 충분한 돈을 여러분 스스로 소유하게 되기 바랍니다.



[자기 앞의 생 / 에밀 아자르 / 문학동네 / 용경식]

나는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겪어본 후에야 그놈의 행복이란 걸 겪어볼 생각이다.

사람들은 들이 젊었을 때는 성가시게 쫓아다니지만 일단 늙으면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젊은 들에게는 포주가 있지만 늙은 들에게는 아무도 없다. 나는 할 수만 있다면 늙은 들만 맡고 싶다. 나는 늙고 못생기고 더 이상 쓸모없는 들만 맡아서 포주 노릇을 할 것이다. 그들을 보살피고 평등하게 대해줄 것이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힘센 경찰과 포주가 되어서 엘리베이터도 없는 칠층 아파트에서 버려진 채 울고 있는 늙은 가 다시는 없도록 하겠다.

한밤중에 추워서 잠이 깼다. 나는 일어나서 그녀에게 이불을 하나 더 덮어주었다.



[비행운 / 김애란]

전에도 이런 날이 있었다. 태양 아래, 잘 익은 단감처럼 단단했던 지구가 당도를 잃고 물러지던 날들이. 아주 먼 데서 형성된 기류가 이곳까지 흘러와 내게 영향을 주던 시간이. 비가 내리고, 계속 내리고, 자꾸 내리던 시절이. 말하자면 세계가 점점 싱거워지던 날들이 말이다.

도시 곳곳에는 한쪽 손을 번쩍 들어 택시를 잡은 뒤, 술에 취해 아름답고 어그러진 말들을 차비처럼 내려놓고 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때론 두서없고 엉뚱한, 어느 때는 철렁하고 알 수 없는 말들을 반짝이는 동전처럼 흘리고 가는 이들이.



[고등어 / 공지영]

이건 형한테만 알려주는 비밀인데, 난 여름을 아주 좋아해요. 하지만 아무 여름날이라고 내가 다 좋아하는 건 아니구, 그러니까 이런 조건들을 갖추고 있어야 해. 첫째로 기온이 아주 높고 뭉게구름 피어나는 하늘이 파란 건조한 날씨에, 둘째로 바람이 아주 많이 불고, 셋째로 키가 큰 나무의 나뭇잎들이 햇볕에 반짝이며 팔랑거려야 해요. 그러면 나는 살고 싶어져요. 내 안에서 어떤 생명력이 막 생겨나는 것만 같거든……



[그 남자네 집 / 박완서]

한번 뒤집혔던 세상이 원상으로 복귀해서 미처 숨 돌릴 새 없이 다시 뒤집혔다가 또 한 번 뒤집히는 엎치락뒤치락의 틈바구니에서 우리집에서는 이런 일이 있었고, 그 남자네 집에서는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이다. 국가라는 큰 몸뚱이가 그런 자반뒤집기를 하는데 성하게 남아날 수 있는 백성이 몇이나 되겠는가. 하여 우리는 서로 조금도 동정 같은 거 하지 않았다. 우리가 받은 고통은 김치하고 밥처럼 평균치의 밥상이었으니까. 만약 아무도 죽지도 않고 찢어지지도 않고 온전한 가족이 있다면 우리는 그 얌체꼴을 참을 수 없어 그 집 외동아들이라도 유괴할 것을 모의했을지도 모른다.

그래, 실컷 젊음을 낭비하려무나. 넘칠 때 낭비하는 건 죄가 아니라 미덕이다. 낭비하지 못하고 아껴둔다고 그게 영원히 네 소유가 되는 건 아니란다.

우리의 포옹은 내가 꿈꾸던 포옹하고도 욕망하던 포옹하고도 달랐다. 우리의 포옹은 물처럼 담담하고 완벽했다.
우리의 결별은 그것으로 족했다.



[키친 / 요시모토 바나나]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장소는 부엌이다.
그것이 어디에 있든, 어떤 모양이든, 부엌이기만 하면, 음식을 만들 수 있는 장소이기만 하면 나는 고통스럽지 않다. 기능을 잘 살려 오랜 세월 손때가 묻도록 사용한 부엌이라면 더욱 좋다. 뽀송뽀송하게 마른 깨끗한 행주가 몇 장 걸려 있고 하얀 타일이 반짝반짝 빛난다.
구역질이 날 만큼 너저분한 부엌도 끔찍이 좋아한다.
바닥에 채소 부스러기가 널려 있고, 실내화 밑창이 새카매질 만큼 더러운 그곳은, 유난스럽게 넓어야 좋다. 한 겨울쯤 무난히 넘길 수 있을 만큼 식료품이 가득 채워진 거대한 냉장고가 우뚝 서 있고, 나는 그 은색 문에 기댄다. 튀긴 기름으로 눅진한 가스 레인지며 녹슨 부엌칼에서 문득 눈을 돌리면, 창밖에서는 별이 쓸쓸하게 빛난다.
나와 부엌만이 남는다. 나 혼자라고 생각하는 것보다, 아주 조금이나마 나은 사상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기진맥진 지쳤을 때, 나는 문득 생각에 잠긴다. 언젠가 죽을 때가 오면, 부엌에서 숨을 거두고 싶다고. 홀로 있어 추운 곳이든, 누군가 있어 따스한 곳이든, 나는 떨지 않고 똑바로 쳐다보고 싶다. 부엌이면 좋겠는데, 라고 생각한다.



