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나빠요
w. 채셔
A. 첫만남이 인연의 실을 뱉어낼 때
"안녕하세요, 3학년 2반에 정수연 선생님 대신 부임하게 된 김여주라고 해요."
태형과 여주가 만난 것은 지난 여름이었다. 밖에 있자면 혓바닥을 길게 빼고 헥헥댈 만큼 더운, 그런 한여름. 알고 지내던 선배의 도움으로 간신히 들어오게 된 사립 학교에서, 한 선생님의 출산 및 육아 휴직으로 여주는 담임 자리까지 맡게 되었다. 항상 조언 들어왔고 느껴왔던 것이지만 역시나 담임의 자리는 가볍지만 막중했고, 뿌듯했으나 또 고통스러웠다. 특히 여주의 나이에 이런 남녀 공학의 분위기는 적응하기가 더 힘들었다. 얼른 돈을 벌어야 했기 때문에 조기 졸업까지 해가면서, 딱 죽기 직전까지 공부해 얻은 스물 네 살의 자리에는 특별히 더 그랬다. 남자 아이들은 간만의 여자 선생님에 침을 흘리며 바보처럼 웃어댔고, 여자 아이들은 여주가 질투의 대상이라도 된 듯 뒷담화를 하기 바빴다.
"야, 담임 존나 애기다."
"………."
"무슨 이지은보다 애기 같냐."
지민과 지은이 낄낄거리며 장난을 쳐대는 것을 보는 와중에 여주에게 태형이 눈에 띄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제각기 감정을 발산하는 아이들 사이에 덩그러니 무관심하게 앉은 태형의 얼굴, 그리고 무언가 형용할 수 없는 눈빛은 사실상 태형을 쳐다보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로 특이했다. 그래서 여주는 첫 날,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인지하지 못한 채로 태형을 관찰했었다. 그것은 거의 불가피한 행동이었다. 사실 반에 들어왔을 때부터 태형은 한 번도 여주의 눈빛을 놓친 적이 없었다. 무심한 얼굴과는 다르게 보고 있자면 타버릴 듯한 태형의 시선이 부담스러워질 때쯤, 여주는 간신히 눈길을 돌렸다. 괜히 얼굴이 화끈거리는 기분이었다. 어쩌면 그 나이대의 남자 고등학생에게 사랑을 받는다는 것이 여주 안에 숨겨진 소녀성을 깨웠기에 그런 것이리라. 그리고…….
그 때는 전혀 몰랐다. 학교 생활 내내 태형이 여주를 지독하게 괴롭히게 될 줄은.
B. 선생님, 존나 시끄러워요
"지민아, 청소 똑바로 해야지."
"아, 쌤. 열심히 했거든요."
"여기 먼지 쌓여 있는데?"
하여튼 쌤 열라 깐깐해. 중얼거리는 지민의 이마를 콩 쥐어박고, 여주는 의자에 앉았다. 감시를 하지 않으면 또 청소를 하지 않고 노닥거릴 게 뻔하니. 앉아 빤히 지민을 올려다보는 눈길에, 지민은 통통한 입술을 삐죽이며 걸레를 들고 나갔다. 지민이 나가자마자 하아, 하고 고개를 돌렸다. 요즘따라 수업이 많아 피곤해 죽을 지경이었다. 찌뿌둥한 몸을 몇 번 이리저리 돌린 뒤, 숨을 길게 내뱉으며 일어섰는데. 학생 하나가 더 있었다. 의자 세 개를 붙여 누워 있다가 몸을 일으킨 이는, 태형이었다. 여주의 머릿속에는 '그 애'라고 인식되어있던, 태형.
"넌 왜 청소 안 해."
청소를 해야 할 학생이라고는 보이지 않을 만큼의 여유로움에 여주는 인상을 찌푸리며 태형에게 물었다. 되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저 그 날과 같이, 숨 막히는 응시만 있을 뿐. 선생님 말 무시해? 그래도 이 애의 담임이니 쫄지 말아야 한다는 일념 하에 여주는 허리에 손을 올리고 짐짓 무서운 표정으로 태형을 바라보았다. 태형은 무심하게 여주를 바라보다 다시 의자에 누웠다. 대놓고 무시하겠다는 태도에 열이 뻗친 여주는 그대로 태형의 손을 잡고 끌어올렸다. 그러나 여주의 생각과는 다르게, 끌려온 쪽은 태형의 쪽이 아니었다. 그대로 태형 쪽으로 바짝 끌려온 여주는 다시 인상을 찌푸렸다. 화를 토해내려던 여주의 입술은 빠르게 다물어졌다. 태형의 힘에 질질 딸려 와 그대로 태형의 입술을 탐했기 때문이었다. 아니, 탐했기보다 '탐해졌기 때문에'가 맞으려나.
"너, 너……."
굳은 여주의 얼굴을 느릿하게 바라보던 태형은 그제야 얼굴에 웃음기를 띄기 시작했다. 결코 19살짜리가 가질 수 있는 표정은 아니었다. 마침내 장난감을 얻게 된 애 같은 표정. 그러나 순수하지도, 그렇다고 과하지도 않은 비릿한 웃음이 여주가 본 첫 표정이었다. 여주는 팔과 등에 천천히 올라오는 한기를 느끼며 몸을 떨었다. 태형은 혀로 여주의 타액이 묻은 제 입술을 쓸어올리며 말했다.
