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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앤오프/이창윤/김효진] 설렘의 법칙_16 | 인스티즈 

[설렘의 법칙_16] 

 

 

시간은 훌쩍 지나가 어느새 해가 떨어지고 노을이 지기 시작했다. 저녁준비로 분주한 가운데 그 새 친해진 1학년들은 저들끼리 떠들기 바빴다. 나 역시 테이블 세팅을 마치고 겨우 앉아 고기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때였다. 

 

"어 저기 민균이 아니야?" 

 

옆에서 같이 한숨돌리던 동기가 툭 치며 하는 말에 고개를 들었다. 정말로 저 멀리서 손을 흔들며 다가오는 박민균이 보였다. 

 

"뭐야 너 지금 온 거야?" 

"응. 방금 후발대로." 

"짐은?" 

"짐? 없는데? 근데 뭐야, 맛있겠다." 

 

아무리 다음 날 바로 간다지만 정말로 양치도구 하나만 달랑 들고 온 민균이를 멍하니 보다 일단 얼른 앉아. 자리를 내어주었다. 그러자 신나서 앉으며 질문들을 쏟아낸다. 

 

"와서 뭐했어? 재밌었어?" 

"뭐... 그냥 게임하고 이것저것." 

"보니까 우리 셋 다 같은 조던데." 

"우리 셋이라니?" 

"나 누나 효진이 형. 우리 셋." 

"한 조에 재학생 두 명 아니었어?" 

"뭐야 몰랐어? 나 후발대라서 그냥 효진이 형네 조로 넣어줬잖아." 

 

사실은 오는 줄도 몰랐다고 하면 혹시나 삐질까봐 대충 맞다맞다 그랬지, 어색히 웃음으로 때웠다. 다행히 눈치는 못챈 것 같다. 

 

"...근데 넌 왜 늦은 거야?" 

"축제 연습때문에. 엠티 끝나고 곧이니까." 

"아, 밴드부도 공연하지. ...근데 보컬 효진오빠 아니야? 같이 연습안해도 돼?" 

"엉. 근데 효진이 형 학생회라 빠지고 오늘은 그냥 우리끼리 했어." 

 

그러고보니 축제 시즌도 금방이었다. 가만 보면 중간 끝나고나서가 어째 더 바빠지는 것 같다. 학생회 선배들이 축제준비도 좀 도와줄 수 있냐는 말에 덜컥 알았다고 했던 게 떠오른다. 내가 왜 그랬지. 작은 한숨을 내쉬는데 민균이는 많이 배고팠는지 계속 젓가락만 만지작댄다. 

 

"좀만 기다려. 고기 곧 나올거야." 

"굽는거 안 도와줘도 되나?" 

"거의 다 됐을걸." 

"...아 근데 승준이 형 생각난다. 고기는 승준이형이 구워주는게 짱인데, 그치." 

 

안 그래도 나 역시 생각하던 바였다. 고기는 이승준이 진짜 잘 굽는데. 수긍하며 조금 아쉬워하는데 민균이가 무언가를 찾는듯 두리번댄다.  

 

"근데 창윤이 형은?" 

"이창윤? 저기있잖... 어 얘 어디갔지." 

"창윤오빠 잠깐 숙소갔다온다던데요. 얼굴 지우러 간 것 같아요." 

 

내 말에 앞자리에 앉아있던 1학년이 거들었다. 조금 전 이창윤네 조가 게임에서 완패하고 받았던 벌칙 때문에 생긴 얼굴의 낙서를 지우러 간 것 같았다. 그래도 고기 나오기 전엔 와야할텐데. 숙소 쪽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을 쯤이었다. 

 

"효진이 형!" 

"어 민균이 왔네. 언제 왔어?" 

"나 방금." 

"연습 잘 했어?" 

 

반갑게 부르는 박민균의 목소리에 뒤를 돌았다. 테이블로 구워진 고기들을 갖다주던 김효진이었다. 연습빠져서 미안하다는 김효진의 말에 민균이는 괜찮다면서 갓 나온 고기에 정신이 팔려있다. 순간 나와 눈이 마주치자 김효진은 뭐 필요한 거 있어? 하며 다정한 목소리로 내게 묻는다. 아, 아뇨아뇨 손을 저었다. 그러자 예쁘게 웃는다. 

 

"많이 먹어 여주야." 

