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아웃 |
김종인. 작게 터져나간 목소리에 난간에 기대어 서 있던 종인의 몸이 흠칫 떨렸다. 그리고 제자리에서 빙글 돌았다. 밑에 여러대의 담배 꽁초가 있었는데, 비벼지고 짓밟혀진 것으로 보아 종인이 다 핀 건 아닌 모양이었다. 김종인은 입에 물려있던 담배를 깊게 빨아들이며 나를 쳐다봤다. 몸이 떨릴만큼 공허한 눈동자. 나를 쳐다보다 하늘을 잠깐 쳐다보더니 담배가 끼여있는 손으로 내게 손가락짓했다. 가까이 오라는 소리였다. 나는 아무 말도 없이 종인의 옆으로 다가섰다. 김종인의 옆으로 다가서면 다가 설 수록 아카시아 향이 짙어졌다. 숨이 막힐만큼. 옆으로 다가서는 나를 힐끔 쳐다본 김종인이 물었다.
" 너 왜 자꾸 나 쳐다봐? "
당황스러웠다. 김종인의 입술에서 튀어나온 나른한 목소리가 아니라, 비아냥이 가득 담긴 목소리라서. 난간에 손을 짚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종인은 대답을 바라고 물었던 것은 아닌지 말 없이 담배를 다시 한 번 깊게 빨아들였다. 그리고, 나를 쳐다봤다. 나를 쳐다보는 그 순간 나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아침부터 계속 보였던 나른한 눈동자가 아니었다. 공허함이 가득담긴 눈동자도 아니었다. 눈동자에서 가득 느껴지는 즐거움은 보는 이로 하여금 거북하게 만들 정도였다. 뒤로 한 걸음 물러서는 나를 보는 눈빛에서 느껴지는 즐거움은 보통 사람이 느끼는 정도의 것이 아니었다. 이건 아니었다.
눈 앞이 캄캄해졌다. 현기증이 난다고 느낀 순간, 김종인의 입술과 내 입술이 맞부딪혔다.
' 김종인이 나를 쳐다본다. '
불쑥 든 생각에 나도 모르게 눈을 크게 떠올렸다. 그 생각 만으로도 다시 몸이 저렸다. 난간 앞에 구비되어있는 벤치로 주저앉듯 몸을 얹혔다. 자리에 앉는 날 쳐다보던 종인이 나를 따라 벤치 위로 몸을 얹혔다. 여름인데도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이 제법 열기를 식혀주고 있었다. 옆에서 느껴지는 빤한 시선에 종인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나를 쳐다보고 있는 김종인. 김종인과 나의 눈이 허공에서 부딪혔다고 느꼈을 무렵 다시 김종인의 입술이 내 입술에 부딪혀왔다.
게이에 대해서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내 주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테지만 아마 십대의 아이들이라면 모두들 한 번쯤 진지하게 생각해 본 것이 틀림 없었다. 게이. 모든 이들에게 혐오감을 주는 단어이지만 일반인들과 떨어질래야 떨어 질 수가 없는 단어이기도 하다. 아마 평범한 십대의 아이들이라면 바람처럼 오는, 동성에게 느껴지는 설레임을 모두들 한 번 쯤은 느껴봤을 법하니까. 나 역시 박찬열에게 그런 적이 있었고 변백현에게 그런 적이 있었지만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었다. 내 성격이 한 일에 대해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아서. 인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보통의 아이들은 대부분 인생의 전환점에 접어들기 시작하면서 성에대한 호기심이 동성에서 이성으로 바뀌기 때문에 간단하게 '호모는 더럽다.'라고 이야기 할 수 있었다.
나도 찬열이와 백현이와 함께 야동을 봤고, 보통 평범한 청소년들처럼 평범하고 단조로운 청소년기를 보냈기 때문에 내 성에 대해서는 한치의 의심도 없이 '난 이성을 좋아한다.'였는데, 그 성립을 깨뜨리는 것이 김종인이었다. 김종인이 갑자기 나타나 내 삶을 송두리째로 뒤흔들고 있었다. 두번의 키스를 한 그 날 이후 종인이와 나는 뭐라고 형용할 수가 없는 사이가 되었다. 김종인은 변백현과 박찬열이 있었을때와 마찬가지로 날 대했고 난 다소 어색한 감으로 김종인을 대했다. 가끔 둘이 혼자 남아있을 때면, 김종인은 아무 말 없이 나른한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곤 했다. 게이야? 하고 물으면 좋을 이야기를 난 극심한 두려움에 하지 못하고 있었다.
" 변백현 많이 아픈 모양인데. "
" 끝나고 여기서 기다려. 데려다 줄게. "
그렇게 한차례 소동이 끝나고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 6교시 사회문화 시간이 끝날 무렵 찬열이 남긴 문자 메세지를 확인했는데, 장염이라고 했다. 더운 여름날 이것저것 아무거나 쳐 주워먹더니. 하는 짧은 한숨섞인 추신까지 확인하고 나서 휴대폰을 덮었다. 사실 문자메세지고 뭐고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사회문화 시간이었는지도. 다만 김종인이 쓰다듬었던 감촉만 생생히 기억났다. 요새 들어 김종인과 내가 둘이 있는 시간이 부쩍 많아졌는데 우연의 일치인지 아닌지는 모르겠고 여튼 그랬다. 오죽했으면 백현이가 섭섭하다고 털어놨을 정도로. 사실 백현이와도 많이 떨어져 있는 편은 아니었는데 백현이가 느꼈을 때 우리의 사이가 많이 소원해진것으로 느껴진 모양이었다. 멍청한 박찬열은 아무런 반응도 없었지만.
