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PD 홍지수 X 방송작가 너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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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 16분 전, 간신히 눈만 뜬 채 홍피디에게 메일을 보낸 후 침대로 달려갔다.
매주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건 지옥같다는 생각을 하며 잠에 빠져들 무렵 핸드폰이 신경질적으로 울려댔다.
액정에는 '홍지수PD'라는 글자가 선명했다.
혹시 그새 원고를 읽고 시비를 걸기 위해 전화를 건걸까. 눈을 질끈 감으며 전화를 받았다.
"네 김너봉입니다."
-내가 김작가 메일 얼마나 기다린 줄 알아요?
"아..죄송합니다. 원고가 잘 안 풀려서요."
-왜요? 내가 보고 싶어서?
"…. 왜 전화 하셨는지.."
-내일 뭐합니까?
보고싶어서 글을 못 썼냐니.
내가 그제 당신 때문에 술을 어마나 마셨는지 아냐고, 어제는 숙취로 얼마나 고생한 줄이나 아냐고 따지려던 걸 간신히 참고 말을 돌렸더니 내일 뭐하냔다.
내일...뭐하더라. 그냥 바쁘다고 해야지.
"내일 바쁩니다."
-뭐하느라?
"약속있어요"
-그럴 리가.
"어떻게 단정 지으시죠."
-고은희 작가, 강슬기 작가, 김세정 AD 모두 약속이 없는 걸 보고 단정 지었습니다. 바쁘신 작가님이랑 약속 한 번 잡으려면 측근들과의 소통은 필수죠.
"그 분들 말고 ㄷ..."
-설마.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말꼬리를 자르는 홍피디. 역시 싸가지가 없다.
그래 나 친구 없고 만날 사람 없다 어쩔래. 하고 쏘아붙여주고 싶은 걸 꾹 참고는 말했다.
"네...내일 약속 없어요..."
-그렇죠. 그럴 줄 알았습니다. 그 대답을 기다렸어요.
이런 게 바로 답정너인가.
"피디님 만날 시간은 없을 것 같네요."
-김작가 내일 나랑 지방 좀 다녀와야겠어요.
"네. 그럴 일 없습니다."
-현장답사인데도?
"그걸 왜 저랑 피디님이 하나요."
-나야 PD인데 직접 가봐야 하는거고, 김작가는 우리 프로그램 하나뿐인 작가잖아요.
"저 오분 전에 마감했습니다 피디님..."
-어디 살죠? 마포쪽 아닌가?
"피디님?"
-어차피 김세정씨한테 물어보면 되는 거 푹쉬고 내일 아홉시까지 집 앞으로 나와요. 맞춰서 갈게.
또 끊었다. 미친놈.
만난지 이틀밖에 안 된 홍피디 덕에 내가 배운 건 원고에 실을 수도 없는 상스러운 말들 뿐이니, 내 인생에 요만큼도 도움 안되는 사람 같으니라고.
힘차게 12를 향해 달려가는 시곗바늘을 보고 있자니 억장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이틀 밤을 새워 일을 마쳤더니 돌아온 건 지방출장이라니. 일개 작가가 피디. 그것도 미친 피디의 말을 거역할 수는 없는 법.
결국 알람을 일곱시에 맞추고는 잠자리에 누웠는데 억울함이 밀려왔다.
몰라, 잠이나 자야지.
-
핸드폰이 시끄럽게 울어댔다.
매정한 것, 제 주인이 오늘 어떤 수모를 당할지도 모르고 신나게 꽥꽥거리는 알람을 끄고 욕실로 향했다.
직장인들의 아침시간에 눈 뜬 건 오랜만이었다. 기분좋게 샤워를 마친 후 물에 젖은 머리칼을 뒤로 하고 핸드폰 홀드를 풀자 홍피디의 카톡이 보였다.
[일어났어요?]
