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2년 경성의 봄, 벚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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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야..."
부스스한 머리를 정리하며 침대에서 일어난다. 30분동안 꼼짝없이 자더니 갑자기 일어나 주섬주섬 신발을 신는다.
"가는 거야?"
신발끈을 묶다가 내 물음에 고개를 휙 돌린다. 그리고 물끄러미 나를 바라볼 뿐이다.
"....."
씨익 하고 웃더니 말을 이어나간다.
"가지마?"
"...."
"가지말라고 하면. 안가."
"사람 떠볼때도 참 너답다?"
"너야말로. 답지않게."
얼굴가득 웃음꽃이 피었다. 이렇게 웃으면서 집에 돌아갈 수 있으면 좋으련만...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는 판에 웃음이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웃는 윤기의 얼굴을 보고 있지만. 웃음속에 갇혀있는 그의 진실이 알고싶었다. 어쩌면 두려워서 피하고 있던건지도 모르겠다. 모든걸 알게된다면 마음속 어딘가가 텅 빈 느낌일 것 같아....
"...."
"여기 부산이야."
"부산?"
"일본으로 가."
"무슨소리야. 갑자기 내가 일본에 왜?"
"....일단 가자."
"넌."
"너 보내면 나는 못가. 민윤기 이름달고 가는거야 너."
떠밀리듯 내려온 대구에서 떠밀리듯 부산까지 내려왔다. 이렇게 또 일본까지 가야할까? 그의 말만을 믿고?
"김여주.."
불안해하는 내 마음을 읽었는지 내 옆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내 어깨를 감싸준다.
"자꾸 힘들게해서 미안해. 딱 한달만 가 있어. 거기서 일본어 공부도 하고. 글쓰는 방법도 알아서 와."
"....."
"공부 하고싶어했잖아."
"....."
"조심히 다녀올 자신 있지?"
"...응."
"그래 윤기야."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내가 윤기..."
"앞으로 민윤기라는 이름에 익숙해져야 해. 네 두번째 이름이라고 생각하고 지내."
"..."
"아 그리고"
윤기는 가방에서 서류봉투 하나를 건네준다. 그리고 예쁜 포장지에 싸여있는 상자도 같이.
"이게 뭐야?"
"유학선물."
포장지 속에는 자수로 된 기모노가 한 벌 들어있었다. 아름다운 빛깔에 한참을 두리번거렸던 것 같다.
"잘다녀와."
"...응."
"보고싶을거야."
"....그래."
항상 공부에 목말라했던 나여서 그런지 부모님의 동의없이 덜컥 일본유학을 가겠다고 해 버렸다.
짧게도 아니고 한달인데 걱정되긴 했지만 그를 믿어보기로 했다. 속는 셈 치고.
-
"잘갔다와."
"그래."
"가서 조선말 다 까먹지 말고. 냉면어도."
"냉면어가 뭐야 냉면어가."
"평양냉면ㅋ"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다가 배에 탈 시간이 됐다. 윤기는 나를 한번 쳐다보더니 자신의 가슴에 단 학교뱃지를 달아주었다.
"나 갈게."
"이번이 마지막은 아니잖아."
"....."
"잘 다녀와."
"...."
"잘가."
"그래."
"...."
아쉬워하는 윤기를 뒤로하고 선착장으로 향했다. 입국 허가증에 버젓이 남자라고 쓰여 있어 많이 애를 먹었지만 어찌저찌하다보니 배에 오를 수 있었다.
적당한 자리에 짐을 올려놓고 그 옆에 앉았다. 10년만에 다시 학생이 됐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입국 허가서
이름 : 민 윤기
성별 : 남
나이 : 20
거주 기간 : 1932년 3월 20일 ~ 1933년 3월 30일
위 학생을 경성제국대학에서 도쿄대학으로 1년간 교환학생임을 확인함. 이에 따라 위 기간동안 입국을 허가함.]
1년이라는 시간동안 윤기는 무얼 하고 지낼까?
*3개월 뒤
"아재요 여기 국시 두개만 말아주이소~"
"예예~"
"형아~ 국수 쏟아뿟어요ㅠㅠ"
"그래 잘했어~울지마"
"윤기야 여기 육수물!"
"네~!!!"