"선생님, 존나 시끄러워요."
C. 아, 선생님도 잘못한 거 아는구나.
태형과의 첫 키스 이후 조급해진 것은 태형보다 여주의 쪽이었다. 떨떠름한 기분과 함께 문득 떠오르는 걱정과 죄책감은 한동안 여주의 곁에서 떨어질 생각을 않았다. 더욱 고통스러운 것은 제 반에 들어설 때마다 반복되는 태형의 웃음이었다. 볼 때마다 소름이 돋을 것만 같은 그 웃음. 그럴 때마다 여주는 손을 작게 떨며 긴장해야 했다. 반에 들어갈 때마다 청심환을 먹고 들어서는데도, 태형을 볼 때마다 심장이 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심장의 뜀박질은 결코 여주에게 좋은 것이 아니었다. 무엇으로 해석하든.
"자, 이제 조회 끝났으니까 다들 야자하러 올라가자."
"네에."
반에 갈 때마다 여주는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른 채로 옹알댔다. 맥락은 이제 곧 수능이니 열심히 하자는 내용이었지만, 그것을 인지하고 말하는 것은 아니었다. 거의 무의식적에 가까웠다. 가방과 함께 책들을 챙겨가는 아이들을 멍하게 쳐다보다보니, 어느새 반이 비워진 것을 모르고 서 있었다. 오늘 회의 내용이 담겨 있는 파일과 출석부를 챙겨 나서려는데, 한 애가 앞문으로 주머니에 손을 꽂고 들어왔다. 이번에도 태형이었다. 태형인 것을 확인하자마자 여주는 도망치듯 반을 빠져나가려 했다. 문 바로 앞에서 태형에게 잡히기 전까지. 파일들이 손에서 빠져나가 바닥으로 아무렇게나 떨어져버렸다.
"왜 도망 가요?"
"……도망 안 갔어."
"그래요?"
"……응."
"나 질문할 거 있는데."
태형의 순수한 말에 긴장을 풀고, '뭔데?'하고 태형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번에도 아무 말 않고 실실 웃으며 여주를 바라보는 눈길에, 여주는 미간을 찌푸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화를 내면 낼수록 태형의 표정은 천연덕스러워지기만 했다. 이것부터 풀고 물어 봐. 하아, 하고 체념이 담긴 한숨을 길게 내빼고 여주는 말했다. 태형은 아, 하고 여주의 손목을 붙잡고 있던 제 손을 풀었다. 힘을 주어 잡았던지 태형이 한 손에 잡은 손목이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물어볼 게 뭔데?"
수업에 대한 질문인가 했더니 태형에게는 책도, 문제집도, 시험지도 없었다. 태형의 손을 바라보다 의문스럽게 그 얼굴을 바라보자 태형은 문에 기대 여주를 바라보았다. 뭐냐구, 하고 짜증이 담긴 질문을 하자, 태형은 제 입술을 매만졌다.
"지민이가 봤다던데."
태형의 말에 여주는 뜨악한 얼굴로 태형을 바라보았다. 천하태평한 얼굴로 발 장난이나 치고 있던 태형은 여주의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다시 큭큭 웃었다. 그 웃음이 기분 나빠 여주는 다시 잇새를 꾹 깨물었다. 잔뜩 긴장한 얼굴로 대답도 하지 못하는 여주를 바라보던 태형은 한참을 웃다 하아, 하고 진정했다. 왜 이렇게 긴장해요, 선생님. 아직도 웃음기가 여실한 목소리로 태형은 말했다.
"아, 선생님도 잘못한 거 아는구나."
태형의 말에 기분이 더러워지기 시작했다. 아니, 사실 태형과 한 공간에 있게 된 순간부터. 여주는 이딴 장난 치지 마, 하고 반을 빠져나가려 했다. 아니, 빨리 빠져나가야 했다. 어찌 됐든 태형과 함께 있으면 무언가 위험한 일이 생길 것만 같았다. 그러나 섣불리 빠져나갈 수 없었다. 태형이 여주의 손목을 다시 붙잡고, 문을 잠가버렸기 때문이었다. 닫힌 문을 멍하니 바라보던 여주를 보며 태형은 다시 낄낄거렸다.
"그거, 내 첫키스였는데."
"…이거 열어, 얼른."
"어땠어요? 좀 잘했나?"
태형을 화난 얼굴로 쳐다보자, 태형은 그대로 여주를 문과 제 사이에 가뒀다. 빠져나가려 했으나, 그 팔이 너무 견고해 빠져나갈 틈이 없었다. 거의 체념한 채로 여주는 눈물을 그렁그렁 달았다. 너 나한테 왜 이래………. 울먹이는 목소리로 힘이 잔뜩 빠져 말하자, 태형은 여주와 시선을 맞추며 감탄했다. 와, 존나 예쁘네. 진짜. 태형의 말에 여주는 다시 빠져나가려 발악했다. 하지만 예상한 바와 같이 그렇게 쉽게 벗어날 수는 없었다.
"다시 키스해 봐요. 그럼 나가게 해줄게."
덧붙임
네? 뭐냐구여?
뭐긴여, 나빠요 시리즈져...!
태태와의 사제물이라니 철컹철컹 각이지만
얼른 메모장에 있는 걸 빨리 소진해야 하기 때문에!
우린 꿈을 꾸는 소녀들...☆ 철컹처ㅊㄹ컹... 쿨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