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여자 작사 그남자 작곡 07
w. 예하
식탁에 앉아 턱을 괴고 설거지하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다가
아무리 생각해도 어제 일은 씻어낼 수 없는 수치라고 생각했다.
"엄마."
"왜."
"진지하게 딸의 자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뭐? 얘가 술이 덜깼나! 대학이라도 졸업해야 죽이라도 쑤지!"
"그치? 자퇴는 아니지?"
"내 딸아 그걸 말이라고 하니."
"아휴..."
윤보미 내가 선배한테 술취해서 그런거 막 소문내는건 아니겠지?
그럼 진짜 그때부터 대학생활 완전 망하는데
선배 좋아하는 애들이 얼마나 많은데
"여보세요?"
"어 나야. 아까 전화 한다고 했었는데."
"네네 기억해요."
"아 그게 우리 곡에 리듬 맞춰서 핑거스냅이 들어가면 더 좋을거 같아서."
"네 좋아요."
선배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다.
괜히 호들갑 떨었나.
"너 핑거스냅 할 줄 알아?"
"어 할줄 알긴 한데..."
"나중에 대회 때는 올 라이브로 해야되니까 핑거스냅도 연습해야돼. 내일 연습할 시간 되지? 그럼 내일 그때 창섭인가 뭔가 하는 애랑 썼다던 거기서 보자."
"아..네. 선배 그런데요."
"왜."
"아 그게요..."
"뭐 어제 나한테 만나자 그러고 뽀뽀하자 그러고 오빠라 부른거 때문에 그래?"
"아 그렇게 직설적으로 얘기하면 어떡해요! 선배는 그냥 덤덤해요? 전 어색해 죽겠는데 지금."
"그냥 실수잖아. 진심도 아니고 그냥 실수니까 넘어갈 수 있는거 아닌가?"
"제가 술버릇이 좀 요란해서요... 아무한테나 막 앵기구요...선배 어제 저 데려다 주신다고 힘드셨죠...? 죄송해요.."
"나 괜찮다니까? 다 술먹고 한번쯤은 그런 실수 해. 근데 앞으로는 다른 사람들이랑 술 마시지마. 나 있을때만 마셔."
"네? 왜요?"
"몰라서 묻냐. 나 아니였으면 어제 너 인사불성인거 다 길에 두고 갔을껄? 나니까. 나니까 너 데려다준거야. 어제 거의 업다시피 해서 가는데 살 좀 빼야겠든데?"
"아 선배! 진짜."
"장난이야 장난. 너 가벼워 안무거웠어."
"거짓말하지마요! 선배는 꼭 잘나가다가 마지막에!"
"알았어 미안해 ㅋㅋ. 그럼 우리 그냥 내일 공연이나 보러갈래? 연습하지 말고. 요즘 연습 진도도 잘 안나가는데 바람이나 좀 쐐자."
"내일 공연 있어요?"
"응. 나도 처음보는 밴드야. 신인밴드인가봐. 갈래?"
"네! 전 좋죠."
정말 다행이다.
대회도 얼마 안남았는데 이대로 선배랑 멀어질까 무서웠는데.
마음이 놓였다.
"이름아!"
"선배 빨리와요! 엄청 기다렸네."
"어? 나 선배 아니고 오빤데?"
"씁! 그만하라니까요?"
"자 들어가자."
공연은 너무 좋았다.
공연장의 분위기도 조명도, 결정적으로 여자보컬의 목소리가 너무 달콤했다.
잔잔한 기타 소리와 부드러운 건반에
몇 명 되지 않는 관객들은 그 분위기를 마무리 짓고 있었다.
아무 생각도 하지않고 그 멜로디에 젖을 수 있는.
선배가 내 어깨를 감싸며 말했다.
"이름아. 너무 좋지."
"네... 어쩜 저렇게 목소리가 이쁠까요. 우리도 이렇게 잘 할수 있겠죠?"
"그럼. 당연하지."
분위기 때문인가, 반주에 섞여 들리는 선배의 목소리는 달콤했다.
우린 그 공연에서 많은 걸 얻었다.
곡은 우리만의 색깔을 띠며 점점 완성되었고, 선배는 나에게 조금 각별해졌다.
그리고 대회는 곧 내일로 다가왔다.
