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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진정국/진국] 어쩌다 결혼 - 1 | 인스티즈 


[석진정국/진국] 어쩌다 결혼 - 1 | 인스티즈 

 


W. 맥스 


 


 

 


 

   25 인생이 이렇게 스펙타클 해도 되는 거야?  

  정국은 해도 다 뜨지 않은 컴컴한 시간에 상하차를 끝내고 돌아오며 매일 같이 똑같은 생각을 되짚었다. 저런 생각쯤 안 한다고 입안에 가시가 돋는 것도 아닌데, 습관처럼 한 마디 중얼이는 걸로 하루가 시작했음을 알았다. 전 정국의 25년 기구한 평생을 따라다녔다.

 정국의 인생은 가난을 증명해야만 하는 삶이었다. 새학기마다 선생님에게 불려가고, 자기 딴에 덤덤히 말하고, 씩씩하다고 칭찬을 들어야만 했던. 증명서는 뗄 때마다 부끄러웠고 동사무소에 직접 가서 뭘 받아오는 것도 쉽지 않았다. 

 이제 이 정도는 익숙해졌다고,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꼬리표를 달고 언제 들킬까 전전긍긍하던 몇 년을 떠올리면 그저 스스로가 안쓰러웠다. 그나마 이젠 입에 풀칠할 정도는 돼서 그렇게 불안해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치만 불안한 마음을 전혀 이해 못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여전히 가난하니까. 

 하지만, 애써 눈물 즙을 짜내진 않았다. 크게 군말 붙이기도 싫었다. 애초에 팔자대로 태어난 거, 구태여 울고 불며 더 구렁텅이로 내몰고 싶지 않은 까닭이었다.












 


 


 


 


 


 


 

  진상 손님이 가게 앞 아스팔트에 깨뜨리고 간 소주병 조각들을 쳐다보던 정국이 하, 말간 한숨을 내뱉으며 구부정하게 허리를 구부리다 인상을 찌푸렸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가장 먼저 관절을 확인하는데, 어쩐지 뚜둑 소리를 내며 꺾을 때부터 욱신거리더니 며칠 흘렀는데도 여전했다. 요즘 무리했는지 정국이 저도 모르는 새 단발마의 신음을 내뱉었다. 병원에 가 볼까. 빗자루를 집어 들곤 한참을 고민했다. 당장 집세 낼 돈도 없는데 무슨. 거기까지 고민이 치닫자 애써 통증을 삼키며 빗자루를 이리저리 휘둘렀다. 

 초록빛 유리들이 자잘하게 흩어져 창을 타고 들어오는 노을에 비쳐 반짝였다. 웬일로 평탄한 하루냐 좋아하고 있었는데 무슨 징크스처럼 마감 딱 10분 놔두고 사고친 자리를 수습하고 있었다. 한참 열심히 쓸었더니 손 언저리가 뜨끈했다.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려 쓰레기통에 그대로 유리를 쏟아 부었다. 덤덤하게 내려다보는 정국의 눈에 피곤이 어렸다. 내일은 좀 쉬고 싶다. 되지도 않는 생각을 잠깐 하다 정국은 빠르게 포기하는 것을 택했다. 사장님에게 인사하고, 자연스럽게 발이 다음 장소로 움직여졌기 때문이었다. 

 현재 하고 있는 일들은 남들이 보면 기함할 노릇이겠지만, 만랩 찍은 정국에겐 그대로 나름 체력 안 뺏기고 버틸 만한 난이도에 속했다. 조금의 자투리 시간도 막론하고 고깃집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한 지 어언 두 달이 조금 안 되었다. 시간이 짧아 수입이 그리 많진 않지만, 사이사이 비는 시간에 샌드위치처럼 끼기엔 제격이었다. 게다가 부모는 없고 혼자 살아가는 성실한 대학생. 좁디 좁은 알바 세계에서 이미지가 딱 그정도로 소문난 터라 바로 합격하고서 한참을 방방댔다. 그 갸륵한 선심에 보답하듯 정국은 눈을 빛내며 더욱 충성을 다할 뿐이었다.