바로 어제, 김종인과 내가 둘이 남아있었을 때, 참으로 오랜만에 이야기다운 이야기를 나눴다. 김종인이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주제로. 김종인이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문제는 김종인 자신이 게이라는 것에 있었다.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대답하고 싶지도 않았거니와 귀찮은 일엔 끼어들고 싶지도 않았다. 첫 날 느꼈던 공허함과 지루함과 달리 김종인은 몇주 새 많이도 변해 있었다. 알고보니까, 외국에서 전학을 왔는데 한국에 찾고 싶은 사람도 있었고 학교도 다니고 싶었다고 했다. 그렇게 말하는 김종인의 표정이 무척이나 순수해 보였지만 아직도 의구심이 드는건 김종인의 몸에서 배어나오는 위화감이 아직도 그대로 건재한다는 것이었다. 게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보통 일반인에게서는 나오기 힘든 말이었기 때문에 나는 꺼려지는 표정으로 김종인을 쳐다봤다.
연속적이게 나는 기계음도 가끔은 삐그덕거리는 소리를 내며 덜덜 떨곤 하는데 그것은 상당히 오래되어 쓸 수 없다는 소리였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낡은 손목시계가 그랬고 내가 가지고 있는 일상도 그랬다. 나는 어느 것 하나 새롭게 바뀌는 것을 원치 않았다. 매일 똑같은 일상은 내게 행복을 가져다 주었으니까. 하지만 그 끝이 결코 좋지 않음을 나는 알고 있었는데도 눈 앞의 행복을 좇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기계적인 일상을 택했을 뿐이었다. 두 수 앞을 내려다보고 하는 행동은 전혀 사람답지 않았다. 내가 생각한 사람다움은 그저 눈 앞의 행복을 잡기 위해 행복해하는것. 그것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사람의 일상이라고 하더라도 낡았으면 바뀌어야 한다. 그리고 그 일상에 천천히 익숙해 져야 하는데, 찬열이 때가 그랬고 지금이 그랬다. 그런데 난 그 사소한 변화가 싫었다. 너무나도. 찬열이 때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김종인이 나타난 지금, 나를 지탱하고 있던 세계의 축 어느 하나가 무너졌다. 그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더욱 두려운 걸지도 몰랐다.
수업시간이 끝나고 나서 종인이 문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한 손엔 초코우유를 든 채. 우유급식을 했는데 아직 안 먹은 모양이었다. 특별한 날이라도 되는 것처럼 가끔 우리학교는 그냥 우유 외에도 초코우유나 딸기우유같은 것이 나오곤 했다. 아직 교탁에 담임선생님이 있는지 힐끔 살피더니 담임 선생님이 누구야? 하고 소리지르자 작게 이크, 소리 내며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그것이 김종인임을 확인한 학생들은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저 혼자 멋쩍은듯 머리를 긁적이는 모습이 영락없이 당혹스러운 모양이었다. 작은 소동이 벌어지고 난 후에야 유쾌한 표정의 담임선생님의 종례를 마치고 교실 밖으로 나섰다. 가자. 작게 내뱉은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 침묵 끝에 말을 내뱉은 김종인이 눈을 굴렸다. 어제 한 얘기 덕분인지 조금 더 친해졌다고 믿는 모양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야자는 하고 싶을 때 하면 되는거고, 하기 싫으면 안 하면 되는거다. 선생님도 그 점에 대해서는 아무런 제재가 없었다. 혼자서 알아서 잘 할거라고 믿고 있는 것 같았다. 가끔 부담스러울 정도의 관심을 내뱉는 것만 빼면 괜찮았다. 적당한 기대는. 그리고 한참동안 다시 침묵. 이제는 김종인도 억지로 말을 걸 생각을 않았다.
아, 그러고보니까 휴대폰 번호를 몰랐다. 김종인의 말에 나는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내 대답에 한참동안 휴대폰을 들여다보더니 화면을 내게 비췄다. 도경수. 번호와 함께 저장되어있는 이름에 김종인을 쳐다봤다. 뿌듯한 표정의 김종인.
" 내일 보자! "
내 머리를 두어번 쓰다듬고 저 멀리로 돌아서는 김종인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몸을 흠칫 떨었다. 양 팔에, 소름이 돋아 있었다. |
독자1 우왕 감사합니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두번이나 일등해주시곸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흡 사랑합니다!!
링세 링세님 안녕하세요 휴ㅠㅠㅠㅠㅠㅠㅠㅠ 저번편에도 댓글달아주셨군요! 금손이라니 정말 당치도 않습니다!
도블 감사합니다!! 댓글 감사히 먹고 열심히 쓸게요!!!!!!!!!!!!!!!!!!
감동그자체,도경수 학.. 댓글 길게 남겨주셨네요 어찌 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흡 ㅠㅠ... 와 이것저것 느껴주신것도 많네요 제 글에서 그렇게 많이 느껴주시다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ㅠㅠ 이런 분위기 많이 지루해하지 ㅇ낳을까 싶었는데 감사합니다!
바니바니 헉! 네 봤어요 ㅎㅎ 댓글은 좀 늦게 확인했지만 감사합니다!!
김미자 억ㅋㅋㅋㅋㅋㅋㅋㅋ 저도 이런 분위기 좋아해요! 분위기 좋아하시는구나!!! 암호닉 감사합니다!!
덤블링 분위기가 좋긴요 쑥스럽게.. 헷 감사합니다!!!!!!
호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민망하ㅐ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정말 호모호모한기분이얌! 황금손은 아니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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