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님, 나빠요
w. 채셔
"여주 씨."
아, 또 시작이다. 내 이름이 팀장님 입에서 불려지자마자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하아, 하고 짧게 호흡을 정리한 뒤 일어서서 '네에.'하고 팀장님을 바라보았다. 눈을 내리깔고 서류에 집중한 모습에 나는 고개를 숙이고 팀장님의 책상으로 다가갔다. 국어 시간에 맞춤법 안 배웠습니까? 짜증스레 서류를 책상에다 던지고, 팀장님은 나를 노려다보다시피 올려다보았다. 의자에 반쯤 몸을 기댄 모습이, 다리만 책상에 올리면 거의 사장님이라도 될 기세였다.
"아…. 제가 빨리 작성하려고 하다보니까 오타가 많이 났네요."
"그래서?"
"죄송합니다."
"…끝?"
아니요, 다시 할게요…. 짧게 대답하며 무언가를 더 갈구하는 눈빛에 고개를 한껏 내리고 서류를 챙겨 들었다. 오늘 업무는 당연하게 연장되는 거고, 당연하게 야근이 잡힌 셈이다. 나를 올려다보며 한심하게 바라보는 얼굴에 나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지금 시간이 몇 시죠? 팀장님의 말에 나는 괜히 헛기침을 하며 손목시계를 바라보았다. 이러려고 산 손목시계가 아니었는데. 그저 예뻐서 산 손목 시계였는데, 이렇게 혼나는 용도로 쓰일 줄이야. 나는 5시 24분이요, 라고 작게 대답했다. 팀장님은 일어나서 책상에 손을 짚고 반쯤 책상에 제 몸을 기댄 채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런데 죄송합니다, 다시 할게요……?"
"네, 네…. 죄송……."
"지금 그게 할 말입니까?"
팀장님의 말에 나는 고개를 살짝 올려 '네……?'하고 팀장님을 바라보았다. 끝에는 사실 울음기도 섞여 있었다. 그게, 올바른 대답이냐고 물었는데. 제대로 화난 듯한 팀장님의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 채, 나는 어버버거릴 뿐이었다.
"퇴근 시간 다 되어서 이 서류들 보내긴 했는데."
"……."
"서류는 오류 투성이다?"
"……죄송…."
"김여주 씨는 오늘 업무 시간 안에 이 서류를 끝내야 맞았던 거고."
"…………."
"도대체 업무 시간에 뭘했길래 이딴 쓰레기 같은 서류를 저한테 보냅니까?"
팀장님은 허리에 손을 올리고, 거의 울다시피 어버버거리는 나를 돌려보냈다. 다시 하세요. 그리고 지금 여기, 대학교 같이 인정 넘치는 곳 아닙니다. 알겠습니까? 팀장님의 말이 귀에 맴돌았다. 혼나자마자 단체 카톡에 줄지어 괜찮냐는 말들이 늘어섰다. 그 중에는 내가 좋아하던 지민 씨도 있어서, 한없이 부끄럽고 창피할 뿐이었다. 하아, 하고 짧게 숨을 내뱉고, 컴퓨터로 눈을 돌렸다. 이쯤 되면 팀장님이 나를 싫어한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뭐든, 나에게는 더 혹독하게 화를 냈다. 그래서 거의 사내에는 전정국이란 미친 팀장에게 불쌍하게도 신입이 걸렸다, 고 소문이 난 상태였고. 그리고 더욱 애석한 것은 나와 한참 썸을 타고 있는 박지민 씨가 나와 함께 미개한 신입의 위치라 나를 지켜줄 수도 없었다는 거다.
"전부 퇴근하세요."
"네, 팀장님."
팀장님의 말에 모두들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한 5분쯤 사부작거리더니 깨끗하게 사내가 정리되었다. 사실 정시 퇴근도 팀장님이 온 뒤에 확연하게 달라진 점 중 하나였다. 일할 땐 일하자는 주의여서 그런지, 아니면 유학파라 그런지, 팀장님은 야근이라는 제도를 이해하지 못했다. 특히 저보다 높은 위치의 사람이 앉아있다고 퇴근하지 못한다는 악습을. 제가 생각하기에 가장 비효율적인 일이라는 것이었다. 덕분에 우리 팀만 정시 퇴근을 지키고 있었다. 웃긴 것은 그만큼 효율성이 높은 것도 우리 팀이었고, 성과가 제일 좋아진 것도 우리 팀이었다는 사실이다. 어쨌든 지금 여기에 남게 된 것은 지민 씨가 어깨를 쥐어주며 주고 간 과자들과 커피, 그리고 나 밖에는 없었다.
