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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만해 진짜, 나 힘들어.” 

“네가 왜 힘들어? 움직이는 건 난데.” 

 

햇빛 잘 들고 커피도 향긋하던 오전 11시. 

다짜고짜 하루의 집 도어락 비밀번호를 치고 들어와  

냉장고 정리를 해야겠다고 말하는 영현이었다. 

 

“그렇게 정리해도 하루면 망가뜨릴 수 있어.” 

“그래라, 또 와서 정리해주면 되지, 난 좋아.” 

 

미친놈. 

하루는 생각한 말을 입 밖으로 내뱉을까 고민하다  

미친놈한테 미친놈이라고 하는 게 무슨 소용일까 싶어  

삼키기로 했다. 

 

“너네 집은 맨날 이렇게 청소하냐?” 

“응, 기분 좋지 않아?” 

“그래서 내 집까지 와서 이런다고?” 

“응. 우리 집 보다 여기 치우면 더 쾌감 느껴, 

끝판왕 느낌이랄까.” 

“짜증 나.” 

 

짜증 난다는 말에 그저 좋아서 웃는 게 변태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미소를 숨기지 못하던 영현은 

냉동실 문을 열자마자 얼굴을 굳혔다. 

 

 

“이 집에 나 말고 또 누구 오나 봐? 너 이거 안 먹잖아.” 

“그게 뭔데?” 

“초콜릿 아이스크림” 

“아, 그거? 성진이가 사 줬어.” 

“이렇게 큰 거?” 

“응.”  

“너 혼자 사는 거 몰라?” 

“알지.” 

“근데 이걸 사줬다고?” 

“응.” 

“너 초콜릿 싫어하는 건 몰라?” 

“미안해서 말 안 했어. 내가 스트레스받는다니까  

갑자기 나가서 저걸 사 왔는데 어떻게 싫다고 해.” 

“미친. 별게 다 미안하네.” 

 

하루를 질타하면서도 성진은 모르고 자신만 아는 것이  

아직 존재한다는 것에 희열을 느끼는 영현이었다. 

 

“꺼내 먹던지.” 

“싫어; 내가 이걸 왜.” 

“아이스크림에 그렇게 의미 부여한다고?” 

“무슨 의미 부여, 싫은 건 싫은 거야. 그냥 아이스크림도 아니고  

네 남자친구가 너 먹으라고 준 걸 내가 왜 먹냐.” 

“나 어차피 그거 안 먹는 거 알면서” 

“아니, 만난 지가 얼만데 걔는 네 취향도 모르냐.” 

“그러게.” 

 

그게 끝이야?라고 묻고 싶었지만  

하루와 성진의 관계를 알고 있는 영현은  

더 이상 묻지 않기로 했다. 

 

 

 

 

 

 

 

 

 

하루도 알고 있다. 

꿀같은 주말 아침에 굳이 남의 집 냉장고를 청소 해야겠다며  

찾아온 영현의 마음을. 

그래서 큰 간섭하지 않고 지켜볼 뿐이었다. 

고마워서. 

저렇게 찾아와 주고 말 걸어주는 게 영현이 나름대로의  

위로 일 테니까. 

 

일주일 내내 말도 없이 위태롭게 지내 온 하루가  

안쓰러워 찾아와 준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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