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금 3초정도 뒤에 나와요
공부를 해도 스트레스, 안 해도 스트레스라는 고3이 되었다. 담임도 무난하게 잘 걸린 것 같고 반 분위기도 대충 보니 무난한 것 같은데
"김탄소! 고3의 아침은 어때!"
그래 다 무난한데 얘 빼고. 김태형 빼고. 김태형이랑은 또 같은 반이 되었다. 이 정도면 악연이지 절대 우연은 아닐 테고 인연은 더더욱 아닌 거다. 인연이라면 제비뽑기로 자리를 정하는 첫날부터 짝이 되진 않았겠지. 담임선생님께선 모의고사에 시험기간에 번호대로 바꿔 앉을 날이 많을 테니까 자리는 오늘 뽑은 자리 1년 그대로 가자고 했다. 3년 내내 김태형과 같은 반인 것도 모자라서 1년 내도록 짝이라니. 원망을 가득 담아서 눈빛을 쏘았더니 뭐가 좋은지 눈동자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을 휘어가면서 웃었다.
하루하루가 어떻게 흐르는지도 모르는 듯 지냈다. 채 떠지지않는 눈을 겨우 떠가며 학교에 오자마자 책상에 쓰러졌다. 그대로 아침 자습시간 동안은 자려고했으나 방금 막 등교한건지 김태형은 엎드려있는 내 옆구리를 꾹꾹 찔러온다.
"왜 나 잘꺼야 건들지마"
고개도 들지도 않고 말하니까 이번엔 내 이름을 길게 늘여 부르면서 어깨를 흔들어 깨운다. 아무래도 김태형과는 안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할 때 쯤 내 귀에 대고 소리를 질러서 고개를 들고 김태형 등을 꽤 아프게 때렸다.
"아프잖아!"
"아프라고 때린거잖아"
김태형은 눈을 부릅떠 나를 째려봤고 질세라 나도 잠이 가득한 얼굴로 김태형을 뚫어져라 봤다. 이렇게 보니까 잘생기긴 잘생겼네. 평소에 너무 가까이 지내서 그런가 잊고 있었던 건 김태형은 나름 잘생겼다는 거다. 종종 사귀는 거 아니었냐는 오해도 받았고, 여자애들이 나에게 김태형 번호를 묻기도 했었다. 발렌타인데이나 빼빼로데이가 되면 익명의 여자들에게서 배달된 초콜릿과 빼빼로로 서랍이 가득 차곤 했던 김태형이다. 정작 본인은 관심이 없는지 받은 것들의 절반은 나에게 주었고 너 단거 좋아하니까 많이 먹고 살쪄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생각하니까 억울한 게 악연이 확실한 것 같다. 내가 살찐 건 김태형 때문이라고.
"기분나빠졌어 나 잘래"
"자기전에 백원만 나 매점갈껀데 백원이 모자라"
금세 찡그린 얼굴을 풀어 강아지같은 얼굴을 들이밀며 나에게 말했다. 꼭 불리할 때만 저런 표정을 짓곤하는데 그럼 항상 난 못이기는척 넘어가게된다. 치마 주머니에 굴러다니던 동전을 꺼내서 줬더니 받자마자 신나서 매점으로 총총총 걸어 가는게 영락없는 개새끼다. 귀여운 개새끼.
김태형은 그날 이후로도 이상하게 백원을 빌려 갔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백 원씩만. 가끔은 이때까지 빌린 거 꼭 갚을게라고 말하고 빌려 가는 날도 있었고, 나는 백원이 뭐라고 그냥 주머니에, 책상에, 지갑에 굴러다니던 동전을 꺼내 김태형 손에 쥐여줬다. 백 원씩 모아서 무언갈 하는가 싶기도 했지만 하루는 날 매점에 데려가더니 백원이 모자란다고 달라고 하길래 진짜 모자란 거구나 싶었다. 또 하루는 내가 백원이 없어서 돈 없다고 다른 거 사 먹으라고 하니 그건 싫단다. 다른 애한테 빌려라고 했더니 그것도 싫다고 한다. 나 참 내 백 원에 꿀이라도 발려있나.
내 손에서 사라지는 백원의 속도처럼 시간은 눈을 감았다 뜨면 흘러있었다. 등굣길에 무심코 본 학교 뒷산은 예쁘게 물이 들어 서로의 색을 자랑하고 있었고,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높고 파랳다. 초등학교는 운동회를 준비하는 듯 만국기를 달았고 이것저것 연습을 하느라 상기된 얼굴을 한 아이들이 운동장에 가득했다. 내가 고3이라니 말도 안 된다며 벚꽃이 흐르는 따뜻한 봄바람에 정신을 못 차린 게 엊그제 같았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바람이 선선하게 불고 잠자리가 발등을 간지럽히는 가을이 되었다.
