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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주 전 









" 도영아 한 번만 나가보는게 어때 "

한창 중간고사 실기 준비로 학교 연습실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을 때 였다.
태일이 제발 어? 사촌이 이번에 거기 막내작가로 들어갔는데 찾는 사람이 딱 너라잖아.

간절한 눈빛으로 연습 중간 쉬는 시간에 계속 설득을 해댔다.


" 너, 누구 나오는 지는 알고 말하는거야? "
" 그건 나야 모르지... "

아, 근데 유출은 절대 못 한다더라.

나갈 마음도 없었고 그보다 몇년 째 내 인생에 자리 잡고 있는 걔 때문에 어떻게 나가는데. 
태일의 설득 덕분에 속에 있던 이런 생각은 애써 억지로 삼켜내고 있었다 














" 그래, 무슨 말인지는 알겠어 알겠는데... "
" 이 바닥 은근 넓어보이는데 좁아서 혹시라도, 아는 사람 만나면 그건 어떡할건데? "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였다. 그냥 그저 그런 일말의 희망이라도 갖고 싶었던 걸까. 

" 야, 오히려 그래서 더 나가야 되는거 아니야? 뭐... 나라면 그럴테지만. 그래서 어떻게 할거냐고 "

태일의 말에 자칫 아 그러네. 라는 인정이 깊은 속에서 부터 울분을 토해내듯이 나오려고 했다.

아니, 이게 아닌데. 

" 진짜 너... 막무가내다. 몰라, 생각해볼게. "
" 촬영 들어가는 거 11월 말 쯤 일거야. "

지금은 한 5월 쯤 이었으니 그러려니 했는데,
결국 거절이 아닌 생각해본다는 여지. 그 여지를 주고 말았다.
나도 모르게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거절이 어려워지고 있었다.



















-


3년 전,
벚꽃도 피지 않은 초봄이었다. 

21살. 대학교 2학년이었을 때 분반 수업을 처음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나와 재현 그리고 너. 이렇게 자주 뭉쳐 다니는 일이 많았다. 

그러다 어느 날, 교양 수업이 갑작스런 교수 사정으로 휴강이 되면서 자연스레 그 날은 텅 빈 공강이 되었다.

1학년 과실에서 휴강 공지가 뜨자 그 순간 안에 있던 학생들이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심지어 오늘 1교시 였는데 말이다.

" 코노나 갈래? "

그러다 자리에서 가방을 한 쪽 어깨에 걸치고 일어난 재현이 날 한번, 그리고 마지막 시선의 끝엔 너를 보고 물었다.

" 어...그래 가자! "
너는 재현의 물음에 알겠다는 듯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 도영아, 너는 안 가? " 
시선을 너에게로 머물다 이내 벗어난 시선에 내가 문득 신경쓰였는지 어깨를 손으로 한 번 가볍게 치곤 묻는 재현이었다. 

" 아... 가야지, 가자. "

잠깐 허공을 바라보다, 시선을 재현에게로 향했지만 떨떠름한 눈빛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겨우 3명이 딱 앉을 수 있는 룸에 들어가 가장 안쪽에 자리를 잡고,
먼저 부를래? 재현의 권유에 아니, 나 아직 목이 안 풀려서 먼저해. 
늘 그렇듯 거절을 했다. 


" 너를 위해서- 너만을 위해서~ "

그러다 너와 재현이 듀엣 곡을 부르는데, 
어느새 내 시선은 걷잡을 수 없이 올곧 너에게로 향해 있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나 왜 이러지, 내가 분명 먼저 거절했잖아. 근데 왜. 

그 둘의 뭔가 모를 이상한 기류에 갑자기 마음이 시큰해져 아려왔다. 
그러다 시선의 끝을 재현으로 향했는데 괜히 쳐다본 듯 싶었다. 

그 아이를 바라보는 재현의 눈빛이 곧 내가 될 것 같았으니까.

" 도영아, 이제 너 불러~ "
노래가 끝나고 마이크를 넘겨주며 뭐가 그렇게 해맑은지 입꼬리를 씨익 올려보이는 너였다.

순간 너의 그 모습이 내 모든 거절들의 거절로 다가왔다. 





















-



" 도영, 너 소개팅 한번 안 할래? "

내 자취방에 거의 살다시피 하는 재현이 아무렇지 않게 침대에서 뒹굴며 핸드폰 액정을 두들기다
컴퓨터 앞에 있던 의자에 앉아 고개를 젖혀 천장을 의미 없이 바라보고 있던 나에게 물었다. 

" .... "
" 갑자기? 왜? "

그러다 내 고개는 속절 없이 천장을 바라보다 그만 재현에게로 떨어지고 말았다. 
소개팅이라는 그 세 글자에 의미부여를 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깊은 수심에 빠진 사람 처럼 허우적대며 먹힌 소리를 마음 속에서 내뱉었다. 

" 야... 뭘 그렇게 당황한듯이 보고 그래, 뭐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생겼어? "

한참을 말이 없었는지 날 가만히 바라보다 입꼬리를 살짝 올려 보이곤,
침대에 엎드려 다리를 쭉 피고 누워 있던 몸을 일으켜 자세를 고쳐 잡고 앉으며 물었다.

" ....아니. "

입 밖으로 튀어나온 말이 내 속과는 다르게 나와버렸다. 

이게 아닌데. 
좋아하는 사람. 이라도 생겼나는 말에 생각났다. 네가.

" 또 거절이지, 김도영. "
" 그럼 재현아, "
" 어. "
" 네가 받으면 되잖아. "

숨 막히는 대화 속에 다시금 또 거절을 말했다.

나를 보고 있던 재현이 한숨을 내뱉으며 손가락 사이로 머리를 한 번 쓸어넘긴다.
그러다 내 눈빛을 읽었던 건지 아니면 내가 읽힌 건지도 모르게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시야에서 급히 벗어난다. 

그 순간에도 난 자꾸 그 때의 네가 아른거렸다. 
그렇게 수많은 상황 속에서도 굳이 그 날의 너였다. 

무거운 공기만 흐르던 공간엔 재현이 나간 이후로 겨우 가라앉은 듯한 공기가 느껴지고,
침대와 컴퓨터 책상 사이에 열려져 있던 창문 사이로 먼 산만 바라보다 곧 멀지 않은 곳에서 울리는 진동에 시선이 머무른다.
















[김도영, 지금 바빠?]

수신자를 확인할 틈도 없이 바로 수락을 눌렀더니, 바로 내 이름을 부르며 전화를 받는 너의 목소리가 들렸다.

" ...왜? "

너의 물음에 잠깐 입술을 작게 말아올리다 나온 말이 고작 왜? 라는 물음이었다.

가끔 아무런 이유도 없이 전화하는 너였는데.
내 마음을 깨닫고 또 깨우치고 너의 시선에 얽힌 생각에,
저 한 글자에 담긴 의미는 너의 모든 순간에 왜 함께하지 못 했는지 내 자신을 자책하는 것이기도 했다.

[술이나 한 잔 할래?]

번뜩 술이라는 그 단어에 또 괜한 의미부여를 하기 시작했다.
취중진담. 아니면 그냥 진짜 술만 먹는건가. 하며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데, 

[아니 그래서 마실거냐고, 왜 말을 안 해]

내 숨소리 조차도 안 들렸는지 대화의 빈 틈을 다시 치고 들어온 너였다.

" 아, 거절하면 어떻게 되는데? "

그냥 한번 대수롭지 않던 거절을 띄웠다. 
진짜 끝까지 너한테 그런 의사를 내비칠까 궁금했거든.

[거절은 무슨, 거절할게. 할 말 있으니까 좀 나오면 안 되냐?]

거절의 거절이었다. 
그 단어에 바로 아, 알겠어 어딘데 나갈게.
급하게 외투를 챙겨 입고 화장실 거울을 보며 머리 정리를 했다.

[.... 창문 봐.]

그 순간 바쁘게 움직이고 있던 손이 멈추고 창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너의 얼굴을 창문에 고개를 내밀어 내려다 보자마자 서둘러 귀에 대고 있던 핸드폰을 허리춤 쪽으로 내렸다. 

" 기다려 지금 내려가. "


















서둘러 계단을 종종 걸음으로 내려가니 공동 현관 닫힌 유리문 너머로 뭐가 그렇게 좋은지 핸드폰 액정을 두 엄지로 부산하게 두들기고 있었다.

