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백] Oh, boy! 02 | 인스티즈](http://file.instiz.net/data/cached_img/upload/f/5/a/f5a7a1f698be52980c64fe993d3f11f6.gif)
Oh, boy!
written by. 가쿠
지금까지의 함성 소리와는 차원이 달랐다. 짐승같은 소리를 내며 무대 앞으로 달려드는 저 불쌍한 중생들을 위해서 서비스라도 해줘야겠다 싶어 졸업하고 여자 꼬실때 쓰려던 내 필살기, 눈웃음을 장전했다. 치열한 몸싸움 끝에 무대 바로 앞을 차지해서는 연신 누나, 누나를 외쳐대는 누나 부대를 향해 눈꼬리가 다 접히도록 웃어주자 축제라고 제 딴에 멋이라도 부린건지 머리에 왁스칠을 잔뜩 한 어떤 새끼가 가슴에 화살을 맞은 시늉을 하고 있는게 보였다. 우스꽝스러운 그 표정에 웃음이 터져나왔다. 사회를 맡은 전교 회장이 음악 주세요, 라며 진부한 진행 멘트를 외쳤다. 곧이어 스피커를 통해 끈적한 리듬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엄정화의 ‘초대’. 방송부 센스 한 번 죽여주네, 씨발...
천천히 리듬을 타며 교복 치마를 살짝 올리자 넋이 나간 표정으로 나를 보고있던 현실적으로는 고자라 칭해도 무방할 많은 아이들이 강당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러댔다. 오른쪽 구석에서 무대 위로 올라오려는 듯 낑낑대고 있는 한 새끼랑 눈이 마주쳤다. 씨익 올라가는 입꼬리를 보니 온 몸에 소름이 돋아 얼른 허벅지 반까지 올라가있던 치마를 내렸다. 얼른 음악 꺼, 개새끼야. 전교 회장에게 눈빛으로 무언의 압박을 가하자 음, 음악 꺼주세요, 하고 깨갱거렸다. 아마 우리 학교 여장대회 역사상 가장 뜨거웠던 반응이 아니였나 싶다. 물론 내 바램이지만. 꽤 만족스러운 결과에 살짝 미소를 머금고 서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제 12회 여장대회 우승자는...”
당연히 변백현이지, 변백현. 전교 회장의 입에서 얼른 내 이름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솔직히 까고 말해서 저 새끼들은 그냥 가발 뒤집어 쓴 남자지, 저게 무슨 여장이야. 마음속으로는 내가 1등이라 확신하고 있긴 했지만 망할 전교 회장 새끼가 지가 슈퍼스타 게이의 민국이 아빠라도 된 것 마냥 60초 후에 공개하겠습니다, 라는 말도 안 되는 멘트를 남기고는 무대 뒤로 유유히 사라진 뒤로 5분째 돌아오질 않아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얼굴에 철판을 몇 겹을 깔고 지금 이 지랄을 떤건데 1등 못하면 옥상에서 떨어질거다, 씨발!!
“아, 죄송합니다. 갑자기 장에서 세상 밖을 구경 시켜달라는 신호가 와서...”
웃기지도 않은 농담에 배를 잡고 깔깔대는 놈들이 한심했다, 는 무슨!! 존나 웃기다!! 그니까 얼른 내 이름을 불러, 좋은 말할때 부르란 말이야.
“뭐 다들 예상한 결과가 아닐까 싶네요. 엄청나게 뜨거운 반응을 일으켰던...”
잠깐 내가 왜 이깟 여장대회 1등에 목숨을 걸고 있는거지? 다리를 훤히 드러내놓고 있는 내 모습에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잠시 심각한 패닉 상태에 빠져있던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해답을 찾아냈다. 아, 내가 1등 못하면 옥상 올라가서 떨어지기 전에 반 애들한테 맞아 죽을지도 모른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자연스레 우리반 아이들 쪽으로 시선이 돌아갔다. 다들 기대에 부푼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씨발, 그깟 피자가 뭐라고...
“2학년 5반의 변백현, 아니 변백희 양!”
“아, 역시... 이럴줄 알았어.”
“역시 1등일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나 보네요.”