"수시 합격하신 김탄소 소감은?"
우리는 고3이었다. 단풍에, 계절에 들뜨면 안되는 수능을 준비하는 대한민국의 고3. 나는 욕심없이 낮출만큼 낮춰서 원서를 썼고 결과는 다행이도 붙었다.
"수능이 한달남으신 정시파 김태형 소감은?"
그래도 우리는 열아홉이었다. 떨어지는 단풍잎에 괜히 마음이 간질간질해지는 열아홉. 얼마 남지 않은 수능을 준비하며 이런저런 작은 농담에도 꺄르르 넘어가도록 웃었다.
"글쎄, 대학 못가면 연예인이라도 할까?"
"연예인이 그렇게 쉬운 건 줄 아냐 "
"그런가 그래도 요즘 나오는 애들보단 내가 더 잘생긴 거 같지 않아?"
그렇게 말하며 해사하게 웃으며 자기 얼굴 좀 보라며 오늘은 피부도 좋다며 얼굴을 들이미는 김태형에 잠시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 같았다. 그냥 계절이 이래서 하늘이 파래서 그런 거겠지.
"어! 너 귀 빨개졌다. 오빠 잘생긴 게 좀 먹히나 보네"
오빠는 무슨 오빠. 귀가 좀 화끈거린다 했더니 빨개졌나 보다. 그냥 창밖에 떨어지는 단풍에 물든 거겠지 뭐.
가지에서 떨어지는 단풍이 많아질수록 김태형과 마주칠 때마다 귀에, 볼에 물드는 농도는 더 짙어져갔고 더 이상 물들지 말라며 바람이 더 차갑게 볼을 쓸어갈수록 마음에는 따뜻한 바람이 살랑거렸다. 어김없이 이런저런 농담을 하다가도 김태형은 백원을 빌려 가 매점을 갔고, 교실 칠판 한구석에는 날짜를 세어가며 교실 뒤의 벽걸이 은행 달력에는 매일 큰 X를 그려가며 우리의 디데이, 수능을 기다렸다.
수능한파라는 말이 올해도 당당하게 고개를 들었다. 집을 나서며 외투를 단단히 잠그고 떨리는 마음에 한 번 더 어젯밤에 김태형과 주고받았던 카톡을 확인했다.
-김탄소 수능 대박 물론 내가 더 대박날꺼임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긴장할 걸 알고 일부러 장난을 쳐주는 김태형에 설렜다. 항상 이런 식이다. 내가 울상이면 내 앞에서 이상한 표정을 지어 보이기도 하고 내가 화를 내면 책상이라도 부실 듯이 더 크게 화를 냈다. 기쁠 땐 같이 기뻐해 주고 슬플 땐 같이 울어주고, 항상 함께였다. 이제야 확신할 수 있을 것 같다. 내 마음에 불던 따뜻한 바람이 김태형을 좋아하는 것이었다고. 어쩌면 악연이 아니라 인연일지도 모른다고.
-끝나자마자 오빠한테 연락하기 안 하면 맴매파티
때가 되면 말할 수 있겠지. 그게 언제일진 나도 알 수 없지만 너는 친구인 줄로만 알았던 그 때 그 시절의 내가 너를 많이 좋아했었다고.
12년을 바라본 수능이 끝나고 김태형과 나는 나란히 카페알바를 했다. 수능을 막 다치고 만났던 그 날 약속했다. 알바해서 부산으로 놀러가자고, 펑펑 놀고 먹고 오자고. 겨울방학 내내 격요일로 알바를 했고 같은 타임 알바나 단골 손님에게 둘은 사귀는사이? 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웃었고 김태형도 그래보여요? 하면서 내 어깨에 손을 둘러 날 간지럽게 했다.
방학 내내 붙어있던 걸로 지치지 않았는지 개학을 하고도 김태형과 나는 붙어 다녔다. 기대를 한 적도 가끔 있다. 혹시나 내 마음이 일방통행이 아닌 쌍방향이 아닐까 하는 작은 기대. 하지만 다른 여자아이들에게도 곧 잘 웃어주며 친절하게 대한다는 걸 알기에 기대는 오래가지 못 했다. 졸업식도 어김없이 우린 붙어있었다. 교장선생님이 마지막으로 라는 말을 다섯 번째 할 때쯤 내 옆구리를 찌르며 끝나고 짜장면 어떠냐는 말을 걸어왔고 식이 끝난 후 교실에 와서도 끝나고 뭐 할까 하며 장난을 쳐왔다.
