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P ; 기억의 습작
세상에 혼자 남다.
눈을 뜨고 세상에서 숨을 쉬기 시작할 때부터 혼자였다.
누가 소녀를 낳았고, 내버렸는지도 모른 채 세상을 떠돌아다녔다.
옆에서 함께 지내주던 친구들마저 더워 죽고, 추워 죽고, 굶어 죽었다.
소녀에게 허락된 것이라고는 찬 공기가 가득한 거리만이 있었다.
이 마을 저 마을로 옮겨다니며 끼니를 찾아다니는 소녀는
자신이 지금 몇 살인지, 이름이 무엇인지도 알 수 있는 방법 또한 없었다.

길을 헤메던 소녀는 물 웅덩이에 자신의 얼굴을 비쳐보았다.
더러운 물에 비친 자신의 얼굴 또한 그 물처럼 더러운 것 같았다.
처량해보였다.
소녀는 자신의 모습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다.
지워버리고 싶었다.
물 웅덩이를 모조리 마시면 자신의 모습을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소녀는 그 더러운 물을 허겁지겁 마시기 시작했다.
"우웨에엑" 물에는 흙이 잔뜩 섞여 곧 물을 모두 게워내버렸다.
다시 생긴 물 웅덩이에 비친 소녀의 얼굴을 보면서 소녀는 다 잡히지도 않는 땅바닥을 움켜쥐었다.

하늘은 쓸데없이 맑았다.
뜨거운 태양이 소녀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소녀는 곁에 있어줄 누군가를 끊임없이 갈망했다.
더 이상 혼자이고 싶지 않았다.
땅바닥을 기었다.
기어서 큰 대문 앞에 도착했다.
'쿵쿵' 문을 두드렸다. 기척 없는 문을 향해 가녀린 흙 묻은 손을 뻗었다.
"살려주세요."
소녀는 미친듯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제발, 제발 혼자 두지 마세요." 끊임없이 차오르는 눈물을 그대로 땅에 흘려보냈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리들이 모두 자신을 비웃는 것 같아
참을 수 없었다.
'쿵쿵, 쾅쾅쾅' 미친듯이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더 이상 이곳에 있고 싶지 않았다.
안으로 들어가면 나로부터 내가 숨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숨을 쉬는 것 조차 괴로웠다.
흙에 머리를 대고 거친 숨을 쉬며 소녀는 울었다.
'끼이익' 문이 열렸다.
그 안에서 한 사내가 나와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누구십니까" 묻는 그를 보며 소녀는 울었다.
그의 바지 끝을 잡으며 애처롭게 말했다.
"나 좀, 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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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냉장고가 이런게 뭐가 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