"선배 내일이에요. 너무 떨려요."
"괜찮아 잘할 수 있을거야."
"저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는거 처음이란 말이에요."
"나랑 나눠서 부르는거니까. 너무 부담 갖지 말고."
"동아리 사람들도 다 온댔잖아요! 실수하면 어떡해요?"
"실수 안할거야. 너무 떨리면 나 보면서 해. 오늘 일찍 자."
"네 선배... 선배도 일찍 자요."
"그래 내일 봐."
"자! 다음 팀은 Starry Human 입니다. 제목은 번짐 이라고 하네요.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객석에는 각 팀의 지인들로 바글바글했다.
참가팀 중에는 프로가수처럼 능숙한 사람들도 많았다.
너무 떨렸다. 이런 곳에서 노래를 한다는게.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원래 노래 보다는 작사를 위해 대회에 참가했지만
선배의 권유로 노래도 하게 되었다.
너무 떨려 선배를 쳐다보자 선배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선배의 기타 반주와 낮은 목소리로 노래가 시작 되었다.
비가 오는 축축한 아침에
발 끝에 물감을 풀어 색을 칠하네
한 걸음 뻗을 때마다 색은 번지고 또 번져
라랄라라라라
나의 색으로 번져가는 이 도시 위에
더 진하게 진하게 번져라 뛰어다녀
내 번짐은 끝이 없네
라랄라라라라
무거운 공기 위에 두발로 서서
언제 가라앉을지 몰라 급하게 발을 놀리네
지워지지 말아주오 번짐의 끝에서
기립박수가 터져 나왔다.
얼떨떨함에 고개를 푹 숙여 인사를 하고 무대에서 내려왔다.
"성이름! 거봐. 잘했잖아."
"선배 우리 잘한거에요?"
"몰라 근데 잘했나봐. 박수치잖아."
"와 어떡해요!"
"어떡하긴 뭘 어떡해! 좋은거지!"
방방 뛰며 객석으로 내려왔다.
곧 시상이 시작되었고 인기상, 장려상등이 발표되고 3등,2등 그리고 대상만 남겨두고 있었다.
"으아 선배 떨려요. 우리도 상 받을 수 있을까요?"
"그러게... 3위라도 했으면 좋겠다."
"맞아요. 제발 3위라도!"
"자 3등은 바로!"
"제발...제발...."
"3등은 위키드 팀입니다! 축하합니다!"
"선배 우리 상 못받을거같아요."
"상 못받으면 어때. 추억이 많이 생겼잖아."
"그러네요. 상 좀 못받으면 어때요!"
그 때
"2등은 Starry Human팀 입니다! 축하합니다!"
공연의 떨림이 아직 가시지도 않았는데 2등이라니.
얼떨떨한 기분으로 상을 받고 내려오니 동아리 사람들이 다들 회식 한 번 하자 그런다.
"야 너네 2등이나 했는데 한 턱 내야되는거 아니야?"
"그래! 한 턱 쏴!"
"선배 회식 한번 할까요?"
"그러자. 자 오늘은 내가 쏜다!"
고깃집에 모여서 다들 부어라 마셔라 정신이 없었다.
물론 나는 술은 한 모금도 못 마셨다.
선배가 옆에서 대신 다 마셔버리는 덕분에.
"선배 나도 한 잔만!"
"씁! 안돼."
"선배 있을때만 마시라면서요. 근데 왜 안돼요?"
"나 있어도 안돼. 너 술 마시지마."
"마시는건 전데 왜 선배 마음대로에요!"
"어허! 지금 선배한테 막 대들고 그러는거야?"
"아 그건 아닌데..."
"그냥 가만히 있어. 너 그 꼴 되는거 다른 사람들한테 어떻게 보여줘."
다들 제정신이 아닌 상태의 사람들을 택시에 태워 보냈다.
"넌 내가 데려다줄게."
"아 괜찮아요! 저 혼자 갈 수 있어요."
"너무 늦었어. 같이 가. 나도 어차피 그 쪽으로 가야돼."
집이 근처라 선배와 천천히 걸었다.
"오늘 2등한거 너무 꿈같아요."
"그치? 나도 그래. 처음인데 이정도면 꽤 선방 아니야?"
"완전 빅펀치죠! 선배 그동안 저랑 같이 곡 만든다고 수고하셨어요."
