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사랑하지 않는다(Inst.) - 로이킴
날 사랑하지 않는다 해도
날 돌아보지 않는대도
보낼 수 없는 건
널 놓아줄 수 없는 건
이렇게 사랑하는 날
그댄 잊을까 봐
- 날 사랑하지 않는다 中 -
우리는 아주 예쁜 연인이었다. 연인이었었다. 열여덟에 같은 교실에서 만난 나의 첫사랑은 김남준이었고. 김남준의 첫사랑 또한 나였다. 봄에는 흐드러지게 핀 벚꽃 아래에서 함께 웃었고, 여름엔 시원한 바람을 찾아다니며 데이트도 했었다. 가을에는 단풍잎 위에 편지를 써보기도하고 갑작스러운 소나기를 함께 맞으며 달리기도 했었다. 겨울에는 첫눈을 맞으며 손을 마주 잡았다. 이제는 모든 게 과거가 되었다. 더 이상 우린 손을 마주 잡을 수도 없고 수줍게 사랑을 속삭일 수도 없다. 그 시절의 볼을 붉히던 우린 간지럽도록 순수했고 지독하게도 뜨거웠다.
상위권을 유지하는 김남준의 성적에 부모님은 기대를 많이 하셨다. 우리 아들은 꼭 좋은 대학에 붙을 거야. 도대체 그 좋은 대학이라는 게 뭔지 부모님의 기대와 압박에 김남준은 홀로 마음을 정리한 채 홀로 내게 이별을 고했다. 최악의 이별방법이라던 문자로. 시작하는 열여덟은 시선속에 서로를 채워 넣었지만 계절을 한 바퀴 돈 후 시작하는 열아홉은 한 쪽에서만 상대방을 시선 속에서 지웠다. 분명 둘이 했던 연애였지만, 이별은 김남준 혼자 했다. 원망도 많이 했고, 울기도 많이 울었다. 성적과 연애가 상관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는 김남준이 이해가 가지않기도 했고, 무엇보다 이별을 저 혼자 준비한 김남준이 미웠다. 둘이 한 이별이 아니었기에 나는 아직도 첫사랑을 놓지 못했다. 나도 혼자 하는 첫사랑을 끝내보려 노력도 해봤다. 하지만 묶여있는 매듭을 잘라내면 영영 풀리지 않듯이 내 감정도 단단히 묶여버렸다.
운명의 장난처럼 고3의 우리는 또 같은 반이 되어버렸고, 김남준은 차라리 모르는 사람인 척할 것을 우리 사이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친구인 척해왔다. 내가 여전히 저를 좋아하는 줄도 모르고. 좋아하는 사람과 친구를 한다는 것은 꽤나 힘들었다. 애써 외면해보기를 수십 번, 일부러 피해 보기를 수백 번. 그것마저 지쳐 포기했을 땐 인정했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봤자 난 첫사랑 안에서 허우적거린다는 것을. 함께 수능을 준비했다. 10월 모의고사가 끝나고 담임선생님께선 수능까지 서로 도우면서 공부하라고 자리를 바꾸며 짝을 만들어줬다. 야속하게도 김남준과 나는 짝이 되었다. 아침부터 야간자습 전까지 옆에 있었다. 야간자습시간에 김남준은 성적 상위권인 아이들을 위해 따로 마련된 정독실로 갔다.
"탄소야 이어폰 있어?"
김남준과 나는 노래 듣는 것을 좋아했다.
"들고 온 줄 알았는데... 없어서"
함께 이어폰을 나눠끼고 노래를 들은 적도 많았다.
"야자 때 안 쓰면 빌려줄 수 있어?"
옛날에도 그랬다. 야간자습을 하러 가기 전 나에게 와서 이어폰을 자주 빌려 갔다. 너는 여전히 그러는구나. 나에 대한 마음은 변했으면서 왜 행동마저 완전히 변하진 못했는지, 수능이 끝나고 좋은 대학이란 곳에 네가 붙으면 나는 다시 기대를 해도 되는 걸까. 나는 이어폰을 가방에서 꺼내 빌려주었다. 자주 나에게 빌려 가면서 한 번은 잃어버렸다가 미안하다며 더 좋은 걸 내게 선물해준 적이 있다. 그 이어폰이 이 이어폰이다. 방금 김남준이 빌려 간. 기억은 하고 있을까. 저렇게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하며 내게서 이어폰을 받아 가는 걸 보니 기억한다 해도 너는 단지 기억, 그걸로 끝인 것 같다.