[보면 답장해요.] AM 6:31
[설마 아직 자요?] AM 7:26
1 AM 7:39 [죄송해요. 씻고 나왔어요.]
답장을 보낸 뒤 수건으로 대충 머리를 터는데 1분도 되지 않아 다시 답장이 왔다.
[나 준비 다 했는데]
[심심해요.] AM 7:40
1 AM 7:40 [네, 힘내세요*^^*]
약올리려는 의도는 없었지만 저 말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저렇게 보내두고 화장을 시작했다.
이건 결코 홍피디를 의식한 게 아닌 어르신들의 안구를 위해서라고 생각하면서 대충 화장이 끝나고 머리를 손질하는데 홍피디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네 피디님."
-왜 카톡 안 읽어요. 혹시 김작가도 그 안..안..뭐라더라. 안...그래 맞아. 안읽씹합니까?
"아뇨, 저 준비중이었습니다."
-그래요. 그럼 끊고 읽도록 해요. 답장은 긍정적으로 부탁합니다.
"네.."
뭔지 몰라 불안한 마음으로 일단 대답을 하고 끊었다.
[뭡니까 저 이모티콘]
[사실 집 앞이예요.]
[15분째] AM 7:41
[이봐요 김작가] AM 7:51
[김너봉씨] AM 8:10
현재시각 8시12분. 그래 내가 아는 홍지수치고는 많이 참았네. 어쩌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다가 결국 올라오라고 했다.
혼자 사는 집에 외간남자라니. 미친거야 김너봉.
답장한지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초인종이 울렸다. 문을 여니 가벼운 차림의 홍피디가 미안하긴한듯 눈웃음을 지으며 서있었다.
"아침일찍부터 미안합니다."
"하하.괜찮다고 쳐두죠."
"나 여기 얌전히 앉아있을테니 준비해요."
"넵..."
-
옷이 팔로 들어가는지 다리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게 정신없이 준비를 마치고 홍피디의 차에 올라탔다. 그러고보니 난 행선지도 모른다.
"어디로 가는건가요?"
"전라도로 갑니다."
"아아...전라도 어디요?'
"벌교요."
"벌교..?꼬막?"
"너봉씨는 음식으로 지역이 통용됩니까?
"아,아뇨? 벌교 꼬막 유명하니까..."
목소리가 점점 기어들고 있었다. 원래 춘천은 닭갈비, 천안은 호두과자, 전주는 비빔밥. 뭐 이런 거 아니겠어?
슬쩍 홍피디의 눈치를 보니 입꼬리가 올라가 있다. 웃지마세요. 하며 쏘아대니 원래 웃는 상이라며 받아치는 저 남자. 하여간 얄밉다.
이제 출발한다길래 기다리고 있는데 도통 차가 움직일 생각을 않자 홍피디를 쳐다보니 그 또한 나를 빤히 보고있다.
눈싸움 한 판 하고 가자는 건가. 멍하니 눈만 꿈뻑이고 있자 그가 웃으며 말을 꺼냈다.
"너봉씨 솔직히 말합시다. 나한테 작업거는 거죠 지금?"
"그럴리가요."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홍피디가 내게 훅 다가왔다.
입술이 닿을 듯 말듯 하다 입술을 지나 안전띠를 메어 주고는 이런 걸 바란거냐고 장난스레 물었고, 나는 손발짓을 섞어가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안전띠 한 번 잊었다가 웬 봉변이람.
농담이라며 얼굴 빨개질 필요 없다던 홍피디가 이번엔 뒷좌석을 뒤적거리더니 담요를 꺼내 짧은 치마 탓에 드러난 내 다리를 덮었다.
"이런 건 결혼하고 봅시다 우리."
다리 한 번 봤다고 결혼이라니 손이라도 잡으면 본인 장례식 때 나까지 순장이라도 시킬 기세였다.
아 뭐 물론, 손을 잡겠다는 건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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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글능글한 지수가 너무 보고싶어서 쓰는데 뭔가 이상해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네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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