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에너지와 도토리 상편 박찬열x도경수 w.챔프 “도경수, 너 휴학 해?” “어. 올해는 대회가 좀 많아서 그러려고 생각 중…” “그럼 나도 할까?” “…….” 얌전하게 다리를 딱 붙이고 앉아 책을 한장 한장 넘기는 도경수의 모습에 턱을 괴고서 그쪽을 멀뚱멀뚱 바라봤다. 그리고 별 생각 없이 말을 툭툭 내뱉는데 갑자기 책을 탁 소리가 나게 덮더니 나를 돌아본다. 운동하는 놈이 안 어울리게 책은. 살랑살랑. 때마침 바람까지 불어서 가까이 있던 내 얼굴에 도경수의 머리카락이 닿아왔다. 아, 이 얼마나 좋은 캠퍼스냐. 나는 나른한 기분에 저절로 눈이 감겼다. “미친 놈.” 쩝, 나름 진담이였는데. 미친 놈 취급만 당했다. 이럴 줄 알았어. 우리 도토리 시크한건 알아줘야 해. 도경수는 나를 멀뚱히 바라보고 있다. 새까맣고 커다란 눈동자가 나를 한참이나 응시한다. 그 눈을 바라보고 있자 자동으로 고개부터 나간다. 촉. 입술이 가볍게 맞춰졌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 “넌 눈이 진짜 예뻐.” “…박찬열.” 응, 왜. 괜히 능글맞게 웃음을 지었다. -그래봤자 난 잘생겼겠지만- 하지만 도경수는 웃지 않았다. 입꼬리 하나 씰룩 하지 않은 도경수가 고개를 다시 책에 쳐박아 버린다. 나에게서 시선을 돌려버리는 도경수를 보며 할말을 잃고 입술을 물었다. “느끼해.” …하여튼. 분위기를 못 맞춰요, 아주 그냥. - 그러니까, 도경수를 알게 된 건 아마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때일 거다. 그 때 우리 학교에는 태권도 부가 있었는데, 도경수는 그 동아리에 가입이 되어 있었다. 나는 나 말고는 다른 애들에게 관심이 없는 편이여서 그저 가끔 여기저기 말을 붙이며 다닐 뿐이었는데, 쉬는 시간이 짧다며 흰 도복을 미리 입은 도경수가 그날따라 눈에 띄였다. “너 운동 해?” “어? 어.” 별로 남에게 벽을 쌓고 지내는 편은 아니여서 넉살 좋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하지만 도경수는 나와는 달랐다. 가뜩이나 쪼끄만 놈이 경계를 하면서 어깨를 움츠리는데, 그 모습에 결국 난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갑자기 큰 소리를 내며 웃자 놀란 도경수는 안 그래도 큰 눈을 더 크게 뜨며 더욱 더 경계를 하기 시작했다.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워낙 귀여운 걸 좋아했고, 이 쪼끄만 놈도 귀여우니까. 나는 최대한 친절하게 웃어보였다. “미안. 미안.” “…….” “귀여워서.” 같은 남자에게 귀여워서 웃었다 라니. 내가 말을 해 놓고도 아차 싶었다. 기분 나빠하는 건 아니겠지. 흘끔 도경수를 바라보자 커졌던 눈이 다시 원상 복귀가 되는 것이 보였다. 아, 다행이다. 연신 웃음을 지으며 도경수의 머리를 매만졌다. “다음 시간 음악인데.” “어. 그렇네.” “같이 가자.” “…어.” 나중에 도경수에게 말을 듣기로는 성격이 워낙 낯을 가려서 친구가 없었댄다. 그래서 고맙냐고 물었더니 그건 또 아니라고 하더라. 성격 정말 못됐다. 못됐고, 못났고, 또- “찬열아.” “어, 내 이름 아네?” “…어.” “응, 왜.” “나 진짜… 귀여워?” 그래, 도경수. 너 좀 귀엽다. - 도경수는 아마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나한테 관심이 있었나보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 관심 있어. 너 좋아하니까 나 좀 봐줘. 하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눈치가 없는 편이였다. 도경수의 마음을 알리가 없었다. 그 당시 나에게 도경수는 그냥 귀여운 친구 정도였다. 