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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담톡 상황톡 공지사항 팬픽 만화 단편/조각 고르기
김남길 몬스타엑스 강동원 이준혁 엑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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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이름 변경 적용
선도부 민윤기 선배

w. 쮼











1.


“야, 너 일로와봐”


여주가 등교길 짧은 치마를 들키지 않게 가지고 있던 교복 치마들 중 가장 긴 치마를 골라서 등교하고 있었는데, 저 선배는 또 그걸 귀신같이 잡았다. 학교에서 선도부로 유명한 민윤기. 여주보다 한 학년 선배인데, 선생님보다 깐깐하게 애들을 잡아서 유명하다. 이 학교의 경찰관. 그게 저 선배의 별명이다.



“치마 기장, 통 줄인 거 벌점 2점인 거 알지?”


“아 안 줄였어요”


“야 봐봐라 무릎에서 15센티가 넘어가는데? 빨리, 이름”


“아 진짜 제가 키가 커서 작아진 거에요”


보통 이런 변명을 하면 넘어가는 친구도 있는데, 이 선배는 만만치 않았다.


“아 그러셔요. 그럼 치마를 하나 더 사세요. 변명 그만하고 빨리 이름이랑 학년 반”


“하… 진짜라니까요?? 왜 안 믿어주세요?”


여주가 괜히 지기 싫어 더 대들었더니 윤기의 날카로웠던 눈매가 더 날카로워졌다. 화나 보이는 얼굴에 자존심만 셌던 여주가 결국 백기를 들었다.


“저..1학년 1반 김여주요..”


“1반 김여주, 치마 벌점 2점이다? 화장에 염색에 누가 보면 너 학생 아닌 줄 알겠다. 이러고 다니는 게 예쁜 줄 아나 본데, 완전 아줌마 같아. 학생이면 학생 답게 하고 다녀라 좀”



아니 지금 시대가 어느 때인데, 학생은 학생 답게? 아줌마는 또 뭐야… 학교는 왜 고작 이런 걸로 잡는 거야,, 안 그래도 아침부터 화장이 잘 먹지 않아 짜증이 났던 여주는 끊이지 않은 잔소리에 선도부 선배에게 퉁명하게 대답을 하고 대충 지나쳐 반으로 올라갔다. 여주의 이름을 적던 윤기는 싸가지 없는 후배의 행동에 눈살을 찌푸리며 이름과 얼굴을 상기시켰다.


다음에 또 만나면 진짜 얄짤 없다 니.





2.


아침 선도부는 2~3일 주기로 사람이 바뀌었기 때문에 오늘은 좀 널널한 동갑 친구가 선도부로 나오는 날이었다. 이에 여주도 등교 길에만 묶던 웨이브 머리를 묶지 않고, 화장도 그냥 평소대로 했다. 이번에도 교복 치마는 짧고 작았다.



여주도 원래 이렇게 양아치처럼(?) 다닌 건 아니었다. 중학교 때 긴 치마를 입으면 학교 내에서 이상한 꼬리표가 따라붙어 그걸 타파하고자 시작한 것이 꽤 예쁘다는 생각에 줄곧 이러고 다녔다. 화장은 중학교 때 모튜브를 보며 하고 싶어졌고, 갈색의 머리는 친구들 따라 염색 했다. 그 친구들은 그냥 놀고 꾸미기를 좋아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는 그런 순수한 친구들이었다. 게다가 중학교 때는 규정이 약해서 잘 잡지 않았거든. 



그런데 친구들과 떨어져 다른 학교에 입학하게 된 여주는 규정이 센 고등학교에 와서도 화장과 염색, 짧은 치마를 입고 다니니 소위 말하는 질이 안 좋은 친구들이 여주에게 말을 걸어왔다. 이에 어리고 뭣도 몰랐던 여주는 그 친구들이 어른 같다는 이상한 동경심에 친해지게 되었다. 느와르 영화를 많이 본 탓이 큰 것 같다. (사실 부모님이 어렸을 적부터 맞벌이에 바쁘셔서 자아에 대한 개념이 덜 생긴 탓도 컸다.)



여주의 무리는 여주와 다른 반이었다. 입학식 때 모두가 모여있을 때 말을 걸어왔던 터라 같은 반 친구들과는 친해지지 못했다. 게다가 같은 반 친구들은 모두 조용한 편이었고, 여주의 무리를 무서워했기 때문에 여주와 조금 거리를 뒀다. 그래서 반에 친구가 없던 여주는 쉬는시간만 되면 자기 친구들이 더 많은 3반으로 놀러 가기 바빴다.



여주의 무리가 딱히 누구를 괴롭히는 무리는 아니었지만(물론 이건 여주의 생각이다) 술과 담배를 하고 다니는 그런 무리였다. 하지만 여주는 술과 담배는 하지 않았다. 술은 써서 싫었고 담배는 빨아들일 때 숨 막히는 기분이 너무 불쾌해서. 그래서 그냥 옆에서 친구들과 노가리를 까며 안주나 집어먹는 역할을 했다. 양아치 치고 좀 순수하달까? 



공부도 머리가 똑똑해 나름 잘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맞벌이를 하시느라 바쁜 부모님도 그런 여주를 딱히 터치하지 않았다. 화장을 하던 염색을 하던 우리 여주는 공부를 나름 잘하는 편이니까 학교에서도 알아서 잘하겠지 라는 그런 어른들의 얕지만 깊은 믿음. 친구들은 그런 여주에게 범생이 같다며 장난을 치곤 했지만 그런 여주도 얼굴이 예쁘다며 칭찬해주는 친구들이었다. 그래서 여주도 술,담배를 하던 안 하던 자신을 좋게 봐주는 친구들을 좋아했다.



어쨌든 여주가 집에 나와 학교로 향했다. 가파른 오르막길을 올라 정문에 도착할 쯤, 어제 봤던 민윤기 선배의 머리가 언덕 위로 빼꼼 보였다.



미친? 왜 저 선배가 오늘도 하는 거지? ㅈ됐다.



이틀 연속으로 걸리면 교무실 행인 것을 알았기에 얼른 가방에서 머리 끈을 찾아 똥머리를 묶곤, 치마를 최대한 내려 짧아 보이지 않게 만들었다. 안에 받쳐 입은 티셔츠를 보이며 풀어헤쳤던 교복 셔츠 단추도 끝까지 잠그고 최대한 마주치지 않도록 학생이 많이 뭉쳐있는 무리에 들어가 모르는 척 올라갔다. 이 정도면 눈에 안 띄겠지 하는 바보 같은 생각한 여주였다.



“야, 김여주”
“김여주 너인 거 다 안다?”
“어이, 거기 아주머니”



안 들킬 리가 있나, 검정 머리들 사이에서 갈색 빛이 아침 햇살에 반짝여 누가 봐도 김여주 나 여기 있어요. 알린 셈이었다. 이를 윤기가 발견하고 여주를 계속 불러댔다.

하지만 여주는 못들은 척, 나 아닌 척 살금살금 가려는데 언제 여주 뒤로 온 건지 윤기가 여주의 가방을 들어 올렸다.



“어쭈, 이젠 못들은 척 하네? 너 잘 걸렸다.”



결국 2일 연속으로 걸려 교무실로 향한 여주는 학생지도 선생님께 호되게 혼났다. 대체 왜 여기까지 있는지 모를 윤기 선배 옆에 서서… 윤기는 짜증난 듯 일그러진 표정을 하며 선생님께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여주를 보며 살짝 웃었다. 아 꼬시다. 



선생님께 혼난 여주가 반으로 향하려는데, 윤기가 붙잡았다.



“야, 김여주.”


“아 왜요?”



안 그래도 안 걸릴 줄 알았다가 걸려서 짜증이 나는데 자신이 혼나는 데 옆에서 비웃던 윤기가 얄미웠던 여주였다. 그래서 말이 도무지 예쁘게 나오지 않았다.