[기나긴 하루 / 박완서]

입국수속을 마치고 짐 찾는 아래층에 안전하게 발을 디디자 비로소 고래 뱃속을 빠져나왔구나, 하는 현실감이 왔다. 이번 여행길을 통틀어 방금 내린 비행기까지가 다 고래 뱃속의 일로 여겨졌다. 어쩌면 지난 이십 년 동안의 설렘도 목적도 없는 여행이 다 고래 뱃속 안에서의 헤맴이 아니었을까. 오랜만에 내 땅에 첫발을 디딘 착지감은 눈 감고도 느낄 수 있는 첫사랑과의 터치처럼 에로틱하기조차 했다. 죽어서도 당신에게 스미고 싶어. 그런 황홀경이었다.

논의 벼는 비단폭처럼 선연하게 푸르고, 옥수수밭은 비로드처럼 부드럽게 푸르고, 먼 오대산의 연봉의 기상은 웅장하고, 오대산에서 흘러내린 맑은 물에 도처에서 내와 개울을 이루고 있다. 아름다운 고장이다. 이 땅 어디메고 아름답지 않은 곳이 있으랴.
그러나 아직도 얼마나 뿌리내리기 힘든 고장인가.

초록빛 나는 풀, 나물, 채소 등이 풍기는 풋풋한 시골 들판의 냄새를 우리는 좋아했다. 가깝고 낮은 산들의 초록빛, 멀수록 푸른빛을 띠다가 푸른 안개처럼 번져 보이는 먼, 먼 높은 산들, 밭둑의 미루나무, 마을 어귀 까치집이 매달린 고목, 느릿느릿 꼬부라진 들길, 그런 평범한 풍경들이 그와 함께 바라보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더 좋은 것은 그를 바라보는 거였다.



[홈 / 메릴린 로빈슨]

이런 날 향기로운 음식을 만드는 것 말고 되찾은 평안과 안녕을 선포할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엄마는 늘 그렇게 했다. 심각한 재난이 지나가고 나면 으레 계피가 든 롤빵이나 초콜릿 케이크, 닭 요리나 푸딩 냄새로 온 집안을 가득 채웠다. 거기에는 ‘이 집에는 우리 모두를 사랑하는 영혼이 있어.’ 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그리하여 돌아갈 고향이 있기만 하다면 마침내 영혼은 자기 고향을 찾아내고 만다.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 박완서]

내가 살아 낸 세월은 물론 흔하디흔한 개인사에 속할 터이나 펼쳐 보면 무지막지하게 직조되어 들어온 시대의 씨줄 때문에 내가 원하는 무늬를 짤 수가 없었다.



[혼불 / 최명희]

그것은 한낱 힘없는 달걀들의 무모한 몽상이요, 벙어리 시늉일는지도 몰라. 눈멀고 귀먹어 민둥하니 낯바닥 봉창이 된 달걀, 껍데기 한 겹, 그까짓 것 어느 귀퉁이 모서리에 톡 때리면 그만 좌르르, 속이 쏟아져 버리는 알 하나 그것이 바위를 부수겠다며 온몸을 던져 치면, 세상이 웃을 것이다. 하지만 바위는 아무리 강해도 죽은 것이요, 달걀은 아무리 약해도 산 것이니, 바위는 부서져 모래가 되겠지만, 달걀은 깨어나 바위를 넘는다.

온 세상이 다 있어도 나 없으면 쇠용없고, 내가 있으면, 내 인생이 바로 온 세상이여. 가진 것 없다고 넘의 것 욕심 내지 말고, 욕심 내다 헛발 딛지 말어. 인생살이 외줄타기 목숨은 한 가닥인디, 외나무리 다리 건너가다 뒤퉁그러져 그 잘난 뼉다구 박살나까 싶응게.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 박완서]

