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족
04
여기는 항상 비가 오나 봐.
나는 조용히 혼잣말로 중얼거리면서 일어났다.
밤보다는 조금 잦아들었지만 여전히 옅은 빗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나는 옷을 갈아입지도 않고 그대로 자버려서 구겨진 치맛자락을 뚫어져라 내려다보았다.
그 쪽 사람들은 품위라고는 찾아보기 힘들지. 그러니까 네가 거기서 더욱 더 귀족처럼 행동해야 해.
어머니는 마차에 올라타기 전, 내 손을 붙잡고 그렇게 말씀하셨다.
그래서 나는 짐가방에서 갈아입을 옷을 꺼내들었다. 그때 누군가가 방문을 똑똑 두드렸다.
" 아가씨, 계세요? "
어제 나를 이 방까지 안내해준 늙은 여자 목소리인 듯 했다.
" 네. 들어오진 마세요, 옷 갈아입는 중이니까. "
" 사모님이 아침 먹으라고 부르셔서요. "
" 곧 내려간다고 전하세요. "
늙은 여자가 예, 하고 대답하고는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방 한 켠에 딸린 욕실에 들어가 깨끗하게 단장을 하고 나온 뒤에야 밖으로 나왔다. 문 앞에 서 있던 정국이 몸을 돌려 계단 밑으로 먼저 내려갔다.
아침식사는 어제의 저녁식사보다 훨씬 더 형편없었다. 나는 말라비틀어지기 일보 직전인 빵을 한참 내려다보았다. 보나마나 입에 넣자마자 끔찍한 맛에 인상을 쓰게 될 게 뻔했다. 먹는 둥 마는 둥하던 나를 고모가 발견하고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 아가야, 입맛이 없니? "
" 아뇨. "
나는 마지못해 빵을 집어들었다.
고모는 내 말을 들었는지 안 들었는지 딴 소리를 해댔다.
" 입맛이 없을 만도 하지, 낯선 곳에서의 식사는 원래 그렇단다. 얼른 익숙해지면 좋을텐데. "
말을 마친 그녀는 나를 향해 싱긋 웃어보이고는 다시 식사를 시작했다. 웃을 때 살짝 보였던, 깨진 이가 상당히 거슬렸다. 나는 내색하지 않은 채 빵을 씹어삼켰다. 역시나 상상한 그 맛 그대로였다. 겨우 접시를 비우자 고모부가 한참 빵을 입에 욱여넣다가 나를 보며 말했다.
" 집에만 있으면 심심할 테니 집 앞 거리까지는 나가봐도 좋다. "
나는 말없이 고개를 돌려 창밖을 내다보았다. 고모부의 말은 참 의아했다. 시내에서 한참 벗어난, 건물이라고 부르기도 힘든 몇 개의 상가들이 주변에 전부인 이 곳에서 어딜 돌아다니느냔 말이다. 밤이면 거지들이 비로 흠뻑 젖어 걸어다닐 것 같은 음침한 거리하며 아직도 비가 오는 축축한 날씨에 나가봐도 좋다니, 그는 이 집에서 한 번도 나가보지 않은 게 분명했다.
귀족
05
" 넌 여기서 내가 뭘 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니? "
나는 방 안으로 들어가려다가 문 앞에 서 있는 정국을 보고 대뜸 물었다. 갑작스런 질문에 정국은 머리를 긁적였다.
" ..... "
" 거봐, 너도 잘 모르겠지. 그러니까 난 여기서 도망칠 길이나 찾아야겠어. "
" 그건 안됩니다. 허락하실 때까지.. "
" 알겠어, 그럼 집 구경쯤이라고 해두자. 난 지금 집 구조를 익히러 가는거야. 됐지? "
나는 방에서 나와 무작정 계단을 내려갔다. 정국이 뒤따라오는지 뒤에서 빠른 발걸음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를 신경 쓰지 않고 복도 코너를 휙 돌았다. 먼지 쌓인 바닥을 걸어다니는 데에 길고 풍성한 치마는 그리 적합하지 않다는 것은 복도를 얼마 걷지 않아 바로 알았다.
내 방과 홀 사이의 그 계단과 복도들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집은 생각보다 훨씬 크고 넓었으며, 복잡했다. 구조를 외우기는커녕 돌아갈 길도 똑바로 못 짚어갈 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복도를 한없이 걸어나갔다. 정국은 뒤에서 적당한 거리를 두고 따라오고 있었다.
나는 꽤 어둑하고 깊은 복도에 들어서다가 이 집만큼이나 낡고 수상쩍은 나무문 하나를 발견했다.
" 딱 봐도 샛문이야. 이리로 나가면 틀림없이 밖의 거리가 나오고 그 길로 도망쳐서 집으로 돌아갈 거야. "
내가 약간 들뜬 목소리로 정국에게 말을 걸었지만, 정국은 그 자리에 우뚝 멈춰서서 묵묵히 내 말을 들을 뿐이었다. 그의 눈은 알 수 없는 눈빛을 한 채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나무문을 벌컥 열어젖히며 말했다.
" 그렇게 쳐다봐도 소용없어. 난 갈 거니까. "
문을 열자마자 습한 먼지냄새가 훅 끼쳤다. 나는 잠시 캑캑거리며 목을 가다듬다가 문 안으로 몸을 숙이고 들어갔다. 캄캄한 어둠이 나를 집어삼켰다. 정국이 문 밖에서 한숨 쉬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이내 그도 안으로 들어왔다.
통로는 계속 이어졌다. 두 팔이 다 펼쳐지지도 않을 만큼 좁은 벽면이 서 있고 천장은 점점 낮아졌다. 허리를 깊숙이 숙여야할 만큼 몸을 낮추고 걸었다. 얼마 걷지 않았는데도 저 멀리서 빛 같은 게 보이기 시작했고, 끙끙거리며 허리를 펴고 나왔을 때 나는 경악하고 말았다.
아까 봤던 복도가 그대로 펼쳐져 있었다. 그냥 빙 둘러서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것이었다.
나는 잔뜩 몰려오는 실망감과 허무함을 감출 길이 없었다.
나는 터덜터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그렇게 정국과 나는 먼지를 뒤집어쓰고 나란히 방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도망칠 길이 아예 없다는 거였다. 겨우 샛문 하나 발견했더니 그냥 통로일 뿐이고. 나가려면 대문 뿐인데, 대문은 하인들이 하루종일 드나드니 짐가방을 들고 나갔다간 보나마나 붙잡힐 게 뻔하고. 이런 상황에서는 도저히 희망을 가질 수가 없었다. 나는 울적한 기분으로 화장대 앞에 앉아있다가 다과시간을 알리는 종소리에 방에서 나갔다.
귀족
06
" 오전에는 뭘 했니? "
" 구조도 익힐 겸, 집 여기저기를 돌아다녔어요. "
나는 찻잔을 손에 쥐고 따뜻함을 느끼면서 대답했다. 이 집에서 먹은 것 중 그나마 가장 나은 것은 차였다.
나는 찻잔 안을 물끄러미 보다가 문득 물었다.
" 여기는 항상 비가 오나요? "
" 그렇지, 거의 그칠 새가 없어. "
고모가 또다시 거세지는 빗소리를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추적추적 내렸다가 솨아아아, 하고 반복적으로 쏟아지는 빗소리에 점차 지겨워지고 있었던 참이었다. 이 우중충한 날씨가 언제까지 이어지나 싶었는데 거의 그칠 새가 없다니, 이 저택에서의 생활이 더욱 절망적으로 느껴지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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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영우 예나 둘이 사진찍은거 에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