“너 선배한테 그렇게 눈 그렇게 뜨는 거 아니다”


“뭐가요”


“오늘 너랑 같은 학년인 애가 선도부 나올 줄 알고 방심했지?”
“너 같은 애들이 많아서 내가 걔랑 시간 옮겼다. 앞으로도 조심하자. 다음 번엔 부모님께 전화 가는 거 알지?”



여주는 짜증이 났지만 부모님께 전화가 가는 것은 극도로 싫었기에 네 하고 대답하곤 툴툴거리며 반으로 향했다. 궁시렁 대며 걷는 여주의 뒷모습을 보며 윤기는 눈에 쌍심지를 키고 지켜봐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저 애 내가 꼭 바로 잡고 만다.

쓸 데 없는 정의감 이었다.





3.


그 날 이후 여주는 절대 걸리지 않겠다는 일념 하에 아침엔 바르게 입고 가서 반에서 갈아 입기를 반복했다. 뭐, 가끔은 까먹어서 올바르게 입은 교복 치마 그대로 입고 생활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화장도 최대한 피부만 하고 나머지는 학교에 와서 했다. 여주의 무리들은 애초에 선도부에 걸리는 걸 신경 쓰지 않았지만 이상한 마지막 양심이 남아있었는지 아님 그 짜증나는 윤기 선배와 더 마주치고 싶지 않아서였는지 여주는 절대 걸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게다가 염색도 이제 더 이상 하지 않았다. 아 근데 그건 진짜 귀찮아서.



거의 한 달을 잘 버티며 아침마다 똑바르게 입는 여주를 보고 윤기는 기분이 좋았다. 아 또 내가 한 학생을 바른 길로 인도했구나. 뭐 그런 생각들… 염색도 이제 하지 않는 것인지 갈색의 웨이브진 머리들은 머리 끝자락에서 반짝였고, 정수리부터 어깨까지는 검은색 생머리가 찰랑거렸다. 원래 하얬던 여주의 얼굴이 검정 생머리에 더 하얗게 빛이 나는 것 같았다.



원래 쟤가 예뻤나? 윤기는 여주의 화장기 없는 순둥한 얼굴이 제법 아기 고양이 같이 귀엽게 생긴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이제 정말 바른 길로 가는 저 학생이 기특해 드는 그런 생각이었다. 저번엔 1학년 교무실에 과학 담당 선생님을 뵈러 갔다가 여주의 성적이 생각보다 좋다고 칭찬을 하는 것을 듣고 자신이 정말 그 아이를 구제라도 한 마냥 기분이 좋았다.



“야 김여주, 드디어 바르게 다니는구나. 기특하다!”


자신 쪽으로 걸어오는 여주를 보며 윤기가 말했다. 여주는 아침부터 윤기가 말을 걸어오는 게 조금 탐탁지 않았기에 대충 아, 예. 하곤 지나쳤다.


어우, 저 싸가지는..


아직 인성은 덜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바뀐 여주가 기특해 윤기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이런 뿌듯함 때문에 선도부를 하는 윤기였다.





4.


한 달 간을 선도부 검사에서 잘 넘겨오던 여주에게 큰 사건이 터져버렸다.



“자, 오늘 누가 옥상에서 담배 폈다는 신고가 들어와서 가방 검사 합니다. 1반 모두 가방 꺼내세요”



지루한 2교시 국어 수업을 들으며 교과서에 대충 낙서를 끄적이던 여주의 반으로 선도부 선생님이 왔다. 가끔씩 저런 신고가 들어오면 수업 도중에 가방 검사를 하곤 했는데, 그게 오늘이었다. 여주는 담배를 피지 않았기 때문에 꿀릴 게 없어 당당하게 가방을 자기 책상에 올려놨다.


앞에서 부터 차례로 검사를 마친 선생님이 여주의 책상으로 왔다. 가방 문을 열고 뒤적이던 선생님이 얼굴을 찌푸리며 무언가 익숙하지만 낯선 물건을 들어 올렸다.



“김여주, 너 교무실로 따라 와.”



선생님이 꺼내든 건 윈드블루 3미리… 여주가 피지도 않는 담배각이 나왔다. 그런데, 왜 이름을 아냐면 여주의 친구들이 피는 담배였기 때문이다. 친구들이 이게 제일 맛있다며 권유하면 늘 담배에 무슨 맛이 있냐고 거절했던 터라 이름을 잘 알고 있었다.



“어? 저 아니에요! 저 진짜 안 피는데… 이게 왜 여기에 있지..? 선생님 저 아니에요!”



이 정도로 증거가 확실히 나왔으면 따라 나갈 법도 한데 아니라고 우기는 여주에 반 학생들이 모두 여주를 바라봤다. 제각기 한심하다는 표정과 저럴 줄 알았다는 표정, 무섭다는 표정 등등… 처음 겪어보는 혐오감이 가득한 눈길에 여주가 혼란스러웠다. 진짜 아닌데, 억울한데… 하지만 더 이상 이렇게 버티다가는 반 친구들에게 갱생 불가한 일찐으로 찍힐 것 같아 결국 선생님을 따라 나섰다. 억울해서 속에서 부터 뜨거운 무언가가 올라왔지만, 눈물을 흘리지 않도록 꾹꾹 참아냈다.





“여주야, 너 그래도 해야 할 건 다 해서 선생님은 널 믿었는데, 담배가 뭐니? 아직 고1인데 이상한 애들이랑 어울리고 다니고, 그래도 요새는 아침에 교복도 잘 입고 다녀서 바뀐 줄 알았더니 그 양아치 버릇은 못 버리는 거니?”



교무실로 가자 선생님의 잔소리가 시작되었지만 여주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대체 왜 내 친구들이 피는 담배가 내 가방에 들어 있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매우 억울했다. 아무리 내가 다른 학생들과 다르게 입고 다니긴 했지만, 내가 예쁘게 입고 싶다는 걸로 왜 담배 누명까지 받아야 하는지 억울했다. 



증거가 있는데도 끝까지 잡아 떼는 여주에게 화가 나있던 선생님이 걸국 큰소리를 내며 화를 냈다. 선생님의 입장에선 여주가 잘한 것도 없는데 아니라고 우기기까지 하니 화날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공부는 곧잘 해오던 여주였기에 대충 잘 타이르고 부모님께 말씀드리는 정도로 끝내려고 했는데, 이렇게 나오니 선생님 입장에선 더 강하게 나올 수 밖에 없었다. 고작 2교시 수업 중 불시 검문인데 누가 여주를 골리려고 치밀하게 미리 담배를 넣어 놓았겠냐는 게 선생님의 생각이었다. 



억울해 하던 여주는 아니라고 말해도 믿지 않고 화를 낸 선생님 때문에 놀라 참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이에 결국 여주는 방과 후에 다시 교무실에 남아 상담을 하기로 했다. 눈물을 똑똑 흘리던 여주가 서럽게 소리까지 내며 울어대는 바람에 선생님이 더 이상 화를 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5.


울어버린 바람에 화장이 얼룩져 버린 여주가 화장실로 향했다. 대충 물로 화장을 닦아 내는데, 수업이 끝났다는 종이 울렸다. 마침 울리는 종에 울적한 마음을 달래고자 학교에 있는 정자로 향했다. 10분 밖에 되지 않는 쉬는 시간에 정자까지 가서 앉아있으면 다음 수업에 지각을 할 게 뻔했지만, 앞 상황에 너무 지쳐버린 여주는 그런 것 까지 걱정할 여력이 없었다.


여주가 정자에 가만히 누워 눈을 감고 곰곰이 생각했다.  이미 정자에 오면서 수업 종이 쳤지만, 안 그래도 사춘기에 감정이 예민했던 여주에게 이성적인 판단은 이미 불가능 했다.


게다가 담배를 피지도 않는데 대체 왜 피고 남은 담뱃갑이 자신의 가방에서 나왔는지 알 수 없어 답답하기만 했다. 반 친구들과 자신이 사이가 서먹했지만, 나를 괴롭힐 정도로 밉보일 만한 행동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의 가방에 누가 넣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평소 친구들이 피는 담배였지만, 그들을 너무 믿었던 터라 자신의 친구들에겐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그들의 담배를 잘못 가져왔나? 의심이 들었다가 이내 자신이 그들의 물건을 만진 적이 없음이 생각나 아예 의심을 거뒀다. 게다가 그 담배는 아무나 살 수 있으니까(?)….