"김탄소 마치고 뭐할꺼야 너희 부모님 바쁘시지? 오빠가 놀아줄게 걱정마"
"분위기모르냐 분위기 너 때문에 눈물 쏙들어갔어"
"울면 못생겨지는데 다행이다"
"닥쳐"
3년의 긴 여정이 끝나고 졸업식을 마쳤다. 김태형은 잘가라는 선생님의 말씀이 끝나자마자 내손을 잡고 뛰어 학교를 빠져나왔고 잘 아는 짜장면 집이 있다며 나를 데려왔다. 졸업이고 뭐고 그저 손을 잡았다는 것에 설렜다. 바로 뛰어와서 그런지 가게는 아직 널널했고 주문한 음식도 빨리 나와서 우리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맛있게 먹었다. 그래 잘 먹고있었다. 언제부터인지도 모르게 나를 빤히 쳐다보는 김태형을 알아차리기 전까진 말이다.
"왜 뭐 너무 못생겼냐"
"아니"
다행이다. 날 못생겼다고 생각하진 않는구나. 아, 이게 아닌데.
"왜 자꾸 쳐다 봐"
"무슨 짜장면을 입도아니고 볼에 묻혀"
휴지를 들어 닦으려고 하는데 의자에서 살짝 일어나더니 손을 뻗어서 닦아줬다. 그 후였던 것 같다. 내가 정신을 못차리기 시작한게. 내가 김태형한테 빠져도 아주 단단히 빠졌구나 싶었던게. 정신없이 하루를 보냈고 내일 부산 가는거 안 까먹었지? 라는 말을 듣고 한참을 멍하게 있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집이었다.
아무리 친해도 그렇지 남녀가 외박이라니 절대 안 된다는 엄마의 말에 당일치기로 일정을 잡았다. 부산에 유명하다는 곳은 다 가보고 유명하다는 건 다 먹어보고 발이 닿는 대로 걸어도 보다가 길을 잃어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어 물어 해운대 바다로 왔다. 해는 점점 모습을 감추고 있었고 김태형과 나는 모래사장에 앉았다. 함께 보는 노을 진 겨울바다는 참 예뻤다.
"김태형 졸업 축하해"
생각해 보니 졸업 축하한다는 말도 못해준 것 같아서 해줬더니 고개를 돌려 눈을 맞추며 참 예쁘게도 웃는다.
"너도 졸업 축하해"
이번엔 노을인가. 내 볼이 불그스름하게 볼이 물들여지는게 느껴졌다. 김태형 옆에 있으면 세상의 모든 붉은색에 물들 수 있을 것만 같다.
"김태형"
왠지 오늘은, 노을에 물든 얼굴을 하면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쳐다보는 김태형을 보면서 오늘은 말을 꺼내도, 김태형이 받아주지 않는다 해도 모래사장에 묻어두고 다시 친구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린 앞으로도 친구일까?"
"글쎄"
또 봐, 이렇게 나를 기대하게 만든다. 의미심장한 말을하고 히 소리내어 웃어보이는 김태형에 나는 김태형의 얼굴도 노을에 물들었다는 착각이 들기도 했다.
"오늘은 그냥 들어줘"
김태형이 웃는걸 멈추고 나를 바라보는게 느껴졌지만 차마 김태형을 보지 못하고 말을 이었다. 뭐 쌍방향이 아니라면 아닌거고, 맞다면 맞는건데 지르고 봐야지.
"좋아해"
"......"
말이 없는 김태형 얼굴을 이제야 고개를 돌려 바라봤다.
"...좋아했어 옛날부터"
"나도"
응? 방금 뭐라고, 이젠 노을빛에 귀까지 멎었나보다.
"백원"
"응?"
"기억 나? 내가 빌려간 백원들. 그거 다 갚을때까지 너 내 옆에 있어야돼"
여기서 내가 무슨 대답을 해야 하는거지 이거 분명 고백같은데.
"아 진짜. 평생 안 갚을꺼라고, 내가 너 그만큼 좋아한다고"
어리둥절해하는 내 마음을 안건지 다시 한 번 말해주는 김태형에 웃음이 나왔다. 참 고백도 김태형 스럽네. 김태형은 천천히 내 손을 잡았고, 나를 보며 다시 웃어줬다. 이제껏 일방통행인 줄로만 알았는데, 우린 서로를 향해 달려오다가 이제야 부딪혔다. 겨울 바다는 따뜻했고, 노을은 더 빛났다. 다시 보니 김태형의 얼굴이 노을에 물든게 착각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불그스름한 노을안에서 우리는 스물이었다. 열아홉의 두 첫사랑이 만난 우리는 비로소 스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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