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자들 : Night and Shadow
01
[콩 심은데 콩 난다는 말. 다들 아실텐데요. 바로 이 기업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동화그룹의 비리가 낱낱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저번주에 전해드린 소식을 기억하십니까? 검사와의 거래로 회사의 부당해고 소송을 입막음 하고, 검사에게는 10억짜리 강남역 땅을 선물한 김창주회장의 얘기를 전해드렸는데요. 이번엔 김창주회장의 차남, 김석민씨의 이야기입니다. YTV 단독보도입니다. 김세봉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2016년 7월25일. 저는 한통의 메일을 받았습니다. 익명으로 보내온 이 파일에는 동화그룹 고위급임원들의 성상납 리스트가 담겨있었는데요. 정확한 금액과 업소이름 등이 세세하게 적혀있는 이 파일에는 김창주회장의 차남, 김석민씨의 이름이 포함되어 있어 저희를 충격에 빠트렸습니다. .......(중략) 평소 젠틀한 이미지로 알려졌던 김석민씨는 장남인 김민규씨를 제치고 동화그룹의 후계자로 자주 거론되었었는데요, 이 사건 이후로도 그 위치를 지킬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는 바입니다. YTV기자, 김세봉이었습니다.”
언니는 늘 내게 정의를 쫓는 사람이 되라고 했다. 이 땅의 정의는 아직 살아있다고 누누이 내게 말하면서. 지랄. 근데 정말 지랄이다. 정의는 가난한 자들의 썩은 동아줄 같은 것이다. 썩은 것임을 알면서도 잡고 싶은 한 가닥 희망 같은 거. 하지만 곧 끊어져 수숫대 위에서 죽음을 맞이하겠지. 아마 나처럼.
“김세봉. 오늘 너가 취재 나갈거야?”
“뭔 취재?”
“아 오늘 김석민 검찰 출두하는 날이잖아.”
“전원우. 너랑 나 지금 징계중이야, 또 까먹었냐?”
“아.. 맞다.”
썩은 동아줄을 잡은 내 벌은 징계였다. 월급쟁이한테 이만한 벌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아무 일도 없는 척, 아무 것도 아닌 척 하기에 세상은 너무 더럽고 부패했다. 신문방송학과에 입학한 후 원우와 함께 진실만은 전하는 방송인이 되자고 부푼 꿈을 꾸었지만, 그건 불가능하다는 걸 YTV에 입사한 후 알게 되었다. 정치적인 분야와 대기업의 비리는 선배들이 취재하기 가장 꺼려한다는 것을. 후폭풍이 두려웠던 것이다. 세상에는 돈으로 할 수 있는 게 너무나도 많으니까.
“김세봉. 근데 나 궁금한 거 하나만 물어봐도 되냐?”
“먹을 거 있냐고 그딴 거 물어보려면 하지마.”
“넌 내가 맨날 배고픈 줄 아냐?”
“뭔데 그럼.”
“우리 모의 평가 할 때 기억나?”
“응. 기억나지. 그때 우리 처음 만났잖아.”
“그 때 취재 주제정할 때, 다른 애들은 다 가정폭력이나 어린이집학대, 아니면 연예가사건 이런 거 말했잖아.”
“응.”
“근데 넌 왜 동화그룹을 선택 한 거야? 피하려면 피할 수도 있었잖아. 지금도 그렇고..”
“...그냥. 누구랑 약속했거든.”
“뭐야? 누군데? 누구랑 약속했는데?”
친구 사이에는 비밀이 없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원우는 늘 궁금한 게 많았다. 미안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다. 자신의 이익 앞에선 언제든지 등을 돌릴 수 있다는 소리다. 친구? 가족? 돈 앞에서 그건 다 개소리다. 정말. 여러 가지 사건들을 취재하면서 깨달은 것이다. 인간은 대부분 탐욕스럽고 이기적이다. 지금의 원우도 언젠가 분명 내게 등 돌릴 날이 있을 것이다.
“야. 나도 하나만 묻자.”
“뭔데?”
“그럼 넌? 넌 왜 그 때 나랑 파트너 하겠다고 했어? 아나운서들은 이런 거 관심 없잖아.”
“음...궁금해서.”
“뭐가?”
“너가 동화그룹을 너무 당당하게 말하길래 뭐라도 알고 있는 줄 알았지. 난 속은거야 너한테.”
“뭘 속기까지야..”
원망 가득한 원우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언니가 떠올랐다. 그러는 동안 우리 사이에 조금의 공백이 있었지만 딱히 어색하지 않아 애써 풀려고 하지 않았다. 오늘은 거기 안가냐? 침묵을 깬 건 원우였다. 아나운서다운 낮고 무게 있는 목소리로 인해 정신이 퍼뜩 들었다.
**
“세봉씨 오셨어요? 오늘은 조금 늦으셨네요?”
“네.. 일이 좀 늦게 끝나서.”
“힘드시죠? 요새 저희 병원 사람들이 다 세봉씨 걱정해요.”
“저를요? 왜요?”
“김석민 사건이요! 그거 보도하셨잖아요. 세봉씨 잘리면 어떡하나, 피해가면 어떡하나 얼마나 걱정 했는데요!”
“아.. 괜찮아요.”
몇 년이 지나도 적응되지 않는 오지랖 때문에 살짝 불편한 얼굴을 하면 간호사는 내게 끊임없이 말을 걸었다. 그나마 생각해낸 방법이라고는 최대한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이었다. 간호사의 입이 쉴 때까지. 간호사는 자신의 이야기에 집중하지 않는 나를 눈치 챈 건지 곧 병실을 나갔다. 아니, 다시 들어왔다.