"하아…."
"또 집중 못하고 멍하게 앉아 있습니까."
계속해서 오타 검토와 내용 수정을 하고, 눈이 빠질 것 같아서 기지개를 펴고 한동안 멍하니 있었는데. 아직까지 팀장님이 퇴근을 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내 뒤에 비스듬히 서서 나를 보고 있었다. 아, 아니에요. 어깨가 아파서…. 팀장님의 말에 허겁지겁 다시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하지만 아직도 책잡힐 게 있는 건지, 팀장님은 내 옆자리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 가만히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살짝 팀장님 쪽을 쳐다본 뒤 다시 고개를 내렸다.
"왜…. 제가 잘못한 게 있어서 그러세요…?"
"회사에, 살림 차렸습니까?"
팀장님의 눈길이 과자들에 닿아 있었다. 이거 지민 씨가 주고 간 건데…. 나는 눈을 질끈 감고, 허겁지겁 과자들을 서랍 안에 넣고 '죄송합니다.'하고 다시 한 번 사과했다. 내 인생은 왜 이런지 모르겠다. 팀장님이 깊게 한숨을 푹 쉰 뒤, 내가 마시고 있던 커피를 집어, 벌컥벌컥 마셨다. 아직도 가만히 앉아 있는 팀장님의 눈 한 번 쳐다보지 못하고, 오타 수정을 헀다. 옆에 있으니까 뭘 고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몇 번 키보드를 두들기다, 이제는 감상 수준으로 나를 보고 있는 팀장님에게 용기 내어 물었다.
"저…, 팀장님."
"네."
"저한테 마음에 안 드는 거라도 있으세요…?"
"……."
"유독 저한테 더… 쌀쌀 맞게 대하시는 것 같아서요…."
팀장님은 가만히 있다 나를 바라보았다. 사실 내가 짐작도 할 수 없는 눈빛이라 가만히 땅을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다리를 꼬고 있던 팀장님은 의자에 몸을 기대고, 그대로 다리를 뻗어 책상 위로 올렸다. 이제야 진정한 사장님의 자세다. 그런데도 뭐라고 할 수 없는 건, 그 자세가 원래 자기의 자세인 양 어울렸기 때문이었다. 아메리카노를 그대로 원샷한 팀장님은 책상에 빈 잔을 올려두고,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기본적으로 업무 시간에 집중도 못하고."
"……."
"그러니까 야근은 누구보다 많이 하고."
"………."
"사내에서 박지민 씨랑 시시덕거리기나 하고."
"………."
"자존심, 자존감은 누구보다 낮고."
팀장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에 나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팀장님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그리고 여유롭게 내 책상 위에 앉았다. 나를 내려다보며 팀장님은 한 쪽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비웃음 같아서 죄송합니다, 라고 말하려는데 팀장님의 손이 내 얼굴에 닿았다. 놀라서 팀장님을 바라보는데, 팀장님에게는 달라진 점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좀 웃기라도 하면 어디 덧나요? 박지민 씨한테만 웃는 얼굴 보여줄 겁니까? 팀장님은 내 얼굴을 한껏 들어올리고 쌀쌀하게 말했다. 팀장님의 말에 억지로 웃어 보이려고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웃으면 웃을수록 어색해지는 표정에 팀장님은 내 얼굴을 놓아주었다. 여유롭게 다시 일어나 제 자리로 가 자켓을 챙겨 입은 팀장님은 이내 내 뒤에 서 내 책상에 몸을 기댔다. 덕분에 나는 팀장님의 두 팔에 꼼짝없이 갇혔고. 팀장님의 향수 냄새가 코를 찔렀다. 팀장님은 마우스로 스크롤해 서류를 대강 검토하다, 나를 내려다보았다. 이어지는 뒷말에 나는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을 느꼈다.
"마음에 드는 건 김여주 씨 밖에는 없는데."
"…네?"
"관심 있는 신입한테 이 정도도 못합니까?"
천천히 일어나는 팀장님을 멍하게 올려다보자, 팀장님은 옅게 웃으며 나를 쳐다보았다. 처음 보는, 팀장님의 웃음과… 고백이었다.
덧붙임
헤헤 예전에 지민이로 썼었는데 이번엔 정국이에오
오늘 열일하쥬?
단편인데 장편일 수도 있고 그래오... 사실 그냥 섹시한 글 써보고 싶어서 썼는데
약간 망한 삘이에오 헤헤
오늘 예쁜 밤 되세오 사랑합니다, 그리고 감사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