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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

 

 

 

 

 

 

일리야는 처음 그의 결혼 소식을 들었을 때 사실 좀 심드렁했다. 당시 여왕의 세력은 보잘것 없었다.

그녀는 폭군이었던 아버지와 병약해 요절한 오빠를 둔 어리고 불쌍한 소녀에 불과했다.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이 결혼은 순전히 정치적인 목적이란 걸.

"그래서, 결혼 날짜는 언제입니까? 그쪽에서 먼저 제안한 겁니까?"

"당연히 먼저 제안해 왔지. 결혼은 가능한 한 빨리하기로 했다. 이건 기회니까. 다시 사람들 앞에 당당히 나설 수 있는 기회."

사실 벨랴코프 가(家)는 선왕 때 행보를 명확히 하지 않았다. 입장이 불리할 때면 왕의 편에 섰다. 하지만 그렇다고 크롬피예츠 가(家)처럼 적극적인 조력자는 아니었다.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으나 크게 올바른 행동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린데만 가(家)가 앞장서서 반란을 도모할 때에 비교적 일찍 합류한 편이었고, 사병이 많아 반란에

큰 도움이 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문제는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얌체, 기회주의자..... 요즘 벨랴코프 가를 으레 수식하는 말이었다.

"이번에 왕실에 확실히 도움을 주는 거야. 여왕의 기반을 넓혀주는 거지. 우리 위치를 정확히 알려주고 인정받는다. 꽤 멋진 등장 아니냐? 결혼식 적당히 아름답게 해주고,

하객은 우리 가문 사람들이랑 하인 몇 명 가져다 놓으면 꽤 많을 거다."

일리야는 잠자코 그의 아버지, 벨랴코프 공작을 바라보았다. 그의 아버지는 냉혹한 사람이었다. 소름끼치도록 계산적이었으며 정치적 감각이 비상하기까지 했다.

필요하다면 잔인한 역할도 기꺼이 자처할 정도로. 아마 결혼 제안이 왔을 때 그나 가문에 이익이 없었다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게 분명했다.

"잘해내야 한다. 너는 벨랴코프 가니까. 내 '유일한' 아들이니까."

그는 '유일한'에 힘을 주어 말했다.

"잘 알겠습니다."

일리야는 대답하고 방을 나갔다. '유일한' 아들이라.

***

이 저택 맨 위층의 맨 구석방. 그와 똑같은 어머니를 가진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그의 아버지와 그, 구석방에 음식을 갖다 주는 이 저택의 늙은 집사 밖에 모르는 형제가.

"편지입니다."

일리야느 편지 봉투를 흘긋 쳐다보았다. 보나마나 병원에서 온 편지다.

 

-St.Peterburg Hospital

 

역시. 봉투를 뜯어 대충 내용을 훑었다.

 

안녕하십니까, 주치의 마린스키 박사입니다. 본 병원은 최선을 다하고 있으나 벨랴코프 부인의 병은 별로 차도가 없으며 이에 따른 심심한 애도......

 

여기까지. 몇 달째 똑같은 내용의 편지. 어차피 상관없었다. 그의 어머니가 그에게 웃어 준적은 아주 어렸을 때뿐이었다. 그것도 손에 꼽았다.

어머니의 웃음과 사랑은 맨 위층의 사람에게 있었다. 자신이 아니라.

***

일리야의 결혼과 마찬가지로 그의 부모님의 결혼도 이해타산이었다. 처음엔 그의 어머니도 그의 아버지를 사랑하려 노력했다. 일리야를 낳은 뒤로는 더욱 노력하며 그를

정성껏 돌봤다. 하지만 바뀐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지속되는 불행한 결혼 생활, 바뀌지 않는 매정한 태도, 자신과 똑같이 아들 일리야를 냉정히 대하며 엄격히 교육하는

남편의 모습에 벨랴코프 부인은 완전히 나가떨어졌다. 결국 이 저택에 정이 떨어져 자신의 친가를 자주 드나들었고, 어떤 때는 몇 주일씩 돌아오지 않기도 했다.

일리야는 이 거대한 저택에서 무서운 그의 아버지와 하인들의 수군거림에 둘러싸이는 게 너무 싫었다. 밤이면 그의 방에서 창문을 통해 밖을 쳐다보았다.

'아, 어머니는 언제 돌아오실까?'

차디찬 창문에 볼을 부비며, 잠을 깨며, 그는 어머니를 기다렸다. 환히 웃으며 자신을 안아줄 어머니를......

***

한 번은 벨랴코프 부인이 몇 달이나 집을 비운 적이 있었다. 그의 어머니가 돌아온 날은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밤이었다.

'어머니, 어머니께서 돌아오셨어!'

일리야는 한시바삐 그의 어머니 곁으로 달려가고 싶었다. 갑자기 그의 방문이 벌컥 열렸다. 아버지였다.