막 대학 문턱에 들어선 초년생에게 대학은 진리와 자유의 공간이었고, 만 권의 책이었고, 그 안에 숨어 있는 아름다운 문장이었고, 지적 갈증을 축여줄 명강의였다. 사랑과 진리 등 온갖 좋은 것들이었다. 나는 그런 것들로 나만의 아름다운 비단을 짤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막 베틀에 앉아 내가 꿈꾸던 비단은 한 뼘도 짜기 전에 무참히 중턱을 잘리고 말았다. 전쟁은 그렇게 무자비했다. 그래도 나는 살아남았으니까 다른 인생을 직조할 수도 있었지만 내가 당초에 꿈꾸던 비단은 아니었다. 내가 꿈꾸던 비단은 현재 내가 실제로 획득한 비단보다 못할 수도 있지만, 가본 길보다는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다운 것처럼 내가 놓친 꿈에 비해 현실적으로 획득한 성공이 훨씬 초라해 보이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나는 누구인가? 잠 안 오는 밤, 문득 나를 남처럼 바라보며 물은 적이 있다. 스무 살에 성장을 멈춘 영혼이다. 80을 코앞에 둔 늙은이이다. 그 두 개의 나를 합치니 스무 살에 성장을 멈춘 푸른 영혼이, 80년 된 고옥에 들어앉아 조용히 붕괴의 날만 기다리는 형국이 된다. 다만 그 붕괴가 조용하고 완벽하기만을 빌 뿐이다.

마당에서 한때 하늘을 뒤덮을 듯이 무성하던 나무들이 작은 바람에도 우수수 잎을 떨구고 있다. 흙에서 난 것들이 그 근원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건 아무도 못 말린다. (...) 아니, 그건 도리가 아니라 그리움일 것이다. 저 지는 잎들이 어찌 섭리만으로 저리도 황홀하고 표표하게 몸을 날릴 수 있겠는가.

완행열차를 타고 개성역에 내리고 싶다. 나 홀로 고개를 넘고, 넓은 벌을 쉬엄쉬엄 걷다가 운수 좋으면 지나가는 달구지라도 얻어 타고 싶다. 아무의 환영도 주목도 받지 않고 초라하지도 유난스럽지도 않게 표표히 동구 밖을 들어서고 싶다. 계절은 어느 계절이라도 상관없지만 때는 일몰 무렵이면 참 좋겠다. 내 주름살의 깊은 골짜기로 산산함 대신 우수가 흐르고, 달라지고 퇴락한 사물들을 잔인하게 드러내던 광채가 사라지면서 사물들과 부드럽게 화해하는 시간, 나도 내 인생의 허무와 다소곳이 화해하고 싶다. 내 기억 속의 모든 것들이 허무하게 사라져버렸다 해도 어느 조촐한 툇마루, 깨끗하게 늙은 노인의 얼굴에서 내 어릴 적 동무들의 이름을 되살려낼 수 있으면 나는 족하리라.

옛날 옛적에 떠난 내 유년의 뜰이 나를 따라온 것인가.

집에서 보는 한강이 가장 아름다울 때는 해 뜰 무렵이다. 강 건너로는 순한 짐승이 엎드려 있는 것처럼 능선이 부드러운 산봉우리들이 보이고 그 사이로 해가 불끈 솟으면 수면이 금빛으로, 은빛으로 때로는 주황색으로 부서진다. 물속을 노닐던 신비한 물고기가 잠시 그 아름다운 비늘을 드러내 보여준 것처럼 그 순간은 짧다. 짧지만 그런 날은 뭔가 좋은 일이 있을 것만 같고, 몸도 온종일 개운하지만 황사나 안개에 가려 안 보이는 날은 몸도 마음도 울적하게 가라앉는다.

넘치게 사랑받은 기억은 아직도 나에겐 젖줄이다.

아무리 걸출한 여성에게도 어머니는 극복하고자 하나 극복되지 않는 악몽인 동시에 결국은 그리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의지처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 / 김구]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친절한 복희씨 / 박완서]

녹물은 안 들었을지 몰라도 밥 뜸 드는 냄새에는 무쇠 냄새도 섞여 있었다. 매캐한 연기 냄새도, 연기가 벽의 균열을 통과하면서 묻혀온 흙냄새도, 그 모든 냄새와 어우러진 밥 뜸 드는 냄새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아아 이 냄새, 이 편안함, 몇 생을 찾아 헤맨 게 바로 이 냄새가 아니었던가 싶은 원초적인 냄새. 이열치열이라더니 음식 때문에 뒤집힌 비위를 부드럽게 위로하는 이 편안한 냄새.

나의 건망증은 아주 사소한 것들이다. 열쇠나 안경, 가위나 빗, 숟가락, 국자, 마시다 만 커피잔, 먹다 만 빵 조각, 읽던 책 따위가 내가 방금 쓴 근처나 늘 두던 자리에서 감쪽같이 없어지는 일 따위이다. (...) 앞으로 어디서 찾을 것인가 우두망찰하게 되고 그때부터 가슴이 두근두근하고 피가 머리로 올라오면서 생각의 회로가 엉망으로 헝클어진다. 그리고 나를 이 지경으로 만든 집 안에 널린 일용 잡화 생필품에 대해 욕지기가 치밀 것 같은 혐오감을 느낀다. 그것들은 다 싸구려들이고 누군가가 불필요해서 유기한 것들이라는, 그것들의 근본이 나를 욕지기 나게 하는 것이다.