 
길게 직사각형 모양으로 뻗어진 열림 버튼을 누르고 곧 자동으로 문 열리는 소리가 좁은 공간에 울려퍼진다.
근데 그게 무색할 만큼 내가 아닌 핸드폰만을 바라보며 연신 입가에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 그럴거면 핸드폰이랑 술을 마시지 그래. "
" 어? " 

한참을 말 없이 그저 널 지켜보기만 했을까, 
정적을 깨는 심통 섞인 한 마디에 놀랐는지 움직이던 손가락을 멈추고 놀란 눈으로 날 쳐다본다.
 

" 뭐야 말도 없이 언제 나왔어 놀랬네. "
" 말도 없이? 그렇게 지금 이렇게 있던 건 누군데. " 


내가 너랑 무슨 말을 하냐 지금. 
얼굴에서 그대로 보이는 감정과는 다르게 말도 없이 언제 나왔냐. 라는 덤덤한 말투에 약간은 속이 상했다. 

기분 탓인 줄 알았겠거니 했는데 아니었다. 
왠지 모르게 내 탓 인척 하는, 네 탓으로부터 느끼는 그런 감정이었다.

























-









" 그래서 왜 불렀는데. " 
" 뭐, 그냥. 얘기 할 사람 필요해서? " 
" 그럼 재현이도 있고, 너 동기들도 있을텐데. "
" 다들 시간이 안 나길래. 너 혹시 시간 나나 해서. "


앤틱한 룸 술집에서 은은한 조명과 함께 마주 보고 앉아 너에게 괜한 기대를 바라고 물어본 말이었을까.
뭐, 그냥. 이라는 미지근한 말의 시작에 뭔지 모를 참담함이 속에서 흘렀다. 

내 입술이 나도 모르게 재현이라는 이름을 쉽게 말하고 있었다.
그 순간 난 뭔가 잘못 됐다는 걸 느꼈다. 
 
벌써부터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생각하기 바빴다.

" 시간 내서가 아니라, "
" ... 나서, 그런거구나. " 

널 바라보고 가만히 눈을 깜박이다 내 손에 살짝 쥐어져 있던 술잔을 들어 소주를 한꺼번에 목구멍으로 넘겼다.

" 우리가 원래 목적이 있어서 만나는 것도 아니었잖아. 나서가 맞지. "
" 맞지, 그건 맞는데. " 

다시 한번 쐐기를 박는 그 말에 인정 하고 싶었던 것도 아닌데 인정을 해버렸다. 
아무렇지 않은 듯 말하는 너의 얼굴을 보니 내 가슴 한 켠이 미어져 왔다. 

잠시 동안에 룸 너머로 가게의 잔잔한 음악 소리만 들렸을까. 
소주 한 잔을 털어 넘긴 네가 큰 결심이라도 한 듯 괜히 침을 삼키더니, 

" ... 내서 만날 사람은 따로 있지, "
" 누구. "
" 있어....., 잘생긴애. " 

나를 향한 시선이 아닌 그저 너의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며 그 움직임에 시선을 두곤 말 끝을 흐리다 대답 하는 너였다. 

너의 그 말 끝에 나온 네 글자를 곱씹으며,
대체 너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거야? 
마음 속으로 외쳐 볼 뿐 시선은 끝 없이 그어진 직선처럼 너한테로 머물러 있었다. 


















-


" ...야 "

어느새 테이블엔 소주 2병, 맥주 2병이 아무렇지 않게 빈 병으로 세워져 있었다. 
맥 빠지는 목소리로 널 부른 뒤엔 그 사이로 술에 얼마나 취했던건지 애써 정신줄을 붙잡으려 노력하는 네가 보였다.

" 응..? "

힘겹게 실눈을 떠 보이며 나를 바라보는 눈엔 뭔지 모를 압박감이 서려 있었다. 

왜. 그렇게 날 보는 건데.

" 정신 좀 차려봐. "

너의 고개가 급격히 테이블 쪽으로 향해 내려가 그만 약한 쿵. 소리가 났다. 
지금의 내 마음처럼. 

아. 얘를 어떡하지. 

그런 널 멍하니 바라보다 오른쪽 목 옆 부근을 손으로 약하게 쓸었다. 



















네가 정신을 잃기 전 소주 잔에 담겨 미처 마시지 못했던 마지막 잔을 다시 한 번 마시려는 찰나, 재현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 ... 뭐야 갑자기? "
" 술 마신다길래, 약속 취소 됐거든. "
" 아. 우선 앉아. " 

정재현이 온다는 말은 없었는데, 아까 핸드폰만 바라보고 바삐 움직이던 손가락이 얘 때문이었나. 

" 얘는 또 왜 이러고 있어. 적당히 마시라니까. " 

재현은 시선을 한 번 나에게 두고 우뚝 앉아있는 나완 달리 고개가 이에 반해 테이블과 한 몸이 된 듯 상체가 숙여져 있던 너에게로 시선이 끝난다. 
그러고는 자연스럽게 네 옆에 자리를 잡아 앉는다. 

" 이런 적 한 두번인가, 익숙하지 뭐. "
" 그렇긴 하지. 근데 둘이 무슨 얘기 하고 있었어? " 

나는 괜히 한번 오른쪽 손을 들어 머리 뒤 쪽을 가볍게 쓸었다. 
그러자 재현이 입꼬리 한 쪽을 은은하게 올리며 널 한 번 가볍게 쳐다보다 다시 고개를 돌려 나에게 물었다. 

" 얘가, 얘기할 사람 필요하대서. 그냥 그런 얘기. " 
물어오는 질문에 아무렇지 않은 듯, 개의치 않은 듯 턱짓을 하곤 대화의 끝엔 다시 온점이 찍혔다. 

" 아... 그냥 바로 올 거 그랬나. " 
" ... 그 약속이 뭐 소개팅이었다거나 그런거였냐? "
" 미쳤냐 내가. 그거 그냥 태일이한테 넘겼어. "
" 문태일? "
" 그래 문태일. "

차라리 소개팅이었으면 했는데 아니었다. 
그 질문에 재현은 약간 발끈하며 태일이한테 넘겼다고 말했다. 

그러다 나풀거리는 원피스 자락에 신경이 쓰였는지 입고 있던 과잠을 조심스럽게 무릎 위에 가지런히 덮어준다. 
늘 그랬다. 정재현이 한 발 앞서가는건.

오늘은 근데 생각도 못 했다. 아니 안 했지. 
마음의 안정은 아무것도 정하지 않았을 때 오는 것이라고 했다. 
근데 왜. 그런 너와 재현이 너무 신경 쓰인다.

" 너, 소개팅에 왜 이렇게 집착을 해? "
" ...... "

테이블 중간에 있던 스테인 물병을 들어 투명한 플라스틱 컵에 따르며 재현이 물었다. 
마음 속 깊이 정곡을 찌르는 질문에 그만 입술을 작게 말아 올렸다. 


" 뭐 있지 너. " 
" ... 있냐고.  "

그저 재현을 바라보기만 할 뿐 아무런 대답도 변명도 나오지가 않았다. 
너 때문이라고 왜 말을 못하는데. 

다시금 룸 너머로 가게의 배경음악 소리만 들려왔다. 
지금 이 순간을 참고하기도, 속에서 진실을 참고 말하기도 어려웠다. 

".... 좋아하냐 설마 너? "
" 아니. " 

물을 연신 목구멍에 퍼붓던 재현이 한참 입을 열지 않다가 의심 서린 눈빛을 하고 물었다. 
주어를 말하지도 않았는데 기다렸다는 듯 대답을 해버렸다. 
그게 너인 걸 알았으니까. 

" 이름도 말 안 했는데 나. " 
" 그냥 아니라고. 재현아. "
" 요즘 왜 이래? " 
" 원래 이랬어. "

이런 내가 너무나도 지겨웠다, 
답이 없었다.

" 아닌 척 하지마. 다 아니까. "
" 아는 척 하는 너는. " 
" 좋아하잖아. 준희. "
" ... 맞잖아, 근데 나도 쟤 좋아한다고. "

허나, 문제가 있었던 게 문제였다.
내 답이 아닌, 재현의 답이었다. 
문제를 풀기도 전에 정답이 나와버렸다.

" 근데, 어떡하라고 나한테. " 
" 알아둬 그냥. "

끝까지 아닌 척 발악을 했다. 
그게 잘 먹히진 않았던 모양이었다.
내 대답에 다시 말을 받곤 시선이 너에게로 향했다.