“야, 수업 종 쳤는데 뭐하냐? 너 땡땡이는 학생부에 남는다?”



안 그래도 혼란스럽고 복잡한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려지는 사람이 있어서 여주는 그 목소리를 무시하고 팔을 눈에 올려 눈을 감고 있었다. 그러자 그 누군가가 여주에게 다가와 누워있는 여주의 다리에 가디건을 덮어줬다. 아무래도 치마를 입고 있어 가려준 듯 했다. 여주는 그 행동이 어이가 없다는 생각에 감았던 눈을 뜨며 몸을 일으켰다. 여주 옆에 앉아 먼 산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은, 민윤기 선배였다. 아니 선도부라는 사람이 수업 시간에 뭐야.



“선배는 왜 여깄는데요?”


“그냥, 답답해서.. 너는?”


“저두요. 근데 선도부가 땡땡이도 치나 봐요?”


“칠 수도 있지 임마. 아까 담배 검사 하느라 힘들어서 아프다고 하고 온 거야. 그래도 난 너처럼 땡땡이는 아니다?”


“아…담배 검사…”



아까의 상황이 또 떠올라 여주가 다리를 웅크리고 앉아 다시 눈을 감았다. 눈을 감아도 떠오르는 억울한 상황들과 선생님께 들은 큰소리에 다시 눈물이 터져 나왔다. 여주가 갑자기 눈물을 흘리자 옆에 앉아있던 윤기가 당황했다. 아까의 대화를 곱씹어봐도 여주가 울 만한 정황이 없었기 때문에 윤기는 당황해 허둥댔다.



“야, 뭐야 너 울어? 뭐야 갑자기..? 왜 갑자기 울어...”



왜 우냐는 말에 아무 말도 않고 엉엉대는 소리까지 내며 서럽게 울어 대자 윤기가 여주의 고개를 한 손으로 잡고 자신의 교복 소매로 여주의 눈물을 닦아줬다. 여주가 화장을 했던 터라 윤기의 하얀 교복 소매가 살구색의 파운데이션과 눈물로 더러워 졌지만, 일단 애를 달래야겠다는 생각이 먼저였다. 


벅벅 거칠게 닦는 윤기의 손길에 여주가 이 상황이 조금 어이가 없다는 생각에 드디어 울음을 그쳤다. 짜증나게 시비만 걸어오던 선배의 거칠지만 따뜻한 손길에 마음이 좀 누그러진 것도 한몫 했다.


여주의 울음이 그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즈음 윤기는 대체 얘가 왜 우는지 궁금했다. 그렇게 톡톡 쏘아대던 애가 이렇게 서럽게 우니 궁금할만 했다.



“너 왜 운 거야?”


“선배도 제가 양아치 같아요..?”


“어? 뭐.. 조금?”



누군가를 달래주는 것에 재능이 별로 없었던 윤기는 나름 배려한답시고 자기가 느꼈던 바를 최대한 줄여 말했는데, 어쨌든 양아치로 느껴진다는 말에 여주가 다시 울음을 터트렸다.


아니 야 대체 왜 우는 건데, 양아치라고 하면 안되는 거야? 내 말이 너무 심했나?


영문을 알 수 없는 윤기가 다시 허둥대며 아까의 말을 장난이라며 애써 모면했다. 너가 치마가 짧아서 그렇지 착한 애 같다는 둥(별로 말 섞지도 않았으면서)... 아까 말은 정말 장난이었다는 둥… 혹시 전에 말했던 그렇게 꾸미고 다니는 게 늙어 보인다고 했던 말 때문에 그런 거라면 사과한다는 둥.. 윤기가 별의 별 기억을 다 끄집어내 사과를 했다. 한참을 울던 여주가 울음에 잠긴 목소리로 짧은 치마를 입어서 양아치 같냐고 물었다. 



"뭐... 조금? 아무래도 우리 학교에선 규정이 좀 빡세니까, 처음엔 그렇게 보였지. 근데 지금은 너 안 그러잖아. 그럼 된 거 아니야?"


"제가 왜 교복 줄여 입는 줄 알아요?"


"응?"



그걸 윤기가 알리가 있나, 별 관심도 없고 애초에 줄인 치마는 그냥 적발 대상, 벌점 대상일 뿐이었던 윤기는 여주가 왜 줄인 치마를 입었는지, 화장을 하고 다니는지 알 필요도 궁금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 울고 있는 애가 너무 안쓰러워서, 또 너무 걱정되어서 들어주기로 했다. 왜, 왜 줄여 입었는데?



"제가 처음 중학교 들어갔을 때, 저 원래 되게 밝아서 친구들도 많고 했는데 어느 순간 애들이 저를 무시하는 거에요."


"왜?"



"몰라요, 그냥 유행에 뒤쳐져 있어서 별로래요. 교복 줄여 입고 염색하는 게 유행이었거든요 안 그런 애들이 거의 없었어요. 교복을 예쁘게 안 입으면 친구하기가 힘들었거든요, 그게 꼭 저희만의 규칙처럼 자리 잡혀 있던 거라... 그렇게 안 하면 대놓고 괴롭히진 않아도 꼭 어느 순간 혼자 동떨어져 있게 되거나 그랬거든요."


"..."


"그래서 3년을 그렇게 다니니까 오히려 그게 익숙해졌기도 하고 나름 꾸미고 다니는 게 스트레스가 풀리기도 하고... 게다가 고등학교도 당연히 그런 분위기였을 줄 알고 그랬을 뿐이에요... 지금 제 친구들도 그러구 다니기도 하고... 제 친구들이 남들이 보기엔 양아치 같다 그러는데 걔들 나름 착해요. 저 잘 챙겨주기도 하고..."


"아..."


 윤기는 대충 여주의 마음이 이해가 갔다. 그 또래 애들 무엇보다 중학생 때는 모두 친구에 예민하고 무리에 예민한 나이라 친구들의 유행에 뒤떨어지지 않으려 노력하곤 했으니까. 고작 여주보다 한 살 많았지만, 윤기 역시 그런 친구들을 많이 봐왔기에, 여주를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게 대체 우는 거랑 무슨 관련이 있는 거지? 요새 그러고 다니지 못해서 힘들었나? 해결 되지 않은 궁금증에 윤기가 짧게 대답을 하고 여주의 등을 토닥이며 달래주고 있는데, 여주가 다시 입을 열었다.



“선배도 제가 담배 필 것 같아요?”



이유는 알려주지도 않고 울먹이며 또 질문을 해오는 여주에 윤기의 머리가 복잡해졌다. 무슨 말을 해줘야 안 울지, 아니라고 해야하는 건가? 저 똘망한 눈에서 눈물이 그렁그렁 차는 게 참 마음이 이상했다. 애를 빨리 달래고 싶은데, 이유를 알지 못해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아까 담배 검사라는 단어에 울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제서야 윤기의 눈치 백단 스킬이 발휘되기 시작했다.



“아니, 왜? 아까 검사 시간에 무슨 일 있었어?”


“그게…”



울먹이며 아까의 상황을 모두 말한 여주에 윤기가 그제서야 여주가 우는 이유를 깨달았다. 피지도 않는 담배가 자신의 가방 안에 있었다고 한다. 자신 친구들이 피던 담배랑 같은 종류길래 자신이 실수로 넣었나 고민 해봤는데도 그런 적이 없었다고... 근데 이거 왠지 이상하지 않나?


사실 윤기는 담배 냄새를 극혐했기 때문에 담배 냄새는 기가 막히게 잘 캐치했다. 그래서 늘 담배 불시 검문엔 윤기도 참여했다. 학년 마다 두 팀씩 나눠 가는 검문이라 여주의 반엔 가지 않았는데, 이런 일이 있었을 줄이야. 애가 되게 도도하게 생겨 가지고 엄청 순진하네.. 나한테 대들던 애 맞아?