“옆에 보세요. 나말고 1등 할 사람이 누가 있나.”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을 꺼내자 24개의 눈동자가 일제히 나에게로 쏠렸다. 잔뜩 살기가 어린 그 눈빛들에 나는 얼른 꼬리를 내리고 농담이라며 손을 내저었다. 그제서야 표정을 풀고 내게서 시선을 뗀 다른 참가자들이 각자 소감을 한 마디씩 하기 시작했다. 아니, 무슨 미스코리아도 아니고 뭔 소감이야. 전교 회장의 성격대로 쌍팔년도 미스코리아 대회를 보는 듯한 진행에 혀를 끌끌 찼다. 하여튼 누가 영감 김준면 아니랄까봐. 어느새 내 손에 들린 마이크에 대고 할 말 없는데... 하고 내빼는 나에게 얼른 하라며 팔을 꼬집어대는 김준면의 정강이를 세게 까주고 그냥 1등해서 좋다, 피자 파티 얼른 하고싶다, 라며 전자보단 확실이 후자 쪽에 마음이 기울어 있지만 겉으로는 세상을 다 가진 척 기뻐하며 소감 아닌 소감을 얘기하자 여기 저기서 박수를 쳐댔다. 저 병신 새끼들, 이게 무슨 대단한 거라도 되는 줄 아나봐...
“자,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축제를 시작해야 하는데... 잠시 쉬고 시작할까요? 허리가 좀 아파서, 하하...”
머쓱하게 웃으며 영감 티를 팍팍내는 김준면을 뒤로 한 채 무대에서 내려와 대충 대기실이라는 명목으로 마련해둔 창고로 들어갔다. 목덜미를 타고 땀이 비오듯이 흘러내렸다. 얼른 가발을 벗어던지고 싶었지만 왠지 아쉬운 마음에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카메라를 켰다. 하나, 둘, 셋. 찰칵. 옆에서 들리는 셔터음에 놀라 잽싸게 고개를 돌리니 제 휴대폰을 들고 내 사진을 찍고있는 도경수가 보였다. 상황 파악이 안 된 나는 휴대폰을 든 자세 그대로 도경수를 쳐다봤다.
“사진 잘 나왔네.”
“...미친.”
내 앞까지 걸어와 사진을 보여준 도경수는 뭐가 그렇게 웃긴건지 배까지 잡고 웃고 있었다. 도경수가 보여준 사진 속 내 모습은 가히 가관이었다. 뭔 자신감인지 볼때기에 손가락 하나를 콕 찍은 채로 볼이 터져라 입 안에 바람을 넣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반대쪽 손에 휴대폰을 들고, 잠시 정신이 나간건지 상큼하게 다리 한 쪽까지 들고있는 내 모습을 보자마자 욕이 절로 나왔다. 한참을 끅끅대며 웃던 도경수가 눈꼬리에 맺힌 눈물을 닦으며 내 손에 들린 제 휴대폰을 낚아챘다.
“이거 프사 해놔도 돼?”
“미쳤냐?!”
“내 여친이라고 자랑하게. 너 변백현 쌍둥이 동생 변백희 아니야?”
저 미친놈이 어디서 약 빨고 왔나. 거짓말인거 지도 뻔히 알면서 뭔 쌍둥이 동생 타령이야. 실실 웃으며 개소리를 내뱉는 도경수를 가볍게 무시해주고 가발을 벗어던졌다. 내 행동을 가만히 지켜보던 도경수가 나에게 휴지를 건넸다. 뭐 어쩌라는 표정으로 도경수를 쳐다보니 땀 닦으라고, 하며 또 실실 웃어댔다. 이마에 맺힌 땀을 깨끗이 닦아내고 옷을 갈아입기 위해 두리번거리며 교복을 찾는데 먼저 발견한 도경수가 잽싸게 내 교복을 주워들었다. 얼른 달라는 뜻으로 손을 내밀자 제 손을 턱하고 올려놓는 도경수를 쳐다봤다. 달라고. 손에 들린 교복을 뺏기 위해 손을 뻗는 나를 피해 도경수가 얼른 제 뒤로 교복을 감췄다.
“아, 빨리 내놔.”
“나 부탁이 하나 있는데.”
“부탁이고 뭐고 교복부터 내놔.”
“들어준다고 약속하면 줄게.”
들어줄거야? 하고 묻는 도경수를 향해 대충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서야 나에게 교복을 건네주었다. 옷을 갈아입기 위해 입고있던 치마와 터지기 일보 직전인 와이셔츠를 벗었다. 꼴깍. 뒤에서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니 귀가 살짝 빨개진 도경수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길게 뻗은 내 다리를. 저 새끼가 미쳤나, 지금!! 얼른 바지를 입고 와이셔츠를 걸쳤다. 단추가 잘 잠기지 않아 낑낑대는 나를 가만히 보고 있던 도경수가 내 쪽으로 걸어왔다. 작은 몸과는 어울리지 않는 큰 손으로 단추를 하나씩 잠궈주는 도경수는 인정하기 싫지만 같은 남자가 봐도 정말 잘 생겼다. 그래도 신은 공평하다. 저 깎아지른 절벽과 같은 정확한 이목구비를 자랑하는 얼굴을 준 대신 남자의 자존심이라는 키와 어깨를 가져갔으니.