"네에... 오빠는 안 드세요?" 

"이제 정리하고 먹으려고." 

 

 

한참을 맛있게 먹고 배가 불러오는 가운데, 여기저기서 웃음소리와 여러 대화가 오간다. 처음엔 좀 낯가리던 민균이도 어느새 옆자리의 1학년과 친해져있다. 같이 얘기하다말고 순간 옆에 놓여진 창윤이의 아이폰이 시선에 들어왔다. 그러고보니까 이창윤이 아직도 오지 않는다. 폰도 두고 가고. 

 

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건가? 아무래도 이창윤을 찾으러 한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일어서려던 찰나였다. 누군가 뒤에서 톡톡 치는 느낌에 놀라 휙 뒤를 돌아봤다. 

 

"깜짝이야. 너 왜 이제와?" 

 

그 주인공은 바로 이창윤이었다. 그런데 표정이 무슨 일 생긴 것 마냥 다소 울상인 표정이다. 뭐라고? 창윤이가 뭔가 말하는데 시끄러운 탓에 잘 들리지 않아 한번 더 되물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귀에 가까이 대고 말을 한다. 

 

"큰일났다고." 

 

그 행동에 잠시 당황해서 왜, 이,일단 나가서 얘기해. 이창윤의 소매를 질질 끌며 애들이 모여 있는 곳을 빠져나왔다. 고기 먹던 곳에서 좀 떨어진 곳에 도착하자 그제야 다시 물었다. 

 

"왜. 무슨 일 있어?" 

"이거... 뭘로 그린 건지 알아?" 

"어?" 

"안 지워지는데..." 

"......" 

"...어떻게 지워?" 

 

그러면서 자신의 볼을 가리키길래 자세히 보니 볼이 발그레하게 물들어 있었다. 아까 이창윤네 조가 벌칙 받을 때 내가 장난친답시고 립스틱같은 걸로 걔의 두 볼에 빨간 동그라미를 그려넣었던 게 생각이 났다. 그게 물로는 잘 안지워지는 거라 아직까지 붉게 남아있는 거였다. 나름대로 심각한 표정을 보니 터져나오는 웃음을 겨우 참아내곤 잠깐만 기다려봐. 창윤이를 세워놓고 빠르게 숙소에서 클렌징티슈를 가져왔다. 

 

"누가 이렇게 안 지워지는 걸로 그려놨대..." 

"너잖아. 아까 다 봤어." 

"...눈 감으라고 했는데 너 실눈뜨고 있었냐?" 

"사실 본 건 아닌데 그냥 느낌이 너야." 

 

감고 있던 한쪽 눈을 뜨며 창윤이가 말한다. 대체 얘는 날 어떻게 생각하는 거야. 찔려서 클렌징티슈로 볼을 문지르며 입을 꾹 닫았다. 

 

"...그래서 밥도 안 먹고 계속 이거 지운 거야?" 

 

눈감고 끄덕끄덕. 보니까 지워보려고 열심히 세수한건지 머리카락 끝이 촉촉하게 젖어있다. 내가 좀 심했나? 괜히 미안해지는데 창윤이가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다. 

 

"어, 어때? 지워져?" 

"어, 지워지지 그럼." 

"...다행이다. 영원히 안 지워지는 줄 알고 진짜..." 

 

걱정했다고. 이어지는 말에 바보냐? 다 됐어. 픽 웃으며 티슈를 정리하는 나를 보며 이창윤은 안도의 웃음을 되찾는다. 

 

"막상 오니까 어때 엠티. 재밌지?" 

"그냥 뭐..." 

"뭘 그냥이야. 애들이랑도 많이 친해진 것 같던데." 

 

애들이랑도 금방 친해졌으면서 괜히 그런다. 마냥 웃던 이창윤은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내게 묻는다. 

 

"너 아까 공 맞은덴 괜찮아?" 

"뇌세포 죽는 느낌이긴 했는데... 지금은 괜찮아." 

 

좀 과장해서 말하자 뇌세포 죽는 느낌이 대체 뭔데, 그 말이 웃긴지 다가와 손으로 내 머리의 아픈 부위를 찾는다. 갑자기 가까워진것에 당황해서 난 자연스럽게 눈을 피했다. 

 

"여기야?" 

"...아니, 여기." 

"어?" 