-


그래서 다시 3년 후인 지금, 

" 나갈게. "
" 진짜? 야 고마워, 밥 사줄게. " 
" 됐어. 됐고 그냥 가만히 있는게 도와주는거다 넌. "

야. 당연하지. 고맙다 김도영!

1학기 기말까지 다 끝나고 전 학년이 모인 종강파티에서 잠깐 바람 쐬러 혼자 나왔다가
태일이 언제 나온건지 옆에서 독한 연기를 뿜어내며 담배를 피고 있었을 때,
그냥 저질러버렸다. 어떻게든 되겠지. 

그러다 내 한 쪽 어깨를 가볍게 툭툭 치곤 다시 술집 안으로 들어가는 태일이었다. 

[나 이번에 유학 가] 10:00 pm 1
[잘 지내 고마웠어]  10:00 pm 1

오늘 어쩐지 종강파티에 안 보이던 너에게 얼굴 보고 얘기하려던 걸
청바지 한 쪽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카톡 대화창을 열어 손가락으로 타이핑을 했다.

역시나 바로 읽을리가 만무했다.
차라리 이런 무관심이 좋다고 생각했다. 
너라서 좋은건지, 피하고 싶어서 좋은건지 착각을 했다. 


전원 키를 살짝 눌러 액정 화면을 끄고 들어가려는데, 

" 뭐하냐 여기서. "
" 그냥 답답해서 왜. "

더웠는지 머리를 쓸어넘기며 밖으로 나온 재현이었다. 
재현은 가슴팍 쪽에 습기 때문에 살짝 붙어있던 반팔을 연신 털어냈다. 

" 벌써 종강이네. "
" 그러게. "
" 방학 때 뭐하려고? "
" 유학. "
" 유학? 갑자기? 왜. "
" 그냥. " 

허리춤에 양 팔을 올린 재현은 유학이라는 두 글자에 놀랬던건지 정면을 향해 있던 시선과 고개가 내 쪽으로 동시에 향했다. 
그냥 유학이라고 말하는게 마음이 편할 듯 싶었다. 

안 그러면 진짜 나 죽을 거 같았거든.
어쩌면 너랑 안 될 거란 마음이 사실은 제일 잘 되고 싶었던 준비였을지도 모른다. 

" 그냥이 어딨어, 아니 준희한테는 말했고? "
" 몰라. 말하긴 했는데. 그냥. " 
" 또, 그냥. "
" 왜. 불만있어? "
" 아니, 넌 진짜. 그냥이 습관이다. " 
" ..... "
" 내가 준희랑 그렇게 안 된게 다행이네. 지금까지 그랬으면 나도 맨날 그냥 달고 살았겠지. "

재현의 말에 얼굴이 살짝 달아오르는게 느껴지고 목소리가 상기된 상태로 물었다.

" 갑자기 그게 왜 나와? "
" 너 걔 앞에선 그냥 잘 쓰지도 않잖아. "
" 뭐래. "
" ... 간다. " 
" 아니, 야 어디가. " 

재현의 당황스런 말을 뒤로 하고 어딜 가는지도 모르게 걷는데 바지 주머니에 대충 찔러 넣어 놨던 핸드폰 진동이 찌릿하게 울린다. 











화면에 보이는 이름은 다름 아닌 너였다.
받을까 말까. 고민을 하다가 결국은 자석에 이끌리 듯 수락 버튼을 옆으로 밀었다. 

[야! 너는 그걸... 이제 말해?]

받자마자 앙칼진 너의 목소리였다. 
내 입꼬리가 슬며시 저절로 올라가는 게 느껴졌다.

" 진정 하고 말해, 놀랐어? "

[너 같으면 안 놀라? 김도영 진짜 아.]

한껏 상기된 목소리에 한숨을 내뱉는 너였다.
오랜만에 이런 반응을 들으니 그동안 쌓였던 게 사이다를 마신 듯 다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 어딘데. "
[집.]
" 집? 오늘 왜 안왔어? "
[귀찮아서.]
" 뻥치지마. "
[아 몰라, 생리 터져서 힘들어.]
" 갈까? "

힘들다는 말에 당장 달려 가고 싶었다. 
너의 목소리는 단잠이라도 자는 듯 달콤할 뿐 이었다.

[혼자 있고 싶어.]
" 진심인데, 너무하네. "
[아픈 사람한테 못 하는 말이 없다.]

너한텐 그냥 던져본 말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아니었다. 한 순간도 진심이 아니었던 적은 없었다.
그냥 그걸 삼켜만 냈을 뿐.

" 아, 미안. 웬일로 전화 했나 싶었다. "
[아니, 여튼 너 유학 언제 가는데?]
" 이제 곧? "

이 시점에선 바로 곧 유학 간다기엔 촬영 들어가기 몇 달 전이었다. 
그냥 조용히 집에서만 박혀 있을 생각이었다.
너가 다시 아른 거릴 거라는 생각은 점점 아지랑이처럼 울렁인다. 

[아... 언제 한 번 볼래?]
" 거절. "
[맨날 거절이야.]
" 이제 이것저것 준비하려면 바빠. "
[참나, 바쁜 척 하기는... 알았어 그럼 연락이나 자주 하던가.]

당장이라도 너랑 만나고 싶었다. 
좋아한다고, 아니 좋아했다고...?
뭐라도 얘기하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참 답답하기 그지 없었다.
 
" 끊어. 잘 지내고, 아프지나 마. "
[ㅇ,]

혹시라도 어떤 말을 더할까 싶어서 뭔가를 말하려던 너의 목소리를 뒤로 하곤 그대로 끊었다. 
이런 마음을 먹고도 생각보다 커지고 있던 마음의 무게가 무거웠다.

알고는 있었지만, 내심 네가 말해주길 바랬고 또 바랬었다. 
나도 너 좋아한다고. 

근데 이제 다른 시작을 하면 더 이상 듣지도 보지도 못하겠지.
라고 생각을 했는데, 내가 나갈게 라는 말만 안 했으면 오히려 더 나았을까 라는 후회를 했다.






















* 안녕하세요 댄싱로맨스, 썸바디에 오신 김도영 님. 환영합니다!
* 저는 한달동안 썸뮤직과 공지를 전달할 썸마스터입니다.
*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썸스테이 안에서의 룰을 알려드릴게요. 

1. 매일 저녁 일정 마친 후 썸스테이로 귀가합니다.
2. 입주 기간 동안 출연자들과의 사적인 연락은 금지됩니다.
3. 단, 개인에게 제공되는 메일박스로는 연락이 가능합니다.
4. 매일 저녁 호감가는 사람에게 썸뮤직 전송 (중복은 불가)
5. 하루 중 가장 즐거운 사진을 남겨주세요.
6. 외출 시 미니보드에 당신의 행선지나 상태를 적어주세요.
7. 썸바디에서 무한의 썸을 타고 가세요.
8. 과도한 스킨십 금지 (안무 스킨십 제외)

썸스튜디오로 향하는 택시 뒷자리에서 공허하게 울리는 핸드폰 진동에 문자를 가만히 읽었다.
진짜 이래도 되는건가. 불과 몇 달전에 너와의 마지막 통화가 생각이 났다. 
아, 그냥 끊지 말걸. 















창 밖을 내다보며 약한 한 숨을 내뱉었다. 
한참을 생각에 잠기다 곧 스튜디오에 도착을 했다. 

문을 열고 내려 트렁크에 있던 캐리어를 빼어 손잡이를 쥐는데,

그러자 저 멀리서 캐리어를 끌고 오는 실루엣이 보였다. 

누구지, 설마.
너라는 생각을 떨쳐내며 눈을 다시 뜨고 바라보니, 

" 아... 안녕하세요....? "
" 아. 네. " 

그 시선을 느꼈는지 어느새 거리가 가까워진 여자가 조심스럽게 끌고 오던 캐리어를 세우고 나에게 인사를 했다. 
순간 네가 생각이 났다. 익숙한 헤어 스타일 때문에. 그저 단발이라서.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곤 제법 무거워 보이는 여자 분의 캐리어를 들어주었다. 

" 우리가 처음일까요? "

스튜디오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연신 정면만 바라보다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로 나에게 물었다. 

처음이라는 질문에 나는 그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 글쎄요, 잘 모르겠네요. "

어색한 대답을 할 뿐 이었다. 

다시 또 정적이 흐르고 스튜디오 문 앞에 도착을 하니 문을 열려고 세워두었던 캐리어의 손잡이를 잡는 여자다.

