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친구가 철벽을 쳐요 w. 채셔
6. 마음의 거울을 확인할 때
"지랄한다."
이제는 사내 커플 커밍 아웃에 자신감이 생긴 건지 이마에 뽀뽀를 하고 있던 지민과 술떡에게 말했다. 안 그래도 심란해 죽겠는데 저것들은 아침부터 지랄이야. 그 날, 부러 상처를 주고 나온 날. 그 날 이후로 꼬맹이가 더 강력해졌다. 왠지 모르게 그 날은 축 쳐져 있길래, 그 모양새가 또 미안해서 퍽 다정하게 굴어주었는데. 다음 날부터 더 심각해진 거다, 상황이. 다정해지든, 차갑게 굴든 똑같이……. 그러니까 예를 들면.
'아저씨, 술 먹어. 나랑.'
'너 술 작작 마셔. 외국 갔다 왔다고 째냐?'
'누가 그 술 먹는대?'
'그럼 무슨 술을 마신다고 난리야.'
'내 입술.'
이따위 장난이나 치고 있다는 거다. 한두 번이면 귀엽기라도 하지. 시종일관 전투 태세다. 거기에 더 자존심 상하는 건, 내가 이따위 장난에 말려든다는 거. 나, 참. 하고 웃는 얼굴에 그대로 닿아오는 입술을 피하지 못하고 받아주고. 게다가 꼬맹이가 하는 말 장난에 쿵짝이 맞게끔 유도를 해주고 있다는 거다. 이건 절대 의도한 게 아니니까 더 성질이 난다. 언제 내가 꼬맹이 장난감 신세로 전락해버렸냐는 거다. 하아…, 하고 한숨을 내쉬고 술떡이 내미는 비타민을 받아들었다. 아무 생각 없이 확 입 안으로 넣었더니 신맛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아, 그리고 저번엔 그랬다.
'아저씨, 아저씨가 만든 노래 얼마만큼 좋아해?'
'많이.'
'그럼 아저씨, 지미니 오빠는 얼마만큼 좋아해?'
'많이.'
그러니까 자꾸 좋아하는 것만 나열해놓고 얼마만큼 좋아하는지 물어보는 거다. 귀찮아서 질문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많이, 많이만 외쳤다. 왜 자꾸 물어보는데, 하고 물어봐도 계속 질문만 하는 것이 아무래도 심상찮았는데. 아, 나 또 당하는 거 아냐? 하고 경계 태세를 갖추어봐도 밀려드는 질문 공세와 귀차니즘에 계속 머엉-해졌었다. 역시 꼬맹이는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남자로 태어났으면 장군감이었을 거야, 우리 꼬맹이는. 아, 근데 박지민이랑 나랑 얼마 나이 차이 나지도 않는데 왜 박지민은 오빠고 나는 아저씨야? 억울하게. 하고 세모눈을 하고 꼬맹이를 쳐다보았다가 그대로 눈을 거뒀었다. 내가 하라고 시켰었지. 이 나이가 되니까 나도 오빠가 좋긴 좋은가보다.
"그럼 나 얼만큼 좋아해?"
"많이."
"알았어, 나 많이 좋아하는구나."
이, 나. 이렇게 또 당한 거다, 이 몹쓸 꼬맹이.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났다. 나, 참…. 이젠 그냥 꼬맹이가 아니다. 몹쓸 꼬맹이다. 아, 그리고 저저번에는 밥 먹다 부담스럽게 쳐다보기에 뭘 봐, 하고 짧게 말했더니. 꼬맹이는 전혀 자존심에 어택을 당하지 않은 모양인지 그대로 내게 물어왔다.
'아저씨, 내가 아저씨 이상형 맞춰볼까?'
'……뭐.'
'되게 귀여운데, 드라마 좋아하고, 아저씨만 좋아하고, 아저씨가 맨날 애기 입맛이라고 놀리고….'
'그거 너잖아.'
'응, 난데.'
나, 참. 이딴 말 장난을 하고 있다는 거다. 듣기만 해도 기가 빨리는 기분이다. 꼬맹이를 봐주는 일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극한 직업임에 틀림없다. 통통 튀는 꼬맹이의 공격에는 당해낼 재간이 없거든. 어찌 됐든 요즘 이런 멍청한 말놀이에 기가 모조리 탈출했다. 야밤에 2세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던 형보다 지금 내 꼴이 더 우스운 것 같다. 하아, 하고 목을 이리저리 돌리자 술떡이 영혼 없이 내게 물어왔다.
"선배, 왜 집에서 안 자고…."
"아, 몰라. 꼬맹이 때문에 미치겠어."
"헐, 그 꼬맹이? 내가 아는 꼬맹이?"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열라 시네. 그래, 대학 때도 따라다녔었지. 나를 따라 우리 학교에 입학을 해서 그런지 과가 달라도 마주칠 일이 많았다. 그래서 우리 과 후배들은 거의 다 꼬맹이들을 알았었다. 선배들도. 그 중에 꼬맹이를 소개해달라고 했던 선배도 있었던 것 같은데. 아니, 언제부터 꼬맹이 생각을 이렇게 많이 했지. 하아,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나는 천천히 뒤돌아서서 작업실로 향했다. 잠이 필요하다, 잠이. 나는 작업실로 들어섰다. 잠을 자야 해. 얼른 이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얼른, 제발. 가능하다면 빨리………. 소파에 누웠는데 꼬맹이 호출이다. 받으려고 하는데, 뭔가 망설여져서 그냥 뒀다.