 그렇게 매일을 쉬지 않고 일해서 돈을 벌면, 매달 나가는 고정 지출을 내고, 딱 겨우 지금 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돈복은 애초에 쥐고 태어난 게 만 원 어치도 안 될 만큼 지지리 없지만, 그래도 나름 인복은 있다고 스스로를 위안했다. 눈물 겨운 사정을 뻔히 아는 친구 재헌이 놈이 괜찮은 자리를 소개시켜 줬으니 말 다했다.

 중학교부터 고등학교, 심지어 대학교 같은 과까지. 무려 학교가 세 번 바뀔 세월을 지겹도록 붙어다닌 10년 지기 친구였다. 오래 전부터 빚파티 하는 걸 지켜봐 온 재헌으로선 괜찮은 건수가 생길 때마다 정국에게 물어다 주곤 했다. 이번에도 재헌의 인맥빨이 다분한 네트워크 덕에 무려 주 1회 20만원에 호가하는 고액 고등 영어과외를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긴장도 했고, 꾀죄죄한 몰골을 보고 학생 부모도 못 미더운 기색이 다분했었다. 그런데 얼마 전 치룬 모의고사에서 성적이 2등급을 훌쩍 뛰면서 입지가 좀 살았다. 큼큼. 고급 아파트 현관문 앞에 선 정국이 목을 가다듬고 호출 버튼을 눌렀다. 곧이어 부쩍 상냥해진 답문이 들려 오고, 문이 열리자 자연스럽게 가방을 고쳐 매고 안으로 들어섰다.



 


 


 


 


 


 


 


 


 


 


 


 


 


 


 


 

  간단하게 설명하고 떠넘기듯 품에 결재판을 안겨주는 손길이 다급했다. 서론부터 장황하게 적혀 있지만 어떻게든 귀찮은 사업 빨리 해치우려는 속내만큼은 뻔히 숨길 수 없어 석진은 저도 모르게 눈썹을 들어 올렸다. 들릴 듯 말 듯, 작게 탄식을 내뱉으며 생각했다. 진짜 다들 가지가지 한다고.

   “21년도 하반기 전략사업 주도권 확보를 위한 투자 확대안입니다.”

  앞서 남아 있던 서류를 꺼내 살피는 석진의 심기가 심히 불편해 보였다. 한 장, 한 장 넘길수록 적어지는 더미를 응시하다 무심코 시선을 돌렸다. 석진을 제외하고 부회장실엔 전자사업부 사장뿐이었다. 조심스럽기 짝이 없게 뒷짐을 진 사장이 긴장한 것은 대충 육안으로 흝는 것만으로도 확인될 정도였다. 이마에 식은 땀 가득한 모양새가 혼이 날까 맥을 못 추렸다. 

   “이렇게 일처리 하면, 욕 먹는 건 누굴까요?”
   “… ….”
   “저? 아님, 사장님?”
   “… ….”
   “아마 전자일 가능성이 크겠죠?”

  순식간에 가라앉는 음성에 공기가 차가워졌다. 석진이 이런 주먹구구식 일처리를 좋아하는 타입이 아니란 걸 알았다. 누가 진행했든 중요치 않았다. 빠져 나갈 구멍 없이 연대 책임을 물기 때문이었다. 혹여나 잘못 대답했다간 곧 있을 간부회의에서 박살 날 뿐이다. 사장은 끔찍한 미래를 어떻게든 막아 보고자 열심히 도리질 쳤다. 

 누구 하나 봐 주지 않으면 제대로 일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고도 다음 정기 인사에서 무사할 거라고 합리화 하는 건 어느 나라 정신머리냐고 석진은 묻고 싶었다. 누구도 회사 발전을 위해 힘쓰지 않았다. 회장이 된다면 이 썩은 조직부터 싹 다 물갈이로 개편할 심산이었다. 석진은 잔뜩 신경질이 나 괜시리 펜을 멀찍이 집어 던졌다.

   “여기, 이 10p 앞 부분 수정해서 다시 가져 오세요. 점유율 목표 제시한 것부터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설정한 규모 파운드리랑 전혀 맞지가 않잖아요. 다른 건 회장님께 바로 보고 올려서 차질 없도록 하시고요.”

