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았다 내 사랑!
ᴡ. 조스바
누군가 나의 이상형을 물었을 때, 나의 대답은 항상 같았다. 내가 이야기를 시작하면 적어도 5분은 그에 대한 이야기만을 해야 할 정도로 구체적이었고, 또 일관적이었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외적인 조건만 살짝 말하자면 쌍꺼풀이 없거나 연한 찢어진 눈매에, 얼굴형과 코가 예쁘고, 피부는 하얗고, 웃는 게 예쁘고, 어깨가 넓고 키가 큰 사람. 친구들이 내가 좋아할 만 한 사람을 찾았다며 소개해 준 사람들마저도 대부분 한두 가지는 충족하지 못했기 마련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연애 경험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이 정도면 괜찮지 않나? 하는 마인드로 몇 번 사귀어 봤지만 얼마 못 가서 항상 똑같은 이유로 차였다. 내가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고. 반박할 수도 없었고, 딱히 그러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 폭염주의보+장마 = 씨발 덥고 습한 최악의 날씨 덕분에 종강 이후 강제 집순이 생활을 한 지 한 달째. 항상 나오라던 친구들도 이제는 잘 부르지도 않는 탓에 괜히 서러워져, 씻고 나와서 시원한 맥주나 한 캔 마시자- 하곤 기분 좋게 샤워를 끝내고 머리를 말리던 중 [기묘한]에게 전화가 왔고 전화를 받은 사람은 우리 과 후배 은상이었다. - 누나 요한이 형 취하셔서 쓰러지셨는데 도무지 갈 생각을 안 하세요… - 그래서 뭐? - 저 통금 때문에 집에 가야 해서 혹시 요한이 형 데리러 와주실 수 있으세요…? - 걔 여자친구한테 연락하면 되잖아. - 아… 요한이 형 오늘 헤어지신 거 모르셨구나…! 그제서야 낮에 김요한한테 와있던 부재중이 생각난 나는 조금 미안해져 결국 알겠다 하곤 전화를 끊었다. 곧 [ 사거리 XX포차예요 ㅠㅠㅠ 죄송해요 누나 ] 하는 은상이의 문자를 보고 한숨을 쉬며 대충 옷을 걸쳐 입고 나왔다. -
“ 성이름… 너 왜 아까 전화 안 받았써어… ” “ 그래서 지금 여기까지 왔잖아. ” 은상이가 알려준 포차에 도착하자마자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은상이와 엎드려 자고 있는 김요한이 보여 은상이를 일단 보내고 김요한을 대충 깨워 데리고 나왔다. 제대로 걷지도 않고 혼자 중얼거리고 있는 김요한에 내가 이 새끼랑 왜 친구를 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뭐라 중얼대는 건지 들어보니 토할 것 같단다. 하하. “ 너 나한테 토하면 죽….”
헐, 씨발. 하느님. 저 드디어 제 왕자님을 찾은 것 같습니다. 기껏해야 3초 -체감상 5초 이상- 정도 눈이 마주친 게 전부지만 내가 입 아프게 말해왔던 이상형을 그대로 빼다 박은 얼굴임에 분명했다. 이건 운명이야… n년 동안 죽어있던 연애세포가 되살아난 것 마냥 심장이 2배속으로 빨리 뛰었고 설레하기도 잠시, 자신의 친구와 앞서 걸어가는 남자를 불렀다. 아니 부르려고 했다. “ 저…. ” “ 우욱…! ” 하지만 영화 ‘너의 결혼식’을 뺨칠 만큼 좆같은 타이밍에 토를 한 김요한 덕에 내 목소리는 묻혔고 김요한의 등을 두들겨주는 사이에 왕자님은 이미 저 멀리 내 시야에서 사라진지 오래였다......^^ - 그로부터 한 달 정도가 지났다. 4주 동안 오직 내 왕자님을 다시 보겠다는 집념만으로 우리 집에서 택시를 타고 10분 정도 걸리는그 술집 앞에 출석체크를 했지만, 운명은 무슨 얼어 죽을… 한 번도 마주치지 못했다. 왠지 모르게 차인 기분이 들어 술자리란 술자리는 다 참석해서 술을 미친 듯이 마셨고, 그런 나를 의아해하는 주변 사람들이 무슨 일 있냐고 물을 때마다 길에서 마주쳤던 남자가 계속 떠오른 다곤 차마 말하지 못하고 씁쓸하게 잔을 비우곤 했다. 그때 그를 놓친 것이 생각할수록 분해서 김요한에게 너는 왜 하필 그 타이밍에 토를 쳐 한 거냐고 성질을 냈지만, ‘너 그때 좆경쓰고 나왔다며. 말 걸어도 도망갔을걸?’ 하는 김요한의 팩트 폭력에 차마 반박할 수 없었다. 시발…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래서 지금 어딘데 - 과제 해야 돼서 카페 가려고 - 어디 카페? 심심하면 말해. 나가줌 꺼지세요. 전화를 끊고 나서도 좀 전에 들은 팩트 폭력에 우울해져 입을 삐죽 내밀고 쒸익쒸익하기도 잠시, 집에서는 절대 하지 않을 것이 분명한 밀린 과제가 생각이 나 대충 고데기를 마무리하고 집을 나왔다. -