[아가미 / 구병모]

석류 열매처럼 드러난 속살이 두근거리는 모습은 명백히 생명의 움직임이었다. 결코 아물어가는 상처가 억지로 쑤셔진 게 아니라, 희박한 산소를 찾아 호흡하려는 태곳적 기관의 발현이자 몸부림이었다.

곤은 이틀 걸러 한 번씩 그에게 처참하게 밟혀 퍼덕거리고 온몸 군데군데 지느러미가 찢기며 비늘이 툭툭 떨어져 나가면서도 그가 이름을 불러주기만 하면 그에게로 가서 미늘에 걸려 빠져나오지 못하는 한 마리 금붕어가 되었고 그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는 일만이 하루 일과의 전부일 때도 있었다.



[흰 / 한강]

활로 철현을 켜면 슬프거나 기이하거나 새된 소리가 나는 것처럼, 이 단어들로 심장을 문지르면 어떤 문장들이건 흘러나올 것이다.

해오던 일을 모두 멈추고 통증을 견디는 동안, 한 방울씩 떨어져내리는 시간은 면도날을 뭉쳐 만든 구슬들 같다. 손끝이 스치면 피가 흐를 것 같다. 숨을 들이쉬며 한순간씩 더 살아내고 있다는 사실이 또렷하게 느껴진다.

아무도 밟지 않은 첫서리는 고운 소금 같다.
시골 본가에 찾아간 밤이면 두 눈 속으로 일제히 쏟아져내리던, 알알의 소금 같은 수천의 별들. 한순간 눈을 씻어 어떤 것도 기억할 수 없게 하던 차고 깨끗한 빛들.

무명 치마의 마지막 밑단이 불꽃 속으로 빨려들어갈 때 당신을 생각했다. 당신, 올 수 있다면 지금 오기를. 연기로 지은 저 옷을 날개옷처럼 걸쳐주기를. 말 대신 우리 침묵이 저 연기 속으로 스미고 있으니, 쓴 약처럼, 쓴 차처럼 그걸 마셔주기를.



[모순 / 양귀자]

“해질녘에는 절대 낯선 길에서 헤매면 안 돼. 그러다 하늘 저켠부터 푸른색으로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면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가슴이 아프거든. 가슴만 아픈 게 아냐. 왜 그렇게 눈물이 쏟아지는지 몰라. 안진진, 환한 낮이 가고 어둔 밤이 오는 그 중간 시간에 하늘을 떠도는 쌉싸름한 냄새를 혹시 맡아 본 적 있니? 낮도 아니고 밤도 아닌 그 시간, 주위는 푸른 어둠에 물들고, 쌉싸름한 집 냄새는 어디선가 풍겨 오고. 그러면 그만 견딜 수 없을 만큼 돌아오고 싶어지거든. 거기가 어디든 달리고 달려서 마구 돌아오고 싶어지거든. 나는 끝내 지고 마는 거야…….”

이 남자 나영규와 앉아 있으면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현실이 보인다. 너무나 일목요연해서 어디 제멋대로인 꿈이나 상상 같은 것은 전혀 끼여들 자리가 보이지 않는다. 알고 있는 사람은 다 아는 것이지만,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하고 잘 정리된 남의 집보다 적당히 너저분한 남의 집이 묵어 가기에는 훨씬 편한 법이다.

희미한 존재에게로 가는 사랑.
이렇게 말하면 보다 정확해질지도 모르겠다. 강함보다 약함을 편애하고, 뚜렷한 것보다 희미한 것을 먼저 보며, 진한 향기보다 연한 향기를 더 선호하는, 세상의 모든 희미한 존재들을 사랑하는 문제는 김장우가 가지고 있는 삶의 화두다. 나는 그렇게 느낀다. 그래서 그는 세상을 향해 직진으로 강한 화살표를 쏘지 못한다. 마음으로 사랑이 넘쳐 감당하기 어려우면 한참 후에나 희미한 선 하나를 긋는 남자.

사랑하지 않고 스쳐 갈 수도 있었는데, 사랑일지도 모른다고 걸음을 멈춰 준 그 사람이 정녕 고맙다고.

나는 나인 것이다. 모든 인간이 똑같이 살 필요도 없지만, 그렇다고 똑같이 살지 않기 위해 억지로 발버둥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나를 학대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특별하고 한적한 오솔길을 찾는 대신 많은 인생 선배들이 걸어간 길을 택하기로 했다. 삶의 비밀은 그 보편적인 길에 더 많이 묻혀 있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으므로.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 로버트 제임스 뮐러]

그 길은 정말 이상한 곳이오. 8월의 어느 날, 길을 따라가다가 고개를 들어보니 당신이 잔디밭을 지나 내 트럭으로 다가오고 있었소. 되돌아보면 피할 수 없는 일이었던 듯 싶소. 달리는 될 수가 없었던 것 같소.