사실 아침에 마주칠 때마다 여주에게서는 담배 냄새는 나지 않았기 때문에 윤기는 여주가 담배를 피지 않았을 거라 믿었다. 이렇게 화장을 했는데도 비누 향이 퐁퐁 나는 애한테서 무슨 담배야…


이건 그냥 누가 봐도 괴롭힘을 당한 거잖아.


평소 옳고 그름이 확실하고, 그른 일에는 불같이 화를 내며 고치려 하는 정의의 사도였던 윤기는 여주가 괴롭힘을 당했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야, 이거 명백한 괴롭힘인 거 몰라? 너 친구들 이름이 뭐야, 니 친구들이 피던 담배라며. 그럼 누가봐도 니 친구들이 넣은 거잖아. 너 바보야?”


“아니…제 친구들은 그럴 리가 없어요…”



갑자기 화를 내며 자신을 다그치는 윤기 때문에 다시금 눈물이 흘러나와 겨우 뱉은 말들이 모두 울음에 먹혔다. 다시 눈물이 터진 여주가 울먹이며 친구들을 감싸 돌자 윤기는 더 화가 났다. 누가 봐도 정황상, 양아치 같은 애들이 여주의 겉모습만 보고 접근했다가 지금의 모습이 마음에 안 들어 괴롭혔을 거라는 게 윤기의 추측이었다. 워낙 그런 애들이 많기도 하고 일단 친구들이 피는 담배 종류라면, 뻔하지 않은가? 하지만 사실 확인이 안 된 것도 맞기 때문에 일단 증거를 모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정자에서 일어섰다. 곧 있으면 수업이 끝나니 빨리 일을 해결해야 했다.



“야 너 잘못한 거 없으니까 그만 울고 일단 나 따라 나와.”








6.


“아까 니 친구들 3반이라고?”



영문도 모른 채 따라 나오라는 말에 여주가 윤기를 따라 나왔는데, 또 자기 친구들에 대해 묻자 괜히 불안했다. 이 선배가 괜히 죄 없는 자기 친구들을 몰아 갈까 봐.



“맞긴 한데… 제 친구들 진짜 아니에요… 아까 1교시 쉬는 시간에 저랑 같이 얘기 하고 있었단 말이에요…”


“그건 봐야 아는 거고. 너 당하고만 살 거야?”



당하고만 살 거냐는 윤기의 질문에 여주가 고개를 저었다. 세상 물정 모르고 이래저래 친구 따라 강남을 갔던 여주도 이 상황에선 자신을 믿어주는 윤기 선배가 꽤 듬직했기 때문에 일단 윤기 선배를 믿기로 했다.


윤기는 여주 반 앞에서 기다렸다 쉬는 시간 종이 치자 마자 혼란스러워 하는 여주를 밖에 두고 여주의 반에 들어가 한 친구를 붙잡아 물었다.



“얘, 혹시 여기 다른 반 애가 들어 온 적 있니?”


“아, 1교시 쉬는 시간에 오긴 했는데…왜요?”


“걔 이름 뭔지 아니?”


“어… 잘 모르겠는데 3반 애에요. 그 머리 칼단발인 애요.. 여주랑 친한지 여주 자리에 앉아서 여주 어디 갔냐고 묻다가 나갔어요.”



빙고- 역시나는 역시나였다.



“아, 그래 고맙다.”



괴롭히는 건 좋아하는데 머리가 나쁜 건 땡큐지. 대놓고 여주를 괴롭히려 담배를 넣어 두고 갔을 애에게 화가 났다.  윤기가 반에서 나왔을 때는 어디로 간 건지 여주가 없었다. 문득 윤기는 자기가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조금 어이가 없었다.


아니, 괴롭힘을 못 보는 게 내 체질이긴 한데, 자꾸 걱정도 되니까 마음이 이상했다. 화도 나고 안 보이는 애가 걱정이 되기도 하고… 게다가 아까 뚝뚝 흘리는 눈물에 가슴이 철렁거렸던 게 생각이 나 윤기의 심장이 조금 빠르게 뛰었다. 아 진짜 아까 걔는 왜 울어서...


일단은 이 일을 해결하는 게 우선이니까.. 윤기는 일단 그 알 수 없는 감정들을 밀어 두고 3반으로 향했다. 다행히 그 칼 단발 친구를 찾는 건 예상보다 너무나 쉬웠다.




“야, 김여주 표정 봤어? 시발 진짜 웃겨. 요새 좆같이 하고 다녀서 담배 좀 넣어 놨더니 걸려서 울더라?”


“그니까, 존나 웃겨. 우리 담배 필 때 권유해도 계속 마다해서 기분 나빴는데 속 시원했음.”


“하여튼 김여주 범생이인 척 하는 것도 한 두번이지 존나 토 쏠려”


“그러게 내가 빨리 버리쟀잖아. 걔 학교에 친구 우리 밖에 없어. 반 친구들도 걔 버림. 존나 예쁘다 예쁘다 해줬더니 우리한테 붙는 거 짜증나.”


“응, 그니까, 다음엔 그 긴 교복 치마나 좀 없애버리자.”


“오 좀 볼만 하겠다. 이번에도 우는 거 아니야?”




문 밖으로 들려오는 대화에 윤기가 화가 머리 끝까지 났다. 문을 열고 들어가서 다짜고짜 화를 내며 애들에게 혼을 내고 싶었지만, 일단 여주의 억울한 누명도 풀어줘야 했기 때문에 핸드폰 녹음기를 켜 걔들의 말을 모두 녹음했다. 어느 정도 정황이 모두 담겼을 쯤 윤기는 녹음기를 끈 후 반 문을 열었다.


갑자기 열린 문에 여주를 신랄하게 까내리던 애들의 얼굴이 문으로 향했다. 이미 잔뜩 화가 나 무서운 표정을 짓고 있는 윤기의 얼굴에 그들은 말을 줄였다. 윤기는 그 컷단발에게 다가가 겨우 화를 참아내고 입을 열었다.



“야, 너 이름 대봐.”


아 참은 게 이 정도다.


“저요? 왜요?”


“응 단발 너요. 근데 왜요? 선도부에서 이름을 물어보는 이유가 뭐겠니. 빨리 이름.”



낮고 냉랭한 윤기의 목소리에 컷 단발이 자신의 이름을 말해줬다. 선배가 왜 그러는지 영문을 몰랐지만 꽤나 불쾌했는지 컷단발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윤기가 그런 표정을 보고 더 화가 치밀어 올라 한 쪽 손가락으로 그 미간을 쿡하고 밀었다. 덕분에 컷단발의 고개가 살짝 뒤로 밀려났다.



“인상 좀 피지? 이따 너 방과 후에 본 교무실로 와라.”





7.


윤기는 그 모든 증거를 선도부 선생님께 제출했다. 녹음기를 틀어서 들여주자 한 시간 만에 갑자기 생긴 여주의 억울함 증거들에 선생님이 오히려 당황했다.



“뭐야, 윤기야 너 언제 이거를..”


“아, 지나가는데 담배 얘기가 들려서요. 그럼 수고하세요.”


“아 그래.. 아 윤기야! 이따 여주 마주치면 방과 후에 오라 했던 거 오지 말라고 해! 선생님이 미안했다고도 전해주고”


“사과는 쌤이 하세요- 저는 그럼 가보겠습니다.”




시니컬한 윤기의 답이었지만, 워낙 바른 말만 하는 애라 선생님은 그래 하고 웃으며 넘겼다. 이거 여주한테 너무 미안한데… 라는 생각도 함께.



교무실로 나온 윤기는 일단 여주를 찾았다. 아까 완전 멘붕 상태였던 여주가 마음에 걸렸다. 아무래도 아까 자신의 반 밖에서 친구가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는 걸 봤다는 소리를 들어서겠지. 많이 충격 받았을텐데…


쉬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일단 빠르게 뛰며 여주를 찾았다. 여자 화장실은 차마 들어 갈 수가 없어 결국 아무 소득도 없이 윤기네 반으로 돌아왔다. 아까 어딜 그렇게 싸 돌아 다녔냐는 친구들의 말에 대충 피곤하다는 말과 함께 교과서를 폈다. 딱 맞게 수업 종이 치고 윤기는 다시 깊은 고민에 빠졌다.