야간자습을 끝내고 집에 가는 길에 본 하늘은 오늘따라 더 까맣게 보였다. 날씨가 추워질수록 밤은 길어졌다. 하굣길에도 스며들어있는 김남준과의 추억에 오늘따라 더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왠지 눈물을 쏟아내곤 저 까만 밤하늘에 뿌리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것 같았다. 내가 김남준을 좋아하는 마음도 쏟아내서 밤 하늘에 뿌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까만 하늘에 잠겨버려서 아무도 모른 채, 나마저도 모른 채 반짝거리는 별만 보며 아침을 기다릴 텐데. 옆에서 타박타박 발소리가 들려왔다. 김남준이 내 옆으로 다가왔다. 너무 울적한 마음에 환상인 줄 알았다. 작년 겨울의 너를 내가 그려낸 줄 알았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건 올해 겨울의 김남준이었다.
"자, 잘 썼어"
내 손에 빌려 갔던 이어폰을 쥐여줬다.
"집. 조심해서가"
마주친 김남준의 눈에는 친구인 내 모습 외에는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았다. 그에 비해 내 눈엔 어쩜 그리 많은 너의 모습이 담겨있는지. 김남준을 보면서 잠깐 작년 봄의 김남준을 그려 보기도 했고, 작년 겨울의 김남준을 찾아보기도 했다. 김남준은 미련 없이 뒤돌아 걸어갔다. 이렇게 뒷모습을 보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나는 또 다른 김남준의 모습을 눈에 넣었다. 김남준은 까만 밤하늘 속으로 멀어져 갔다.
시간은 흘렀고 김남준에 대한 마음은 여전히 흐르지 못 했다. 수능 치는 전 날조차도 내일이면, 수능이 끝나면 김남준이 다시 날 봐줄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얕게 두근거렸다. 남들은 다 긴장해서 평소보다 못 치는 게 수능이라고 했지만 나는 끝나면 김남준이 다시 날 받아줄지도 모른다는 두근거림을 안고 있어서 그랬던 건지 모의고사보다 잘 쳤다. 김남준은 부모님과 선생님들이 기대하던 좋은 대학에 합격했고 나도 부모님의 기대보다 좋은 대학에 합격했다. 좋은 대학이라는 게 도대체 뭐였는지 이렇게 한순간에 결정이 난 게 허무했다. 12년을 바라봤던 수능이 모두 끝이 났고 나는 김남준의 마음을 기다렸다. 내 이름을 부르면 괜히 기대했다. 다시 만나자는 말을 할까 봐. 하지만 기대하는 만큼 실망도 컸고, 김남준은 여전했다. 여전히 김남준의 시선에 들어찬 내 모습은 친구였다.
이젠 정말로 기대는 접고 혼자 진행 중인 첫사랑도 추억 속으로 넣어두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수능이 끝남에 따라 졸업 전까지 점심시간 전에 마쳤다. 그리고 나는 매일 홀로 학교를 크게 한 바퀴 돌고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하필 우리의 추억이 가장 많이 스며들어있는 곳은 학교였다. 고등학생 시절의 연애가 다 그렇듯 일상의 전부였던 학교가 곧 추억의 절반 이상이었다. 이제 졸업하면 못 오겠지라는 생각과 함께 학교에 스며든 추억들을 차근차근 정리하려고 했다. 학교를 돌며 곳곳에서 계절별로 보이는 내 모습과 그 옆에 있는 김남준을 시선 속에서 꺼내 마음속으로 다시 담았다. 그러다 학교 뒤편 정자에 앉아있는 겨울의 김남준이 눈에 걸렸다. 겨울의 김남준은 내가 있다는 걸 느꼈는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고 눈이 마주쳤다. 작년 겨울의 김남준이 아닌 올해 겨울의 김남준이 내 눈앞에 있었다.