"왜?" 

"혹 생겼는데?" 

"진짜?" 

 

그 말에 화들짝 놀라 손으로 재빨리 확인해보니까 아무것도 없다. 뭐야, 아니잖아. 어느새 내게서 멀찍이 떨어져 장난스레 웃는 창윤이를 노려봤다. 

 

"다행이네. 이제 가자." 

"야, 또 장난이냐?" 

 

괜히 소리치니까 뒤를 돌아보며 아, 지워줘서 땡큐 볼을 가리킨다. 그런 이창윤을 가만히 보다가 천천히 뒤를 따랐다. 그래 이상하다니까. 쟤는 여전히 똑같은데 내 마음만 이러는게. 

 

 

 

 

"이제 여주 누나 차례예요. 어 안주먹을 시간 없는데," 

"아 잠깐만..." 

 

학생회가 고심해서 짜준 조는 의미가 없어진지 오래다. 레크레이션까지 마치자 저마다 뒤섞여 줄곧 술게임만 해댔다. 이번 새내기들은 유독 술이 쎈건지 뭔지 쉽게 취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 틈에서 나만 거하게 취해가는 것 같았다. 

 

"여주야, 십분있다가 저 방으로 와." 

 

시끌시끌한 가운데 술병들을 치우고 있던 김효진이 술게임에 죽어가는 나를 구해주러왔다. 내 옆으로 다가오더니 나긋한 목소리로 작게 일러줬다. 

돌아보자 싱긋 웃으며 일어난다. 효진이형 어디가요, 같이 게임해요. 1학년들이 붙잡았지만 이따가 올게, 하면서 어디론가 향한다. 저기가 재학생 방인가. 

 

"왔어?" 

 

이미 알딸딸한 상태로 문을 열고 들어간 곳에는 익숙한 몇 얼굴들도 섞여있었다. 김효진이 반갑게 손짓했다. 얼떨결에 김효진 옆으로 가 앉았다. 잠깐 자리를 비운건지 저쪽에 민균이의 자켓이 널브러져 있다. 

뻘쭘하게 김효진 옆에서 과자만 집어먹는데 얼마 지나지않아 한번 더 방문이 열렸다. 나처럼 뭔지도 모르고 불려온 듯한 이창윤과 그를 데리고 들어오는 박민균이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너도 왜 여깄어 하는 표정이다. 그 때 건너편 자리에 앉은 선배 한명이 창윤이에게 여기 앉으라며 부른다. 

 

"자 오늘 다들 수고많았다 짠!" 

 

학회장 선배의 말이 떨어지자 다들 잔을 들었다. 부학회장은 특별히 준비한 거라면서 양주까지 꺼낸다. 제대로 된 술판이 시작된거다. 

 

"뭐할래? 술게임?" 

"아 뭔 술게임이야." 

"그럼 뭐하게." 

"사람도 별로 없는데 진실게임이나 하자." 

 

한 마디 뻥긋 안 했는데 저들끼리 대화 끝에 뭐할지 단번에 정해버린다. 웬만한 술게임들은 이미 1학년 때 닳도록 했기에 질렸다 이거였다. 그러던 와중에 누군가 무언가를 추가로 꺼내들었다. 

 

"아 맞아 이것도 가져왔는데." 

 

거짓말탐지기였다. 과방에 묵혀뒀던 걸 언제 챙겨온 건지 모르겠다. 

 

"해서 진실 나오면 통과. 거짓 나오면 두 잔. 대답 못하면 한 잔. 어때? 대신 마셔주기 이런 거 없고." 

 

저거 아파서 싫어하는데 다들 재밌겠다는 반응이었다. 그래도 흑기사 같은 건 없다는 말에 이창윤 것까지 마셔줄 일은 없겠다 싶어 다행이다 싶었다. 누군가 빠르게 빈 술병을 가지고 온다. 

 

"나부터 돌린다." 

 

순식간에 초록색 술병이 빙글빙글 돌아간다. 술병의 회전횟수가 늘어갈수록 다들 하나 둘씩 취해갔다. 진실게임이라는게 늘 그렇듯이 놀랍지 않은 별 거 아닌 답변들 속에 미처 몰랐던 썸의 기류 같은 것이 하나 둘 숨어있었다. 분위기가 한껏 무르익어갈 때쯤 돌아가던 술병이 천천히 멈추며 나를 가리켰다. 