“아! 방금 전에 김석민 검찰 출두한 거 보셨어요? 어! 저기 나온다! TV 봐보세요.”
친절하게 병실 TV를 손가락질 해주고는 간호사는 병실을 나갔다. TV속에서는 김석민이 여러 기자들에게 둘러 쌓여 검찰에 출두하는 장면이 비춰졌다.
“언니. 저거 보여? 내가 취재한 거야.”
“...”
“나 언니랑 약속 한 거 지키고 있는 거야.”
“...”
“내가 그 약속 완전히 지킬 때 까지 꼭 버텨줘.”
“...”
대답 없이 누워있는 언니의 볼을 쓰다듬었다. 역시나 들려오는 대답은 없다. 언니의 단발머리가 허리를 다 덮을 정도로 길어질 때 까지 언니는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도 좋으니까 내 옆에 오래오래 있어줘. 제발.
**
“김석민씨 성상납 사실을 인정하십니까?”
“아니요.”
[김세봉. 듣고 있어?]
[응.]
[너 이제 어떡할래? 아예 전면 부인하려는 생각인 것 같은데?]
[원우야. 어차피 순순히 인정할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잖아.]
[그렇긴한데.. 파일이 있는데도 저렇게 부인했다는 건 저쪽에서도 뭔가 쥐고 있는 게 있다는 거거든.]
느즈막한 밤에 걸려온 전화였다. 초지일관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하던 김석민이 5시간이 넘는 검찰 조사 끝에 모든 사실을 부인하면서부터 쉴 새 없이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국장님에 이어서 기자선배들, 이번엔 원우 차례였다. 공동책임이 있는 만큼 불안해하던 그는 순순히 고개를 숙이자고 말했지만 나는 단호했다. 원우야. 거짓말이 늘 최선일 수는 없어.
[여보세요.]
[....]
[누구세요?]
[....]
원우와의 통화를 마친 뒤 모르는 번호로 온 전화를 받았다. 습관이었다. 기자들에게 모르는 번호는 물론이고 발신번호 표시제한이라고 온 전화마저 무조건 받아야하는 습관이 있다. 혹시나 이 전화가 중요한 제보 전화이면 어떡하나 하는 쓸데없는 걱정 때문에.
[여보세요. 전화를 거셨으면 말을]
[김석민이라고 하는데, 내가 누군지는 그쪽이 더 잘 알거고.]
[....]
[좀 만날까요?]
그쪽에서 먼저 걸려온 전화. 딱히 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 약속을 잡았다. 병원 근처의 선술집. 인적이 드문 곳에 위치해있어 살짝 두려운 감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럴 때마다 주머니 속의 녹음기를 만지작거리며 감정을 추스렸다. 룸으로 안내해주는 종업원을 따라갔다. 종업원의 발길이 멈춘 공간에 그가 있었다.
“안녕하세요. 이렇게 보니 반갑네요? 오. 실물이 더 낫네 세봉씨는.”
“.. 용건이 뭐죠?”
“음.. 쫌 많은데 일단 녹음기부터 끄세요. 내 눈 앞에서.”
기싸움에서 이기려 인사를 생략했다. 나를 보자마자 실실 웃는 그 눈빛이 기분 나쁘기도 했고. 근데 오히려 한 방 먹은 것은 나였다. 녹음기가 있는 주머니 쪽을 눈짓으로 가리키더니 눈빛을 살벌하게 바꿨다. 일단은 후퇴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껐어요, 됐죠?”
“나랑 동갑이던데 말 놓자 우리.”
“... 그러던가.”
“너 되게 당당하다. 맘에 드네. 근데 너 곧 나한테 되게 미안해 질 거야. 왜냐면, 니가 보도한 그 리스트, 사실이 아니거든.”
“뭐?”
그에게 기가 눌린다는 표현이 맞았다. 그는 알 수 없는 눈빛으로 나를 옭아맸다. 그는 나를 당황시켰다. 뒤이어 이어진 말들은 나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다.
“너가 이렇게 순수하게 낚일 줄 몰랐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넌 좀 더 배워야겠다. 그렇게 순수해서 어떻게 기자하려고 그래. 권력싸움이 정치판에만 나뒹구는 줄 알지? 우리한테도 그런 거 있어. 그 메일 익명으로 왔다고 했지? 아이피 찾아봤어? 물고기pc방으로 나오지? 어떻게 아냐는 눈빛인데..? 잘 알지. 내가 시켰거든. 그 파일 나한테 먼저 왔었어. 나 협박하려고.”
“....”
“그렇게 놀라지 않아도 돼. 아직 더 있어. 언니가 세명병원에 입원해있지? 3년 전 의문의 뺑소니를 당한 뒤 식물인간이 됐고. 언니도 기자였네?.. 아, 뒷조사 좀 했어. 여기 있으니까 이런 거만 배우게 되더라고, 기분 나빴다면 미안. 근데 너도 내가 필요할거야.”
“이렇게 까지 하려는 이유가 뭐야.”
“이렇게 안하면 너가 날 안 만나줄 것 같아서. 걱정 마. 뒤처리는 내가 다 해줄게. 너 잘리게도 안 해. 너가 동화그룹 파고 다닌다는 소식 들었어.”
“....원하는 게 뭐야.”
“에이 그렇게 살벌하게 나오면 섭섭하지. 난 거래를 하자는 건데. 니가 원하는 건 그거 아니야? 동화그룹 망하게 하는 거? 그거 같이하자.”
“뭐?”
“내가 원하는 거.”
“...무슨소리를”
“동화그룹이 망하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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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군부인) 진짜로 연대 나오는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