“ 어서오세요- ” “ 미친, 왕자님…! ” “ …예? ” 지져스… 절 버리지 않으셨군요…. 몇 주간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주문이란 주문은 다 찾아서 소원을 빈 것이 이제야 효과가 있는 건지, 이전 학기에 밥 먹듯이 하던 자체 휴강도 잘 안 하고 착실하게 살아서인지 모르겠으나, 우리 집과 가까워 종종 오던 카페에 들어왔을 땐 항상 있었던 알바생 대신 한 달 동안 내 일상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던 그 남자가 있었다. 너무 놀란 나머지 맨날 달고 살던 왕자님 소리가 입 밖으로 나왔다. 그가 약간 당황한 듯 나를 쳐다봤다. 아 존나 귀여워… 가까이서 보니까 더 내 스타일이야….
“ 주문 안 하세요? ” 내가 놀람+당황스러움+기쁨의 삼위일체로 입을 틀어막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그를 쳐다보다가도, 갑자기 부끄러워져 얼굴을 가리다가, 다시 그 얼굴이 보고 싶어져 눈만 살짝 보이게 그를 쳐다보는 이상한 행동을 반복하고 있자, 얜 뭐지? 하는 표정으로 주문 안 하시냐고 묻는 그에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 망고 스무디 하나랑 그쪽 이름이요! ” “ …앉아계시면 진동벨로 알려드리겠습니다. ” 사실 번호를 묻고 싶었는데, 명찰을 달고 있는 보통 알바생들과 달리, 명찰을 달지 않은 그였다. 이름을 아는 게 먼저지…! 얼굴처럼 이름도 예쁠까. 이따 번호도 물어봐야겠다. 나 혼자 온갖 김칫국을 사발 째로 드링킹하며 그의 이름을 추측하고 있을 때 ‘망고 스무디 하나 나왔습니다-’ 하는 소리와 함께 진동벨이 울렸고, 음료 옆에는 쪽지가 하나 있었다. [ 죄송합니다. 대신 망고스무디 사이즈업 해드렸어요. ] -
“ 누나 대박이에요 진짜. 한 달 동안 왕자님 왕자님 노래를 부르시더니 결국…. ”
“ 그럼 뭐 하냐. 까였다며 ” 어제 왕자님을 마주친 것에 너무 기쁘고 들뜬 나는, 평소였으면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잠만 잤을 토요일임에도 아침 일찍 눈이 떠져 상쾌하게 씻고 나와 신입생 때 이후로 2년 만에 꽃단장을 했다. 만나기로 했던 은상이와 김요한은 나를 보자마자 기겁하며 오늘 무슨 날이냐고 물었고, 내가 계속 실실 웃고만 있자 낮술이라도 했냐며 자리를 피하려고 했다…^^ 나와 왕자님의 기막힌 재회 썰을 풀어주자 축하한다며 나만큼 신나서 떠들다가도 결국 까인 거냐며 초를 친다. 야 한 달을 쫓아다녔는데 한번 까인 거로 포기하겠냐? “ 그리고 사실 그 쪽지 보자마자 글씨체마저 완벽하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음. ”
“ …… ”
“ … 단단히 미쳤네. ” “ 근데 얼굴 진짜 궁금해요. 어떻게 생겼길래…. ” “ 야. 말도 마 은상아. 왕자님 그 자체야. ”
“ 그래서 오늘도 가게? ” “ 당연. ”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잖냐. - 띠링 -
“ 어서오세ㅇ, ” 오랜만에 만난 애들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얘기하다 보니 벌써 오후였다. 김요한과 이은상이 저들도 왕자님인지 뭔지가 궁금하다며 같이 가자고 했지만 울 왕자님이 부담스러워할 것 같아 나 혼자 카페에 왔다. 내가 눈이 접히게 웃으며 카페에 들어가자 그는 한번 까인 내가 다시 안 올 줄 알았는지 조금 놀란 듯했다. “ 오늘이 어제보다 잘생기셨네요. 망고 스무디 하나 주시고 왕자님 이름 좀 알려주세요. ”