" 고마워요. 제가 들게요 이제. " 

문의 손잡이를 잡고 열려하자 나를 보곤 싱긋 웃으며 고맙다는 말을 했다. 
그 모습이 참, 단정해 보였다. 

" 안녕하세요. "
" 안녕하세요- "

여자의 뒤를 따라 들어가 문을 닫으며 먼저 인사를 건넸다. 
긴장을 했던 탓일까. 캐리어 손잡이가 들려있지 않은 한 손으로 괜히 뒷목을 한 번 가볍게 쓸었는데, 

" 안녕하세요~ "

내 앞에서 인사를 하고 있던 여자의 실루엣이 옆으로 벗어나자 다시금 단발머리인 여자가 보였다. 











....너였다. 

순간적으로 동공이 흔들렸다.
사고회로가 멈췄다. 온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 ..니가 왜 여기있어? "

쉽게 떨어지지 않던 입을 먼저 열었다. 

" 그러는 너는 왜..? " 

할 말이 없었다. 분명 다시는 삽질 안 하겠다고 나왔는데,

"아니 나는... "

여전히 네 앞에서는 그게 안 되나 싶었다. 
네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이 흑백이었다.

그 속에서 유일하게 너만 색이 있었다.

" 너 곧 유학간다면서.... 여기였어? "

너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지며 날 쳐다본다.

" 아니...비밀이니까 말 안 했던건데, 니가 여기 있을 줄은 몰랐다. "

그래 유학. 어떻게 보면 현실 도피를 위한 유학이 여기였다. 

그 사이 원인 모를 침묵이 흐르고,

" 아아! 저희 이제 다 모인건가요..? "
" 아, 아니요...? 한 분 아직 안 오신 거 같아요."

그러다 멍하니 소파에 앉으니, 제일 어려보이는 남자와 아까 그 여자가 서로 대화를 주고 받는다. 
자세히 주변을 둘러보다 이끌리듯 너에게 시선이 닿더니 두 명의 남자 사이에 앉아있었다.

갑작스레 너의 시선이 닿더니 맞물리는 순간 아직도 믿지 못하겠단 눈빛을 너에게서 느꼈다. 

나도 안 믿겨.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인지. 












우리 둘만 아는 숨이 턱 막힌 기류 속에 그 사이를 환기라도 하는 듯 마지막으로 문이 열린다.

" 안녕하세요! "
밀랍 인형 같이 잘생긴 남자가 힘차게 인사를 하며 들어왔다.

그 순간,

" 안녕하세요.. 잘생기셨어요..! "

너의 목소리에 시선을 돌리니 놀란 표정으로 인사를 하고 있었다. 

역시, 너는 여전히 잘생긴애를 좋아하는구나. 

" 아 ㅋㅋㅋ 감사합니다. "

이내 남자는 내 맞은편 소파로 걸음을 옮겨 마지막 자리를 채운다.














* 뉴-땡!

뭔가 부산한 알림음이 스튜디오 전체에 울려퍼지고, 여자 출연자들이 하나 둘씩 자리에서 일어났다.

...댄스 신고식이었나보다. 

올 시간이 오고야 말았다. 절대 안 오길 빌었는데. 

네가 앉아있던 그 자리를 뚫어지듯 쳐다보고 있는데,

" 저기, 다들 댄스신고식 준비 잘 해오셨어요? "

 그 왼쪽에 앉아있던 남자가 한 명씩 눈을 맞추며 물었다. 

" 아, 아뇨. 솔직히 긴장을 많이 해서 그런가 제 맘에는 잘 안 드는 거 같네요. "

맞은 편 소파에 앉아있던 아까 그 잘생긴 남자가 머리를 살짝 긁적이며 말했다. 

" 에이. 아니실 거 같은데, 강한 스트릿의 느낌이 나는데요? "

가만히 그를 쳐다보고 말을 경청하던 제일 어려 보였던 남자가 다시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이 얘기들을 가만히 듣고 있자니 힘이 들었다. 

내가 여기 왜 앉아있지? 괜한 결심이었나. 

그러다 스튜디오 문이 열리고 익숙한 한복 차림을 한 실루엣이 무대 쪽으로 향해 걸음을 옮긴다.

얼굴을 보지 않아도. 걸음걸이만 봐도. 
그냥 너였다.

" 안녕하세요. 일단 제 닉네임은 밀키구요.. "
" 붕어빵 장사해요...^^ "

이전 너에게선 볼 수 없는 미소와 말들이 나에게 다가왔다.
왜 그런건지 도대체가 알 수 없었다. 

" 네..? 제가 잘못 들었나요? "

이내 아까 너의 오른쪽에 앉아있던 남자가 의문이 가득 섞인 말투로 너에게 묻는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 잘못 들은거지? 내가 잘못 본 거지? 

" 아! 엄청 좋아하는데,,, 이게 아니고 이름은 시준희구요 사전 호감도 조사 1위 장르는 한국무용입니다! "

그에 굴하지 않고 참 해맑게도 웃으며 소개를 했다.

내 속도 모르고.

" ㅋㅋㅋㅋㅋㅋㅋㅋㅋ무대 기대할게요. "

이 대화를 빨리 마무리 짓고 싶은 듯 해사한 웃음을 짓는 아까 그 어려보이는 남자가 이내 잔뜩 기대하는 눈빛을 보내며 말을 마친다.

그러다 잔잔한 전주가 흘러나오는 탓에 시선을 다시 너로 향했다. 

한이 서린 그 눈빛으로 한번 나를 스쳐 지나가니,

나도 모르게 그만 고개를 떨궜다. 

나한테 왜 그러는데 진짜? 지난 3년 간의 마침표가 다시 물음표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한참을 애 먼 바닥만 바라보고 있었을까, 무대가 끝났는지 다들 박수를 친다. 

고개를 들어 허공을 바라보며 떨떠름하게 늦게나마 손을 맞대어 짝. 여러 번 소리를 냈다. 

그냥 더는 못 보겠더라. 

" 준희 씨, 진짜 예쁘네요. "

그러다 의문 가득 섞인 말을 걸었던 남자가 사뭇 진지한 눈빛으로 묻는다.

누군가에게 무방비 상태로 세게 한 대 얻어맞은 듯 했다. 

" 아, 지금 고백하시는거에요? "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되받아치는 너에 다시 한번 더 속절없이 맞았다. 

" 아니.. 그게 안무가 너무 예뻐서..! "

알 수 없는 묘한 분위기에 쉴 틈도 없이 그 사이로 뛰어들었다. 

" 여전하네. "

방송이고 뭐고. 
 
" 네.. 어? "

너의 벙찐 얼굴을 보고서야 다시금 말을 고쳐 잡았다.

" 요.. "

그저 여전했다. 겉모습은 변한 게 하나도 없었다. 
너의 속마음을 모를 뿐.

" 음... 하하. 자리에.. 앉을까요? "

내 말에 대답을 뭉툭하게 하는 것도 그랬다.
그냥... 그랬다고. 

" 네네. 어디 앉으실래요? "

그러다 아까 그 잘생긴 남자가 너의 눈을 똑바로 보고 물었다. 















내 옆에 앉지마. 아니 제발 앉아. 

혼자 속으로 의미없는 싸움을 하며 허공을 바라봤다. 

한참 고민을 하다 내 맞은편 소파에 앉아있던 남자의 옆에 네가 살포시 앉는다. 

하필 왜 맞은편인데, 표정관리가 안 됐다. 

그러다 네 옆에 있던 남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너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한다.

" 안녕하세요! 사전 호감도 2위 제 닉네임은 도단호박이고, 장르는 스트릿입니다. "

언제 무대로 온 건지 키가 크고 시원하게 생긴 여자가 앞에 서서 당차게 자기소개를 했다.

" 그럼 혹시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

그러자 너의 목소리가 내 시선을 다시 빼앗는다. 

" 아 저는 강도연 입니다. "

아. 이름을 들으니 알겠더라. 내가 사전에 투표한 사람이 이 사람이었다는 걸.
근데,

솔직히 사전 영상을 보고 설마.... 하며 긴가민가 하다가 그냥 너랑 정 반대인 사람을 뽑았다.

" 어.. 그 투표한 거 같아요! "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 있는데 잘생긴 남자가 본인도 투표를 했다며 살짝 부끄러운 듯 말을 했다.

" 네..? "

갑작스런 투표 실명제에 앞에 서 있던 여자는 괜히 머리를 만지작 거리며 놀란 듯 싶었다.