"너도 가사 쓴다고 수고했어. 의도치 않게 노래도 하고."
"색다르고 좋았어요! 우리 다음에도 기회되면 다시 합체해요!"
"그럼 좋지."
"이제 곡 작업 안하면 매일 심심하겠다. 맨날 연습한다고 바빴는데. 갑자기 한가해지면 이상할 거 같아요."
"나 못봐서 아쉽겠네?"
"뭐... 선배 못봐서 아쉬운건 아니구요. 그냥 매일 바빴는데 이젠 시간이 많이 남겠다 뭐 이런..."
"그럼 매일 보면 되지."
"네?"
"매일 보면 되잖아. 나 앞으로도 너 계속 보고싶어. 꾸준히, 정기적으로."
"어..이제 곡도 안만들고... 뭐하러 매일 봐요... 이유도 없이..."
"이유야 만들면 되지. 이름아, 나 너랑 만나고 싶다. 굳이 이유가 없어도 만날 수 있는, 그런 사이 하고싶어. 넌 어때?"
선배는 너무 갑작스럽게 나에게 가까워지려고했다.
난 거부하지 않았다.
나도 좋았으니까.
그렇게 우리는 아무 이유 없이 시도때도 없이 만날 수 있는 그런 사이가 되었다.
선배 아니 오빠와의 연애 사실이 학교에 퍼지면서
때로는 날카로운 눈총을 받기도 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갑자기 떠나지 않는 사람이 옆에 생겼다는게 날 든든하게 만들었다.
현식오빠는 잔잔하지만 지루하지 않은 사람이다.
우린 연애를 꽤 길게했다.
오빠는 대학을 졸업하고 실용음악 학원에서 보컬과 기타를 가르치며 가수의 꿈을 키웠고, 난 대학졸업반이 되었다.
길고 진한 연애에 가려 이창섭은 점점 나에게서 희미해져갔다.
다만 새로운 오디션 프로그램이 시작할때는 한 번씩 생각나기도 했다.
지금 뭐하고 있을까 궁금했다.
길고 긴 시간동안 경쟁 속에서 외로울 텐데.
하지만 그 긴 시간동안 이창섭 또한 나를 잊었을 거라 생각했다.
나보다 예쁜 사람들이 거기 많을 텐데.
이창섭도 또다른 정착을 했을 거라 생각했다.
서로 이렇게 서서히 잊어가는게 가장 자연스럽고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티비를 보며 과거의 나와 이창섭을 추억하게 될것이고
누구나 갖는 첫사랑의 기억을 나도 갖게 된거라고 생각했다.
작사가 성이름으로 이름을 알리기 위해
이 곳 저 곳에 내가 쓴 가사를 이력서와 함께 집어 넣는게 요즘 나의 일이다.
오늘도 다른 날과 다름없이
새벽에 가사를 끄적이고 있었다.
그 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낯익은 번호에 우선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
"여보세요? 누구세요?"
"...."
"여보세요? 누구시죠?"
"나야 이창섭."
아.
크게 부풀려 놓은 물풍선이 터져 물이 내 가슴을 다 적시는 것 같았다.
핸드폰을 바꾸면서 번호를 옮기지 않았다.
난 전화부에서 더이상 필요 없을거라고 생각한 이창섭의 번호를 지웠다.
그리고 이창섭에게서 전화가 걸려온 것이다.
약 5년 만에 듣는 목소리였다.
독특한 말투와 목소리는 그대로였다.
"오랜만이다."
애써 감정을 누르며 말하는 이창섭의 목소리엔
여러 감정들이 섞여있었다.
그리움, 반가움, 기쁨, 슬픔 모두
"잘 지냈어?"
"응.. 넌?"
"나도 잘 지냈어."
형식적인 대화가 오고갔다.
그가 나에게 전화를 건 이유가 궁금했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서 왜 전화를 했는지
그리고 왜 이런 새벽에 전화를 했는지
"왜... 전화 했어?"
"이름아. 나 데뷔해. 너한테 제일 먼저 알려주고 싶었어."
*
안녕하세요! 또 왔습니다! ㅋㅋ
여주랑 현식이가 부른 노래가 실제로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되네요 ㅎㅎ...
담편에 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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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