  이미 결재까지 올린 마당에 싹 다 무를 수도 없고, 잔뜩 짜증이 섞인 얼굴을 겨우 지우며 연달아 그림 그리듯 사인을 했다. 바로 결재해 줄지 몰랐는지 화들짝 놀라 펜까지 떨구고 기립하는 게 보여 헛웃음을 내지었다. 사업부 사장씩이나 돼서 글솜씨가 아주 쓰레기라고 한 마디 하려다 개차반 성격 한 번 더 들킬까 봐 석진은 그만두었다. 속으로만 생각할 일이지, 굳이 내뱉는 것도 입아팠다.

 석진이 보고 있던 서류를 더 보지도 않고 대충 밀어내곤 나가보라는 듯 손을 까딱했다. 더 이야기가 이어질 줄 알고 굴리던 눈이 금세 해방감으로 물들었다. 머리를 조아리곤 일사불란하게 뒷걸음질로 멀어지는 사장을 가볍게 무시하고 이내 책상에 얼굴을 처박았다. 

 미간이 잔뜩 구겨졌다. 눈엔 이미 초점이 없었다. 그제야 한숨을 돌리려나 싶었지만 금세 비서실장에게 연락이 왔다.
 
   [부회장님. 내일 오후 3시 경영 현안 포럼 있으십니다.]

  10초도 채 되지 않은 형식적인 어투엔 가시가 박혀 있었다. 아주 빡빡하게도 일정을 잡아 놓으셨구만. 실장으로부터 온 메모를 확인한 석진은 절망했다.
 
 답지 않게, 아니 좋게 말하면 한 발 물러선 것엔 많은 의미가 있었다. 아버지가 상의 없이 몰아 붙인 사업안이기 때문이었다. 평소엔 하나부터 열까지 의견을 물어오던 김 석필 회장님께서 막무가내 식으로 추진한 까닭. 딱 하나였다. 뭐긴 뭐겠어, 자식 놈 꼬라지가 마음에 안 든단 거겠지. 

 작게 한숨을 내쉬니 뜨끈한 숨이 연기처럼 퍼졌다. 책상에 쌓인 서류들 중에 단 하나도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었다. 석진이 나지막하게 욕을 씹었다. 습관처럼 안 주머니에 손을 넣어 뒤적여 봤지만 담뱃갑엔 긴 막대 하나 없었다. 진짜 더럽게 되는 일이 없었다. 일그러진 표정으로 재떨이에 즈려 밟혀 불이 꺼진 꽁초를 응시하던 석진은 푹신한 등받이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아버지의 길을 그대로 걷는다는 것은, 동시에 후광을 업는 일이라 부담스러워 한때는 한량을 꿈 꿨다. 금수저 물고 태어난 것도 모자라 머리 쓰는 법도 예사롭지 않아 하버드 대학까지 원샷 원킬로 조기 졸업한 난 수재였다. 필연처럼 돈이 샘솟는 걸, 굳이 머리 아프게 계산기 두드릴 필요 없었다. 게다가 주변에서 보는 시선도 있거니와, 본인이 희망하기도 하니 부회장 자리는 석진의 형 석중에게 돌아갔다. 2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나 가업을 승계하는 것은 알아서들 할 거라는 심산으로 눈꼽만치 관심도 없었다.

 일을 맡긴 지 어언 1년즈음. 안타깝게도 석중은 너무도 사업가로서 자질이 없었다. 불같고 급한 성격 탓에 임원들과 마찰이 심해 뒷말이 많을 뿐더러, 소밴댕이도 못 되는 배포 탓에 경영 실적은 더더욱 바닥을 칠 뿐이었다. 능력을 모두 의심하던 찰나 금세 아버지의 귀에 들어가게 되었다. 김 석필 회장의 인생엔 후진이란 없었다. 직진 신념 그대로 석중을 불러 조직도에 걸린 ‘부회장’, 세 글자를 쭉쭉 그어버렸다. 해고 통보였다. 꼴랑 이사장 자리로 좌천되며 아웃이라는 소리였다.

 가만히 있다간 한참 치고 올라오는 회사에 통째로 먹혀 합병될 판이었다. 지구 한 바퀴 여행을 일삼던 석진에게도 어렵지 않게 소식은 전해졌다. 미래그룹 파산설이 돌고, 라이벌 그룹에선 좋다구나 향후 시나리오까지 판을 짜고 나섰다. 석진은 지고는 못 사는 성격이었다. 그 꼴만은 두고 볼 수 없어 망설임 없이 나서기 시작한 게 지금의 자리에 오른 단초였다. 