 

"뭐 그냥 가볍게, 좋아하는 사람 있다 없다." 

 

아까 술게임할때 많이 마셔서 이미 주량이 간당간당한 상태였다. 있다고 대충 대답했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다들 관심을 보인다. 앞에서 있다고 한 사람들은 다 암암리에 누굴 좋아하는지까지 알려진 사람들이고 나는 아니다 이거였다.  

 

"그러면, 좋아하는 사람 성 말하기." 

"...네?" 

 

그래서 어쩌다보니 내가 타깃이 되어 이런 질문들이 이어졌다. 대답하지 못한 결과는 종이컵으로 양주를 두 잔 째 들이키고 있는 나였다. 꽤 높은 도수의 양주가 목구멍을 타고 흘러내려가니 속이 뜨거웠다. 여주 너무 빨리 마시는 것 같은데... 옆에서 김효진의 걱정어린 목소리가 들린다. 

김효진에게서 또 한 잔을 받아 마시는데 입에 대자마자 잠시 놀랐다. 이번 건 술맛이 나지 않았다. 이건 분명 물이다. 

 

"너네 바꿔치기한 건 아니지?" 

 

보아하니 마지막 잔은 김효진이 다른 사람들이 보지 않는 틈을 타 자신의 물 잔과 바꾼 것 같은데 하필 그걸 본 눈치빠른 선배 한 명에게 딱 들켜버렸다. 어쩔 줄 몰라 두 손을 저었으나 그 선배는 의심의 끈을 놓지 못한다. 그런데 그 순간 김효진이 물대신 양주가 가득 들어있을 컵을 집어들었다. 

 

"그럼 내가 이거 마시면 되지?" 

 

어 대신 원샷해. 선배들이 수긍하자 물 맞다니까. 잔을 한번에 비워내고 김효진이 나지막하게 말한다. 저거 되게 쎈데 원샷한게 걱정이 됐다. 그런데 엎친데 덮친격으로 근데 너네 왜 계속 여주한테만 질문해. 김효진이 웃으며 덧붙인 말이 불씨가 되었다. 어 그럼 이번엔 효진이 갈까? 그렇게 타겟이 바뀌었다. 

 

"여기에 좋아하는 사람 있다 없다?" 

 

또 다시 진부한 질문이지만 김효진에게 던져진 질문이라면 의미가 달랐다. 원래 같으면 과연 어떤 대답을 할까 긴장했겠지만 올라오는 술기운때문에 그럴 힘도 없었다. 잠자코 있는데 김효진이 얼마지나지 않아 대답한다. 

 

"...있다." 

 

거짓말탐지기까지도 진실을 가리키자 환호성이 오갔다. 헐 김효진 좋아하는 사람 여기 있다고? 누군데? 저마다 웅성댄다. 난 묘한 기분이 들어 방바닥만 바라봤다. 

 

"됐어, 질문 끝났으니까 다음 넘어가." 

"오케이. 나지? 아 우리 창윤이는 언제 걸리나?" 

 

다음 차례가 진경언니였던 건지 고조된 분위기를 환기시키기 위해 팔까지 걷어붙이며 돌릴 준비를 한다. 그러고보니까 아까 가만 안둔다고 했었는데. 언니는 곧 승리의 미소를 지어보였다. 진짜로 이창윤이 걸려버린 거다. 

 

"첫 질문 계속 똑같아서 재미없으니까 그럼," 

"....." 

"좋아하는 사람 있으면 언제부터 좋아했는지. 없으면 없다고하면 돼." 

 

기존의 질문보다 한 단계 심화된 질문이었다. 일제히 창윤이를 바라봤다. 나 역시 어지러운 시야로 이창윤을 눈에 담았다. 분명 나와 눈이 마주친 것 같은데 시선을 돌린다. 

 

"그냥 마실게요." 

"뭐야 첫 질문인데 이걸 마신다고? 야 이제부터 대답못하면 다섯 잔 마시는 걸로 하자." 

 

대답을 기다리던 언니가 싱겁다는 표정으로 장난을 걸어왔다. 이창윤은 무언가 곤란하다는 표정이다. 그 때 나한텐 없다더니... 진짜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걸까? 그 생각에 괜히 취기가 올랐다. 이 상황에 초치는 것 같지만 몸이 뜨거워지는게 바람이라도 쐬야할 것 같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잠깐 나갔다올게요." 