살얼음판을 걷는 듯 급격히 추워진 분위기에,

" 뭐야잇 나만 빼고 다 여기 모여있었어!!!!!! 나도 가취 가욥~~!!!! 달려달려 "

술에 취한건지, 아니면 진짜 미친건가 싶을 정도로 네가 고성을 질러댔다. 
그럼 그렇지... 

" 아 ㅋㅋㅋㅋㅋ 준희씨 장난치시네. 도연씨 무대 시작합시다. "

그러다 옆에 있던 남자가 급하게 수습을 했다. 

무대가 시작되고 강렬한 음악에 내가 하는 장르와는 다른, 엄청난 파워의 움직임이었다. 
원래 저런 사람들은 타고 났다고 생각을 했다. 

나는 원래 한국무용을 잘하는 것도 아니었으니. 

생각에 잠기다 흘끗 네 쪽으로 다시 시선을 향했다. 

감명이 깊었는지 무대가 끝나자마자 감탄사를 내뱉으며 박수를 친다. 

진짜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너무 이상했다. 
너를 계속 주시하고 있는 내가.

분명 접는다고 왔는데.














그때 옆자리가 채워지는 느낌이 들어 고개를 돌리니 아까 그 도연 씨였다.
어떻게든 애써 시선을 돌려 보려고 소파 아래에 있던 담요를 하나 건네줬다.

고맙다는 듯 웃어보이며 두 손에 담요를 받아든다. 

" 고마워요. " 
" 아니에요. "

딱 누가 봐도 예의상 하는 말 이었다. 
물론 나도 그랬다. 

할 말이 없어져 괜히 딴 곳을 응시하려다, 

너와 다시 눈이 마주친다. 

제발,

그만. 

' 그만 보지? ' 

얼마 지나지 않았을까 소리를 내지 않고 입만 뻥긋 거렸다. 

그것도 잠시, 

" 다음 분 오셨어요. "

어깨를 살짝 두드리는 남자에 의해 너는 시선을 빼앗긴다. 

뺏기는 것도, 얻는 것도 쉬웠다.

"꺄 누구야!"

대뜸 소녀같은 리액션을 보인다. 너 뭐냐 진짜.

" 누구긴요! 안녕하세요- 사전 호감도 2위, 정체정채구요. 장르는 현대무용입니다! "
" 아, 맞다 이름은 정채연이라고 합니다. "

아랑곳 하지 않고 유연하게 분위기를 넘기며 인사를 하는 여자였다.
영상에서 되게 아름다웠던 몸짓이 생각났다. 

정채연... 이구나.

순간적으로 아, 맞다 하는 그 모습이 내가 생각하는 누군가와 겹쳐보였다.

" 반가워요. 너무 청순하세요. "

나도 모르게 먼저 말이 튀어나왔다. 
심지어 부끄러워하기까지.

미친거지 김도영? 



















" 무대 너무 궁금하다.. 어떻게 하실지. "

옆에 말 없이 앉아 있던 도연씨가 기대감 가득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
그저 나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뿐이었다. 

혼잡한 생각에 빠져 잠깐 자책을 하는데 무대는 이미 시작을 했고,

어찌저찌 혼란스럽게 무대를 지켜봤다. 

마음이 잠시 가라앉나 싶었는데 박수를 치긴 칠 뿐, 

" 이걸 돈 안 내고 봐도 되는거에요? "

어느새 분위기를 이끌던 남자가 채연씨에게 묻는다, 

그러다 돌아오는 목소리는, 

" 김도코 넌...넌 나만 바라봐.......~ "

너였다. 

대체 뭐하자는건지 알 턱이 없었다. 

김도코는 뭐며, 

뒤에 흥얼거리는 노래는 또 뭐고. 

분명 내 이름이다 싶었는데 약간 짜증이 났다. 

네 옆에선 그게 웃겼는지 박수를 치며 연신 웃어댔다.

" 아핳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점점 속이 뒤집혀져 갔다. 또 그 웃음은 뭔데,

그냥 재밌구나 넌.

"아 ㅋㅋㅋ 이제 그만. "

이걸 지켜보고 있던 잘생긴 그 남자가 분위기를 끊어낸다.

얼떨결에 틈이 생겨 다짜고짜,

" 채연씨, 어디 앉으실래요? "

그냥 물었다. 

안 그러면 감정이 더 고조될까 싶어서. 

" 제가 원하는 자리가 있었긴 한데.. 누가 앉으셔서. "
" 오딘데요? "

너는 때를 놓치지 않고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물었다. 

" 아, 아니에요! 제가 다른 자리 앉을게요..!"

이내 채연 씨는 맞은편 소파에 앉는다. 

" 안녕하세요~ 사전 호감도 4위 닉네임은 옐로우라고 합니다. "

옐로우... 이미지에 걸맞는 닉네임이었다. 

" 너무.. 귀여우세요.. ㅠㅠㅠㅠ "

뜬금없이 감격에 휩싸인 채 주접을 떠는 너였다. 

맞다. 얘 귀여운거 좋아했지. 

" 엇 감사합니다ㅜㅜㅜ "
" 아아, 제 이름은 임예리구요, 장르는 케이팝이랑 걸스힙합 하고 있습니다! "

너의 장단을 맞춰주곤 다시 힘차게 대답을 하는 여자였다. 

입꼬리가 나도 모르게 저절로 올라갔다. 

내가 원래 이리 쉽게 감정을 드러내는 사람이었나. 

근데, 알고보니 이 모습도 너 때문이란 걸 망각하고 있었다. 

" 자 이제 무대 얼른 봅시다! "

그 사이 그 남자의 말에 무대가 시작됐다. 

" 제 옆에 앉으면 안 되는거죠? "

내가 하고 싶은 말인데, 자꾸 왜 그래. 

그 말에 또 다시 시선이 너로 향한다. 

' 뭘 봐? '

네가 입 모양으로 뻥긋 거린다. 

괜히 심술이 났다, 또.

다른데로 고개를 돌렸다. 
















* 띵-동.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의 진동이 찌릿하고 울린다. 

* 안녕하세요. 썸마스터입니다.
* 남자 댄서분들은 지금 댄스신고식을 위해 대기실로 가주세요.












전원 버튼을 켜 확인을 해보니 대기실로 옮기라는 문자였다. 

슬금슬금 일어나니, 앉아있던 너의 시선이 일어나는 남자들을 따라 움직인다. 

이럴 때는 꼭 마주치질 않는다. 













서둘러 대기실로 향하니 베이지색의 긴 소파가 견고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 대기실 좋다. " 

들어오자마자 바로 정중앙에 앉는 어려보이던 남자다. 

" 그러네요, 다들 화이팅 합시다. "

그 오른쪽에 앉은 인상 진한 잘생긴 남자가 무릎에 팔꿈치를 살짝 대고 주먹을 살짝 말아쥐었다. 

그러다,














* 띵-동.

다시 알림이 울린다. 

* 썸마스터입니다. 지금부터 사전 호감도 조사 3위부터 역순으로  댄스신고식 무대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착잡한 마음이었다. 

과연 한 표라도 받았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괜히 핸드폰을 쥐고 엄지로 액정을 의미 없이 두드리고 있을 때, 

















* 띵-동.

바로 오른쪽에서 알림이 울렸다. 

소파 중앙에 앉은 남자였다, 

분위기는 정전이라도 일어난 듯 보이지 않는 정적이었다. 

" 잘 다녀오세요. " 

그러다 그 오른쪽에 앉아있던 유독 너와 친밀해보이던 남자가 입꼬리를 살짝 올려보이며 덤덤하게 말을 했다. 

" 감사합니다. " 

말을 들은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피팅룸으로 향한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니 작은 체구 같아 보이는데.... 

뭔가 모를 저력이 느껴져 어깨를 위로 살짝 으쓱이다 내렸다. 

" 안녕하세요. 사전 호감도 3위, 제 닉네임은 풀썬이구요. 장르는 스트릿..입니다! "

소파 앞에 설치되어있던 모니터로 첫번째 순서를 눈여겨 지켜봤다. 

뭔가 무용은 아닐 거 같았는데,

생각한대로였다.

근데 닉네임은 왜 풀썬이야.

















" 닉네임이 왜 풀썬이에요? "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너의 음성이 모니터를 타고 흘러 나온다. 

괜히 또 오른손으로 한쪽 목을 가볍게 쓸어내렸다. 

" 아 제 이름 반영해서 그대로 풀썬이에요! "

그 목소리 속에서 당당함이 넘쳤다. 