그리고 도경수도 그걸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욕심을 내지 않았다. 원래가 자신의 마음을 잘 말하지 않는 성격이지만서도. 처음 내가 도경수의 눈치를 챈 것은 소풍 때였다. 고등학교의 첫 소풍이여서 나나 도경수나 두근거림을 느끼며 발그레한 얼굴로 촌놈들 마냥 산골로 향했다. 말 그대로 서울 촌놈이였다. 그 날따라 날이 뜨거웠다. 한 여름의 소풍이여서 햇빛이 쨍쨍했다. 더위에 약한 건지 도경수는 헉헉거리며 땀을 닦아대고 있었다. 나도 땀이 많기는 하다만 그래도 도경수의 어깨를 움켜쥐고서 산을 오르고 있었다. “박찬열. 나 더워.” “나도.” “너 손 뜨거워.” “그래?” “더워.” “응.” “너 짜증나.” 괜히 툴툴거리던 도경수는 입술을 비죽이며 고개를 돌렸다. 하여튼. 삐졌냐? 누가 에이형 아니랄까봐. 옆구리를 툭툭 치며 괜히 또 짖궃은 말투를 쓰자 인상을 팍 찡그린 도경수는 꽥 소리를 지른다. 너도 에이형이잖아! 그리고는 씩씩거리며 걸음을 재촉해 내 앞으로 걸어간다. 아, 날씨 좋고, 도경수는 귀엽다. 괜히 신이 나서 주변을 둘러봤다. 기분이 상쾌하다. 마침 바람이 부는데 마음이 가벼워졌다. 기분이 좋다. “나보다 앞서 가지 않으셨나?” “…시끄러워.” 그리고 도경수는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옆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헉헉 숨을 몰아쉬며 땀은 어찌나 흘려대는지. 쪼끄만한 얼굴이 땀 범벅이 됐다. 괜히 아빠같은 마음에 땀을 슥슥 닦아내자, 고개를 푹 숙인다. 아, 귀여워. 괜히 또 아빠 미소가 나왔다. “어휴, 부자 지간 또 시작이네ㅡ.” “부러우면 니네 아빠한테 전화 해라.” “부자 지간 아니라니까.” 주변 애들은 거의 우리를 부자 지간이라고 불렀다. 박파파와 도애기랬던가. 나는 부정하지 않았다. 사실 도경수같은 애가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있긴 했다. 성격만 좀 더 귀여운. 하지만 도경수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아마 그 때도 날 좋아했기 때문일 거다. 괜히 뾰루퉁한 표정을 지으며 도경수는 먼저 성큼성큼 또 걸어갔다. …곧 다시 내 옆으로 자리 잡았지만. “아, 드디어 쉰다. 피곤해.” “뭐야. 기대지 마. 무거워” 올라와서 자유 시간이 주어졌다. 도경수는 냉큼 근처의 바위 위에 앉았고, 나는 그 옆에 앉아 좁은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아, 쪼꼬매 가지고 기대기도 힘드네. 눈을 살짝 감았다. 조금 땀이 난 나에비해서 도경수는 아직도 숨을 거칠게 고르고 있었다. “그렇게 힘드냐?” “넌 어떻게 그렇게 에너지가 넘쳐?” “나야 뭐, 언제나 에너지 넘치지.” “열에너지네. 열에너지.” 오, 그거 좋다. 열에너지. 괜히 별것도 아닌 말에 큰 소리로 웃음을 지었다. 아주 쓰러질 기세로 웃어대자 도경수는 불편한 듯 몸을 꼼지락거렸다. 색색 도경수의 숨소리가 크게도 들려온다. 주변에 있던 애들은 다들 어디를 간 건지 조용하다. “도토리다.” 데굴데굴 바닥에 도토리가 굴러왔다. 아까 어떤 놈이 다람쥐라도 만나면 줘야겠다고 도토리를 가져온 것이 생각났다. 멍하니 그 조그마한 도토리를 내려다 보다가 손을 뻗어 그것을 주웠다. 도경수는 멀뚱멀뚱 나를 바라보고 있다. 야, 너 뭐해. 손을 뻗어 도경수의 얼굴 옆에 도토리를 가져다 댔다. “너.” “어?” “도토리 닮았다.” 푸흡. 도경수가 황당하다는 듯이 웃었다. “내가 별명 지어줬다고 너도 지어주는 거냐?” “아니거든?!” 사실 어느 정도는 정답이었다. 녀석이 내게 지어준 별명은 실로 마음에 들었다. 열에너지. 누가 봐도 나와 딱 맞는 별명이니까. 그래서 나도 지어주고 싶었다. 딱 맞는 별명. 그래서 생각해낸게 도토리다. 물론 즉흥적인 거였지만. “아, 저리 가. 불편해. 꺼져.” “거짓말.” “…….” 