 

혼자 나가도 괜찮겠어? 김효진의 걱정스런 물음에 끄덕이곤 이창윤이 대답하기도 전에 그렇게 자리를 떴다. 그래서 결국 대답은 듣지 못했다. 그대로 문이 닫힌다.  

왜 난 좋아하는 사람에 대한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으며 이 상황에서 이창윤의 대답은 왜 또 궁금한걸까. 정리되지 않는 감정때문에 기분이 밑으로 가라앉았다. 

그래도 확실히 밖에 나오니까 찬바람이 볼에 닿는게 시원하다. 자주 취하긴 했어도 이렇게 취한 적은 드물었는데. 역시 도수 높은 건 달랐다. 숨을 내쉴 때마다 더 취하는 것 같다. 어쩌면 곧 필름이 끊길 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 때였다. 

 

"김여주!" 

 

누군가의 다급한 목소리에 걸음을 멈췄다. 고개를 돌리니까 세상도 함께 빙빙도는 것 같다. 어지러운 시선 끝에는 걱정된다는 표정으로 따라나온 이창윤이 서 있었다. 눈이 자꾸 감기고 고개는 푹 숙여지는데 다가온 이창윤은 무릎을 낮춰 눈을 맞춘다. 

 

"너 괜찮아?" 

"괜찮지 그럼... 왜 나왔어." 

"취했네." 

"뭘 맨날 취했대..." 

"취했으니까 취했다고 하지. 혼자 어디가. 위험하게." 

 

그러면서 한쪽 어깨로부터 흘러내린 가디건을 올려 여며준다. 이창윤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마구 울리는 기분이 든다. 

 

"열 나는 건 아니지?" 

 

상태가 많이 안 좋아보인건지 뜨거운 볼 위로 손등을 댄다. 밖 공기만큼 찬 손에 순간 몸이 움츠러든다. 그럼에도 술 기운이 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요새 들어 의식적으로 피했던 창윤이의 두 눈을 똑바로 마주친다. 반면에 심장은 귀 바로 옆에서 뛰는 것처럼 느껴질만큼 쿵쿵 빠르게 뛰어온다. 알코올의 영향일까. 

 

"일단 들어가자. 내가 잘 얘기할테니까 그만 마시고 좀 쉬어." 

"왜... 나 괜찮은데." 

"너 여기서 더 마시면 안될 것 같아." 

 

창윤이는 비틀거리는 나를 데리고 다시 숙소 쪽으로 돌아가려한다. 하지만 걔의 옷 끝자락을 내가 꽉 붙잡는 바람에 그러지 못했다. 이창윤... 중얼거리자 창윤이가 돌아본다. 그러자 그동안 말 못했던 마음들이 충동적으로 튀어나오려한다. 

 

"너 요즘 왜 자꾸..." 

"어?" 

"왜 자꾸..." 

"할 말 있는 거야? 아니면... 무슨 일 있어?" 

"...아니야." 

 

하마터면 최근 내가 느끼는 마음을 그대로 말해버릴 뻔했다. 아직 그 정도의 이성은 남아있었는지 뱉어내지 않아 천만다행이었다. 

 

"뭐야, 왜 말 안해줘." 

 

몸 속의 알코올 농도가 높아지니까 기분도 롤러코스터를 타는 건지. 그 말에 한 순간 심통이 나버렸다.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도통 모르겠다. 

 

"말 안해주는 건 너잖아." 

"뭐?" 

"없다며. 좋아하는 사람. 왜 거짓말해." 

"갑자기 그게..." 

 

휘청이는 나를 따뜻하게 붙잡아주는 창윤이의 손을 뿌리쳤다. 

 

"왜 나한테만 비밀이냐고." 

 

조금은 웃음기 띈 황당하다는 표정이 점차 곤란하다는 얼굴로 바뀌어간다. 

 

"난 항상 너한테 뭐든 다 말해주는데..." 

"......" 

"내가 너한테 유일하게 말 안했던건 딱 그거 하나밖에 없었다고..." 

"...그거?" 

 

한번 시작된 말들은 멈출 줄을 몰랐다. 나한테만 숨기고 있다는 게 적잖이 서운했었나보다. 분명 내일 되면 후회할텐데, 이불이나 뻥뻥차고 있겠지만 그런데도. 