그대로 상체를 약간 숙여 무릎에 양팔꿈치를 대고 턱을 괴었다. 

생각없이 멍하니 모니터를 얼마나 응시했을까, 

남자의 얼굴이 화면에 꽉 차게 잡힌다. 

이내 카메라를 응시하던 시선이 다른 쪽으로 향한다.



















설마,

설마. 

했는데 진짜였다.

소파 앵글까지 잡힌 풀샷엔 너의 시선도 함께 였다. 

" 아 맞다, 제 이름을 안 알려드렸네요! 이해찬이에요~ "

모니터를 벙찐 모습으로 바라보다 어렴풋이 이름이 들렸다. 

이해찬.... 진짜 닉네임 그대로구나.

입모양으로만 이름을 읊조렸다. 

" 앉고 싶은데 앉으세요! "

" 제 옆으로 오세요! " 

너의 말에 고민하다 그 옆에 앉는 해찬 씨였다. 

이 상황을 언제까지 바라보고 있어야 하는지 약간 괴로운 탓에 다시 자세를 고쳐 앉고 시선을 엉뚱한 곳으로 그냥 옮겼다. 

미리 준비하고 있던 한 남자가 급하게 대기실을 벗어난다. 

화면에만 너무 집중한 나머지 누구한테 문자가 온 건지도 몰랐다.

처음부터 이러면 진짜 안 되는데. 

정갈하게 세팅되어있던 머리를 괜히 살짝 헝클어뜨렸다. 

" 두 분 아시는사이세요?? "

앞에 얘기를 놓쳤던 탓인지 모니터에서 다시 네 목소리가 흘러 나온다. 

" 네..네? 아니요~! 오늘 처음 봤어요! "

대체 무슨 얘기를 했길래 저렇게 부인을 하는 걸까 싶었다. 

저 질문의 대상이 너와 나였다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잠시 했다. 

애초에 포기하긴 글렀던 건 아닐까. 























" 전 사전 호감도 4위, 닉네임은 툥이고 이름은 이태용이라고 합니다. 제 장르는 비보잉이에요."

네가 말했던 잘생긴.... 잘생기기는 엄청 잘생겼다. 

이름도 무슨 인소 주인공 같이 현실엔 없을 법한 느낌이었다. 

" 진짜 잘생기셨다... 그쵸. " 

아까 맨 오른쪽에 앉아 있던 남자가 손으로 입을 틀어 막곤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려 눈을 동그랗게 뜬다. 

아.

" 네. 맞아요. " 

나도 모르게 그만 인정을 해버렸다. 

네가 그렇게 잘생긴애를 좋아하는 이유였나 이런게. 

" 저는.. 음 어디 앉지.. "

잠시 얘기를 하다보니 모니터엔 무대가 끝난 채 자리 선정을 위해 고민하는 모습이 잡힌다. 

" 왜요... ?"

그러다 눈이 마주쳤는지 놀란 눈을 하곤 당황스럽게 묻는 너였다. 

" 아, 아니에요! "

찔린건가. 아쉬운 목소리로 대답하는 태용 씨 였다. 

이런 광경을 대기실에 앉아 보고 있자니, 

참으로 말이 아닐 수가 없었다. 

넌 여기서도 좋아 보이는데. 

나는 왜 이럴까. 






















모니터에선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를 소리가 흘러 나오고 또 다시 3년 전 생각으로 머리가 지끈거렸다. 

* 띵-동.

" 어... 제 차례네요. "

그 사이 옆에선 문자가 왔는지 알림이 울리고 손으로 턱을 매만지며 낮은 목소리 톤 으로 말하는 남자였다. 

" 아, 네.. " 
" .... 잘 다녀오세요. " 

내가 1위라고? 말도 안 됐다. 

믿을 수가 없는데. 

빌었다. 거짓말이길. 

" 안녕하세요. 전 사전 호감도 2위, 맠이고.. 음 장르는 스트릿입니다. "

2위 라는 말에,

실감은 더더욱 나지 않았다. 

" 헤이 맠~ "
" Yo bro~! 아 잠시만 이게 아닌데, 이민형이라고 합니다. "

저 근본 없는 대화 속에도 모니터만 응시한 채 멍을 때렸다. 

시끄럽게 흘러나오는 소리가 점점 뭉개졌다. 





















* 띵-동.

그 속으로 경쾌한 알림음이 귀를 파고 들어온다.

* 김도영 님 무대 준비 해주세요.

이게 꿈인가? 

서둘러 피팅룸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 의상을 갈아입었다. 

대기실 소파 주변에 있던 LED 조명이 달린 거울을 한번 봤다.

괜히 볼에 바람을 한번 넣었다 후. 하고 뺐다. 
























썸스튜디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어느새 자리를 꽉 채운 채 앉아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 중에서 너를 찾기란 너무나도 쉬운 일 이었고, 

"아.. 저 인사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사전 호감도 1위, 닉네임은 도쿵이고,, 이름은 김도영입니다. "

무대에 서니 긴장을 했는지 소개를 아무렇게나 뱉었다. 

시선을 이리저리 옮기다 정착한 곳엔 너의 표정이 그대로 보였다.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너만 어이 없는게 아니라 나도 그렇다고. 준희야 제발. 

" 왜 닉네임이 도쿵이죠..? "

그러다 너는 갑자기 닉네임에 의문을 품는다. 

모르는 척 하는거야, 

아니면 진짜 모르는 거야.

너 옛날에 술 먹고 나한테 그랬잖아.

" 아 그건 제 친구가 저만 보면 도키도키 쿵쿵한다고 그래서. "

진짜 왜 그래 너.

" 아...? "

반응을 보니 영.. 모르는 눈치였다 .

지금 이런 거에 서운 할 때가 아니고 준비나 하자 김도영. 

그냥 미친듯이 연기에, 감정에 충실했다. 

이렇게라도 안 하면 최선도 못 할 거 같았다.

"아니.. 혹시 배우세요? 연기를 너무 잘하시는데. "

아, 아까 그 어렴풋이 들리던 이름이... 아, 민형이었나. 나에게 머뭇거리며 칭찬을 한다.

" 아니에요.. 다들 잘하시던데요? "

손사래를 쳤다. 

약간 민망해서 괜히 주위를 돌려보다 마지막 남은 자리, 

또 도연씨 옆이었다.





























* 띵-동.

앉기가 무섭게 다시 폰에서 알림이 울린다. 

* 썸마스터입니다. 댄스신고식을 마친 여러분 수고하셨습니다.
* 저녁식사를 위해 레스토랑으로 이동해주세요.
* 식사 중간 썸뮤직 타임이 있습니다. 그 점 유의해주세요.

제일 먼저 피팅룸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누구한테 썸뮤직을 보낼지 입술을 작게 말아올리며 고민을 했다.

마음 같아선 진짜 너인데.

보내면 괜히 마음만 더 커질까 또 심사숙고를 했다. 

아.. 도연씨한테 보낼까. 

이 두 명 사이에서 뭐가 그렇게 심각하다고 결정장애가 온 마냥 끙끙댔다.

진짜 나답지 않다. 

[저 썸뮤직 보낼게요.]

* 누구에게 보내시겠습니까?

덜컥 올라온 문자에 10분동안 썼다 지웠다에만 전전긍긍했다. 

결국 마지막으로 온전히 세 글자가 입력된 문자는,



















[강도연]

이 사람이었다.

* 가수와 노래 제목을 같이 적어서 전송해주셔야 합니다.

[도영, 세정 - 별빛이 피면]

* ♬ 도영, 세정 - 별빛이 피면 이 전송되었습니다. 
* 그럼 행운을 빌겠습니다.

뜻에 집중하기 보단 즐겨듣는 곡을 보냈다. 

마음에 충실했다라고 보기엔 아닌 선곡이었다.

예고도 없이 불시에 찾아온 누구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겨우 답답했던 마음을 쓸어내리며 피팅룸을 나오는데, 

" 도영 씨. "

이제 막 대기실로 왔는지 주위를 서성거리다 인기척에 고개를 돌려 마주친 도연 씨였다. 

" ...여긴, 어떻게. " 

당황한 듯 말을 꺼내자 입을 꾹 다물어 시선은 오롯이 나를 쳐다봤다. 

" 도연 씨? "

왜 말을 안 하지. 

" 아, 그게 아니고... 레스토랑 얼른 가요. "
" 그 말 하려고 온 거에요? 다른 분들은요. "
" 슬슬 나가시던데, 옷도 다들 갈아입으시고... "

손가락을 만지작 거리며 흔들리는 동공을 어찌 할 바 모르는게 보였다. 