 다들 회사의 2인자 자리가 바뀜에 깊은 불신을 표했지만, 석진은 형이자 전 부회장이었던 석중보다 훨씬 월등했다. 아버지 유전자를 그대로 빼닮았는지 회사 운영에 탁월했고, 몇 개월 채 지나지 않아 후계자로 낙점되었다. 장자 상속의 전통이 뿌리 깊은 재벌가가 어디 갔냐며 물고 뜯기 좋던 가십거리들이 쏙 들어갔다. 미래그룹은 탄탄대로를 걷고, 현재는 계열사 수가 80개를 꿰찰 만큼 부동의 1위 그룹이 되었다.

 하지만, 회사가 거대하게 몸집을 불린 만큼 내부의 적도 눈덩이 불듯 불어났다. 파격적인 인사조정에 찬성표가 던져진 반면 계속해서 석중의 무리가 개입하는 바람에 끊임 없이 갈등을 빚었다. 자칫 방심했다간 언제고 추락할 수 있었다. 석진은 흔들리는 입지를 다잡고자 끝없는 사투를 벌였다. 업계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하는 게 석진의 성공 필승 전략이었다. 이 같은 접근이 잇따른 성공을 거두게 했고, 뒤에서 호박씨를 깔 지언정 그 누구도 함부로 석진의 능력을 폄하하지 못 했다.

 그런 석진의 주변으로 요란하게 들쑤시며 시끄럽게 만드는 것이 있었다. 입 밖으로 꺼내지고, 실행으로 옮긴 적도 없지만 이번엔 또 다른 주제였다. 그 주제로, 아버지도 은근히 압박을 주는 눈치였다.

 회사를 일으켜 세운 구세주라며 금지옥엽 막내밖에 모르는 아들 바보 김 회장도 딱 하나. 마음에 안 드는 꼬라지라 하면, 바로 ‘결혼’이었다. 


 고작 결혼이란 게 미래그룹을 뒤흔드는 사상 초유의 문건이 됐다는 생각에 석진은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미래타운은 그룹의 컨트롤타워이자 소위 심장이라고 불리는 업무단지였다. 그 곳에서도 맨 꼭대기, 30층엔 김 석진 부회장실이 존재했다.

 석진이 경영 전면에 등장한 시점과 맞물려, 앞으로의 미래를 이끌어 갈 것이란 관측이 유력시 되면서 항상 아래엔 수십 명의 취재진들이 몰려 있었다. 게다가 며칠 간 정재계 인사들과 잇달아 만나며 추진력을 높여 가는 석진의 운영은 떠들석하게 대한민국 전역을 달구고 실시간 검색어의 상위를 다툴 정도로 큰 이슈였다. 각 인터넷 신문사마다 대문짝하게 「 김석진 ‘뉴 미래’ 경영 행보 주목 」 같은 헤드라인이 즐비했다. 

 각 사업부 마다 계속 브리핑이 들어갔고, 미래전략실에선 지휘부 전신으로서 막강한 위상을 가지고 업무 조정에 나서는 움직임을 보였다. 물론 언론에서는 개척론을 펼치는 석진에 대한 찬사가 들끓었지만, 막상 석진은 닥치고 집안사나 해결하라며 콧방귀나 뀔 가족 구성원 몇몇을 떠올리며 착잡해지곤 했다. 

 출입기자들에게 깜짝 입장 발표를 내걸고, 매스컴 앞에 나타나서 육성으로 일장 연설을 하는 기자회견 장면은 전파를 타고 흘러 나왔다. 석진은 뉴스를 마저 봐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했다. 이미 3사에서 앞다투어 내 보낸 걸 어쩌겠냐마는, 말실수 한 건 없는지 되짚어 보는 정도였다. 결국 지친 기색으로 석진은 리모컨을 눌러 전원을 껐다. 내부는 금세 적막으로 가득 찼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는 석진의 목이 녹슨 로봇처럼 삐걱댔다. 

   “다들 식사하고 오시죠. 시간이 늦었습니다.”