아 얘는 그렇게 울더니 어딜 간 거야… 진짜 걱정되네



수학 수업은 온통 여주 생각에 빠르게 지나가 버렸다. 윤기는 원래 수업을 잘 듣는 편인데, 그 애가 자꾸 눈에 밟혀 수학 기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까 엑스 제곱을 미분하면 김여주..아니 2x… 그래서 김여주가 미분을... 아니, 김여주가 어딨지?



결국 윤기가 50분 수업 내내 집중을 하지 못하고 종이 치자마자 나와 여주 반으로 향했다. 또 어딜 가냐는 친구들의 물음엔 답하지도 않았다. 


“김여주!!”


문을 열자마자 여주를 찾는 통에 1반 학생들이 모두 윤기를 바라보았다. 아 잠시만 나 뭐 하는 거야. 다짜고짜 크게 여주를 부른 자신의 행동에 약간의 민망함이 올라왔지만, 보이지 않는 여주의 모습에 또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 앉았다.


윤기도 자기가 왜 이러는지 몰랐지만, 자신은 누구보다 바른 사나이, 이 학교의 학생들을 바르게 지도해야 할 의무가 있는 선도부이기 때문에 그런 거라고 혼자 정의를 내렸다.



“김여주 아파서 보건실 갔어요.”



아까 윤기에게 친절하게 컷단발의 존재를 알려준 친구가 이번엔 여주의 행방을 알려줬다. 이에 윤기는 고맙다고 말하곤 보건실로 향했다. 아깐 울더니 이젠 아프기까지 하냐… 


윤기가 보건실에 도착해 보건실 선생님께 인사를 드린 뒤 여주를 찾았다. 침대에 누워있다는 선생님의 말에 보건실 침대를 바라보자 이불을 덮고 웅크린 채 자는 여주가 보였다. 아까 50분 동안을 정자에서 바람을 맞으며 울어서 그런지 열이 난 것 같았다. 윤기는 혹시라도 깰까 조심히 다가가 침대 옆 의자에 앉았다. 보건실 선생님은 그런 애들이 풋풋하다는 생각과 함께 대충 없는 사람인 척 조용히 약을 정리했다.


윤기는 자는 여주를 보는데 괜히 마음이 이상했다. 잔잔하게 일렁이던 간질거림이 어느새 심장 부근에서 울렁거림으로 바뀌어 있었다. 눈물에 화장이 다 지워져 버린 얼굴이 조금은 웃겼지만 그마저도 윤기의 눈엔 예뻐 보였다. 햇살이 창문으로 넘어와 여주가 눈을 살짝 찡그리자 윤기가 의자를 움직여 창문을 등지고 여주의 얼굴에 그늘막을 만들어 냈다. 그제서야 편한지 다시 편한 얼굴로 새근새근 잠을 자는 여주였다.


길다란 속눈썹, 뽀얀 얼굴, 화장이 지워졌음에도 붉은 뺨과 입술


진짜 이상해. 갑자기 얘가 이렇게 예뻐 보인다고? 왜? 윤기는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 처음엔 그냥 양아치 갱생의 목표로 눈이 갔는데, 점점 바뀌는 여주의 모습에 뿌듯해 몇 번 말을 건 게 다인 관계였다. 근데 아까의 일로 여주가 신경쓰이더니 이젠 반해버린 듯 얼굴이나 훔쳐보는 자신이 웃겼다. 


좋아하는 감정은 아무도 모르게 찾아 온다더니 정말 그런 건가.


수업 종이 울리기 전에 다시 가야했던 윤기는 일단 여주의 손에 볼펜으로 자신의 번호를 적었다. 하루 아침에 친구가 없어졌을 테니 나라도 있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물론 이건 윤기의 겉 생각, 몰래 숨겨둔 흑심은 애써 모른 체한 윤기였다. 





8.


보건실에서 눈을 뜬 여주는 눈을 비비다 자신의 오른쪽 손에 적혀진 글귀를 발견했다.


민윤기
010-XXXX-XXXX
일어나면 연락해.


여주가 그 글귀를 바라보는데 괜히 눈시울이 붉어졌다. 처음엔 진짜 얄밉고 짜증나는 선배였는데, 이유가 뭐가 됐든 자신을 그렇게 챙겨준 선배가 무척 고마웠다. 아까 교실 너머로 들려온 자신의 친구의 배신을 깨닫고 여주는 그 자리를 도망쳐 나오듯 보건실로 향했다. 하도 울어서 머리가 아픈 것도 한몫했다.



어쨌든 다시 반으로 가기가 무서워서 보건실 침대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여주가 저 글귀를 보고 감동을 받았다. 그런데 한편으로 이제 자신이 혼자 동떨어진 신세임을 자각해 우울했다. 반 친구들과는 친하지도 않고, 믿고 있던 친구들은 배신을 하고… 1학년 2학기라 이미 무리가 생긴 반 안에서 다시 누군가를 사귀기란 무척 힘든 일이었다. 게다가 앞선 상황에서 오해가 풀리지 않았을 반 아이들에게 먼저 다가가기란 여주 입장에선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가만히 있는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으니 일단 이번 년도는 친구 없이 지내야 겠다는 생각을 하며 보건실 침대에서 나왔다. 점심시간이라 복도가 텅 비어있었던 나머지 여주는 터덜터덜 걸어 반으로 향했다. 밥을 꼭 먹으라던 보건 선생님의 말이 있었지만, 기분이 우울해 도저히 밥을 먹을 수 없었다. 게다가 큰 급식실에서 자기 혼자 혼밥하는 게 지금 상황에선 너무 비참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여주가 반으로 향하는 복도 저 멀리 익숙한 형체가 보였다. 윤기 선배가 자신의 반 앞에서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의아해 여주가 눈을 비비며 다가갔다. 그런 여주를 발견하곤 윤기가 여주의 손을 갑자기 잡아 급식실로 이끌었다.



“야 연락하라니까 왜 안 해? 일단 밥 먹으러 가자”



이 선배는 원래 이렇게 오지랖이 이렇게 넓은 편인가? 알 수 없었지만 일단 지금 자신의 손을 잡고 급식실로 끌고 가주는 선배의 뒷모습이 고맙기만 한 여주였다. 이 선배 은근 키도 크고 어깨도 다부지고 진짜 무슨 슈퍼 히어로 같네…



급식실에 도착해 느릿느릿 반찬을 담는 여주를 답답해 하던 윤기가 “아프면 많이 먹어야 해” 하곤 직접 집게를 들어 반찬을 여주의 식판에 왕창 올려주었다. 여주는 이 선배가 자신이 불쌍해서 이렇게까지 해주는가 싶어 일단 가만히 있었다. 따지고 보면 자신도 밥 먹을 친구가 필요하기도 했다.



“야 너 팍팍 먹어. 깨작대면 아픈 거 금방 안 나.”


“네..”


“목소리가 다 죽어가네… 사람 걱정시키지 말고 얼른 기운 내고. 필요 한 거 있으면 적어준 번호로 연락해.”


“네…”



짧은 대화가 끝나고 다시 밥을 먹는데 여주는 윤기 선배의 행동이 정말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렇게 날 못 잡아 먹어서 안달이더니 우니까 좀 불쌍했나… 하기야 선도부 역할에 심취해 있는 사람인데, 나 하나 챙기는 건 그냥 책임감일 뿐이지. 난 이제 친구도 없는데, 오늘만 밥 같이 먹는 거려나… 하긴 선배도 밥 친구 있을텐데 날 언제까지 챙기겠어



여주는 이유 없이 속에서 자꾸 서운함이 묻어 나왔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이 선배가 나를 그저 불쌍하다고 바라보는 게 그냥 기분이 나빴다.





