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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살 여름, 그리고

 

 

 

 

그러니까 그 때는 대학생이 되고 맞는 첫 방학이었다. 스무 살이 주는 해방감에 난잡하게 노다닐 때였다. 그리고 방학 즈음 세 번째로 사귄 여자 친구와 헤어졌다. 딱히 슬프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깊은 사이도 감정도 아니었기에. 주변의 동기들과 선배들 중 간혹 그런 나를 비난하기도 했지만 그런데 신경 쓰는 성격도 아니었기에 무시하고는 했다. 그러던 차 꽤 친하게 지냈던 준면이 형이 군대를 간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형은 2학년이었고 다른 이들에 비해 한 학기 늦게 입대를 하는 것이기도 했다. 뒤늦게 형이 말해주는 술집으로 향했다. 무더운 날씨에 꽤나 불쾌한 공기였다. 괜히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안으로 들어서자 막 시작한 군주에 꽤나 떠들썩한 분위기였다. 적당히 얼굴을 아는 이들과 인사를 나누고 적당히 자리에 앉아 있었다.

 

 

 

꽤 시간이 흐르고 준면이 형은 평소보다 많이 마신 주량에 헤롱헤롱한 상태였다. 그에 주변에서 술을 깨워오라며 나에게 형을 떠넘겼다. 밖으로 나와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을 사서 물려 놓으니 조금 술이 깨는지 말이 한층 또렸해졌다.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형을 주시하고 있었다. 형은 동아리 얘기, 과 얘기를 하다가 누군가를 발견하고는 큰 소리로 불러 세웠다.

 

 

경수야!”

 

 

그 부름에 동글동글한 뒤통수가 고개를 돌렸다. 저보다 훨씬 작은 키에 체격이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던 얼굴이 가까이 다가오자 또렷이 보였다. 하얀 얼굴에 유난히 눈이 동그랗고 컸다. 형의 이름을 부르며 웃는 그 얼굴에 갑자기 속이 이상해졌다. 누가 간질이기라도 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에 아무 말도 못하고 옆에 서 있기만 했다.

 

 

와 줘서 고마워.”

형인데 당연히 와야죠.”

, 너네 서로 모르지? 여기는 도경수. 3반 맞지?”

.”

그리고 얘는 김종인. 8. 둘이 분반 달라서 한 번도 본 적 없겠다.”

그러게요. 안녕. 난 도경수.”

, .”

 

 

웃으며 말해 오는 그 얼굴에 멍청하게 말을 더듬고 말았다. 그리고 준면이 형이 입대해 버리고 그 날 이후로 그를 만날 수가 없었다. 같은 과이기는 하지만 분반도 아예 다르고 서로 아는 사람도 다르다 보니 그와는 마주칠 일도, 우연도 좀처럼 생기지가 않았다. 괜한 마음에 과 행사에 참석해 보기도 했으나 그는 학과 생활을 잘 하지 않는 듯 했다. 날이 갈수록 실망감만 늘어갔다. 그럴수록 해사했던 그 얼굴이 계속 떠올랐다. 하지만 어디 털어 놓을 곳도 없이 시간만 지나갔다.

 

 

 

그러던 차 겨울이 되어갔고 다른 동기들처럼 나도 입대를 앞두고 있었다. 그러던 차 준면이 형이 입대한 후 한 번도 나가지 않았던 동아리의 마지막 모임에 나가게 되었다. 꽤나 오랜만이라 여기저기 인사를 하는 얼굴들 사이에 그토록 찾던 얼굴이 있었다. 도경수. 그다. 그토록 바랐던 그인데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멀찍이서 그의 얼굴을 몰래 쳐다보기만 했다. 그는 지난여름보다 꽤나 살이 빠져 헬쓱해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때처럼 해사하게 웃어 보이지도 않았다. 그가 짓는 웃음이라고는 희미해서 웃는지 무표정인지도 알기 어려운 표정들뿐이었다. 계속 그를 주시하는데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 보였다. 주변을 보니 이미 다들 적당히 취기가 올라 내가 잠시 빠져나간다고 해도 모를 것 같았다. 그가 나간 문을 쳐다 보다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좀 떨어진 곳에서 담배를 피고 있었다. 지난번에는 담배를 피지 않았던 것 같은데 못 본 사이 그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까. 괜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가까이 가 아는 체라도 해보려고 그 쪽으로 걸음을 옮기는 찰나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 그는 액정을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전화를 받았다. 조금 거리를 두고 그의 말소리에 귀 기울였다.

 

 

.”

“......”

캐나다, 잘 도착했구나.”

“......”

그 얘기 그만하자. 나 이주 후에 군대 가.”

“......”

나 더 이상 신경 쓰지 말고 그 애랑 잘 지내. 끊을게.”