대구 한 재래시장. 무척이나 바빠보인다. 국수를 나르는 한 청년이 보인다. 그는 땀 닦을 시간도 없이 바쁘게 하루를 살고 있다.
"하이고 벌써부터 덥네. 아직 여름도 안왔는데 이칸디."
"그러게 말입니다."
"여기 오늘수당. 수고했데이~"
"네~ 내일 뵙겠습니다."
터벅터벅 돌아가는 발걸음이 무겁다. 그녀를 보호해야겠다는 마음 하나로 덜컥 유학을 대신보내버렸다. 사실 김교수님께 귀뜸을 해놓긴 했지만 들키면 우리 둘 다 끝장인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있다.
걱정되는게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가족들로부터 연락이 끊긴 지 3개월, 한글회와 교류가 끊긴지 3개월이다. 사실 한글회나 가족들이나 일본으로 많이 편지를 보냈지만 그는 읽을 수 없다.
아마 그의 이름을 두번째 이름으로 가지고 있는 사람이 받아보고 있을 것이다.
"후...덥다."
그녀의 부모님께도 설명해줘야 했다. 가족들은 모두 당황해하더니 여주를 위해 이해해주기로 하셨다. 대신 1년동안 그녀가 맡았던 일들을 하고 있어야 했다. 물론 수익은 부모님들께로 빠져나갔지만.
갈 곳 없어 나를 재워주는 그들이 고마워 더 열심히 일하곤 했다.
"아이고 우리윤기 듬직한게 우리 여주 신랑감일세~"
가끔가다 이런 칭찬을 받을때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이 말 한마디만 참고 버티기엔 버거웠지만 그런데로 잘 참고 지내고 있었다.
"형아..."
"응?
"편지..."
"...."
한글회로부터 온 편지였다. 여주의 이사한 대구집은 또 어찌 알아냈는지 모르겠다. 더 이상한건 받는사람 이름이 민윤기였다는 거.
편지봉투를 잡고 한참을 생각했던 것 같다. 태어나서 이토록 심장이 뛴 적이 있나 싶을정도로 빨리 뛰었다.
[0230261190
6월 25일 오후3시.
늦지말고 정각에 전화할 것.
-김석진-]
덜컥 겁이났다. 준비해놓은 변명은 많았지만 막상 상황이 다가오니 당황스럽기 짝이 없었다. 뺨한대 시원하게 맞고 끝날 일이었으면 지금 소년의 몸이 이렇게 떨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침착해...'
태연하게 아무렇지도 않게 그는 짐을 챙겼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대답해줄 수 없었다. 묵묵히 돌아갈 채비를 마치고서야 운을 땐다.
"잠시 경성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저..윤기야..."
"언제 돌아올 지 저또한 예상할 수 없기에 먼저 인사드립니다. 그동안 아들처럼 생각해주시고 너무 감사했습니다."
소년은 가장먼저 소녀의 할머니에게 다가가 큰절을 올렸다. 그리고 옆으로 자리를 옮겨 부모님께 큰절을 올린다. 소리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 가족들은 무엇이 두려워 울고 있는 것일까.
어쩌면 거들은 그가 처음 집에 왔을 때부터 이런 이별을 예감했을 지도 모른다.
"형아..."
"연준아 형이 가르쳐준 기술 기억나지? 누가 너 괴롭히거나 가족들 힘들게 하면 바로 써먹어야 돼. 그래야 사나이지."
"...형 안가면 안돼?"
조심스럽게 그의 손을 끌어잡은 작은 손을 바라보다가 싱긋 웃고는 동생과도 같았던 그를 쓰다듬어준다.
천천히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서기 전 다시한번 가족들을 돌아본다. 묵묵히 말한마디 없던 여주의 아버지가 입을 연다.
"오래살어."
가벼운 묵념을 하고는 문을 닫았다.
오래살라는 말 속에 담긴 진짜 의미를 곱씹으며 터덜터덜 길을 떠났다. 경성에 올라가면 얼마나 머리아프고 엉망인 생활을 해야할까.
[0230261190
6월 25일 오후3시.
늦지말고 정각에 전화할 것.
-김석진-]
"남자가 전화는 무슨. 면대면으로 만나야지."
귀찮다는 듯 그의 편지를 구겨서 아무 길바닥에나 던져버린다. 그리고는 기차역으로 향했다. 그를 경성으로 돌려보내줄...