[세상에 예쁜 것 / 박완서]

그때는 보이는 모든 것이 왜 그리도 아름다웠던지. 젊은 내 새끼들의 옷깃과 검은 머리칼을 나부끼게 하는 바람조차도 어디 멀고 신비한 곳으로부터 그 애들이 특별히 아름답게 보이라고 불어온 특별한 바람처럼 느꼈으니까.

어느 날이고 자유를 유보하고 있는 이 답답한 상황이 좋아져서 우리 앞에 자유의 성찬이 차려진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전 같으면 아마 가장 화려하고 볼품 있는 자유 먼저 탐을 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일을 겪고 나서는 하고많은 자유가 아무리 번쩍거려도 우선 작고 소박한 자유, 억울하지 않을 자유부터 골라잡고 볼 것 같다.



[블루 캐슬 / 루시 모드 몽고메리]

자 어떻습니까, 밤하늘에 별들이 빛나는 아래에서 그리고 태양이 지는 황혼의 고즈넉한 정적 속에서 태곳적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저기에 깃들어 있는 소박하면서도 자꾸만 못 견디게 보고 싶어지는 아름다움을 발견하셨습니까? 늙은 소나무 가지에서 이는 오묘한 하프의 선율이 들리십니까? 전나무들이 노래하는 나직한 노랫소리는요? 양지바른 모퉁이에서 태양의 싱싱함을 담뿍 내뿜는 이끼의 향기가 느껴지십니까? 촉촉하게 젖은 개울가 고사리에 어려 있는 생명수의 싱싱한 냄새가 모든 답답함을 상쾌하게 해갈해주지 않습니까?



[페어리랜드 / 캐서린 M. 밸런트]

“넌 그 스푼을 보자마자 알아볼 수 있어. 호박, 와인, 설탕, 요구르트, 어제, 비탄, 격정, 질투, 내일이 묻어 있는 커다란 나무 스푼이야. 후작은 그 스푼을 잃어도 별로 아쉬워하지도 않을걸. 그것 말고도 좋은 물건들을 잔뜩 가지고 있으니까. 그 스푼을 찾아다주면 우리는 널 위해 작고 검은 버슬과 검은 모자를 만들어줄게. 달 갈매기 떼를 불러 내리는 방법과 시간 저장소를 지키는 거대 달팽이들과 춤추는 방법도 가르쳐줄게.”

나무들이 온통 빨간색, 화려한 오렌지색, 황금색으로 물드는 계절, 한밤에 피운 모닥불로 사방에 건조한 나뭇가지 냄새가 배는 계절, 세상이 온통 기쁨으로 넘치고 사과 주스와 캔디와 사과와 호박이 그득한 계절, 차가운 별들이 앙상한 무릎처럼 튀어나온 달을 지나 찢어진 구름 가닥들 사이로 흘러가는 계절이 바로 가을이다.

죽음은 은밀하게 더욱 목소리를 낮췄다.
“잠을 자면 끔찍한 악몽을 꾸거든. 종일 죽음의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나는 피부를 벗어서 곱게 접어 장식장 위에 올려놓고, 뼈를 떼어서 모자걸이에 걸고, 죽음의 낫을 낡은 난로 위에 널어 말려. 그리고 쥐와 몰약으로 만든 수프로 멋진 저녁 식사를 해. 어떤 밤엔 질 좋은 레드 와인을 마셔. 화이트 와인은 나랑 안 맞아. 그리고 백합 침대에 눕지만 잠을 잘 수는 없어.”

병 속의 동전들은 5센트, 10센트, 25센트가 아니라 시간을 뜻했다. 파월 아주머니의 농장에서 일한 한나절, 킬로리 아저씨를 위해 써준 편지 네 통, 화이트스톤 아저씨의 닭들에게 먹이를 주려다가 수탉에게 팔을 긁힌 매일 아침을 뜻했다.

“옛날에 내가 내 운명과 논쟁을 한 적이 있는데, 나중에는 운명이 양손으로 제 귀를 막고 제발 화해하자고 소리를 질러대더구나. 내가 말다툼을 아주 잘한다는 뜻이겠지? 그 뒤로는 내 운명이 아주 얌전히 굴었거든. 내가 비스듬히 노려보기만 하면, 알아서 제 몸을 나비매듭으로 묶고 해가 쨍쨍 비치는 곳까지 맨발로 걸어가곤 했어.”

“운명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알지? 네 모습을 작은 장난감처럼 줄여 놓은 모양이다. 설화석고, 에메랄드, 그리고 청금석 조금, 포부, 우연의 일치, 후회, 모두의 기대, 게으름, 희망, 자신이 태어난 곳, 부모, 자신이 두려워하는 모든 것 더하기 자신을 두려워하는 모든 것으로 만들어져 있지.”

