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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열/준면] 늦여름, 그 위에 서다 | 인스티즈

 

늦여름, 그 위에 서다
조각
찬열X준면
 
 
 
 
 
 
"준면이, 왔니?"
 
 
검은 상복을 입으신 아주머니께서 반겨주셨다. 아주머니는 지쳐 보이셨다. 말라붙은 눈물자국이 가득한 얼굴로 애써 웃으신
아주머니께서는 박찬열에 대해 말씀하셨다. 우리 찬열이가, 너를 그렇게 좋아했었는데…… 학교에서 돌아오면 늘 네 얘기뿐
이었단다. 뭘 해도 네가 제일 우선이었단다. 아주머니는 알고 계셨던 것 같다. 박찬열이 나를 좋아했다는 것을, 많이…… 사
랑했다는 것을. 모든 것이 새카만 장례식장 안에서 흰 것은 단 두 개뿐이었다. 국화 꽃과 너의 얼굴. 꿇어앉아 사진 속의 너와
눈을 맞추었다.
 
 
 
동성애자인 것이 자꾸 나의 다리를 꺾어요. 더 이상 버티고 싶지 않아요.
 
 
 
반듯한 필체로 작성된 박찬열의 유서에는 그렇게 써있었다. 어느 곳 하나 번진 것 없는 깔끔한 편지가 나의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라고 하는 것만 같아서 이를 악 물었다. 편지가 울었다. 편지 속 활자 쪼가리들이 눈물을 흘렸다. 그 눈물에 편지
가 젖다 못해 절여질 지경에 이르렀을 때 나는 내가 울고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너를 싫어해서 그랬던 것이 아니었는데.
너를 더럽다 생각해서 그런 것이 아니었는데. 나는 후회했다. 왜 내 말은 들어보지도 않고 그렇게 가버렸어? 왜 나는 말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어? 들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어? 나는 억울했다. 그리고 나는 오열했다. 무언가가 폐를 짓누르는 것
같았다.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쉴 새 없이 눈물이 나고 소리질렀다. 그 무언가를 입으로 토해낼 것 마냥 소리질렀다.
 
밖은 비가 오고 있었다. 차양 아래 서서 담배를 꺼내 들었다. 치익- 소리와 함께 담배의 끝부분이 빨간 불을 내며 타 들어갔
다. 울면서 몇 번이나 바닥을 내리친 손이 부었다. 아렸다. 다시 한 번 담배를 입에 가져다 대었다. 볼이 홀쭉해질 때가지 빨
았다가 후 하고 뱉으니 희끄무레한 담배연기가 흩어졌다. 폐가 짓눌리는 기분은 사라지지 않았다. 담배를 깊에 빨아들일수
록 폐는 더더욱 조여왔다.
 
 
"나쁜 새끼, 담배 하나도 못 피게 해."
 
 
마른 기침을 하며 쓰게 웃었다. 쇼윈도에 비추어본 얼굴이 아주머니와 닮아있었다. 눈물자국이 가득한 채로 웃는 얼굴이
지쳐 보였다. 기침이 멈추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폐를 짓누르는듯한 기분은 여전했다. 목을 부여잡았다. 담배는
이미 떨어뜨린지 오래였다. 주먹 쥔 손으로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가슴을 내리쳤다. 기침하는 목이 너무 아파서, 내리치는
 가슴이 너무 아파서 눈 앞이 어룽어룽했다.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세차게 내리는 빗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목이 메였다.
 코끝이 찡했다. 빗물이 들어간 눈이 뻑뻑했다. 눈을 몇 번 깜빡이자 앞에 박찬열이 서 있었다. 멱살이라고 잡고 크게 따지
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는 걸 알아서 그저 마주섰다. 그가 나를 보고 웃었다.
 
 
 
힘들지?
 
 
 
빗물과 눈물이 범벅 된 얼굴로 마주 웃었다. 우리는 축축하고 서늘한 바람이 불었던 타오르는 늦여름, 그 위에 서있었다.
 
 
 
 
 
 
 
 
"김준면!"
 