*
"미친놈아."
"....잘 지내셨습니까."
"민윤기 생각이 있는거야 어? 머리는 폼으로 들고다니나??"
"여보 진정해요."
"여자에 미쳐가지고 아무것도 안보여? 그렇게 사리분별을 못해?"
"아버지 진정하세요. 일단 윤기말을 들어봐야..."
"시끄러워!!! 민윤기 너 이제 내아들아니야. 썩 꺼져."
"....안녕히계세요."
"너진짜 미쳤어!!!!"
역시 집안은 엉망이었고 나는 더 엉망이었다. 소식이 없는 나를 기다리느라 애가 탔는지 가족들 모두 야위어있었다. 늦은 저녁 조명가게. 손님들이 있건없건 소리를 막막 지르는 아버지 때문에 형이 손님들께 일일히 사과를 하고 있었다.
한 일본인이 전구를 사러왔다가 미개한 조센징이라며 침을 뱉고 나간다. 아무데서나 침을뱉는 그가 더 미개해보였지만.
나는 이제껏 모두를 위해 내가 희생했었다. 남들보다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왔기에 금전적으로 손해보는것쯤 한글회를 위해 기꺼이 할 수 있었다. 김여주도 그랬다. 사실 조명가게에서 그앨 처음 봤을때부터 호기심이 생겼다. 어떤 사람일지.
그런데 우연인지 인연인지 내 앞에 다시나타났었고 관심이 생겼다. 이성적인 관심보다는 그냥 평범했던 내 인생에 특별한 일이 생긴 느낌? 왜냐하면 처음본 그날이 딱 내 생일이기도 했고. 그냥 불쌍한 마음이 들었다. 다쓰러져가는 지민이 집에서 이불을 감싸고 자고있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 불안해보였었다.
그래서 옆에서 중심을 잡아줄 사람이 필요해 보였다. 방황하는 그녀를 제대로 안내해 줄 사람이 나라고 생각했고 그 일을 했다고 생각했다. 그녀를 안전한 곳으로 보내줬고, 하고싶은 공부도 시켜줬으니.
언젠가부터 그녀를 보고있으면 설렌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의 손길을 받으면 묘한 감정이 싹트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이상했다. 20년동안 살면서 그런 감정을 처음 느껴봤으니.
처음엔 구역질이 나왔다. 속이 울렁거려 자연스럽게 행동할 수 없었다. 그래서 더 차갑게 굴었던 것 같다. 상처받은것같은 그녀의 표정을 보며 가슴아팠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겁을 줘 일본으로 유학을 보내준다면 한글회에 정식으로 합류해 오래 볼 수 있을거라는 이기적인 생각이 나를 사로잡고 있었다.
이때까지는 그랬다. 내 1년을 바쳐도 아깝지 않을만큼의 사람이라고 합리화시키고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 뒤에서 가슴을 치며 눈물을 흘리고 계시는 어머니를 보다 번뜩 정신이 들었다. 내가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죄송합니다..."
"윤기야. 가족들이 얼마나 걱정했는 지 알아?"
호기심이 불러일으킨 결과는 참혹했다. 다시는 이렇게 흔들리지 않아야겠다고 결심했다. 무릎을 꿇고 싹싹 빌었다. 아버지의 분이 풀리지 않은 것 같았지만 약해지는 내 모습을 보더니 안방으로 들어가신다.
어머니께서는 얼굴이 많이 그을렀다면서 나를 걱정해주셨다. 피곤하다는 나를 방으로 돌려보내주시며 안방으로 들어가신다. 대구에서 가져온 짐을 풀고 있었는데 갑자기 형이 들어왔다.
"나랑 얘기좀 해."
"미안 피곤해서."
"김여주가 누구야."
소리없이 고개를 돌려 형을 쳐다봤다. 형의 손에는 길다란 비녀 하나가 들려져 있었다.
내가 김여주를 만난 첫날 주웠던 것이었다. 언젠가 인연이 닿으면 다시 돌려줘야지 하고는 서랍장 깊숙히 넣어뒀던 물건이었다.
너무 오래전 일이었고 그 사이에 많은 일이 일어난 터라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게..."
"제대로 말해."
"...."
"일본에 있는 걔 맞아?"
"...."
"다 알고있어."