"방에서 꼼짝 말아라."

낮게 으르렁대는 목소리에 일리야는 대꾸도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일이지?'

잠시 후에 그의 부모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싸우는 소리였다. 목소리는 여태껏 들어온 그 어떤 목소리보다 난폭하고 맹렬했다.

'혹시 아버지가 어머니를 때리시는 건 아닐까?'

일리야는 덜컥 겁이 나 방문을 열고 소리 나는 쪽으로 부리나케 뛰어갔다.

"당신 미쳤어? 어떻게 그딴 천한 마부랑 놀아날 수 있어!"

"그딴 천한 마부가 당신보다 훨씬 나아!"

"돌았군! 완전히 돌았어!"

"욕하든 말든 마음대로 해요. 자, 내 배를 잘 봐요! 난 이미 그 사람 애를 가졌어요. 당신이 원하는 대로 이 저택을 떠날테니 당신 말 잘 듣는 어린 아내 찾아서 새로 들이든가."

"그건 절대 안 돼!"

"오, 그래요. 또 그 잘난 가문의 명성 때문이겠지!"

"잘 알고 있군! 당신은 이 저택에서 살아야 하고, 당신 뱃속에 있는 아이도 내 아이가 될 거야!"

"이 애는 벨랴코프 가가 아니야! 욘센이라고, 욘센! 당신이랑 이 저택에 있는 모든 게 지긋지긋해! 나갈 거야, 나갈 거라고! 그 사람에게 보내줘!"

어린 일리야의 마음이 산산이 무서졌다. 이제 그의 가슴엔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 단지 매서운 비바람이 치고 있을 뿐이었다.

아, 어머니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다.

자신이 살고 있는 저택, 자신의 아버지, 자신의 모든 것을!

나중에 알고 보니 어머니는 저택에 제 바로 들어온 것도 아니었다. 그의 아버지가 수소문해 찾아 끌고 온 것이었다.

그녀가 친가를 드나들 때 으레 이용하던 마차. 마차를 자주 타다 얘기하며 마음에 끌리는마부 생겼고, 결국 그 마부와 도망쳐 살려 했던 것이다.

어린 일리야, 그를 버리고.

***

그 날 밤 이후로 그의 어머니는 저택에 갇혀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의 아버지의 짓이었다. 일리야는 어머니가 갇힌 방으로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나를 보고 무슨 말을 하실까....'

애정이 담긴 칭찬? 미소? 말도 안 되는 얘기였다. 폭언? 고함? 그런 걸 들을 자신은 없었다.

***

몇 달이 지나고 어느 날 방에서 비명 소리가 났다.

"나쁜 자식! 나쁜 자식! 인간도 아니야!"

일리야는 조심스럽게 방이 있는 복도로 들어섰다.

"어떻게 그 사람을 죽일 수 있어! 어떻게! 이 악마!"

언뜻 그의 아버지의 뒷모습이 보였다. 일리야는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살인자! 당신을 증오해! 저주해! 나가! 꺼져!"

문이 쾅 닫히며 그의 아버지가 복도로 나왔다. 일리야를 흘긋 보고는 그를 지나쳐 계단을 내려갔다. 그의 어머니가 엉엉 울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일리야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사이에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불쌍한 내 아기.... 조금만 있으면 태어날 텐데! 아버지도 없이 태어나다니! 네 아버지는 너에게 이름만 지어주고 가셨구나. 오, 사랑하는 내 아가....."

왜 그녀는 자신을 걱정하지 않는가? 조금 전에 아버지가 살인자란 걸 알아버린 자신을?

***

얼마 뒤 그녀는 아이를 낳았다. 아들이었다. 그녀는 아이를 품에 꼭 안고 그의 아버지와 그에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말했다.

"이 아이 이름은 니콜라이 욘센이에요. 사람들에게 니콜라이를 당신 아들이라고 말할 테면 어디 말해 봐요. 당신이 끔찍이 아끼는 이 저택에서 내 아이와 함게 콱 죽어 버릴 테니까."

벨랴코프 공작은 한참동안 그녀를 노려보더니 몸을 홱 돌려 방을 나갔다. 일리야는 어머니가 혹시라도 무슨 말을 해줄까 방 안에 남아 있었다. 이제 그는 폭언도 들을 각도가

되어 있었다.

그녀는 일리야의 얼굴을 잠깐 보더니 몸서리를 쳤다. 일리야는 그의 아버지처럼 몸을 홱 돌려 방을 나갔다.

***

니콜라이는 자라면서 파란 눈동자를 뽐내며 그의 어머니에게 사랑과 웃음을 받으며 자라났다.

