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P.S 파트너
01
“한숨만 쉬지 말고. 뭔데?”
백현의 말에 또 다시 한숨만 포옥- 내쉬었다.
“형아-”
제 우는 소리에 백현이 피던 담배를 끄고는 저와 시선을 맞추어온다.
시간은 백현을 만나기 두 시간 전으로 거슬러 갔다. 그러니까 그리 나쁘지 않은 하루였다. 눈을 뜬 호텔에서 저의 몸은 깨끗이 씻겨져 있었고 여기저기가 조금 뻐근하기는 했지만 무리가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꽤나 매너가 좋은 원나잇 상대라고 생각했다. 침대에는 아직까지 제 냄새와 표범의 페로몬 냄새가 미약하게 섞여 있었다. 별탈없이 호텔을 나서 집으로 향했다. 집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준면이 부탁했던 책들을 챙겨 학교로 향했다. 연구동으로 가 책을 전해주고는 건물을 나섰다. 수업도 없어서 느긋하게 걸음을 옮겼다. 과제 때문에 빌려야 할 책들이 있어 도서관을 들려 책들을 다 빌려나올 때까지만 해도 아무 일이 없었다. 얼마 남지 않은 백현과의 약속 시간으로 조금 들뜬 걸음으로 도서관을 나서려는 찰나, 그 때가 문제였다.
오늘 아침까지 코에서 머물던 페로몬 향이었다. 제 앞에 서있는 길고 늘씬한 몸의 소유자는 낯익지는 않았지만 모르는 얼굴도 아니었다. 어제 새벽까지 저와 호텔 침대에서 뒹굴던 표범이었다. 그도 자신을 알아본 듯한 표정이었다. 당혹스러움에 손에 들고 있던 책들을 우수수 떨어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갔다.
여기까지 제 말을 들은 백현의 표정이 어쩐지 즐거워 보이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표정은 아까에 비하면 어두워졌다.
“누군지도 모르고?”
“그냥 표범인 것만 알아.”
“다른 건?”
“몰라. 망했어. 우리 학교 사람일 줄은 몰랐는데.”
테이블 위의 팔에 얼굴을 파묻었다. 한 번도 원나잇 상대와 그 후로 마주친 적이 없었는데. 이렇게 재수 없게 학교에서 마주치다니.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었다.
“그러 길래 그냥 형한테 오랬지?”
장난스런 백현의 목소리에 고개를 홱 치켜들었다.
“진짜 계속 그럴 거야?”
자신이 어떤 기분인지도 모르고 자꾸 장난만 치는 백현이 야속하기만 했다. 백현의 말대로 원나잇 말고 형한테 부탁할 거 그랬나 하고 잠깐 드는 생각에 곧 고개를 휘휘 저었다. 그랬다가 또 어떤 사단이 날지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그러니까 백현은 간단히 얘기하면 저의 첫사랑이었고 제 첫 상대이기도 했다. 그 때의 저는 한창 첫사랑에 애닳아 하고 있을 때였다. 그러던 차 백현이 자신의 혼현을 주체하지 못할 만큼 술에 취해 자신을 찾아왔더랬다. 그리고 저보다 강한 중종인 그를 거부하지 못하고 제 동정을 내어주고 말았다. 반류 사회에서 그만한 일은 사실 아무 것도 아니었다. 다시 말해 백현이 그 일로 자신을 책임질 필요는 없었고 자신도 그도 서로의 본능대로 한 일이었기에 그를 이해 할 수 있다. 오히려 그 하룻밤 후 백현의 약혼자에 미안해져 결국은 제 마음을 접은 걸 알고도 백현은 전 보다 더 저를 챙기고는 했다. 꼭 이렇게 제 주변 인간관계들에 대해 신경을 곤두세우고는 했다.
“뭔데.”
백현이 저렇게 전화를 받는 걸 보니 그인가 보다. 몇 마디 툭툭 내뱉던 백현이 전화를 끊고는 저를 향해 눈을 맞추어 온다.
“집까지 데려다 줄랬는데.”
“괜찮아. 형아나 잘해. 또 그 호랑이 형이랑 싸우지 말고. ”
제 형아 소리에 웃음이 번지는 백현의 얼굴은 열여덟 첫사랑에 빠졌던 그 얼굴만큼이나 근사했다. 그 얼굴을 보니 갑자기 그 표범이 생각났다. 백현의 페로몬만큼이나 달콤했던 그 향이 코끝을 간질이는 느낌이었다. 괜스레 기분이 나빠져 코끝을 문지르고 말았다.
+
경수를 버스 정류장까지 태워주고 급하게 향한 찬열의 본가에는 찬열의 차가 세워져 있었다. 괜히 짜증이 나 바퀴를 툭 하고는 발로 찼다. 집안으로 들어서자 가정부 아주머니가 자신을 반겼다. 대충 인사를 하고 걸음을 안쪽으로 옮기자 말소리가 들려왔다. 조금 더 들어가자 찬열의 동그란 뒤통수가 보였다. 저를 발견하고 화사하게 웃어 보이는 그의 어머니에 결국 표정을 풀고 작게 웃음을 띠며 들어갔다.
“백현이 왔니?”
“네, 안녕하셨어요?”
“나야, 뭐 늘 그렇지.”
그제서야 돌아보는 얼굴이 괜히 더 얄미워졌다. 곧 내어 온 차를 마시며 웃으며 적당히 대답을 했다. 여느 때처럼 그의 어머니는 자신에게 나긋나긋하고 상냥하게 대화를 걸어왔으며 박찬열은 그걸 지켜 볼 뿐이었다. 그에게 불려 간지 한참이 지난 밤중이 되어서야 그의 본가를 나설 수 있었다. 그런데 찬열이 제 차에 오르지 않고 저를 따라 제 차의 조수석에 올랐다. 어이가 없어 안전벨트를 메지도 않고 있자 손수 안전벨트까지 메준다.
“야.”
“뭐.”
“니 차 타고 가.”
“싫어. 오늘 너랑 같이 갈건데?”
아이 같은 답에 어이가 없어 헛웃음만 짓는데 코끝으로 달큰한 냄새가 풍겼다. 찬열이 제 능력을 사용하고 있었다. 차안이 온통 백호랑이의 페로몬으로 가득 찼다. 이를 악물었다.
“개새끼...너 이럴려고 나 불렀지.”
그에 웃어 보이는 얼굴에 멱살을 잡아끌었다. 그리고는 조금 급하게 찬열의 입술에 제 입술을 가져다 댔다. 섞여 드는 혀가 벌써 뜨거웠다. 이렇게 된 이상 찬열이 원하는 대로 끌려 갈 수만은 없었다. 여유만만하게 웃던 찬열의 얼굴이 굳기 시작했다. 차 안에 백호랑이와 은여우의 페로몬이 섞여 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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