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사랑 매듭짓기
'" 야, 김세봉. 너 대체 언제까지 그 손톱 물어 뜯을 속셈이야. "
" 내가 손톱을 물어 뜯던, 발톱을 물어 뜯던 니가 무슨 상관이야. "
" 하여간, 말 하는 꼬라지 하고는. 넌 이래서 안 돼. "
" 예, 뭐 그러시겠죠. "
학교가 파하고 난 후, 민규와 함께 온 도서관 열람실 안에는 웬일인지 사람이 몇 없었다.
시험까지 꽤나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집중의 정석을 선보이던 김민규와는 달리 좀처럼 공부에 집중이 되질 않았다.
계속 까득- 거리며 손톱을 물어 뜯던 내가 이내 신경 쓰였던건지, 펜을 내려놓으며 내게 핀잔을 주는 민규에 대충 사과를 해보였다.
내가 지금 누구 때문에 이러고 있는데, 나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다시 펜을 집어들고선 자기 공부에 몰두 해보이는 김민규에 작게 한숨을 푹, 내쉬어 보였다.
몇 분을 더 그러고 앉아있었을까, 이젠 그냥 김민규가 공부하는 것을 구경하러 온 꼴이 되어버린 나에 안되겠다 싶어 잠깐 나가서 바람 좀 쐐고 오겠다 말 하니 흔쾌히 그러라며 나를 보내주었다.
" 재수없는 놈, 내가 지금 누구 때문에 이러고 앉아있는데. "
" 뭐가 누구 때문이라고? "
" 아, 깜짝이야. 아··· 오빠! "
" 우리 주현이, 여긴 무슨일이야. 설마 공부하러 왔을리는 없을테고. "
" 아, 오빠! 공부하러 온 거 맞거든요? "
" 알았어, 미안 미안. 진정해. "
하필 이렇게 골치 아픈 날에 학교 끝나서까지 만날게 뭐람.
입을 삐죽이며 애꿎은 땅바닥만 신발코로 두드려대자 오빠는 또 그게 귀엽다는 듯이 머리를 쓰다듬어왔다.
혼자온거야? 혼자 왔냐며 물어보는 오빠에 잠깐 뜸을 들이고선 민규와 왔다고 말을 했다.
내가 왜 뜸을 들였지···, 스스로 이상한 느낌이 들었지만 내가 고민할 틈도 없게 오빠가 얼굴을 잠시 동안 구겼다가 폈다.
뭐지···? 설마, 이 오빠 진짜 진지하게 나 좋아하는건가? 대체, 왜?
" 혼자 왔으면 같이 공부 하자고 하려 했는데, 아쉽네. "
" 하하, 그쵸! 다음엔 같이 와서 해요! "
" 다음에, 언제? "
" ··· 네? "
" 다음에 언제, 언제 같이 할래. "
어어, 저··· 그게···. 아, 이게 아닌데. 난 그냥 이 상황을 벗어나려고 대충 한 말이였단 말이야···.
내가 대답을 어려워하며 눈만 도륵 굴리자 오빠는 언제 집요하게 물었냐는 듯이 볼을 한 번 꼬집고선 웃어보였다.
" 그럼 내가 나중에 정할테니까, 빼지 않기다? "
" 음···, 그래요, 뭐. "
나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오빠의 눈이 예쁘게 호선을 그려보이며 휘어졌다.
머리가 다시 복잡해진다.
" 근데 세봉아, 혼자 어디 가? "
" 어···, 공부하다가 집중이 안돼서 잠깐 바람 쐐러 밖에···. "
" 밖에? 지금 밖 깜깜한 거 안 보여? "
" 도서관 바로 앞에 있을 거에요, 괜찮아요! "
" 뭐야, 안돼. 같이 가. "
" 네···? 아, 진짜 괜찮은데···. "
" 안된다고 했지, 좋은 말 할때 같이 가던가 아니면 다시 들어가서 공부 하던가 둘 중 하나 선택해. "
꽤나 단호한 오빠의 어투에 어떡하지, 하고 고민 해 보이자 오빠는 맛있는 것을 사주겠다며 날 이끌고 밖으로 향했다.
그래봤자 고작 매점이긴 했지만, 폼을 잡으며 먹고 싶은 걸 다 고르라는 오빠에 달달한 과자 한 봉지를 집어들고선 계산대로 향했다.
오빠는 내 뒤로 냉커피 두 캔을 계산대에 내려놓으며 물건을 계산 하고선 나의 손목을 잡아 끌어 벤치에 앉혔다.
" 세봉아. "
" 네? "
" 오늘 동아리실에서 내가 얘기한 거 때문에 나 불편해질 거 같으면 그냥 못 들은 거로 해도 돼. "
" 어, 별로 불편하진 않은데···. "
" 그럼 다행인데, 혹시라도. 신경 쓰일까봐. "
" 아, ···네. "
" 그래, 예쁘다. "
순간 숨이 턱, 하고 막혔다. 이 오빠는 뭘까···, 내게 조심스러우면서도 거침 없었다.
부담스럽지만, 그렇다고 싫지만도 않았다. 이기적인걸까.