“ 아… 죄송해요, 음료만 준비해 드릴게요. ” “ 알려주기 싫으시면 제 이름이라도 기억해줘요! 성이름이예요. ” - 완전히 그의 처돌이가 된 나는 그 날 이후에도 매일 가서 망고 스무디를 시키고 그가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아 ‘울 왕자님은 커피 뽑을 때 제일 섹시한 거 알아요?’와 같은 말을 쉴 새 없이 하기 마련이었다. 처음에는 황당해하며 대꾸도 않던 그는 갈수록 익숙해진 듯 ‘나도 알아요.’하며 맞받아치기도 했다. 이름이 없다는 둥 말도 안 되는 철벽을 치는 탓에 2주 동안 이름 하나 알아내지 못했지만…엉엉 시발…, 아니 내가 번호를 물어본 것도 아니구… 이름 하나 못 알려주나…, “ 오늘 좀 늦었는데 솔직히 나 기다렸죠? ” “ 아뇨. ” “ 울 왕자님은 철벽 치는 것도 귀엽긴 한데, 이제 넘어올 때도 됐잖아요. ”
“ 그 왕자님 소리 진짜…, ” “ 이름을 모르는데 어떡해요 그럼. ” “ 조승연. ” “ …예? ”
“ 내 이름이예요. 조승연. 망고 스무디 맞죠? 앉아서 기다려요. ” 와, 승연 씨 저랑 결혼해요…. - 항상 ‘아니요.’, ‘죄송해요.’등의 부정적인 단답만을 즐겨 쓰던 울 왕자님이 나에게 이름을 알려 준 이후로는 철벽을 조금 허문 것 같았다. 내가 일부로 사람이 거의 없을 시간대에 가서 그런지 대부분 한가했고, 그 덕에 종종 그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사실 내가 일방적으로 말을 걸긴 하지만- 한 달간 그 카페에 얼굴도장 찍은 결과 그에 대해 꽤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이는 나보다 두 살 많은 스물넷, 일반 직원인 줄 알았는데 사장이란다. 대학 다니다가 자퇴하고 카페를 차렸고, 전에 있던 아르바이트생이 그만둬서 새 알바를 구할 때까지 본인이 일을 한다고. “ 승연 씨. ” “ 네. ” “ 제 남편감으로 딱이시네요. 저랑 결혼하실 생각은? ” 처음에는 얼굴만 보고 홀렸지만 점점 알아갈수록 이 남자가 더 좋아졌다. 사복은 세상 힙하게 입으면서 카페에선 단정하게 유니폼을 차려입는 것도, 힘들어서 한숨을 쉬다가도 예쁘게 웃으며 손님들을 대하는 것도, 심지어 내가 헛소리를 할 때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 짓는 것마저 너무너무 좋다.
“ 이따 비 온다니까 우산이나 가져가요. ” - 아, 시발. 스무 살 때 이후로 처음 술병이 났다. 어제 오랜만에 술 한잔하자며 김요한을 비롯한 친구들과 만났던 게 화근이었다. 한 달 동안 수업이 없을 때마다 승연 씨 카페에서 죽치고 있던 나인지라 친구들을 도통 만나지 못했는데, 연락도 없고 괘씸하다는 이유로 한 잔은 무슨 나를 보낼 생각으로 만났던 것…^^ 그 덕에 오늘 집에서 한 발짝도 못 나가고 있다. 승연씨 보고싶어요 흑흑… “ 좀 괜찮아 졌냐? ” “ 아니 존나 안괜찮아. 울 왕자님 보러 가야 하는데…. ”
“ 넌 이 상황에서도 대단하다 진짜….” - 어제 김요한이 사다 준 죽과 약을 먹고 바로 잠든 것 같은데 눈 뜨니 벌써 해가 지려고 한다. 도대체 몇 시간을 잔 거야… 그 덕에 몸은 좀 괜찮아졌지만 ‘그 사람 여자친구 없는 건 확실해?’라는 김요한의 발언이 눈 뜨자마자 떠오른 이후로 우울하고 무기력한 건 똑같았다. 없겠지…,하고 대답했지만 생각해보면 가장 중요한 그걸 물어보지 못했다. 승연 씨 카페에 갈 때마다 한 시간 동안 공들여서 한 풀 메이크업에 온갖 예쁜 여친룩만을 고집하던 나였지만, 오늘은 왠지 그럴 기분이 아니어서 대충 씻은 뒤에 기초화장만 하고 나왔다. 저녁 8시쯤에 도착한 카페는 오늘따라 한가해 보였다. 내가 어제 카페에 오지 않은 것을 인식하지 못했는지 다른 말없이 ‘망고 스무디 가져다 줄게요.’하는 승연 씨의 말에 네에…하고 대답을 하곤 항상 앉던 자리에 앉아 가만히 생각을 했다. 여자친구…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 뭘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어요. ” 아 놀래라. 망고 스무디와 조각 케이크를 들고 와 내 앞자리에 앉는 그의 행동에, 평소였으면 설레서 최소 기절이었을 나지만 오늘은 그것보다 ‘여자친구’ 생각이 먼저였기에 우울한 표정을 숨길 수가 없었다.