"김남준, 여긴 왜 왔어?"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나 너도 스며들어있는 흔적을 찾으러 온 건지 잠시 아주 작은 기대를 했지만 눈에 비치는 올해 겨울의 나를 보곤 기대를 접었다.
"글쎄, 그러는 넌 왜 왔어?"
김남준은 고개를 작게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 글쎄"
쓰게 웃었다. 차마 김남준에게 지나간 우리의 흔적을 보러 왔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가자, 집에"
김남준은 일어났고, 우리는 나란히 걸었다. 이번에는 뒷모습이 아니라 옆모습이다. 그렇게 조용히 겨울의 김남준을 눈에 넣었다. 학교 뒤편에 올해 겨울의 우리가 스며들었다.
어느새 졸업이 다가왔다. 나는 졸업이 다가올 동안의 긴 시간 동안 천천히 마음에 묶여있는 매듭을 풀려고 애썼다. 아직 완전히 풀어지진 않았지만 꽤 헐거워졌다. 강당에 모여 졸업식을 하는 동안 나보다 훨씬 앞에서 친구와 함께 앉아있는 김남준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이제 정말로 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자 눈물이 조금씩 새어 나오는 것 같았다. 식을 마치고 교실로 돌아온 후 담임선생님의 마지막 말을 들으며 교실은 눈물바다가 되었다. 그 틈에 섞여서 나도 엉엉 울었다. 다들 졸업이라는 이름 아래 울 때 나는 첫사랑을 보내기 위해 울었다. 눈물을 그친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갔고, 나도 교실을 나서서 마지막으로 내 시선에 자리 잡고 있던 김남준을 쏟아내려 학교를 크게 한 바퀴 돌기 위해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이제 막 걸음을 떼려 하는데 오른쪽 귀에 있는 이어폰이 뽑혔다. 놀란 눈을 하고 옆을 보자 김남준이 서있었다. 너는 마지막까지 나를 괴롭히는구나.
"나랑 같이 걸어"
"......"
"...마지막으로"
그 말에 아까 쏙 뺐던 눈물이 다시 나오려는 걸 겨우 집어넣었다. 그래, 마지막. 내가 너를 좋아하는 것도 오늘이 제발 마지막이길. 김남준은 내 왼쪽에 서더니 뽑았던 이어폰을 본인의 오른쪽 귀에 꼽았다. 노래는 랜덤으로 재생시켜놓았건만 나를 놀리는 건지 우리가 함께 자주 듣던 노래만 흘러나왔다. 김남준과 나는 말없이 걸었다. 나는 곳곳에 있는 우리의 추억을, 김남준의 모습을 천천히 쏟아냈다. 내 시선 속에 채워 넣었었던 우리를, 너는 오래전에 흘려보냈을 우리를 나는 이제야 흘렸다. 너와 마지막으로 걸으면서까진 울고 싶지 않았는데 시선 속에서 네 모습이 흘러 나오자 눈물도 함께 흘렀다. 김남준은 그런 나를 가끔씩 고개를 돌려 쳐다봤다. 그럼에도 우리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평소보다 조금 더 천천히 걸었고 덕분에 시간이 꽤 걸렸다. 한 바퀴를 다 돈 후 집으로 가기 위해 교문으로 걸었다. 여전히 눈물은 흘렀고, 아직 김남준을 완전히 흘려보내진 못 했다. 교문을 나섰고 짧게 있는 경사면에서 김남준이 멈춰 섰다. 우리의 귀에 꼽혀있던 이어폰은 빠졌고 나는 정리해서 주머니에 넣었다. 김남준은 걸어서 내 앞으로 와 섰고 내가 더 작았던 탓에 이제야 눈높이가 맞았다.
"김탄소"
내 볼에 흐르는 눈물을 김남준은 손을 들어서 닦아 주었다. 겨우 눈물을 멈췄다.
"졸업 축하해"
아직 졸업 인사도 못했었네.
"김남준 졸업 축하해"
드디어 마지막으로 내 시선 안에 있던 우리가 처음 사랑을 말했던 봄의 따스했던 네 모습을 꺼냈다. 우리가 처음 연인이 되었던 그 모습을. 그때도 이 경사면에 서서 김남준이 나와 눈높이를 맞춰주었다. 그땐 우리 사귈래라는 말을 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같은 장소에 있는 지금의 우리는 전혀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이제 완전히 보내주어야 할 내 첫사랑을 향해 말했다.