“난 그때 산과 사귀는 사이였어. 남몰래 그녀에게 입을 맞추고, 한밤중의 어둠 아래에서 그녀와 결혼할 생각이었지. 그렇게 예쁜 산은 어디에도 없었다. 정말 꼭 필요한 곳에 눈이 쌓여 반짝이고, 화강암과 전기석과 은이 풍부하고, 억겁의 경험에 단련되어 강인하고 현명했지. 그녀가 나를 보았을 때, 그 산의 소나무들이 바짝 긴장했고 봉우리에서 부는 바람은 휘파람처럼 내 이름을 불렀어. 내가 그녀를 보았을 때는 강물이 바위 같은 내 심장을 부수고 나를 새로운 모습으로 조각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고.”
“예티들은 모두 산과 결혼하나요?” 새터데이가 조용히 물었다.
사이더스킨은 자기만 아는 미소를 지었다. “행운아들만.” 그가 말했다.

“너도 이해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달이 시간을 만든다는 걸. 모든 달은 시간을 만들어. 그리고 달에서 태어나 달의 바위를 먹고 달의 눈 녹은 물을 마시며 살아가는 예티는 피와 뼈가 가득한 시계와 같지. 우리는 걷고 말하고 운율을 맞춘 노래를 영원히 부른다.”



[자신을 행성이라 생각한 여자 / 반다나 싱]

때로는 다음 모퉁이를 돌면 낯선 나무들 사이로 폐허가 된 할머니의 집을 발견할 것 같은 기분에, 따스한 늦가을의 온기에 싸인 채 할머니의 집 위로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망고나무 껍질을 발견할 것만 같은 확신에,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분명 다락방에는 마법적인 구석이 있었다. 그곳에서는 비도 음울하지 않았고 되려 그들에게 노래를 불러주었다. 때로는 크고 격렬하게, 떄로는 자장가처럼 부드럽게. 빈번히 미세한 비말이 열린 창문을 통해 들어왔어도, 다른 방처럼 곰팡이가 피는 법도 없었다. 다락방의 빛은 따스하니 노랬고, 공기에서는 근사한 흙냄새가 났으며, 가운데가 푹 꺼진 침대는 아이들이 온몸을 쭉 뻗고 드러누워 점토 덩이가 아파르나의 손길 아래 어떤 모양이 되는지 구경할 수 있는 가장 편한 장소였다.



[내 생애의 아이들 / 가브리엘 루아]

그것은 엄청나게 큰 들꽃 다발이었다. 그러나 나비처럼 가볍고 간신히 한데 묶여 금방 사방으로 흩어져버릴 것 같으면서도 풀어지지 않은 그 꽃다발은, 다만 약간만 열린 모습으로 아직 이슬에 젖은 신선한 꽃잎을 드러내 보이면서 내 위로 날아와서 떨어졌다. 나는 그렇게 많은 종류의 들꽃들이 한데 모인 꽃다발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아마도 그 주변에 들꽃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마도 여름 동안 줄곧 그늘에 가린 시냇가의 저 하베네르꽃들처럼 생각지도 못한 구석 깊숙한 곳에 숨어만 있는 다른 꽃들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자신의 봉헌물에 그 아름다운 계절의 어느 작은 꽃 한 가지도 빠지지 않도록 이른 아침부터 숲 속으로, 마른 땅 젖은 땅으로, 심지어 산으로 올라가는 첫 번째 비탈에까지 찾아 헤매는 메데릭을 상상해보았다.

나는 무릎 위에 얹어놓은 꽃다발에 눈길을 던졌다. 보드라운 풀줄기가 리본처럼 주위를 둘러묶고 있어서 아직 풀어지지 않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내 뺨에 가져다 댔다. 섬세한 향기가 배어들었다. 그것은 태어나자마자 벌써 죽어가기 시작하는 젊고 연약한 여름을 말해주고 있었다.




소설뿐만 아니라 노래가사, 영화대사, 시 등등
다 상관없으니 편하게 덧글달아줘!