" 나 궁금한 거 있는데. "
" 네, 뭐요? "
![[세븐틴/김민규/최승철] 짝사랑 매듭짓기 02 | 인스티즈](//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5/10/11/18/ca13ceba8c73dcb819c85767ec365a2e.gif)
" 민규랑은, 어떤 사이야? "
'어떤 사이'라···, 너와 나의 관계는 대체 무슨 사이라고 정의해야 맞는 것일까?
어떻게 보면 아무렇지 않은 질문이지만, 내겐 참 어려운 질문이라 한참이나 뜸을 들였다.
응? 오빠가 다시 되물을 때까지 대답을 하지 못 했을 정도였으니.
" 제일 친한 친구죠, 오래되고. "
" 정말? 그게 끝이야? "
" 음···, 소중한 친구에요. "
" 소중해? 어떤 면에서? "
잠깐이지만, 오빠의 얼굴이 다시 굳어지는 걸 느꼈지만 애써 못 본 척 했다.
민규는···, 모든 상황에서 저를 1순위로 두고 배려해줘요. 그런 친구인데, 소중하죠.
나의 말이 명쾌한 답변은 되지 못 했던지, 오빠는 고개를 한 번 갸웃 거리고서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소중하다···, 이 말을 두 어번 혼자 중얼거리고선 웃어보이며 아까 사두었던 냉커피 캔 하나를 따서 내게 건넸다.
" 거기서 더 깊어질 마음은 없는거지? "
" 당연하죠! "
" 진짜로? 믿어도 돼? "
" 아, 당연하죠. 제가 왜 김민규랑 그러겠어요! "
바보, 난 바보인게 틀림 없을 거야. 내 앞에서 알겠다며 웃어보이는 오빠의 얼굴이 나의 복잡한 머릿 속을 다시 헤집어 놓았다.
내 말에 뭐가 그리도 좋은 지 실실 웃어보이며 커피 캔만 손으로 만지작 거리다 이내 흥미를 잃었는지, 캔을 내려놓고서 일어나 내 몸을 일으켜 세웠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내가 눈을 동그랗게 떠보이자 그게 또 흥미로웠는지 오빠는 웃어보이며 가자, 하고 작게 말한 후 물건들을 챙겨 도서관 안으로 날 이끌었다.
![[세븐틴/김민규/최승철] 짝사랑 매듭짓기 02 | 인스티즈](//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6/02/14/22/142e656e617282aa28b608101e7f8653.gif)
" 야, 김세봉. 너 어디···. 어? 승철이 형 ···? "
" 아, 잠깐 나왔다가 오빠 만나서 늦어졌어···. "
" 그럼 연락을 하던가, 휴대폰도 놓고 가고. 한참 찾았잖아. "
![[세븐틴/김민규/최승철] 짝사랑 매듭짓기 02 | 인스티즈](//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6/01/02/18/8ab06dae544c9a604c3f7e6274af8dfa.gif)
" 한참 찾았다고···, 세봉아, 너 말대로 민규가 너 생각을 참 많이 하긴 하나보다. "
" 네? 형, 쟤가 형보고 그런 말을 했어요? "
" 그랬지, 자기 생각 많이 해준다고. "
" 어우, 야, 김세봉. 착각도 병이라더니. 고작 몇 번 찾아준 거 가지고 과대 망상 하면 못 쓰지, 못 써. "
" 뭐? 야, 김민규! 너 진짜 죽을래? "
내가 김민규를 노려보며 주먹을 들어보이자 웃으며 내 주먹을 감싸 내리는 민규에 괜히 오빠가 신경이 쓰여 오빠 쪽을 흘끔 쳐다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 순한 인상이 확 구겨져 있는 모습이 보기에 좋지 않아 어색하게 웃으며 민규 손 안에 감싸져 있는 나의 손을 빼내어 뒤로 숨겼다.
평소와 다른 나의 행동에 이상하다는 듯이 보던 민규도 눈치란 건 있는 건지 오빠 쪽을 한 번 슥- 보더니 민망한 듯 헛기침을 한 번 하고서 빨리 들어오라는 말을 남긴 후 열람실 안으로 먼저 들어가버렸다.
열람실 안으로 들어가는 민규의 뒷모습을 끝까지 지켜보던 오빠는 민규의 모습이 사라지자 표정을 풀고선 다시 나의 눈을 마주했다.
![[세븐틴/김민규/최승철] 짝사랑 매듭짓기 02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5/12/07/17/15fd3f879176a59578b152e97903e2c4.gif)
" 내가 충분히 너 걱정 해주고 챙겨주고 할 수 있는데. "
" 네? 갑자기 그게 무슨 말···. "
" 나 말고 쟤가 다 꿰차고 있어서 마음에 안 들어. "
" ···. "
" 너랑 민규 사이에 틈이 없어서 내가 헤집고 들어가기 힘들다고, 세봉아. "
먼저 들어가. 짧은 말을 남기고 하얗고 큰 손으로 제 얼굴에 마른 세수를 하며 뒤돌아 가는 오빠의 뒷모습을 보다 발걸음을 뗐다.
내가 향하고 있는 방향이, 과연 맞는 방향인지 알 길이 없어 어려운 밤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