"남준아"
"왜?"
"우리 헤어지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 아마 넌 오래전에 했을 이별이었겠지만 나는 이제야 너와 이별을 한다.
"그 땐... 너 혼자 한 이별이었잖아, 이제 진짜로 헤어지자"
힘겹게 김남준의 눈을 보며 말을 이었다. 내 말을 끝으로 우린 한참 동안 말없이 서로를 바라봤다. 우리 사이엔 계절을 한 바퀴 돌았던 바람이 지나갔다.
그리고 김남준은 나를 품에 안았다.
"그랬구나, 미안해 내가 미안해"
손으로 내 등을 토닥거렸다. 괜찮아, 이제라도 둘이하는 이별을 했으니 괜찮아.
"이제야 미안하다고 말해서 미안해"
"...괜찮아"
안겼던 품에서 벗어나 다시 김남준과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진심으로 좋아했어"
김남준의 눈에도 살짝 눈물이 맺혔다.
"좋아해 줘서 고마워"
눈물을 단 눈으로 웃었다. 마치 처음 사랑을 말했을 그 때 처럼 해사하게 웃었다.
"잘 가"
김남준이 내게 인사했다. 우리는 눈물을 볼에 그으며 둘이 했던 사랑과 둘이 이별했다. 김남준은 웃으며 뒤를 돌아갔다. 더 이상 김남준의 뒷모습을 눈에 담지 않았다. 이제는 보내줘야지 나의 첫사랑을. 열여덟의 시작에 채워 넣었던 너의 모습을 스물의 시작에 지웠다. 내 시선 속에 들어차있던 그동안의 김남준과 모두 작별 인사를 했다. 마지막 눈물이 한 방울 굴러떨어졌다. 내 첫사랑은 그렇게 매듭을 풀었다.
"잘 가 "
시작했던 곳에서 끝을 맺었다. 참 예쁘게 시작했던 만큼 참 예쁘게도 끝을 맺었다. 내 첫사랑의 기억은 꽤나 예쁜 것 같다. 먼 훗날 뒤돌아봤을 때 웃을 수 있을 정도로.
첫사랑의 나는, 그리고 너는 너무나도 어렸다. 어쩌면 어렸기 때문에 우리는 간지럽도록 순수했고 지독하게도 뜨거울 수 있지 않았을까.
*************
글잡에 데뷔(?)한지는 얼마 안 됐지만 작은 댓글도 정말 힘이 많이 된다는 걸 느꼈어요
이제 까지의 첫사랑 시리즈는 항상 시작하는 사랑 혹은 시작하는 연인을 글로 썼었는데 오늘은 메모장을 켜놓고
문득 헤어진 상태의 연인을 써보면 어떨까 라는생각을 했어요
첫사랑을 기억하고싶지 않은 이유가 있다면 대부분은 끝이 안좋았기 때문일꺼라고 생각해요
저 또한 나름 풋풋했던 시작과는 다르게 끝이 별로 좋지 않았구요
그래서 이런 설정의 글을 써봤습니다 첫사랑의 끝이 좋지 않았던 모든 분들 그리고 그랬던 나를 위해
제 글이 딱히 훌륭한 글은 아니지만 읽고 잠시나마 풋풋했던 그 첫사랑의 시작점을 떠올리고 웃으시길 바랄게요
노래의 가사를 시작부분에 적은 이유는 이 글의 브금으로 정했던 노래의 가사가 제 글의 설정과 너무 잘맞아서 넣어봤어요! 그럼 이만
| 너무나도 감사한 암호닉 ♥ |
복숭아망개 / 뿌링클 / 만두 0103 뽀로로이다 / 정전국 / 민슉아슈가 / 자기 11과 26 / 파랑토끼 / 행복하자 / 꽃보다윤기 / 쁄 |
모든 시리즈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공지사항

인스티즈앱 ![[방탄소년단/김남준] 첫사랑의 기억 : 이어폰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6/01/02/23/4cdca547ac2f6b5256eb55dcb39d05bc.gif)
원나잇 하는거 천박한거 아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