추천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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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식스윤돈  데이식스 DAY6
비행운은 책이 구절이 다 좋아요 👍
1년 전
eej
박완서 엄마의 말쭉을 비교적 어릴 때 읽고 그냥 재미있다 생각했는데 대학교 가고 과외하다 학생 교과서에 있길래 읽다가 문장이 너무 아름다워서 감탄했어요 어느 한 문장 추릴 수가 없게 아름답더군요
1년 전
네 손길에는 소름이 끼치도록 부드럽고도 질기고 단호한 힘이 들어 있었다. 그건 사랑에 빠진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것.
- 첫사랑, 성석제

1년 전
아프다, 힘들다 말하는 건 늘 어려운 일이었다. 나 지금 따뜻한 관심이 필요해, 그렇게 말하는 건 왠지 부끄러웠다. 가끔 당당한 태도로 관심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면 나도 모르게 질투가 났다. 나에게는 이토록 어려운 일이 누군가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피부로 느낄 때.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누군가 알아줬으면 했다. 너 지금 힘들구나, 손을 내밀어 줬으면 했다. 아주 깊이 꼭꼭 숨어 놓고서 나를 찾기 전까지 이 숨바꼭질이 끝나지 않기를 바랐다.
1년 전
I'm pretty much fucked.
아무래도 됐다.

- 마션

1년 전
Hot+  Heartfelt
꿈을 이루느니 어쩌니 하지만, 하루하루는 정말 소박하게 지나간다
1년 전
모든 것은 지나간다는 것. 제가 지금까지 아비규환으로 살아온 소위 '인간'의 세계에서
단 한가지 진리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것뿐 입니다.

1년 전
죽음을 앞둔 자의 고백, 그것은 곧 진정한 고백의 다른 말이 아니겠는가?
1년 전
비포 선라이즈  나와 함께 비엔나에 내려요
저도 다자이 진짜진짜 좋아해요..🤍🤍
1년 전
저도요 !! ㅠㅠ 저 문장 계속 기억에 남아요 ㅠㅠ
1년 전
우리 사이에 있는 묘한 기류를 사랑한다.
그것은 아주 잠깐이지만 동시에 영원한 것이다.
허나 나는 사랑한다고 말하기 이전에
조금 더 무르익을 것이다.
어떤 말 한 마디보다 깊은 울림이 있는 여기 이곳에
말하지 않고 느낌으로 더듬어보는
경험해본 적 없는 개운함 속에서
서서히, 서서히, 그러나 반드시.
너에게 닿을 것이다.

1년 전
혹시 책 이름 먼가요??!
1년 전
서서히 서서히 그러나 반드시
10개월 전
(내용 없음)
1년 전
1등이라는 타이틀, 일류의 삶의 방식에 성공한 삶이라는 정답이 있는 것처럼 매 순간 모두를 닦달하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는 단 한 번도 넘어지지 않고 걸음마를 배우기를 기대하는 사회인 것 같기도 하고요. 정해진 경로에서 한 번 삐끗해서 벗어나면 인생이 끝장나는 것처럼 겁을 주잖아요. 정작 네비게이션은 최단 거리라고 해서 최적 경로라고 판단하지 않는데.
1년 전
뭐야 이 감성터지는 지식인같은 글은 ㅠㅠ 워너비
1년 전
비포 선라이즈  나와 함께 비엔나에 내려요
인간 생활의 괴로움은 사랑 표현의 곤란함에 있다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이 표현의 서투름이 인간 불행의 원천이 아닐까요?

나는 확신하련다.
인간은 사랑과 혁명을 위해 태어난 것이다.

행복은 하룻밤 늦게 온다.
멍하니, 그런 말을 떠올린다. 행복을 기다리고 기다리다, 결국 참아내지 못해서 집을 뛰쳐나가고, 그다음 날에, 멋진 행복의 소식이, 버리고 나간 집을 찾아왔지만, 이미 늦었다. 행복은 하룻밤 늦게 오는 거다. 행복은,

1년 전
비포 선라이즈  나와 함께 비엔나에 내려요
늘 사랑이란 혼란스럽고 비밀스러운 무엇이라고 생각해 온 채리티에게 하니는 사랑을 여름 공기처럼 밝고 싱그러운 것으로 만들어 주었다.

좋은 일이란 오래가는 법이 없구나, 하고 그는 생각했다. 차라리 이게 한낱 꿈이었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이 고기는 잡은 적도 없고, 지금 이 순간 침대에 신문지를 깔고 혼자 누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인간은 패배하도록 창조된 게 아니야" 그가 말했다. 인간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패배할 수는 없어.

어느 민족에게 사랑은 접속사, 그 이웃에게는 조사다. 하지만 또다른 부족의 경우 그런 건 본디 이름을 붙이는 게 아니라 하여 아무런 명찰도 달아주지 않는다. 어떤 민족에게 '보고 싶다'는 한 음절로 족하다. 하지만 다른 부족에게 그 말은 열 문장 이상으로 표현된다. 뿐만 아니다. 어느 추운 지방에서는 몇몇 입김 모양도 단어 노릇을 한다.