 

"고 2때, 너랑 짝꿍이었을 때 내가 너 좋아했던거..." 

"...뭐?" 

"아 몰라. 근데 그건 말 못할만하잖아. 어쨌든 그거빼고는 너한테 다 말했는데 넌 어떻게," 

 

두서없이 늘어놓는데 말이 없길래 고개를 드니까 보이는 건 굳은 표정의 이창윤이다. 다음날의 내가 보고 있었다면 뭐하는 거냐고 단번에 말렸겠지만, 또 그런 걔한테 다가갔다. 

 

"야 뭘 그렇게 심각해. 어차피 과거형이잖아. 웃어." 

 

팔을 뻗어 손가락으로 이창윤의 입꼬리를 올렸다. 그리고는 그게 웃기다고 혼자 실실 웃었다. 취해서 몸에 힘이 들어가지않아 손가락에 점차 힘이 풀린다. 멍하니 나만 바라보던 창윤이가 떨어지는 내 손목을 붙잡는다. 그런 정적이 어색해서 침을 꿀꺽 삼켰다. 잠시 무언가 생각하던 창윤이가 입을 뗀다. 

 

"...난 아니야." 

"그...래. 당연히 아니겠지. 어차피 옛날 일이라니까..." 

"......" 

"아 근데 왜 자꾸 말 돌리냐고, 그래서." 

"난 지금도 좋아한다고." 

"...어?" 

 

시공간이 정지된 것만 같았다. 뭐라고 한 거지, 지금 잘못 들었나. 

 

"...뭘?" 

"너."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어지러운 머릿속, 흐릿한 시야로 나를 보고있는 이창윤이 보였다. 그러니까 이게, 

 

"너 다른 사람 좋아하는 것도 알고 그래서 대답바라고 한 말도 아니야. 근데," 

"......" 

"지금 아니면 말 못할 것 같아서 그랬어." 

"...장난이지, 장난치는 거지 이창윤." 

"장난치는 거 아닌데."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겠고, 뭐가 어떻게 되는 건지 모르겠다. 심장이 너무 빠르게 뛰어서 터질 것만 같다. 

 

"너 취했잖아." 

"......" 

"그래서 말하는 거야. 어차피 내일되면 기억 못할거니까." 

"...이창윤." 

"그러니까 지금 이것도 듣고 그냥 잊어버려. 알았지?" 

 

마주 본 눈빛에는 흔들림이 없다. 

 

"너 많이 좋아해." 

"......" 

"그래서... 미안." 

 

이내 시선을 스르륵 피해버린다. 힘겹게 켜져있는 흐린 가로등 불빛만 맴돌았다. 유난히도 봄다운 5월의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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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최고예요…🥺 설렘의법칙은 군백기 덕질의 오아시스 같아요ㅠㅠ
1년 전
온퓨
핳🥺 그렇다니 넘 다행이에요..💗 고마워요
1년 전
삭제한 댓글
(본인이 직접 삭제한 댓글입니다)
1년 전
온퓨
져도 창윤이가 보고싶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1년 전
독자3
아아아 까먹지마.....여주야....내일 기억해...반드시...꼬옥 기억해죠야대 ㅠㅠㅠㅠㅠㅠ 이창윤 이건 반칙아닌가요 자까님,,,,, 심장나대지마
1년 전
온퓨
과연 기억하고있을지 두근두근..!! 봐주셔서 고마워요😊💗
1년 전
독자4
꺄 작가님 저 심장 터질 것 같아요ㅠㅠㅠㅠ미쳐 드디어 고백했어ㅠㅠㅠ매회마다 심장을 들었다놨다하시는 작가님...최고... 오늘 편도 너무 재밌어요!!
1년 전
온퓨
드디어..!! ㅎㅎ 재밌게 봐줘서 고마워요💕 좋은 저녁 보내요!
1년 전
독자5
끄아아아아ㅏ아앙 진짜 넘 설레는거 아니냐고요오옹
진짜 드디어 고백을..!! 아우 둘이 잘돼쓰면 좋겠다오 ㅠㅠ

1년 전
온퓨
(잘됐으면 좋겠다) 저도 같은 마음입니다.. ㅎㅎㅎ 읽어줘서 고마워요💗
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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