9.


여주의 담배 사건은 다행히 윤기의 증거로 잘 마무리 되었다. 그 칼단발과 무리들은 담배와 특정 학생 괴롭힘으로 징계를 받았고, 여주의 반 친구들은 그런 여주에 대한 오해가 풀려 조금씩 친해져 갔다. 하지만 아무래도 2학기 중순을 향해 달려가는 터라 여주가 무리에 끼어 놀러 다닐 만큼은 친해지지 못했다. 아무래도 그 양아치 집단과 어울렸던 전적이 있어 아직 여주에 대한 확신이 없는 반 아이들의 의심도 한 몫했다.



그래도 다행히 그런 여주를 알고 윤기가 늘 점심시간마다 여주와 같이 밥을 먹었다. 처음엔 여주도 그런 윤기 선배의 오지랖이 고마웠는데, 이젠 좀 혼란스러움으로 가득했다. 이 선배는 왜 나한테 이렇게까지 잘해주지. 선도부로서 친절을 베푼 다기엔 오래 지속되는 친절에 여주는 가끔 헷갈리기 시작했다. 설마 이 선배가 나를? 좋아… 아니지 그럴 리가 없지.


자신을 좋아하나 하는 착각이 들 때에는 좀 좋지 못한 첫 만남이 생각나 원래 그런 사람인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사실 윤기는 여주가 좋아서 점심 시간마다 내려오는 것이 맞았다. 처음엔 그 날 이후로 자꾸 여주가 신경이 쓰여 여주 생각을 자주 하던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친구들이 자신들을 버리고 여자와 밥을 먹는다며 누군지 추궁해왔지만 계속해서 아는 후배라고 소개하던 윤기가 아무 사이 아니면 소개 시켜 달라는 친구들의 말을 듣고 나서야 자신의 감정을 깨달았다. 친구들이 소개시켜 달라고 할 때 친구한테 마저 짜증과 화가 났거든. 감히 얘를? 너한테? 아니 모두에게 안 돼. 걔는 나만 돼.



“야 그럼 친하면 나 소개 좀. 얼굴 내 스타일이야.”


“뭐래, 넌 안돼.”


“그럼 나는?”


“되겠냐?”


“아 왜, 너 걔 좋아해?”


“응. 그러니까 안 돼.”


“아 이 새끼 이럴 줄 알았어. 그럼 처음부터 그렇게 얘기를 하던가”




하지만 자신에게 아무 감정도 없어 보이는 애한테 다짜고짜 고백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윤기는 계속 여주를 나름대로 조금씩 꼬시는 중이었다.



“야 오늘은 학교 끝나고 뭐해”


물론 윤기의 말투는 아직 조금 서툴렀다.


“저요? 저 오늘은 학원 가요… 왜요?”


“아… 아니야. 친구가 이사 가는 바람에 집 가는 길이 달라져서 같이 갈까 했지.”


“아…”



사실 친구 이사는 없었다. 원래 대충 이어폰을 꽂고 혼자 하교를 하는 윤기에게 하교 친구는 무슨.. 오늘도 0고백 1차임을 적립한 윤기가 아무렇지 않은 척 다시 밥을 먹었다. 여주야 우리 언제 같이 하교하고 언제 같이 데이트 갈래… 윤기는 애써 뱉고 싶은 말을 밥과 함께 삼켜냈다. 하지만 이를 모르는 여주는 자꾸 이렇게 다가오는 윤기에게 헷갈림을 느낄 뿐이었다.



윤기가 같이 하교는 못하더라도 여주 얼굴을 한 번 더 보고 싶어서 수업이 끝나고 여주네 반으로 향했다. 솔직히 이 정도는 선배로서 할 수 있잖아. 그냥 친한 선배니까 얼굴 한 번 볼 수 있는 거 아닌가? 대충 이런 핑계를 대면서 계단을 빠르게 내려갔다. 혹시라도 벌써 반을 나섰을까봐.. 그래도 다행히 종례가 끝나기 전이었다. 오늘 따라 저 말 많은 여주네 담임 선생님께 감사했다.



하필 그 날 여주가 청소 당번이었고, 또 하필 여주 담당 역할이 대걸레 질이라, 모든 친구들이 청소가 끝나 집 갈 때 여주는 홀연히 대걸레 질을 하고 있었다. 원래 반 전체 대걸레가 아니라, 반 나눠서 하는 거였는데 집에 급한 일이 있다던 친구의 말에 여주가 그냥 다 하기로 한 거였다. 결국 반 밖에서 기다리던 윤기가 그걸 발견하고, 한숨을 내쉬며 반 안으로 들어갔다.



"너 진짜 안 그렇게 생겨 가지고 왜 자꾸 호구 짓을 하고 다니냐... 대걸레 어딨어?"


"네?"


"대걸레 어딨냐고"



어디서 나타난 건지 갑자기 나타난 윤기에 당황스러운데, 대뜸 나타나서 대걸레를 달라고 하니 여주는 몹시 당황스러웠다. 아니 원래 선도부라는 역할이 이렇게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학생들 챙기는 역할인가? 공부와 놀기 밖에 모르는 여주는 학교 안 역할들을 잘 몰랐다. 일단 대걸레를 달라하니 윤기 선배 뒤에 있던 걸레 함을 가르키며 저기 있다고 알려줬다. 그럼 윤기는 얼른 대걸레를 빨아서 물을 쭉 짠 다음 빠르게 반 전체를 닦아내겠지.



둘이서 하니까 금방 끝난 청소에 여주는 감사한 마음도 들었지만, 점점 혼란스러웠다. 아니 이 선배 왜 이렇게까지 헌신적으로 나를 돕지? 내가 아는 선도부는 교문 앞에서 애들 잡는 거 아닌가? 나여서 잘해주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왜냐면 윤기는 정말 학교 내에서 유명한 바른 청년이었으니까... 가끔씩 선생님들이 수업하다 지루해 하는 애들한테 재밌는 썰이라며 얘기해줄 때 윤기 선배 얘기가 나온 적이 있었는데, 윤기 선배가 글쎄 너무 올곧고 어쩌구 공부도 잘하고 어쩌고 정말 경찰 같은 사람이라고 떠들어 대던 게 생각 났기 때문에 여주는 윤기의 행동이 정말 원래 그런 사람인지 헷갈릴만 했다.



"근데 선배, 선도부가 원래 이래요?"


"뭐?"



여주는 정말 순수하게 궁금해서 물어봤는데, 오히려 당황한 건 윤기였다. 당연하지, 진짜 남들이 봐도 내가 자길 좋아해서 이렇게 하는 거 지금 여주 빼고 모든 사람들이 알 정도로 잘해주는데, 그게 선도부 역할이라고 묻는다면 전국에 있는 모든 선도부는 역할 박탈이니까.



"선도부가 원래 학생 도와주는 역할이에요?"



그런데 저렇게 순수하게 물어오는 여주에 윤기는 차마 아니라고, 내가 너 좋아해서 그러는 거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냥 대충 얼버무렸다.



"뭐, 비슷해... 대충."



근데 이렇게 까지는 안 하겠지...라는 말은 차마 뱉을 수 없어서 여주가 들고 있던 대걸레를 빼앗아서 성큼성큼 화장실로 향하는 윤기였다. 여주는 자신의 대걸레까지 빨러 가는 윤기 선배의 뒷모습을 보며 다시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진짜? 진짜로? 정말 그냥 선도부 역할을 충실히 하는 거에요?





10.


어느새 중간 고사 준비 기간이 되었다. 덕분에 선도부 활동은 없었지만 바른 청소년 윤기는 늘 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했다. 그래서인지 점심시간 외에 여주와 윤기는 만날 수 없었다. 어느 날은 주말에 여주에게 같이 도서관에 가서 공부하자며 꼬셨지만, 사람이 많은 곳에선 집중이 잘 안된다는 말에 또 0고백 1차임을 적립한 윤기였다.  