“ 무슨 일 있어요? ” “ ..승연 씨 혹시 여자친구 있으세요…? ” 그래서 그동안 그렇게 이름도 안 알려주고 그랬던 거예요..? 내가 한마디 덧붙이자 3초간 정적이던 그가 풉, 하고는 신명나게 웃었다. 뭐야 왜 웃어… “ 아니, 그걸 이제서야 묻는 거예요? ” “ …… ”
“ 마감까지 조금만 기다려요. 그때 얘기해줄게요. ” - 그냥 얘기하면 될걸 굳이 기다리라고 하는 거면…, 진지하게 이제 그만 와달라고 하겠지…? 상상만 해도 눈물 난다 시발 엉엉…, 말 안 걸 테니까 얼굴만이라도 볼 수 있게 해달라고 해야겠다…….
“ 많이 기다렸죠? ” 마감 청소를 끝내고 옷을 갈아입고 온 그가 내 앞에 앉으면서 말했다. 아뇨 심장 쫄려서 시간 가는 줄도 몰랐어요…. “ 저 혹시 여자친구가 있으신 거면…, ”
“ 이름씨. ” “ 예… ” “ 어제 왜 안 왔어요? ” “ …예? ” “ 어디 아팠어요? ” “ 갑자기 그게 무슨, ”
“ 항상 이름씨가 나를 궁금해 해왔잖아요. 어제 확실히 깨달았는데, 나도 이름씨가 궁금해졌어요. 이름씨가 저한테 그랬잖아요. 내가 하루 종일 이름씨 생각만 하게 될 거라고. 그땐 그저 황당했는데 어이없게도 그 말이 맞았네요. 무슨 일 있는 건가, 혹시 아픈가. 마감할 때까지 이름씨 생각밖에 안 들었어요.” “ ……. ”
“사실 생각해보면, 그전부터 이름씨를 의식하고 있긴 했어요. 이름씨가 와있을 때마다 손님들 커피를 최대한 빨리 뽑고 이름씨와 대화를 한다거나, 진동벨이 있는데도 이름씨에게만 굳이 음료를 직접 가져다드리곤 했던 걸 생각해보면요. 그저 두 달 동안 나에게 시간을 써준 이름씨를 거절하는 게 미안해서 그랬던 행동이라고 생각했는데, 언제부터인지 이름씨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네요, 제가. ” “…헐. 미쳤다. ”
“ 핸드폰 번호 알려줄래요? 다음엔 우리 카페 말고 다른 곳에서 봐요. ” + behind “ 저 22살인데, 오빠라고 불러도 돼요? ” 오빠라니…. “ 아니 뭐 뒤돌아서 외면할 것까지야…, 싫음 말고요! ” 띠링- [ 저번 주에 연락드렸었는데요, 직원 아직도 구하시나요? ] [ 죄송합니다. 당분간은 안 구해도 될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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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조스바입니다. 저 유사행인 짤을 보고 바로 이 소재가 떠올라 끄적이다 보니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네요. 제가 해석한 승연이는 철벽을 칠 때도 마냥 무뚝뚝하게 거절하기보다는 다정함이 배어있어 상대를 배려하면서 거절을 할 것 같았어요. 그걸 글에 써내려고 했는데.. 망글이 되버렸네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