피팅룸에서 거의 20분은 있었더니... 그럴 만 했다.

" 아, 내가 미안해요. 제일 늦었구나 가요. "

대기실에서 나와 썸스튜디오 밖으로 향하니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서 댄서들이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중 이었다. 

" 뛸까요? "

말 없이 그저 나란히 걷다 도연 씨가 물었다. 

" 편한대로 해요. " 

그냥 생각이 없었다. 

" 아... 많이 힘드셨나보네요. " 

약간은 딱딱한 말투에 목소리를 끌다 걱정하는 듯 말을 했다. 

네, 누구 때문에. 

" 그 정도는 아니에요. 저녁 먹으면 괜찮아지겠죠 뭐. "

정말로 괜찮아질까. 지금 당장은 없지만 이따가 널 또 볼 생각에 머리가 다시 지끈거려온다. 

" 괜찮으면 같이 앉아요. " 

관자놀이 쪽을 괜히 손으로 꾹꾹 누르고 있는데 먼저 제안을 해 온다.

맘 같아선 그냥 거절이었다. 

" 음.. 그래요. " 

네 얼굴 조금이라도 덜 보고 싶어서 그랬다. 

앞서 가던 댄서들의 걸음을 따라 10분 정도 가니 레스토랑에 도착을 하니 길게 뻗어진 식탁과 화려한 장식으로 꾸며져 있는 룸으로 들어갔다. 

근데 하필 내 옆에 네가 또 앉는다. 

어쩌면 잘 됐다고 해야하나. 

그냥 무턱대고 합리화를 하기 시작했다. 

" 다들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

그 오른쪽에 앉아있던 해찬 씨가 정적을 깨고 묻는다. 

" 지목하면서 할까요? "
" 음 그럴까요? 그럼 전 준희씨요."
" 얼마로 보이는데요.. ?"

네가 지목이 되었고 사람들이 맞추기 시작했다.
24살인 거 말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아 뭐지... 잘 모르겠다. "

이미 알고 있는 문제를 푸는 대화 속에 가만히 앞에 놓인 유리잔만 응시한 채 있었다. 

" 그럼 해찬씨! "

대화가 끝났는지 넌 해찬 씨를 지목했다. 

" 오.. 저 몇살 같은데요? " 

말하는 목소리도, 말투도 어려보였다. 

" 어려보이긴 하는데.. 22? "

문제가 너무 쉬웠을까 기다리기라도 한 듯 태용 씨가 입을 열었다. 

" 땡! "
" 알려드릴까요..? 아님 준희씨 맞춰 볼래요? "

아. 아니었구나. 
괜히 속으로 머쓱했다. 

" 맞춰볼래요! "

자신만만했던 넌,

" 21살..? "

" 정답! 잘 맞추신다. "

맞췄다. 

이러다 내 나이도 먼저 말하는 거 아냐? 
갑자기 불안했다. 





















" 전 도영씨요..! "

그 느낌은 틀리질 않았는지,
애써 지목 안 당하려 시선을 돌렸더니 아니나 다를까 지목이 되었다.

" 아 저요? "

내 쪽을 검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 네네. "

" 몇 살 일거 같아요? "

너를 제외한 사람들이 맞춰주길 바랬다. 

" 24살. "

질문이 끝나자마자 돌아오는 건 너의 대답이었다. 

그저 무미건조 할 뿐 이었다.

" 아, 정답. "
" 너무 쉽잖아요.. "

쉬우면 가만히 있지, 왜 나서서 그러는데. 

" 야... "

약간 어이가 없어서 너를 쳐다봤다. 

" 왜. 뭐."
" 아..아냐. "

대들기라도 하는 듯 차갑게 돌아오는 너의 목소리였다. 
네가 처음으로 무서웠다.
그냥 지목이나 하자 하고 생각 중 이었는데, 

" 잠깐.. 근데 둘이 무슨 사이에요? 아까부터 계속 궁금했는데. "

태용 씨가 궁금하다는 눈빛으로 물어온다.

한명이 3년동안 삽질만 하던 사이요.

라고 말하고 싶었다. 

" 말해도 돼요? "

넌 제작진 쪽 눈치를 슬쩍 본다. 

그냥 말하고 싶은 거 잖아 너. 

급히 팔짱을 꼈는데 눈이 마주친다. 눈썹 한 쪽은 또 왜 올리는데.

" 어차피 상관 없잖아. "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거의 반 포기 상태였다. 

" 아.. 별 거 아닌데 그냥 학교 동기에요 동기. "

내가 생각했던 거 보다 평범한 답변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하나.

" 헐 학교동기요....? "
" 아 그래서 둘이... 모르셨구나. "

학교 동기는 맞는데, 그런 일반적인 사이는 아니였다고 생각해요 전.

" 그럼 이제.. 도연씨 나이 알려주세요! "

공교롭게도 넌 도연씨를 지목한다. 

" 저요? 저는 어.. 놀라실텐데, "
" 왜요?" 
" 나이가..! 21살이에요. "
"헐 나랑 동갑이구나..! "

21살. 21살? 
나이를 알고 나니 아까 잠깐 나눴던 대화들이 스쳐 지나간다. 
아. 내가 너무 딱딱하게 굴었나. 

" 어제 태어났어요? "
" 아..? 그건 아닌데, 언니 덕질 좀 해보셨나봐요? "

그치. 쟤 덕질 좀, 했지.
잘생긴 사람만 보면 사족을 못 쓰는데. 

"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랏... 뜨끔... "
" 아 언닠ㅋㅋㅋㅋ ㅜㅜㅜㅜ "

이내 도연 씨는 웃어보이며 태용 씨를 지목했다. 

" 음.... 이제 태용씨 차례! "
" 아, 저요? "

놀란 모습도 잘생긴 사람이다. 
보면 볼수록 의문이 드는 얼굴이다. 

" 몇살이에요? "

제일 먼저 돌아오는 대답은 역시나 너였다.
나도 모르게 너한테 또 신경이 가 있었다. 

" 저 생각보다.. 있는데.. 음 "
" 헐 그래요..? 아닌 거 같은데. "

옆에 앉아있던 채연 씨가 반응을 했다. 

여기서 말 하는 건 처음이었다. 

" 저 25살이에요. "

형이었다. 

" 오빠안냐세요^.^ "

왜 저럴까. 진짜 주접에 죽고 못 사는 귀신이 붙었나. 
심지어 저 알 수 없는 이모티콘을 손으로 그린다. 

" 아..? 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모티콘 왜 손으로 그리는데요? "
" 아핫. 그냥... ㅎ "

다 해놓고 고개는 떨군다. 
이게 뭐하는 짓인데. 

" 아.. 잠시만요 이것만 먹고 말할게요. "

이상하다 싶은 너를 한참 보다가 지목을 당한건지 들리는 목소리에 시선을 돌렸다.

" 어어 천천히. "

그래놓고 다른 사람 챙겨주는 너였다. 
뭔데 진짜? 

어이가 없어 속으로 웃었다.

" 네? 아 고마워요. "
" 아 제 나이는 22살이에요.. 아마 저도 막내 라인 일 거 같네요 하하. "

이 사람도 어리구나. 동갑이거나 연상일 줄 알았는데, 풍기는 분위기와는 달랐다. 

" 다음은.... 예리씨..? "

" 애옹 "
" 네... ?"
" 아, 미안해요! 예리씨 나이 궁금하다. "

무턱대고 고양이 울음소리를 냅다 내버리는 너였다. 
나도 모르게 저절로 한 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애쓴다 진짜. 나한테만이라도 그랬으면 얼마나 좋아.

" 저도 나이 민형씨랑 똑같아요..! 22살이에요. "
" 네...? "

여기도 어리네..

이 정도면 내가 늙은 건가 싶었다. 

22살. 널 한창 좋아했던 나이였다.

"민형씨, 저랑도 말 놓을래요? "

잠깐 다른 생각에 빠진 사이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선뜻 네 목소리가 귀에 들려온다. 

"아 그럼요..! 준희씨만 괜찮다면? "

" 준희씨 말고 이제 누나라 불러요 "

대체 이런 멘트는 어디서 나오는 건데?

" 아. 누나, 준희누나. 되게 이상한데 이젠 익숙해지겠지? "

그냥 난리가 났다.

" 이제 채연씨 차례인데. "

마지막으로 혼자 묵묵히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채연씨를 봤는데 그냥 챙겨주고 싶었다.