“너 내 다리 보고 있었지, 변태 새끼야.”
“응. 보면 안 돼?”
“...어, 어? 아니, 뭐... 같은 남자끼리 볼 수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기분이 이상한게... 아, 씨발. 나 지금 뭐라는거야.”
내 말에 도경수는 크게 웃었다. 씨발, 쪽팔리게...
“내일부터 나랑 급식 같이 먹자.”
“친구 없냐?”
“있는데 필요 없어. 난 니가 더 좋거든.”
“날 더 좋아해줘서 고맙긴 한데 난 말도 몇 번 안 섞어본 너보단 내 친구들이 더 좋은데 어쩌지.”
“그래? 그럼 뭐 어쩔 수 없지.”
생각보다 도경수는 쉽게 물러났다. 그냥 좀 놀려주려고 그런건데... 남자가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베야지. 쭈그리고 앉아서 제 휴대폰 액정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웃고있는 도경수는 좀 무서웠다. 뭘 보길래 저렇게 범죄자 같이 무섭게 웃는거지. 괜히 궁금해졌다.
“이 사진 니 친구들한테 보여줘야지.”
...미친 새끼야, 안 돼!! 뭘 보고 그렇게 웃나 했더니 아까 몰래 찍은 내 사진 보고 그런거야?! 눈 앞에서 다시 봐도 가관인 내 사진이 보였다, 안 보였다를 반복했다. 약올리듯 씨익 웃으며 휴대폰을 흔들어대는 도경수의 손에서 휴대폰을 뺏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지만 그 작은 몸에서 어디서 힘이 나오는 건지 꽉 잡힌 팔이 점점 아파오기 시작했다. 내 인생에 포기란 없다. 나는 다시 휴대폰을 뺏기 위해 손을 뻗었지만 닿기도 전에 도경수에 의해 제지당했다. 이로써 두 팔 모두 도경수에게 결박 당하고 말았다. 나보다 키도 작은 새끼한테 내가... 아, 자존심 상해.
“사진 제목도 지었어.”
“그딴거 짓지 마, 병신아!!”
“백희의 은밀한 사생활. 어때, 죽이지.”
실실 웃어대는 도경수의 정강이를 있는 힘껏 발로 찼다. 윽, 하고 도경수가 제 정강이를 붙잡음과 동시에 빨갛게 자국이 남을 정도로 세게 잡혀있던 팔이 자유로워졌다. 쪼끄만게 힘만 세가지고, 씨발... 존나 아파. 정강이를 두 팔로 감싸고 한참동안 고개를 들지 못하는 도경수에게 엄살 부리지 말라고 욕을 했는데도 일어나지를 못했다. 내, 내가 그렇게 세게 찼나? 평소보다 힘이 좀 많이 들어가긴 한 거 같은데... 창고 안에는 정적이 흘렀다. 욕을 잔뜩 내뱉으며 고개를 든 도경수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그리고 도경수의 정강이엔 빨간 피가 흐르고 있었다.
“야, 도경수... 경수야. 괜찮냐? 어? 괜찮아?”
“씨발... 이게 괜찮아 보여?”
“어떡해, 어떡해. 진짜 미안. 아, 내가 힘 조절을 잘못 해서...”
“미안하면 나랑 급식 같이 먹자. 또 싫다고 해봐, 어디. 진단서 떼올거야.”
도경수는 아파서 죽을 것 같은 얼굴을 하고서도 잘만 웃었다. 그래, 그깟 밥 같이 먹는게 뭐가 대수라고... 나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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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텀은 아마 짧게는 이틀, 길게는 일주일 정도 걸릴 것 같아요.
답글 달아주시는 독자님들께 제 사랑을 듬뿍 듬뿍 담아 드리고 싶습니다. 진심이에요.
사이드로 누구를 넣을지 고민 중이에요. 사실 세준이 제일 강력함. 영감 준면이와 애기 세훈이. 좋쟈나 ㅠㅠ
이제 얼른 3편 쓰러 가야겠네요. 사랑하는 독자님들 굳밤 :p
짱짱이, 영영, 달달용이, 찬찬, 게이지업, 하늘, 솜블리사랑하는 저의 첫 암호닉 독자님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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