  석진이 자리에서 일어나 집무실 주위를 둘러보고 나서야 눈이라도 마주칠 새라 코빼기도 비추지 않고 코박고 일하던 미래전략실, 경영지원실, 사업팀 직원들이 쭈뼛거리며 일어날 기미를 보였다. 한 마디 내뱉은 석진의 눈길이 점점 아래의 자리로 옮겨 갔다. 

 석진의 자리 또한 각종 서류 탑으로 깨끗한 것은 아니지만, 다른 쪽은 조잡한 편이었다. 내내 야근을 거듭하면서 일회용 커피 잔이 족히 수십 개가 나뒹굴었다. 눈알이 뻑뻑했다. 삼삼오오 모인 직원들이 저마다 저녁 메뉴를 읊으며 방문을 나섰다. 제법 큰 소리가 나고서야 석진은 애써 정신줄을 부여 잡았다. 하루종일 서류 뭉치를 품에 이고 있어도 마감일까지는 무척이나 빠듯했다.

 패기 넘치게 결혼 반발 의사 내던졌다가 뼈도 못 추스를 판이었다. 불같이 화를 내더니 기어코 떡 하니 골치 아픈 일을 떠넘긴 석필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기한 내로 끝내지 못 하면 싸그리 모가지 조심하라는 불호령이 떨어졌다. 그저 협상용 카드가 아님을 안 순간 석진은 제대로 등골이 서늘해졌다. 머릿털이 쭈뼛 서고 사색이 되었다. 만만히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이 기세라면 항복할 때까지 제대로 괴롭힐 거였다.

 역시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하이에나처럼 한 번 문 먹이는 쉽게 놓치지 않는 게 바로 김씨 가문 내력이었다. 해결될 때까지 물어 뜯는 건 하여튼 판박이었다. 두통으로 쿡쿡 쑤시는 느낌에 석진이 살짝 미간을 구기며 머리를 감쌌다. 처음에 결혼 얘기가 나왔을 때, 어떻게든 갈무리 했어야 했다. 한두 번도 아니고 저러다 말겠지 싶어 굳이 사족을 안 붙였는데 암묵적인 동의라고 알아듣는 바람에 단단히 오해를 샀다. 결국 이 지경까지 이르고 만 것이었다.

  딴 생각을 열심히 하는데 순간 주머니 안에 있던 핸드폰이 진동하는 게 느껴졌다. 뒤적거리며 꺼내들자, 역시나.

   [아버지]

  양반은 못 되는 인물이었다. 갑자기 걸려온 전화에 시선이 슬쩍 시계로 향했다. 지금 시간이면 한참 초청 만찬을 즐기실 시간인데. 생각보다 일찍 마무리 되었는지 끝나자마자 전화를 걸어대고 있었다. 수십 번 진동 소리가 오고 갔는데도 끊어질 줄을 몰랐다. 이러다 핸드폰 불 나겠네. 아주 활활 타겠어. 석진이 꿍시렁거리다 못내 귀를 가져다 대었다.

   “네, 아버지.”
   
  최대한 형식적으로 대꾸하자 수화기 너머로 대뜸 더럽게 받기 싫은 말투로 대꾸하는 거 아니냐는 타박 아닌 타박이 돌아왔다. 그럼 뭐, 아버지께서 어려운 전화 걸어 주셨냐며 눈물 한 바가지라도 흘려야 하나. 무덤덤한 제 반응에 석필이 한숨을 쉬는 소리가 들렸다.

   ㅡ 집에 좀 와라. 새해 밝은 지가 언젠데, 한 번 다 같이 봐야지.
   “… ….”
   ㅡ 결혼 얘기도 마무리 못 했고.

  얼마 전까지는 큰아버지가 된통 난리를 치시더니. 석진이 입맛을 쩝 다시며 작게 중얼거렸다. 이틀이 멀다 하고 걸려오는 석진의 전화에는 결혼 이야기가 반 이상이었다. 이 입으로 꺼낸 적도 없는데 회사 블라인드 게시판은 고사하고, 라이벌 회사까지 허다하게 결혼설을 물어봐 대니 말 다 했다. 적은 가까이에 있다고, 분명 누군가 헛소리를 퍼뜨린 게 분명했다. 그 레퍼토리야 뻔했다.