"그럼 왜물어보는건데.."
"아니길 바랐는데."
"...."
"한심한 놈."
비녀를 던지고는 신경질적으로 문을 열고 나갔다. 힘없이 침대로 떨어진 비녀를 보다가 다시 김여주가 궁금해졌다. 그녀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내가 이렇게 힘든만큼 잘 지내줘야 하는데. 뭐이제 상관할 바는 아니지만 내가 3개월동한 했던 고생이 아까워지니까.
*
"선배..."
"정말 오랜만이다?"
"김여주가 어디갔는지 모른다더니만."
"....죄송합니다."
김여주가 보냈을 것으로 추정되는 편지봉투들이 수북하다. 나혼자 모두를 속이고 있다고 생각했었구나.
"읽어봐."
서류봉투 하나를 건네준다. 안을 열어보니 사진들과 편지 하나가 담겨있다. 아니 편지가 아니라 서류에 가까운 문서가 들어있었다.
[민윤기 학생이 체육대회 도중 축구골대에 머리를 부딫혀 혼수상태입니다. 의사들은 가벼운 뇌진탕이라고 진단했지만 이틀째 미동도 없이 깨어날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아 학교절차상 학교와 가정에 편지를 보냅니다.]
"아...."
이제서야 이해가 된다. 가족들이 그렇게 길길이 날뛰던 이유를. 의외로 차분한 석진선배의 모습을 보면서 나 또한 덤덤한 척을 했다.
"이정도 속아줬으면 된 것 같은데, 넌?"
"...."
석진선배는 이 모든걸 알고 있었다. 어쩌면 예상했을 수도 있겠다. 김여주를 지켜준답시고 계속 데리고 다녔던 나니까. 일본까지는 몰라도 부산에 있을거라고는 생각했었을 것 같다.
그러다 연락이 싹 끊기니 확신했을거고.
"이제 어쩌죠?"
"어쩌긴."
"...."
"가서 김여주 여기로 보내고 너가 일본유학가면 되는거지. 제자리를 찾아가는거야. 김여주 깨워서 보내고."
"김여주는 어디로 가는겁니까?"
"걔? 걔네집에 가야지. 왜 여기까지 와서도 너 대타 뛰어줘야 되냐? 세 살이나 많은 누나를?"
"....."
말없이 일본행 티켓을 건네준다. 당장 내일아침이다. 당황스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일단 김여주를 보러가는게 우선순위였다.
나 때문에 모두 엉망이구나.
"난 그래도 김여주 다른 여자들하고는 다르다고 생각했었는데."
"..."
"왜놈들이 달라고 하기전까지는 정말 한글회 회원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 지나고 나서 흘리듯이 말하는 그가 괘씸했다. 소심한 복수로 문을 활짝 열어놓고 나갔다. 꼬리가 길다며 소리치는 그가 시끄러웠지만 애써 무시했다. 어차피 내일되면 볼 일 없을 양반이니까.
"무사해라 김여주..."
집으로 가는길에 비녀를 만지작거리며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
"음...:
"정신이 들어?"
눈꺼풀이 무거웠다. 아주 푹 자고 일어난 것 같이 몸이 풀려있었다. 내 손을 잡고있는 한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누구세요?"
내가 할 대사를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의사가 대신 해준다.
아 그러고보니 병원이다. 내 손엔 바늘이 꼽혀있었고 지금 내 앞엔 한 남자와 간호사, 의사들이 둘러싸여 날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여기 왜 있는지도 사실 잘 모르겠다. 여기가 조선땅이 맞긴 한건가?
한참을 두리번거리다 힘겹게 입을 열었다.
"여긴 어디지?"
일본인으로 추정되는 의사가 가운을 펄럭이며 내가 묻고싶은 말을 대신 해준다.
당황스러웠다. 대구에 있어야 할. 아니 나는 분명 할머니를 위해...아니 나는 이사가기 전날 동생손을 잡고 잠에 빠지고 있었는데...
아니 나는 내일부터 국수가게 일손을 돕기위해 분명히 일찍 잠을...아니 나는...나는...
"나는 누구지...?"
"..."
"혼수상태에 있던 환자들이 깨고나서 자주 하는 대사 세가지죠."
"혼수상태...데스?"
"하이! 윤기상은 꼬박 사흘을 잠들어있었죠."