쪼꼬만게 너랑 닮았잖아. 하고 장난을 치던 나에게 토라진 건지 도경수가 짜증을 냈다. 그리고 그 짜증에대한 대답도 장난이였다. 그런데 도경수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친구들 사이에는 장난으로 너 나 좋아하잖아? 쯤은 말 할수 있다고 생각했다. 도경수는 입술을 꽉 깨물고 있었다. 어색한 침묵이 꽤 오래 흘렀다. 어, 뭐야. 어색한 그 느낌에 나 또한 입을 잠시 다물었다. “…도경수.” “…….” “왜 조용해.” “…….” “도경수.” 도경수는 대답이 없다. 덩달아 나도 말이 없었다. 살랑살랑 기분 좋게 바람이 불어왔지만 나는 마냥 녀석의 말 처럼 에너지를 뽐낼 수 없었다. 솔직히 난 녀석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저 귀여워 할 뿐이었다. 그런데 도경수는 입술을 앙 물고 귀를 새빨갛게 붉히고 있었다. 그 발그레한 귀 끝을 보며 숨이 턱 막혔다. “경수야.” “…….” 쪽. 순식간이였다. 도경수가 내 볼에 입술을 맞춰버렸다. 너무 갑작스러웠고, 또 예상도 하지 못 했던 일이여서 나는 또 다시 숨이 막혔다. 야, 너 뭐하는거야! 하고 소리를 지를 수도 없었다. 도경수의 얼굴이 처음 보는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하얀 얼굴에 수줍음이 얼룩져 있다. 좋아하지 않았다. 연애 상대로는 생각조차 안 해봤다. 그럴 가능성은 조금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도경수는 그게 아니였나보다. “경수야.” “…응.” 드디어 소리를 낸다. 수줍음이 얼룩져 있는 그 얼굴에 나는 결국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래, 연애 상대로는 생각 하지 않았어도 역시 도경수는 귀엽다. 아, 귀여워. 아빠 미소를 지으며 도경수의 뒤통수를 턱 잡았다. 부드러운 머리칼이 손에 잡혀왔다. 쪽. 답을 하듯이 입을 맞췄다. 이마에 맞춰진 입술에 도경수의 얼굴은 더 붉어져 버린다. 차, 찬열아. 허스키하고 낮은 평소의 목소리와는 달리 약간 높아진 수줍은 목소리가 문득 도경수가 더 귀여워 보이게 했다. “좋지.” 나도 모르게 능글거리는 말이 툭 튀어나왔다. 도경수는 더이상 붉어질 수 없을 정도로 시뻘개진 얼굴을 하더니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아, 순진하다. 내가 너를 올해 처음 만났지만, 분명 너는 내가 첫사랑일거다. “나도.” “어?” “나도 좋아. 도경수.” 도경수의 눈알이 도르륵 몇 번이나 둥글게 굴러갔다. 그리고 곧 꾸욱 눈을 감아 버린다. 뭘 기대하는지 눈치를 챘다. 이번엔 눈치 없는 나도 알 정도였다. 허리를 조금 더 숙여 입술을 맞췄다. 맞물리는 입술이 말랑했다. “하…, 우리 도토리 주울래?” 가쁜 숨을 몰아쉬던 도경수가 말을 꺼냈다. 그 뜬금없는 말에 웃음이 나왔다. 엉뚱하기는. 푸흐. 내가 비웃듯이 소리를 내자 또 삐진 건지 뚱한 얼굴로 날 흘끔 노려본다. “알았어. 줍자, 주워.” “아, 이거 놔. 싫음 됐어.” “또 거짓말.” 도경수가 입을 다문다. 쓸데 없는 거짓말은 안 통한다는 걸 안 모양이다. 씩 웃음을 지으며 손을 먼저 잡았다. 도경수의 어깨가 크게 움찔하며 또 귓가가 벌개진다. 아, 진짜 귀엽다. 내가 아까 말했던가, 오늘 날씨는 좋고, 도경수는 오늘도 귀엽다. - 이번 편은 찬디입니다! 많이 기다리셨죠 사실 기다리신분은 없을 것 같지만 시험 끝나면 찬디 하편 들고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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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거 = 걍 신혼임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