파란 눈동자! 벨랴코프 부인의 눈동자는 회색이었고 일리야와 그의 아버지의 눈동자는 차가운 빛깔의 녹색이었다. 그렇다면 니콜라이의 파란 눈동자는 얼굴도 모르는

그 마부의 것이었다. 일리야는 그제야 어머니가 자신을 보며 몸서리를 치는지 깨달았다. 자신의 얼굴은 그녀의 남편을 떠올리게 했다. 그토록 증오해마지않는.

***

"형!"

니콜라이였다. 자신의 팔을 붙잡고 그는 자신을 형이라고 불렀다. 어느새 그는 자신의 키를 꽤 따라잡고 있었다.

파란 눈동자, 얼굴에 가득히 어머니를 닮은 미소.......

'형? 형이라고?'

일리야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으며 증오 가득한 눈빛으로 니콜라이를 쳐다봤다. 니콜라이는 겁을 집어 먹으며 손에 힘을 풀었다. 일리야는 휙 니콜라이의 손을 뿌리쳤다.

그 바람에 니콜라이가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일리야는 그대로 반대편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

몇 년 후 벨랴코프 부인은 급작스레 병에 걸리더니 점점 심해졌다. 그러다가 지금의 병원에 장기 입원하게 되었고, 벨랴코프 공작은 니콜라이를 방 안에 가두었다.

그의 아내를 가두었던 바로 그 방에.

집사만 빼놓고 하인들은 입막음용으로 두둑이 봉급을 받은 뒤 저택에서 모두 쫓겨났다.

새로운 하인들로 물갈이가 되었고, 이제 저택에 니콜라이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세 사람뿐이었다.

***

'이런, 회상이 너무 길었군.'

일리야는 머리를 흔들어 생각을 털어냈다. 그리곤 병원에서 온 편지를 벽난로 불길에 던졌다.

'어차피 살았는지 죽었는지 확인만 하면 되니까.'

***

여왕을 처음 만나러 가는 날, 벨랴코프 공작은 그에게 도움이 될 만한 '정보'들을 끊임없이 말했다.

"첫째 부군은 걱정하지 마라. 그 자는 자기 딸을 데리고 이미 성을 떠났어. 다시 봤다, 치고 빠질 때를 다 알고 말이다. 장 가(家)는 이제 계산에 넣지 않아도 된다. 더 이상

내세울 만한 인물이 없거든. 그리고......"

"아버지, 이제 저에게 맡기시죠. 저도....."

일리야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벨랴코프니까요."

그랬다. 어머니의 사랑 대신 그를 지탱해준 것은 그의 가문에 대한 자부심이었다.

벨랴코프! 뛰어난 정치적 수완으로 여러 격동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이름! 거리의 비천한 자들은 쳐다보지도 못할!

멀리 성이 보였다.

***

제 몸집보다 큰 왕좌에 앉아 있는 여왕은 말 그대로 소녀였다. 당당해 보이려 애쓰는 모습이 다 보여 웃음이 나왔다. 어이가 없었다.

'저게 내 아내라고?'

여왕은 잔뜩 긴장한 채로 일리야와 벨랴코프 공작을 바라보았다.

"여왕님을 뵙습니다."

그들이 허리 숙여 인사하고 고개를 든 뒤에야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그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냉정한 인상, 초록빛 얼음 조각 같은 눈동자, 차고 흰 피부와 금발.

분명 미남자였지만 어딘가....

'오만해.'

"이렇게 와 주어 고맙군요.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말이에요."

"아닙니다, 여왕님께 도움이 된다면...."

벨랴코프 공작이 솜씨 좋게 대답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질문 하나 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러세요."

"결혼식은 언제로 생각하고 계십니까?"

"딱히 생각해 본 적 없군요. 좋을 대로 하세요."

"그럼 일주일 후로 하겠습니다."

'일주일.......'

"그래요, 그럼."

그들은 다시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정말 나를 마음 속 깊이 존경해서 저러는 걸까? 아마 아니겠지.'

"참, 이름을 물어보지 않았군요. 이름이 어떻게 되죠?"

".....벨랴코프 일리야입니다. 부디 기억해 주시길. 원하신다면."

***

일주일 후 결혼식 날, 아침부터 벨랴코프 가에서 사람들이 나와 자신을 치장해 주었다. 얇고 긴 연하늘색 베일로 머리를 장식했다. 웨딩드레스는 손등까지 내려오는 긴 소매와

바닥에 길게 끌리는 치마가 특징이었는데, 하얀색과 연하늘색이 은은히 섞여 어우러져 매우 아름다웠다. 오른 팔 전체와 왼쪽 어깨부터 몸통으로 내려와 뒤쪽 치마폭까지

화려히 수놓은 무수한 초승달들이 압권이었다. 이렇게 입으니 벨랴코프 가와 결혼하는 게 피부로 다가왔다.

"정말 아름다우십니다."

"이렇게 잘 어울리실 줄이야!"

"여태껏 이리 아름다운 옷은 본 적이 없습니다."