사실 여주는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게 집중이 잘 되지 않거나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냥 윤기 선배와 있으면 집중이 잘 되지 않을 것 같아 거절한 것이었다. 하지만 왜 집중이 안될 것 같은지 이유는 몰랐다. 그냥 왠지 선배가 보고 있으면 신경이 쓰이고 내 앞에 선배가 있으면 자꾸 눈길이 갔으니까.. 그래서 거절했다. 하지만 오래 못 볼 줄 알았다면 여주도 거절하지 않았을 것이다.



중간 고사 시험 기간 중에는 급식이 나오지 않고 곧장 집으로 갔기 때문에 5일 동안 여주와 윤기는 아예 만나지 못했다. 윤기도 시험이라 예민해져 여주에게 찾아가지 않았다. 그 동안 여주는 혼자 지내는데 기분이 퍽 이상했다. 안 그래도 계속해서 윤기가 자신을 좋아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혼란스러웠는데, 갑자기 윤기를 보지 못하니 옆이 너무 허전하고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아니 내가 왜 자꾸 이 선배를 생각하지?


사랑엔 서툴렀던 여주는 이 감정이 뭔지도 몰랐다.



그렇게 서로 어떠한 진전도 없이 어느새 마지막 날 시험이 되었고, 여주는 마지막 남은 과목인 국어 과목과 사회 과목 시험을 모두 끝마친 뒤, 답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험이 끝이 나고 답지를 가져 올 담임 선생님을 기다리는 반 친구들끼리 국어 시험에서 논술형으로 나온 외부 지문으로 시끄러웠다.



“야 너네는 외부 시 답 어떻게 썼냐?”


유월에 
-작가 미상-

가시나무에서도 
장미꽃이 피어나는
이 좋은 계절에

마음아, 
무엇을 걱정하고
무엇을 망설이느냐?


“응 그니까 이게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하지 못 한 걸 봄에 피는 장미꽃에 빗대어 표현했다. 이렇게 썼음. 너는?"


"난 좋아하는 사람에 대한 감정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걸 깨닫게 해주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까 그냥 망설이는 것 같네. 아 완전 망했다"




좋아하는 사람이라... 여주는 논술형 문제로 시끄러운 대화 속에서 선택적으로 들리는 단어들에 윤기 선배가 생각이 났다. 


마음아 무엇을 걱정하고 무엇을 망설이느냐?


나는 무엇을 망설이는 거지?


이런 지문에 또 윤기라는 사람이 떠올라 혼란스러웠던 여주는 그저 떠드는 반 친구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마지막 시험이 끝난 윤기 역시 여주를 생각했다. 이제 내 마음을 알릴 때도 된 것 같은데... 정말 생각보다 더 순진하고 순수했던 여주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마음이 없는데 고백해버리면 얼굴마저 보지 못할까 그게 가장 걱정이었다. 이래저래 고민을 했지만 윤기의 성격상 김여주를 안 보기엔 인내심이 부족했다. 결국 시험이 끝났으니 마지막으로 꼭 여주에게 데이트 신청을 해보고 여주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파악해봐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모든 채점이 끝나자마자 윤기가 서둘러 짐을 챙기고 반을 나섰다. 피씨방을 갈 거라는 친구들에겐 대충 피곤하다는 핑계를 둘러댔다. 재빠르게 계단을 내려가 여주의 반 앞에 섰다. 고백할 것도 아닌데 오랜만에 여주를 본다는 사실만으로 윤기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종례를 하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리고 문이 열렸다. 문을 나서는 학생들이 윤기를 쳐다보며 반을 나갔지만, 윤기는 온통 김여주 생각에 신경 쓰이지 않았다.



"야, 김여주"



"어? 선배?"



반을 나서던 여주가 윤기의 얼굴을 보고 알 수 없는 떨림이 시작되었다. 처음엔 놀라서 심장이 뛰는 줄 알았는데, 자꾸 얼굴이 붉어지고 심장 부근이 간질 거리는 것이 아까의 시가 또 떠오르는 기분이었다. 


마음아 무엇을 걱정하고 무엇을 망설이느냐?



"여주야 시험 끝났는데 뭐해?"


웃으며 제게 물어오는 윤기의 얼굴에 여주의 떨림이 더욱 강해졌다. 그리고 그 떨림은 여주의 마음에 확신을 주었다. 


아, 나 선배를 좋아하나 봐.




"오랜만에 같이 밥 먹으러 가자."



"...좋아요."





11.


윤기는 지금 여주의 분위기가 조금 달라졌음을 느꼈다. 밥을 먹는데 자꾸 자신을 힐끔 거리는 여주 때문에 밥이 넘어가지 않았다. 게다가 곧잘 눈을 마주치던 애가 눈도 못 마주치고 고개를 그릇에 박고 떡볶이를 먹는 모습에 며칠 안 봤다고 낯을 가리나 싶었다. 평상시 밥 먹을 때 조잘조잘 떠들기 바빴는데, 오늘은 조용하니 괜히 어색한 것 같았다. 그래도 볼에 양껏 떡볶이를 넣어 먹는 여주가 귀여웠다. 고양이 같던 애가 이젠 다람쥐까지 닮은 것 같았다.



"그래도 잘 먹으니 귀엽고 기분좋네"



윤기 자신도 모르게 속마음이 툭하고 튀어나버렸다. 윤기는 자기도 모르게 나온 말에 당황했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떡볶이 속 오뎅을 집어 먹었다. 하지만 윤기의 귀는 이미 빨개진지 오래였다. 그러나 여주 입장에서 윤기의 모습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오히려 윤기의 말에 자신이 너무 떨려 먹던 젓가락을 멈췄다. 여주가 얼굴까지 더워지자 맵다며 혀를 식히는 소리를 일부러 크게 내고 손 부채로 빨개진 얼굴을 식혀냈다. 덕분에 떡볶이 집에선 묘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도 겨우 겨우 김떡순(김밥 떡볶이 순대) 세트를 다 먹은 후 떡볶이 집을 나왔다. 방과 후에 나와 둘이 논 적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둘 다 무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괜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버스 정류장을 향해 걷는데, 여주는 아까부터 그 시가 떠올랐다.


마음아 무엇을 걱정하고 무엇을 망설이느냐?


자신의 마음을 이제 깨달았는데, 얘기를 해야 하나? 사실 의외로 여주는 연애 경험이 없었다. 좋아한다는 감정을 잘 모르기도 했고 남자 애들이 고백을 걸어 올 때면 왠지 모르게 거부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까 자신이 선배를 좋아한다는 자각을 한 이후부터는 자꾸 입 밖으로 "저 선배 좋아해요"가 나오기 직전이었다. 그래서 아까 떡볶이 집에서도 말을 하지 않고 떡볶이만 우겨 넣었던 거였다. 귀엽다는 말에 "나도 좋아해요."가 나올 뻔 했지만, 애써 붉어진 얼굴을 달래며 참아낸 것이었다.


덕분에 여주는 자꾸 머리속에서 아까 떡볶이 집 풍경이 뇌 속에서 그려졌고, 귀에선 "그래도 잘 먹으니 귀엽고 기분 좋네"... "귀엽고..." "...귀엽고..." 가 맴돌았다. 


"귀엽고..." "귀엽고..." 


나를 정말 그냥 잘 챙겨주는 걸까? 선배는 정말 정의의 사도라는 역할에 심취한 걸까? 나한테 이렇게 하는 이유가 대체 뭐지? 



수많은 물음표 속에서 정말 이 선배도 나를 좋아하는 거 아닐까? 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채웠을 때, 자신의 마음에 대한 확신과 점철되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윤기 선배를 불러 멈춰 세우게 만들었다.



"선배, 저한테 왜 잘해줘요?



섬세한 사춘기 소녀는 무슨, 여주는 한다면 하고, 치마도 줄이고 싶음 줄이고, 하고 싶은 건 해야 직성이 풀리는 21세기 상여자였다. 친구의 배신으로 조금 주눅이 들었던 자신감과 배짱이 다시 튀어 올랐다. 윤기는 갑자기 자신을 부르더니 왜 잘 해주냐고 물어 당황했다. 저번에 듣던 "선도부가 원래 학생 도와주는 역할이에요?" 질문과 일맥상통하는 가 싶었다.