 

 

전화를 끊은 그는 다시 담배를 빼물었다. 타들어가는 담배를 보며 금방 눈치 챌 수 있었다. 그가 실연당했음을. 저렇게나 우울한 표정을 지을 만큼 좋아했을 거라는 생각해 따라 우울해졌다. 더군다나 그의 입대가 2주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더 실망스러웠다. 결국 그에게 다가서지 못하고 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얼마지 않아 동아리 사람을 통해 그가 입대했다는 것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나도 입대를 했다.

 

 

 

그렇게 다 끝이 나는 듯 했다. 시간이 흘러 마지막 휴가를 나와 준면이 형을 만났다. 술을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도중 형에게서 그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맞다. 너 경수 알지?”

도경수요?”

. 걔 다음 주 제대 거든. 다음 학기 복학한다던데 너도 그럴 거 아니야?”

별 일 없으면요.”

복학하면 친하게 지내. 우리 동아리에서 니네 학번 몇 안 되잖아.”

도경수, 우리 동아리에요?”

, 너 모르겠구나. 내 군주 때 꼬드겨서 2학기 때부터 꽤 꾸준히 나왔다던데.”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생각보다 그는 가까운 곳에 있었는데 그를 찾지 못했던 내 자신에 화가 슬몃 나기도 했다. 한참을 멍하게 있다 준면이 형에게 말을 꺼냈다.

 

 

.”

?”

저 복학하면 도경수랑 자리 한 번 꼭 만들어주세요.”

? 그래. 알겠어.”

 

 

2년 전 그 기분이 떠올랐다. 또 다시 간질간질 해지는 기분이었다.

 

 

 

 

-

 

 

 

 

제대 후 복학까지는 정신없이 시간이 흘러갔다. 그리고 학기가 시작 된지 얼마지 않아 준면이 형이 자리를 만들기 전에 기회가 생겼다. 준면이 형과 루한형, 세훈이가 함께 하던 술자리에 형이 부른 박찬열이 도경수를 데려왔기 때문이었다. 그는 2년 전과는 달리 어린 티를 많이 벗은 얼굴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 우울한 얼굴만은 아니었다. 단지 조금 나른하고 귀찮아하는 표정으로 바뀌었을 뿐이었다. 그는 나를 보고도 특별한 표정을 짓지는 않았다. 하지만 계속 바라보는 나를 느낀 건지 서서히 나를 의식하기 시작했다. 시종일관 저를 주시하는 나를 보며 도경수는 경계의 눈빛을 거두지 않았다. 술에 취한 도경수를 데려다 주는 길 그는 여전히 귀여웠다. 발개진 볼로 중얼거렸다. 대부분은 내가 저를 처다 보는 것이 마음에 안 든다는 말들이었다. 그 말들까지도 기분 좋았다. 그리고는 알고 있는 대로 내가 도경수에게 키스를 하고 연애를 하게 됐다.

 

 

 

아직까지도 가끔 생각한다. 20살 여름, 너를 만났던 건 행운이라고. 그 해 여름 나는 너에게 첫눈에 반했고 23살 봄, 다시 만난 너와 사랑에 빠졌다. 이 사소하고 작아 보이는 일들이 내게 얼마나 행운인지 다행인지 너는 아마 모를 테지만.

 

 

 

 

그를 기다리는 카페 밖에서 비가 한 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했다. 우산을 챙기지 않은 그가 걱정 되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뒤에서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비 온다. 종인아.”

쏟아지기 전에 왔네.”

기다리면서 뭐했어?”

너랑 처음 만났을 때 생각.”

복학하고?”

아니.”

그럼 언제?‘

비밀.”

뭐야-”

 

 

칭얼대는 그 얼굴이 사랑스러워 몸을 돌려 주위를 둘러보고는 그의 입술에 짧게 뽀뽀를 했다. 그에 볼이 붉어지며 그가 내 팔을 찰싹 소리 나게 때려온다.

 

 

 

니가 우리 첫 만남을 기억하지 못해도 좋다. 그 시간이 없어도 우리의 시간은 이렇게 행복하게 흘러가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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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세모네모입니다
아...역시 공대이야기 너무 좋아요ㅠㅠㅠㅠㅠㅠ경수한테 담배라니ㅠㅠㅠㅠ나의 ps파트너 기대할게요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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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2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좋아요ㅠㅠㅠㅠㅠㅠㅠ진짜ㅠㅠㅠㅠㅠ카디행쇼~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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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3
우와 취향저격이네요ㅠㅠㅠ너무 좋아요ㅠㅠㅠ카디 진짜ㅠㅠㅠ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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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4
으 ㅠㅠㅠ 카디행쇼 ㅠㅠ 이럴줄 알앗어 ㅠㅠ 니니야 ㅜㅜ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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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5
종인이가 전부터 좋아하고 있었군요! 뭔가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ㅠㅠ 어휴ㅠㅠㅠ 달달해라ㅜㅜㅠㅠ 이제 쭈욱 카디 행쇼하는걸로ㅠㅠㅠㅠㅠ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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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6
정독했습니다.....카디 행숍니다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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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7
잘보구가욪ㅎ
12년 전
비회원도 댓글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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