 
새 학기는 작년과 다를 바 없었다. 여전히 어수선했으며 여전히 시끄러웠다. 고삼의 정적인 분위기를 기대한 나로서는
참 아쉬운 일이었다. 새 학년이 시작된 지 3개월 정도 지난 지금, 서로 안면을 트로 새로운 친구를 만드는 것에 비해 나
는 오랫동안 알아온 민석이와 몇 마디 하는 것이 다였다.
 
 
"왜 이렇게 넋을 놔? 어제 야동보다 잤냐?"
 
 
민석이와의 대화에서 늘 주도권을 잡는 건 민석이었다. 오랜 시간 알아온 만큼 나의 내성적인 성격을 누구보다 잘아는
 그는 항상 아닌걸 알면서도 농담을 던지곤 했다. 나와는 반대로 활동적이었고 그런 그의 주변에는 내가 아니라도 늘
사람이 있었다. 깔끔한 외모에 당당한 태도는 그를 돋보이게 해주었고 그를 따르게 만들었다.
 
 
"아니야, 그런 거."
 
 
그리고 그런 사람이 같은 반에 한 명 더 있었다. 박찬열. 큰 키에 잘생긴 외모, 유한 성격은 주변에 사람을 들끓게 만들
었다. 사실 난 그를 잘 몰랐다. 초등학생일 때에도 중학생일 때에도 고등학교 1,2학년 때에도 나는 김민석만으로도 충
분했기 때문에 굳이 타인에게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나에게 박찬열이란 인기가 많은 반장,
 그것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신경 쓰였다. 지금도 내가 왜 박찬열을 보고 있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나는 아
이들에게 둘러싸인 그를 보고 있었다. 그는 숱한 남고생들과는 대조되게 훨씬 예쁘장한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그 예쁘
장한 얼굴 때문에 가끔 짖궃은 아이들이 그에게 성희롱적인 장난을 걸어도 그는 그저 웃어넘길 뿐이었다. 그런 박찬열
이 마음에 안 들었던 건지 신기했던 건지 잘 모르겠다. 그저 멍하니 그를 쳐다보다 그와 눈이 마주쳤다. 박찬열의 눈이
둥글게 접히고 입 꼬리가 올라가는 그 찰나의 순간이 굉장히 느리게 느껴졌다. 천천히 미소 짓는 그의 얼굴이 해사하게
다가왔다. 화들짝 놀라 시선을 거두었다.
 
 
"너, 왜 그래?"
 
 
민석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침을 꿀꺽 삼켰다. 눈 앞이 핑 도는 것 같았다. 얼굴이 화끈 거렸다.
 
 
"아무것도 아니야."
 
 
기분이, 이상했다.
 
 
 
 
 
 
 
 
학교 생활은 똑같았다. 남들보다 약간 이른 시간에 교실에 도착해 자리에 앉아 늘 보던 문제집을 펼쳐 풀고 그러다가
민석이가 오면 장난 받아주고 박찬열과의 접점은 없었다. 인기 많은 반장과 안 친한 급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
었다. 그 때의 눈맞춤은 없었던 것 마냥 우리는 그렇게 살아갔다. 그리고 이 일련의 사이클은 오늘 깨졌다.
 
 
"김준면."
"……어?"
 "담임 선생님이 부르셔. 교무실로 가봐."
 
 
자리에서 일어나 교실 밖으로 향했다. 생각보다 덤덤했다. 눈이 마주쳤을 때처럼 눈앞이 핑 돌지도, 얼굴이 화끈거리
지도 않았다. 그저 묘한 안정감만이 내 가슴께를 맴돌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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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글 [찬열/준면] 늦여름, 그 위에 서다  5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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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분위기 대박이에요ㅠㅠㅠㅠㅠㅠㅠ아련하네요ㅠㅠㅠㅠㅠ작가님 글 분위가 좋아요
죄송하지만 브금 뭔지 알려주실수 있으세요?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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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찾아봐라
Lasse Lindh 의 I Could Give You Love 입니다.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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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2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써주세요~~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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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3
잘보고 갑니다 찬열이 죽은거에요???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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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찾아봐라
네..찬열이 죽었어요ㅜㅜ
12년 전
비회원도 댓글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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