"어?"


"선도부라서 잘 해주는 거 맞아요? 근데 원래 선도부는 아침에 복장 불량 학생 잡는 게 선도부잖아요."



"그,"



이미 한 번 터진 말은 멈출 수 없었다. 윤기가 이제야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려 말을 꺼내려는 시도를 여주의 랩같이 빠른 말이 막았다.



"선배가 원래 친절하고 올곧은 사람인 거 아는데, 제가 지금 좀 헷갈려요.. 저는 선배 좋아하는 걸 깨달았는데, 선배는 그냥 제가 불쌍해서 도와주는 것 같고, 근데 또 귀엽다고 해주니까 괜히 기대하게 되는 것 같고... 선배 진짜 저 그냥 잘해주는 거에요? 아니면 뭐 나만의 선도부 이런 캠페인이 생긴 건가..?"



"골 때리네 진짜..."



정말 예측 불가 김여주의 행동에 윤기는 당황할 대로 당황했다. 아니,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자면 심쿵을 당했다. 나를 좋아한다는 말이 저리 쉽게 나오는 애였을 줄이야. 내가 먼저 당차게 고백해야지 했던 윤기의 계획은 이미 여주의 고백에 사라진지 오래였다. 얘는 밑도 끝도 없이 이렇게 갑자기... 사람 설레게



"너 내가 정말 선도부라서 그냥 잘 챙겨줬다고 생각해?"


"그럼요..?"


"야 어떤 선도부가 후배 불쌍하다고 매일 밥 같이 먹고, 하교 할 때도 찾고, 청소 도와주고, 시험 기간에 같이 공부하자고 불러 대고 또 시험 끝났다고 같이 놀아 달라고 해."

"그게 다 선도부가 할 일이면, 월급 줘야 해."



"그럼 제가 월급 드려야 해요..?"



아니 얘는 또 뭐라는 거야... 진짜 어이 없네?



"내가 진짜 너만의 선도부 뭐 그런 건 줄 아는 거야? 뭐.. 따지고 보면 맞긴 한가..?" 




아니 내가 뭐라는 거야.. 앞에서 갑자기 고백한 여주 때문에 말이 헛나오는 윤기였다. 횡설수설하는 윤기에 여주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윤기를 쳐다 봤다. 결국 민망해진 윤기가 헛소리를 멈추고 머리를 한 손으로 쓸어 넘기며 다시 말을 이어갔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내가 너 좋아해서 그렇게 한 거라고.. 이제야 알았어? 하여튼 눈치도 없어.."

"김여주, 나 너 좋아해. 너가 줄인 교복 치마를 입어서 불량 학생 같던, 줄이지 않은 교복을 입어서 순둥한 강아지 같던 그냥 네가 좋아."



아까 당차던 여주는 어디로 갔는지, 고백을 해오는 윤기에 여주는 얼굴만 붉히며 눈동자를 굴렸다. 고백을 처음 받아 보는 것도 아닌데 이전에 받았던 고백과는 달리 참 이상했다. 꼭 누군가에게 심장을 두드려 맞은 듯 심장이 두근거리다 못해 온 몸이 다 심장 같았다. 윤기 역시 정말 갑작스러운 길 한복판 고백에 귀가 빨개져 있었다. 이상하리 만치 사람이 없는 길바닥이라 창피할 것도 없었지만, 부끄러웠다. 그럼에도 이제 마지막 포인트를 가격할 차례였다.



"그럼..이제 나 너만의 선도부 말고 너 남자친구 해도 돼?"



"..네"










작가의 말..(이 글을 쓰게 된 이유..)

짝사랑 민윤기는 들고 오지 않고..ㅎㅎ

미련범벅 윤기 글이 잘 써지지 않아서 남는 시간에 키보드 두들기던거 때려치우고 인티 들어갔다가 아니 글쎄, 재밌는 게 있더라구요..?

그 방탄성향 테스트 나와 맞는 멤버는? 이거 혹시 해보셨나요..? 제가 글쎄 윤기가 나와서 와 어떻게 딱 윤기 글 쓰려는데 이게 나오지? 신기하네 하면서 결과 읽는데

[방탄소년단/민윤기] 선도부 민윤기 선배 -단편- | 인스티즈


정말 이거 읽는데 딱 선도부였던 윤기가 생각 나는 거에요... 그릇된 것들에게서 보호해주는 남자친구라니... 이거 정말 설레잖아..? 하면서 핸드폰으로 토독 토독 빠르게 쓴 글이랍니다...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는 많이 잡긴 했는데.. 요새는 또 많이 안 잡는 것 같더라구요..? 아닌가..? 어쨌든 써놓고 뭔가 너무 예전 고딩 느낌 같을까봐 올릴까 말까 고민하다가 올려봤어요ㅠㅠ 요새 유행 잘 모르지만 대충 어떻게 어떻게 써냈습니다...

그럼 재밌게 봐주세요ㅠ 미련범벅 윤기는 당분간 느리게 굴러갈 것 같아요ㅠ 구상해둔 내용이 있긴 한데 현생에 치이니까 잘 안써지네욥ㅠㅠㅠㅠ

+핸드폰으로 급하게 써내려 간 거 컴터에 복붙한 거라 오타가 많을 지도 모릅니다.. 몇 번 확인하긴 했는데 혹시 오탈자 있으면 알려주세요!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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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작~가~님~ 학창시절 저에게 없었던 일을 윤기를 통해 기억조작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읽으면서 너무 너무 윤기랑 어울려서 저 계속 소리 질렀어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의문의 0고백 1차임도 너무 웃기고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이고 윤기야ㅠㅠㅠㅠㅠㅠ 오늘 꺼 넘 재밌어요… 흑흑흑 전 또 막화 들고오신 줄 알고 심장 덜컹했습ㄴ다ㅜㅜㅜㅜㅜㅜㅜㅜ 작가님 다음 화도 천천히 들고 오세요‼️‼️ 화이팅💜💜
2년 전
앜ㅋㅋㅋ 막화는 아직 멀었어요!!ㅎㅎ 독자님들 덕분에 글 쓸 원동력이 있어 행복합니다💜 오늘 단편도 재밌게 읽어주셔서 검사해요ㅠ 단편이라 더 쉽게 써져서 윤기 성격이 잘 어울렸던 것 같아요ㅎㅎㅎ 미련범벅 담편도 꼭 가져올게요💜💜
2년 전
독자2
아 넘 좋아요 ㅜ 설렘~♡
2년 전
학창시절 이런 로맨스를 꿈꿨더랍죠..🥺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2년 전
독자3
선도부 민윤기는 최고👍🏻👍🏻
2년 전
올곧은 선도부 민윤기가 체고다…😇🪓
2년 전
독자4
첫사랑 기억이 조작당한 느낌이랄까요😆 저에게도 윤기같은 선배가 있었다면 제 학창시절도 설렘 + 행복이었을 텐데… 찾고 싶다 민윤기🥲 작가님 좋은 글에 오늘도 행복함에 치이고 갑니다🙏🏻
2년 전
그러니까요… 저도 제 학창시절 기억을 윤기 선배로 바꿔버리고 싶은 심정..🥺 오늘도 재미있게 읽어 주셔서 감사해요ㅎㅎ💜
2년 전
비회원79.72
선도부 윤기도 설렘이 느껴져서 좋았어요!
2년 전
ㅎㅎ다행이에욥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2년 전
비회원219.188
너무 재밌게 잘 읽었어요!! 글 진짜 잘 쓰시는 거 같아요 술술 읽헜습니당ㅎㅎ 앞으로도 좋은 글 기대할게요~~❤️❤️
2년 전
독자5
나만의 선도부 캠페인ㅋㅋㅋ
여주 너무 귀엽고
윤기는 너무 스윗하고
너네끼리 알콩달콩해..
진짜 학창시절 기억 조작중이에요
이런 선도부 없는데ㅠㅠㅠ

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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