   “결혼은 무슨 결혼이요? 맡겨주신 일 덕분에 바깥 구경은 커녕 행동 반경이 30층에 머물러 있는 걸요.”
   ㅡ 집도 안 보내준다고 같이 일하는 직원들이 욕 안 하더냐? 그렇게 적 만들어 봤자 입지만 좁아질 것을.
  
  잘 나가나 싶더니, 결론은 또 협박식 언사가 되어버렸다. 대체 결론은 왜 항상 저 모양인 건지 영문을 몰랐다. 뭐라고 한 마디 하고 싶었지만 또다시 머리가 쿡쿡 쑤셔오는 통에 결국 말을 아끼며 석진은 꾹 참고 말았다. 죽을 정도는 아니지만, 은근 신경질적으로 타고 오르는 통증이 미칠 지경이었다.

   ”예. 평생 먹을 욕을 몇 달 안에 배부르게 먹고 있네요. 이러다가 아주 유병장수 하는 거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안 그래도 할 일이 많은데 거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가족들까지 쌍으로 난리를 쳤다. 부회장으로서 해야 할 일과 안 해도 될 일의 벽이 허물어진 건 오래 전이었다. 지옥이 따로 없었다. 정말 지.옥이었다.

   “아버지 덕분에 그나마 지키고 있는 위태위태한 자리도 곧 나가 떨어지게 생겼네요. 그렇게 친히 가는 길 배웅해 주지 않으셔도 될 텐데요.”

  석진이 날카롭게 쏘아붙여도 핸드폰 너머 석필은 꿈쩍도 안 했다. 나름 각오하고 던진 부회장 아들의 경고치레도 무시하고 연신 아픈 잔소리가 귓가를 때려대자 석진이 더 미간을 구겼다. 잔소리를 들으니 더 아픈 것 같았다.

   ㅡ 다음 주 수요일 세 시다. 늦지 말 거라.

  석필의 마지막 말이 들리자마자 석진은 가차 없이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욱하고 올라오는 무언가를 누르려 깊게 심호흡을 했다. 더 듣고 있다간 병원행이 아니라 그대로 비명횡사 하기 직전일 뻔했다.

 쥐 죽은 듯 고요한 숨소리만 들려 왔다. 아까는 귀가 따갑더니 이젠 너무 조용했다.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었다. 피곤이 덕지덕지 묻은 채 석진은 머릿칼을 거칠게 헤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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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독자님들 맥스입니다. 

제가 대략 5년만에 작가로서 컴백을 하게 됐습니다(짝짝) 보고 싶었어요!! 

이번 한 해는 의사로서의 삶은 잠시 접어 두고, 어쩌다 결혼 연재에 집중해 보려고 합니다. 

매주 1~2편이 업로드될 예정이며, 인스티즈 글잡담과 블로그에 동시 연재할 생각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문의 관련해서 메일 및 댓글로 다 받습니다. 


 


 


 


 

어쩌다 결혼. 

written by. 맥스 


 

2022.03.03~ 

지독한 클리셰를 담은 계약결혼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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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자까님!!!!! 완전 기다렸어요 ㅠㅠㅠ
2년 전
독자2
작가님ㅜㅜ 이런 선물이라니…💜
2년 전
독자3
세상에
2년 전
독자4
하러러러ㅓ럴 헐 맥스님!!!!!!!!!!!! 헐!!!!! 너무 반가워요ㅠㅠㅠㅠㅠㅠㅠㅠ진짜 보고싶었어요ㅠㅠㅠㅠㅠ 앞으로 계속 챙겨보겠습니다💜💜💜💜 너무너무 기다럈어요ㅠㅠㅠ
2년 전
독자5
헐 맥스님!!!!!! 헐헐헐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세샅에ㅠㅠㅠㅠㅠㅠㅠ

2년 전
독자6
헐 맥스님!! 세상에 맥스님 글 가끔 생각날때마다 정주행하고 있었는데ㅜㅜㅜ 갑자기 이렇게 서프라이즈로 오시면 너무 감사합니다💜
2년 전
독자7
헐 맥스님!!! 이렇게 다시 뵙게 돼서 너무 기쁘네요💜 이번 작품도 달려보겠습니다
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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