꼬맹:
[아저씨 나 아파...] AM 08:57
[진짜야] AM 08:57
[제발 와주면 안돼....?] AM 08:58
곧이어 카톡- 하고 울리는 알림음에 무심코 휴대폰을 쳐다보았다가 금세 일어났다. 그리고 미련없이 작업실에서 집으로 향했다. 그건 정말 무의식의 행동이었다. 아빠가 아기가 아플 때 생각 없이 병원으로 뛰어가는 것처럼. 그러니까… 아무런 사심이 없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래야 한다. 사실 내가 무슨 마음인지도 모르겠다. 그냥 꼬맹이의 카톡을 확인하자마자 몸이 먼저 움직였다. 눈에 보이는 택시를 잡아 타 집에 도착했을 때 꼬맹이는 소파에 힘없이 누워 있었다. 하아, 하아, 하고 힘겹게 내뱉는 꼬맹이의 숨에 열이 섞여 있다. 꼬맹아, 하고 부르자 꼬맹이는 눈물이 가득 담긴 눈을 하고 나를 올려다본다.
"아저씨이…."
병원 가자. 망설임 없이 꼬맹이를 일으켰다. 어디가 아파, 하고 꼬맹이에게 다급하게 묻자 꼬맹이는 제 가슴을 가리켰다. 그리고 쓰러지듯 내 품에 기대는 꼬맹이를 아슬아슬하게 붙잡아 안았다. 내게 온전히 제 무게를 실었는데, 오늘은 가벼워도 영 가볍다. 가쁜 숨을 내뱉는 꼬맹이의 등을 살살 그리고 천천히 쓰다듬어주는데, 맞닿은 피부로 쿵쿵, 하는 꼬맹이 심장소리가 느껴진다. 상사병인가 봐, 하고 서글프게 웃는 꼬맹이의 머리를 살짝 때렸다. 다시 한 번 병원 가자, 하고 꼬맹이의 손을 끌었는데, 꼬맹이가 고개를 저었다. 왜, 하고 인상을 찌푸리며 묻자 꼬맹이는 내 발 부근을 바라보며 아랫입술을 내밀었다.
"나 주사 싫단 말이야."
"뭐어?"
"알잖아, 아저씨도…."
나는 하아, 하고 한숨을 뱉어냈다. 발 장난을 치는 꼬맹이의 숨에 뜨거운 온도가 그대로 담겨 있다. 순간 열이 뻗쳐서 입술을 꾹 깨물었다. 네가 아픈 걸 누가 고치라는 말이야. 목끝까지 차오르는 말을 눌러담고, 꼬맹이를 안아들어 침대에 눕혀주었다. 물약을 한 모금 꼬맹이의 입에다 쭉 짜주었다. 쌕쌕거리며 아픈 얼굴을 하고 있는 게 화가 나서 방 문을 닫고 소파에 앉았다. 왜 이렇게 화가 나지. 밝았던 애가 한순간에 이렇게 힘이 없는 게 화가 나는 건가. 하아, 하고 열띤 숨을 뱉어냈다. 냉수를 열불 나는 속에 들이키고 소파에 누웠다. 분노의 근원이 뭔지, 하나도 모르겠다. 알 수가 없다, 정말. 나는 다시 일어나 무의식적으로 꼬맹이가 누워 있는 방문을 열어보았다. 식은땀을 흘리며 힘들어 하는 꼬맹이의 얼굴에 나는 다시 문을 쾅 닫았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지, 라고 생각하는 순간. 화의 근원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꼬맹이를 위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으니까. 그렇다고 주사를 맞으면서 펑펑 울 꼬맹이의 얼굴을 볼 자신은 없어서. 내 마음이 처음으로 거울에 비쳐 보였다. 나는 가만히 거울 앞에 서서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꼬맹이를 정말 좋아하는 건가. 그렇다면 언제부터지. 하나도 알 수가 없다. 지금 확실한 건 내가 꼬맹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어서 화가 난다는 것. 확인해 봐야 했다. 뭐가 됐든 지금 내 마음이 궁금해졌다. 지금 내 몸을 달구는 화의 원인이 정말 꼬맹이를 대하는 내 마음인 건지. 나는 천천히 방문 앞에 섰다. 그리고 문고리를 돌려 꼬맹이의 앞으로 다가갔다.
"아저씨…."
나를 올려다보며 몽롱한 얼굴을 하고 있는 꼬맹이를 바라보다, 주먹을 쥐고 그대로… 키스해보았다. 그리고 익숙하게… 심장이 뛴다.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몹쓸 꼬맹이네, 진짜.
덧붙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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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나 감사드립니다 T-T
초록글이라니... 오르지 못할 나무에 또 올랐네요ㅠㅠㅠㅠ 덕분에 호사를 누리고 있어서 행복합니다!
노력할게요! 설렘주의라고는 썼는데 정말 설렘이었는지는 모르게떠오... 뭔가 죄송 민망해지는 기분 8ㅅ8
참! 윤기 다음 시리즈는 2등이었던 정꾸에오! 아직 다음 시리즈를 말하기엔 멀었지만! 그렇다구 한다!
오늘 분량 나름 많다 생각했는데 많아오? 아닌가!!!!!
넘나 사랑합니다 여러분♥ 내일 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