"윤기상? 제 이름은..."
"아!! 됐고 그래서 지금 상태는 괜찮나요?"
"...뭐 이제 막 깨어나셨으니 여러가지 검사를 해야 알 수 있을것 같습니다만?"
내 옆에 있는 남자가 내 입을 막았다. 내가 보내는 이상한 시선을 애써 무시하고 화제를 돌린다. 그는 간호사들이 모두 빠져나가고 의사를 돌려보낸 뒤 다시 돌아와 문을 잠근다.
"김여주."
"...네?"
"하 돌겠네. 모르는 척 하지마 다 티나니까."
"누구세요...?"
"몰라? 이래도 몰라?"
"거기 누구없어요? 살려주세요...!"
나와 아는 사이라는 증거랍시고 경성제국대학이라고 적힌 뱃지를 들이밀었다. 그리고는 내 앞으로 바싹 다가온다. 코앞까지 다가온 그의 얼굴이 무서워 소리를 질렀다.
조용히 하라며 내 입을 틀어막는 그를 보니 눈물이 나왔다. 그는 차가웠고 차가웠다. 생각을 읽을 수 없는 표정이 낯선 그를 더 경계하게 만들었다.
"하아....김여주."
"...흐윽...읍...읍.."
"..아 미안."
황급히 내 입에서 손을 때는 그를 신경질적으로 쳐다봤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의자를 끌어와ㅗ 적당한 거리를 두고 앉았다. 그리고 나를 쳐다봤다.
기억은 잘 안나지만 대구로 이사왔을때 기차역에서 만났던 한 교수님의 도움으로 일본유학을 갈 수 있었다. 운이 좋았던 것이다.
"...잘 지냈어?"
"....."
"끼이익"
의자를 끌어 내쪽으로 다가오는 그를 보며 반사적으로 몸을 웅크렸다. 내 반응에 잠시 놀라더니 고개를 떨군다.
"하나도 기억 안나는구나."
"오늘 처음 봤으니까요."
"어떻게 그새..."
상처받은 눈으로 나를 쳐다보다가 내 얼굴을 어루만진다.
그새 야위었다며 볼을 꼬집다가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러다가 흠칫 놀란 표정을 짓는다.
"머리에 혹생겼네."
"아..아야!"
"아 미안해."
머리에 난 혹을 꾹꾹 누르다가 내가 아파하자 재빨리 손을 거둔다.
나는 이 남자와 무슨 관계였던 것일까.
하얗게 지워져 아무생각도 나지 않는다. 정말 처음본 사람이다.
어쩌면 기억이 안날만큼 아무관련 없는 사람이었을지도.
-
"기억이 담겨있는 머리가 다쳤기 때문에 그 사람에 대한 기억이 날아갔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다른덴 이상이 없네요."
"...그런데 어떻게 딱 한사람만 기억이 안날까요?"
"글쎄요... 생각하기 싫은데 자꾸 신경이 쓰였던 상대를 뇌가 이때다 하고 지운걸수도 있겠네요."
이상했다.
체육대회를 하다가 갑자기 병원에서 깬 것도.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남자가 내 일본이름과 똑같다는 것도.
그리고 서러워졌다.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일본어를 한다는 것이.
이젠 일본이름에 더 익숙해져 있다는 것이.
탁자위에 예쁘게 놓여진 꽃다발이 혼란스러워 하는 나를 위로해주듯 싱그럽게 피어있었다.
그가 놓고 간 꽃 한다발이 내 기분을 잔잔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그러다 의지할 사람이 없어 꽃에게 기대 위로를 받고있는 내자신이 너무 쓸쓸해보였다.
"어?"
꽃다발 아래에 짧은 메모가 담겨있었다. 그가 쓰고간 것 같았다.
[넌 나고 난 너야
난 너고 넌 나야. -민윤기-]
무슨 헛소리지 하면서 다시 메모를 내려놓는다. 갑자기 나타나 100년 뒤에나 나올법한 노래가사를 적어놓은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
와 여러분 넘나 보고싶었어요ㅠㅠ 저 까먹으신건 아니겠죠?
한동안 바쁘기도 했고 노트북 녀석이 말썽이라ㅠㅠ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자주 만나요~ 싸랑해요 내님덜~♥
주말 잘 보내시구여~찡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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