" 아. 괜찮은데...! "

괜찮다며 손사래를 친다. 

그게 아니라 본인 차례 맞잖아요. 

" 뭔데뭔데 별 거 아닌 사이라며~~ "

너랑 나는 별 거 아닌 사이 맞지. 

속으로 한숨을 내뱉었다.

"아..? 그게 아니라. 사실 그냥 전 기다리다가 말하려고 했는데. 저는 26살이에요."
"에..? 전혀 그렇게 안보이시는데.... "

전혀 예상을 못한 나이였다. 
그 옆에선 놀란 태용 씨가 말 끝을 흐린다. 


























*띵-동.

이때 경쾌한 알림음이 폰에서 울린다. 

* 안녕하세요. 썸마스터입니다!

* 지금부터 썸뮤직 타임이 시작됩니다.
전화가 오는 즉시 받아 당신에게 온 썸뮤직을 확인해주세요.



























별로 기대는 안 했다. 

그냥 오는 사람만 오겠지. 

핸드폰을 식탁 위에 올려 놓고 물을 한 잔 마시는데 네가 전화를 받는다. 

썸뮤직이 벌써 오는구나. 

의문 섞인 표정을 하고 있는 너의 얼굴을 슬쩍 흘겨보는데,

" 노래, 느낌 어때요...? 

옆에 앉아있던 해찬 씨가 물었다. 

" 좋은데요...? "
" 오. 그렇구나. "

좋다는 너의 말에 묘한 그 눈빛을 봤다. 

분명 이건 해찬 씨가 보낸 게 맞는 거 같았다. 


























*띵-동.

그런 둘을 바라보다 폰 에서 진동이 울렸다. 

뭐지? 

확인해보니 전화가 왔다.

생각할 틈도 없이 수락 버튼을 오른쪽으로 밀어 받았다. 

[당신에게 온 썸뮤직입니다.]

어느새 두리번두리번
널 찾게 된 그 순간
난 우주를 가진 듯이 느껴져
두근두근 설레는 이 숨결
 
가만히 노래 가사에 집중하며 들었다. 
전화기를 내려놓고 나서도 곱씹어보고 또 곱씹었다.

" 노래... 좋아요? "

생각도 잠시 옆에서 도연 씨가 조심스럽게 물어온다. 

아. 도연 씨 인가? 

" 음.. 괜찮은 거 같아요. "

나쁘진 않았는데, 처음 듣는 느낌의 노래여서 그랬는지 살짝 낯설었다. 

그러다 고개를 돌려 물 한 잔을 들이키는 도연 씨였다. 

네 쪽으로 한번 시선을 흘겼는데 어느새 전화가 온 건지 또 핸드폰이 귀 옆에 붙어있다. 

분명 난 너한테 보내지도 않았는데, 

왜 그러는지 싶었다. 

너의 의아한 그 표정에 나도 의아한 시선으로 널 쳐다봤다. 

" 누나, 인기 장난 아니네. 노래 무슨 장르야? "
민형 씨가 물었다.

" 팝핀? "
" 응..? "

얘 또 헛, 소리 하네.

고개를 살짝 절레절레 하고 있는데 알림이 민형 씨 쪽에서 울린다.

" 아, 누나에요? "

무슨 추파를 날린건지 민형 씨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묻는다. 

" 궁금하면 500원! "

아... 개그 치러 나왔나 싶었다. 

" ㅋㅋㅋㅋㅋㅋ 누나. 자꾸 그러면 나 기대해? "
" 헤헤 "
" 누나 웃지마 나 정든다"

저 웃음에 나도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었었다. 

인정하긴 싫지만, 진짜로. 

" 노래가 제가 뭔가 예상을 못한 느낌의 분위기네요. "

저 대화를 혼자 엿 듣다 이내 썸뮤직을 받은 태용 씨가 대뜸 말을 했다. 

" 어떤 느낌인데요? "

... 너는 아니지?

" 음.. 뭔가 댄스..? "
" 그렇구나.. "

옆에 앉아있던 채연 씨의 반응이 영 좋아 보이진 않았다. 

" 하하핳 배부르다 "
" 벌써요? ㅋㅋㅋㅋㅋㅋㅋ "

원래 저렇게 푼수 같은 웃음을 짓는 애였나. 
알다가도 모르겠다 널. 

왼쪽에서 도연 씨의 핸드폰이 울린다. 

나름 신경이 쓰였다. 
그래도 내가 보낸건데. 

마음에 들었는지 고개를 까딱거리며 유심히 듣는다. 

노래가 끝났는지 폰을 내려놓길래 머뭇거리던 입술을 열었다.

" 도연 씨, 노래.... 댄스인가보네요? "

엄청 신나게 들을 노래는 아니였는데 유독 바운스를 타는 모습이 댄스 음악을 듣는 듯 해서 아닌 척 물어봤다. 

" 아.. 그정도는 아닌데 상쾌..? "

입술을 약하게 말아 올리다 상쾌하다며 살짝 웃어보이는 도연 씨였다.

" 설마 네오..? "

갑자기 무슨 말도 안 되는 빌런의 등장인가 싶었다. 

" 야..? "

너 진짜 왜 이러는데. 
대화를 좀 하려고 하면 옆에 와서 자꾸 쿡쿡 찌른다. 

그래도 나 너 좋아했던 사람이라고. 

" 누나, 이거 먹을래요? "

그러다 옆에 있던 해찬이 말을 걸어오는 바람에 다시 시선을 돌린 너였다. 

그렇다고 내심 바로 돌린다는게 기분이 참 이상한 일이었다. 

아랫입술을 괜히 살짝 물어 뜯으며 어느 한 곳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그냥 멍한 시선만 유지한 채 앉아있는데, 

" 언니, 어때요? "
" 음.. 좀 놀랐네...? "

채연 씨에게 썸뮤직이 왔던 건지 누가 묻나 싶었는데 또 너였다. 

이쯤되면 그냥 물음표 살인마가 아닐까... 이번엔 어떤 컨셉인데 또.

그러다 맞은편 쪽에 있던 태용 씨가 대답을 듣자마자 와인을 마신다. 

이 묘한 분위기가 은근히 나에게도 흘렀다. 

그 분위기를 은근히 깨고 들어오는 진동이 테이블을 타고 흐른다.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보니 해찬 씨 였다. 

" 오... 노래 좋다. "
" 아.. 설마? "

네 몸의 방향이 약간 해찬 쪽으로 기우는가 싶더니,

" 나일 거라 생각해? "

왠지 모르게 느껴지는 확신의 찬 네 물음에 괜히 뒷목을 쓸었다. 

뭐지 너? 여태 내가 봐왔던 그런 모습이 아니었다. 

사랑 앞에선 너도 달라지는구나. 

" 웃길래요, 노래 분위기가 비슷해서. "

심지어 웃었어? 가슴이 턱. 막혀왔다. 

어떻게 그래? 
















그 둘을 팔짱을 껴 제 3자가 된 듯 지켜봤다. 
손을 뻗어 네 머리카락에 붙어 있던 먼지까지 떼준다. 

오늘 처음 봤는데 이런다고? 

기가 찼다. 

더는 보기 힘들어 의자에 걸쳐두었던 외투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쌀쌀하다 못 해 엄청나게 추운 공기가 꽤나 두꺼운 니트 속으로 파고 들었다. 

레스토랑 앞 마당에 있던 작은 연못을 서서 바라보고 있는데, 

" 저기.. " 

여자의 실루엣이 투명한 연못에 비친다. 

" 네? "

다시금 고개를 돌려보니 채연 씨였다. 
그저 블규칙적으로 눈만 깜빡일 뿐 누구 하나 입을 쉽게 열지 않았다. 

" ... 아, 도영 씨. 아까는 고마웠어요. " 

손이 시려웠는지 코트 주머니에 양 손을 주섬주섬 넣고 몸을 살짝 돌려 말했다. 

" 아, 아니에요. 그냥 신경이 쓰여서. " 

뭐가 고맙다는거지? 아, 식사 자리에서... 

진짜 그저 호의일 뿐 이었다. 그냥 그저 그런. 

또 다시 멋쩍게 코트를 들지 않은 손으로 뒷목을 쓸었다. 

" 추운데 옷 잘 챙겨 입으세요.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

입꼬리를 살짝 올려보이며 걱정 어린 말을 남기고 자리를 뜬다.

오랜만에 듣는 따뜻한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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