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친구가 철벽을 쳐요 w.채셔
번외 1. 아저씨는 유일해
"오빠, 나 이거, 이거 못하게써어…."
"아, 자꾸 귀찮게 하지 마."
윤기는 제 뒷꽁무니만 쫓아 졸졸 따라 다니는 꼬맹이의 이마를 툭 밀쳤다. 세게 밀치지도 않았는데 뒤로 나자빠진 꼬맹이가 이내 크게 울어왔다. 서럽게 울며 엄마를 찾는 게 또 불쌍하다는 생각에, 윤기는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꼬맹이를 일으켜주었다. 그제야 울음을 뚝 그치고 윤기를 올려다보는 눈에 아직도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다. 이제 막 초등학생이 된 윤기는 제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렇게 세게 민 것도 아닌데….
"오빠가 이거 해주면 되자나…."
윤기에게 작은 손으로 열심히 내민 것을 지켜보았다. 한글 공부책이었다. 받아쓰기 공책에 빨간 빗금만이 가득했다. 이 바보. 윤기의 심술궂은 말에 다시 꼬맹이가 코를 훌쩍대기 시작했다. 네가 알아서 해. 윤기는 한 번 한글 책을 쓰윽 훑어보고, 제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부러 차갑게 굴어봤지만, 자꾸 머릿속에 눈물이 가득한 그 표정이 끊임없이 재생되었다. 윤기는 침대에 누워 고개를 도리질쳤다. 그보다 92 빼기 9의 답이 뭔지 몰라서 미칠 지경인데. 한참을 골똘히 암산을 해보던 윤기는 결국 입술을 내밀었다. 수학은 나랑 안 맞아.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시계를 바라보았다. 이제 4시. 엄마가 오기엔 멀었다. 그러니까 꼬맹이가 울어도 안전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괜히 신경이 쓰여서 윤기는 문 앞에 섰다. 한참을 고민하다 문고리를 확 잡아 제꼈다.
"야, 알았어. 그만 울고 내가 도와줄…."
무심한 척 거실에 나온 윤기는 그대로 멎고 말았다.
"어, 윤기 오빠아!"
"……."
"석찌니 오빠가 공부 도와줘써!"
저 사람은 언제 왔지. 헤실헤실 웃으며 저를 부르는 꼬맹이의 표정에 윤기는 주먹을 꾹 쥐고 부들거렸다. 입술을 앙 다물며 윤기는 꼬맹이와 석진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석진이 옆에 앉아 꼬맹이의 한글 공부를 도와주고 있었다. 제가 생각했던 건 이게 절대 아니란 말이다. 울고 있는 꼬맹이의 눈물, 콧물을 닦아주고 한글 공부를 도와주어서, 엄마에게 칭찬을 받는 게 제 목표였는데. 씨이…. 윤기는 휙 제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그리고 MP3를 틀고 눈을 감아버렸다. 분에 못 이겨서 이불을 뻥뻥 차며 잠에 들기 위해 노력했다. 석진이 공부에 도움을 준다는 것만큼이나 거슬리는 것이 딱 두 가지 있었다. 그렇게 외간 남자에게 헤실거리면 위험하다고 했더니…. 하긴, 단순해서 초콜릿을 준다고 하면 모르는 아저씨라도 따라갈 애가 꼬맹이라고는 하지만. 게다가 꼬맹이에게 오빠는 저 밖에 없다고 믿었었다.
'석찌니 오빠가 공부 도와줘써!'
'석찌니 오빠가 공부….'
'석찌니 오빠….'
윤기의 머릿속에 석진이 오빠라는 말이 계속해서 맴돌았다. 윤기는 다시 한 번 죄 없는 이불을 빵빵 찼다. 제가 거의 일주일에 6일 정도나 꼬맹이를 보는데, 저번에 잠시 소풍을 가느라 못 맡아주었던 날에 아랫집에서 꼬맹이를 봐주었다고 했다. 그 주인공이 석진이었나 보다. 윤기는 제 이어폰을 거칠게 빼냈다. 분에 못 이긴 숨을 빠르게 쉬며 씩씩대던 윤기는 이를 으득 갈았다. 그것보다 더 화나는 사실이 있다면 석진은 저보다 나이가 많다는 사실이었다. 어떻게 해도 오빠가 될 수 밖에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결국 윤기는 자지도 못하고 뒤척대며 화를 참아내야 했다. 짜증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답답한데 거실로 나갈 수도 없고. 결국 엄마가 올 시간까지 윤기는 방 안에 틀어박혀 있어야 했다.