하나같이 칭찬하기 바빴다. 하지만 실제로 여왕은 안색도 파리하고 표정도 굳어 있어 흰빛 드레스를 입으니 더없이 창백해 보였다.

"고마워요, 이제 나가 주겠어요? 혼자 있고 싶어요."

방 안에 혼자 남자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분명히 아름다운 옷이지. 벨랴코프 가문의 것이라고 표시해 놓은....'

웨딩드레스는 벨랴코프 가의 문장을 담아 놓았다. 초승달을 바라보는 한 마리의 늑대, 그게 벨랴코프 가의 문장이었다.

'자기들이 바라보게 항상 떠 있기만 하라는 건가?'

자신의 드레스에는 늑대를 뜻하는 장식이 없었다.

'아마 벨랴코프 일리야, 그 사람이 늑대 역할을 하겠지.'

혹시 이러다가 정말 달처럼 보기 좋게만 걸려있는 신세가 될까 겁이 났다.

"아냐, 그렇게 될 순 없어. 그렇게 되지 않을 거야! 이제 내가 나를 보살필 거야, 꼭 강해질 거야. 꼭!"

여왕은 위안이 준 손수건을 꼭 쥐었다.

***

예상대로 일리야는 중후한 회색 예복에 윤기가 흐르는 늑대 모피를 목에 두르고 있었다. 하객들을 보니 다들 엇비슷하게 생긴 게 벨랴코프 가 사람들 같았다.

일리야는 분위기를 봐서 몇 번 미소 짓기도 했지만, 여왕은 결혼식 내내 단 한 번도 웃지 않았다. 사랑 없이 한 결혼이니 당연한 일이었지만, 예의 없는 행동이기도 했다.

이 결혼으로 이득이 많은 쪽은 여왕이었으니까.

***

밤이 되었다. 사실 둘 다 별로 내켜하지 않았다. 일리야는 침대에 앉아 있는 여왕을 찬찬히 보았다.

길게 늘어뜨린 베일이 여왕의 얼굴을 반쯤 가렸으며 치맛자락은 침대 아래로 뻗어나가 바닥을 넓게 감싸고 있었다. 촛불 빛을 받아 은색 실로 수놓은 초승달들이 우아하게 반짝거렸다. 하지만 딱딱하게 굳은 여왕의 얼굴이 모든 걸 망쳐 놓고 있었다. 일리야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 여왕에게 다가갔다. 베일을 정돈해 등 뒤로 넘겼다. 그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그녀는 몸을 움찔했다.

그가 그녀의 턱을 잡고 그의 얼굴 쪽으로 끌어당기려 할 때.

"싫어요."

일리야는 멈칫했다.

"싫다고요."

그는 여왕의 표정을 잠시 응시했다. 그리곤 픽, 웃었다.

"좋아.... 당신이 싫다는 데 어쩔 수 없지. 내가 무뢰한은 아니니까."

일리야는 몸을 일으켜서 촛불 하나를 더 켰다.

"지금 뭐하는 거예요?"

"내가 여기서 나가면 당신이나 나나 손해야. 분명 구설수에 오를걸. 여기 책 같은 거 없나? 아, 여기 있군."

"당신...."

"소리 새나가면 안 되니까 당신도 조용히 하지. 왜, 책 한 권 줄까?"

".....됐어요."

그는 대답을 들은 후로 책에 시선을 고정했다. 여왕은 어이가 없어서 한참 그를 보다 등을 돌려 침대에 누웠고, 잠시 뒤에 잠이 들었다.

***

다음 날 동틀 무렵, 여왕은 창으로 새어 들어오는 빛에 슬며시 눈을 떴다. 일리야가 흥미롭다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참 곤히 자는군 그래."

".......안 잤어요?"

여왕은 민망해서 바로 몸을 일으켰다.

"책 읽는 것보다 당신 자는 모습 보는 게 더 재밌어서 말이야."

그의 얼굴엔 옅고도 묘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이제 나가봐도 되겠지."

일리야는 의자에서 일어나 문을 열다가 그녀에게 한 마디를 던졌다.

"좋은 거 하나 알려줄까? 여기선 예쁘게 웃을 줄도 알아야 해. 아무한테나 어제처럼 굴지 말라고."

이 날 새벽에는 몰랐다. 그들 앞에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자리하고 있음을. 그토록 심드렁하던 그가 미칠 듯이 그녀와 사랑에 빠져 그녀에게 집착할 것임을.

몰랐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으리라

무엇 때문에 내가 봄이 와도

들판에서도, 풀밭에서도

꽃을 따 모으지 않는지

......

누구와도 말하지 않으리라

왜 내 가슴은

이토록 무겁고,

화난 슬픔이 밀려드는지......

-알렉세이 바실리예비치 칼조프 '러시아의 노래3'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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