1년 전
그것은 내가 우울한 기분을 떨쳐버리고 혈액순환을 조절하기 위해 늘 쓰는 방법이다.
입 언저리가 일그러질 때, 이슬비 내리는 11월처럼 내 영혼이 을씨년스러워질 때 관을 파는 가게 앞에서 나도 모르게 걸음이 멈추거나 장례 행렬을 만나 그 행렬 끝에 붙어서 따라갈 때, 특히 심기증에 짓눌린 나머지 거리로 뛰쳐나가 사람들의 모자를 보는 족족 쳐 날려 보내지 않으려면 대단한 자제심이 필요할 때, 그럴 때면 나는 되도록 빨리 바다로 나가야 할 때가 되었구나 하고 생각한다.
이것이 나에게는 총과 총알 대신이다. 카토는 철학적 미사여구를 뇌까리면서 칼 위에 몸을 던졌지만, 나는 조용히 배를 타러간다. 이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바다를 알기만하면 누구나,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언젠가는 바다에 대해 나와 비슷한 감정을 품게 될 것이다.

1년 전
오색의 베일, 살아 있는 자들은 그것을 인생이라고 부른다.

"인생은 너무나 이상해요. 평생 오리 연못 근처에서 산 사람이 갑자기 바다를 구경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약간 숨이 차지만 사기가 충전해있죠. 난 죽고 싶지 않아요, 살고 싶어요. 새로운 용기가 솟아나는 걸 느껴요. 미지의 바다를 향해 출항하는 늙은 선원이 된 것만 같아요. 내 영혼이 미지의 세계를 동경하는 것 같아요."

별이 총총한 밤의 아름다움에 스스로 포로가 되었다. 침묵이 안식처럼 그녀에게 다가왔다.

인생의 베일, 서머싯 몸

1년 전
어김없이 오월이 왔습니다.
올해는 명희 씨를 잃고 맞은 마흔 한번째 오월이에요.
그간의 제 삶은 마치 밀물에서 치는 헤엄 같았습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그냥 빠져 죽어보려고도 해봤지만
정신을 차려보면 또 다시
그 오월로 나를 돌려보내는 그 밀물이
어찌나 야속하고 원망스럽던지요.
참 오랜시간을 그러지 않았더라면 하는 후회로 살았습니다.

그 해 오월에 광주로 가지 않았더라면
그 광주에서 당신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 갈림길에서 손을 놓지 않았더라면
당신이 살지 않았을까 하고요.
하지만 이렇게 명희 씨가 돌아와 준 마흔한 번째의 오월을 맞고서야 이 모든 것이 나의 선택임을 깨닫습니다.

나는 그 해 5월 광주로 내려가길 택했고
온 마음을 다해 당신을 사랑하기로 마음먹었으며
좀 더 힘든 시련은 당신이 아닌 내게 달라
매일 같이 기도했습니다.
그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내가 죽고 당신이 살았더라면
내가 겪은 밀물을 고스란히 당신이 겪었겠지요.
남은 자의 삶을요.

그리하여 이제 와 깨닫습니다.
지나온 나의 날들은 내 기도에 대한 응답이었음을.
41년간의 그 지독한 시간들이 오롯이 당신을 향한
나의 사랑이었음을.
내게 주어진 나머지 삶은 당신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살아보려 합니다.
거센 밀물이 또 나를 그 오월로 돌려보내더라도
이곳엔 이젠 명희 씨가 있으니
다시 만날 그날까지 열심히 헤엄쳐볼게요.

2021년. 첫번째 5월에. 황희태.
- 오월의 청춘

10개월 전
슼..... 너무 좋은 게시글이네요
두고두고 보러와야지..

10개월 전
피라미드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었고, 언젠가는 이날 아침의 풍경도 그에게는 한낱 추억으로 남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이 바로 현재의 순간이고, 낙타몰이꾼이 말한 잔치의 순간이기도 했다.
그는 과거의 교훈이나 미래의 꿈을 살아내는 것처럼 이 순간, 최선을 다해 살고 싶었다.

10개월 전
죽음을 앞두고 그 애는 말했어. ‘파히라, 내가 당신을 한 번만 안아봐도 될까요? 딱 한 번만요. ‘ 나는 팔을 벌려 그 애를 안았어. 끝까지 안고 있었지. 비명을 참고 눈물을 참으며, 피부 표면을 칼로 베어내는 것 같은 통증을 느끼며.

김초엽, 행성어 서점 - 선인장 끌어안기

10개월 전
고통을 주지 않는 것이 사랑일까, 아니면 고통을 견디는 것이 사랑일까 생각하면서. 의사가 결국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는 나를 그 애에게서 떼어냈을 때 나의 얼굴은 괴로움으로 마비되어 있었고…
10개월 전
그리고 그 애는 이미 10분 전 숨을 거둔 상태였지.
“그 때, 나는 불행히도 고통이 곧 사랑이라는 사실을 알았어.” 파히라는 적막한 그의 집을 돌아보며 말한다.

“그래도 그 사랑을 감수하고 싶은 사람이 있었지.”
짧은 침묵 끝에 파히라가 덧붙인다.
“ 이제는 아니야.”

10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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