"민윤기!"
"……응."
"엄마가 여주 잘 봐주라고 했지."
"…응."
"한글 공부는 충분히 도와줄 수 있는 일인데 왜 석진이까지 올라오게 해?"
그건……. 윤기는 입술을 꼭 물었다. 결국 꼬맹이를 잘 돌봐주지 않았다고 벌까지 섰다. 아려오는 손을 들고 윤기는 생각했다. 어떻게 석진보다 위의 호칭을 얻을 수 있지. 곰곰히 눈을 또르륵 굴리며 고민하던 윤기는 무심코 가족 사진을 바라보았다. ……아! 윤기는 작은 탄성을 내지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아빠는 윤기에게 있어 난공불락의 사람이었다. 저 하늘 위에 있는 사람. 그래, 그거야.
'아저씨는 오빠보다 높은 사람이야?'
'응. 당연하지.'
'그럼 아저씨가 나 보고 아이스크림 먹어도 된다고 했으니까 먹을래.'
'야, 아이스크림 이 썩어.'
'아저씨가 아이스크림 먹으라고 돈까지 줘써!'
아저씨가 되어야겠다. 이제야 응어리져 있던 화가 풀리기 시작한다. 아니, 풀리다 못해 몽글몽글 희열이 피어올라 윤기는 입을 막고 웃었다. 크크거리며 웃는 걸 들켜 5분이나 더 벌을 서야 했지만 상관 없었다. 아까의 짜증에 비하면 이까짓 팔의 고통쯤이야 껌이었다. 5분을 더 벌 선 뒤에 윤기는 제 엄마를 따라 귀가한 꼬맹이의 집에 쪼르르 달려갔다. 엄마가 저녁을 먹으라고 소리 쳤지만 지금은 바빠서 어쩔 수 없었다. 초인종을 누르자 꼬맹이의 엄마가 나왔다. 어머, 윤기 왔네. 윤기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어주는 아줌마에게 인사를 꾸벅 하고 빠르게 꼬맹이를 찾았다. 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 동화책을 보고 있는 꼬맹이의 앞에 앉았다.
"오빠아!"
"야, 너 이제부터…."
"오빠아, 나 여기, 여기 다쳐쩌…."
윤기를 보자마자 꼬맹이는 아무렇지 않던 손을 내밀며 입술을 쭉 내밀었다. 윤기는 대충 조그맣게 상처가 난 손가락에 호오, 하고 따뜻한 입김을 불어주고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야, 아저씨라고 불러. 꼬맹이가 윤기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의문스럽게 윤기를 바라보며 으응? 하고 꼬맹이는 다시 고개를 기울였다. 말없이 재촉하는 눈을 보며 꼬맹이는 물었다.
"아저씨는 오빠의 아빤데, 그럼 아저씨가 아빠야아?"
"아니거든! 그냥 아저씨라고 부르라고 하면, 아저씨라고 불러."
"아저씨 이상하단 말이야…."
꼬맹이는 밍기적거리며 말 꼬리를 늘였다. 입을 오물거리며 불만을 표출하는 꼬맹이에 살짝 당황한 윤기는 머리를 긁적였다. 아니, 이 정도는 괜찮다. 꼬맹이는 단순하니까. 미끼를 주면 그대로 따라오는 애다.
"아저씨라고 부르면 뽀뽀해줄게."
"진짜아?"
윤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헤헤거리는 꼬맹이의 입술에 잠시 뽀뽀를 해주었다가 재빨리 입술을 떼어냈다. 꼬맹이의 볼록 튀어나온 말랑한 볼이 빨갛게 물든다. 이내 '아저씨 입술 조아.'하고 꺄르르 웃는 꼬맹이의 말에 윤기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덧붙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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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나 귀여운 것...!
내일이나 선물을 준비해볼까 룰루 이제 메일링이 쉬워져써요
왜냐하면 두 번이나 했기 때문이죠
그럼 젼 폭군 쓰러 총총 (도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