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다양한 종류의 사람이 있다. 태어나서부터 누구에게나 사랑받으며 예쁨받으며 평생을 웃는일밖에는 없을것 처럼 자란 사람이 있고, 전생에 무슨 잘못을 했는지
하느님에게 한참을 밉보이기라도 한걸까 태어나서부터 온갖 불행이란 불행은, 행복하지 않은일은 꼭 거쳐가는 사람이 있다. 굳이 말하자면 나는 후자에 가깝고 전자인
사람은 거의 없기 마련이며 그 둘 사이를 애매하게 걸치면 평범한 사람이라 할수 있겠다.
어린시절의 트라우마는 평생간다. 나의 어린시절의 불행은 평생을 나와 함께 했다. 알코올에 도박 중독자인 아빠와 그 옆에서 평생을 바보같이 맞으며 살아온 엄마는
내가 11살이 되던 해에 짐을 싸들고 밤에 집을 나갔다. 아빠의 타겟이 변경된 날이였다. 그 타겟은 엄마에서 내가 되었다. 어린 나는 그냥 맞기만 했다. 자다가도
끌려나와 허리띠로 맞았다. 온몸에 시퍼렇게 멍이들면 여름에는 학교를 못갈때도 있었다. 그래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지만.
내가 중학교에 올라가고, 하교 시간이 늦어진건 나에게 정말 행복한 일이였다. 하지만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부터는 나는 온전히 맞지만은 않았다. 나도 요령껏 피할줄
알게되었고 아빠는 요령껏 나를 더 수치스럽게 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어쩔때는 매와 동시에 수치스러운 행동을 가미해 나를 괴롭혔다. 허벅지를 만지고 가위를 들고와
교복을 자르기도 했다. 그쯤되니 이게 내 아빠인지 괴물인지 알수가 없었다.
비척비척 학교에 갔다가 힘없이 자고만 오기를 1년, 2학년이 되고 나는 그렇게 점점 더 속으로 멍이들어갔다. 그런건 이제 일상이 된지 오래, 나는 아빠가 더 심한 행위를
하지않는것에 감사하며 살았다. 매맞고 성희롱을 당하면서도 그정도에 감사하는 나였다. 내편도 없고 가족도 없고 이 세상에 정말 나 혼자라는 생각이 들때 나는 아파트
옥상으로 올라갔다. 밑을 내려다보면 꼭 날수 있을것 같았다. 하늘은 높고 내 몸은 가벼우니까 이 상태로 몸을 던지면 날수 있을것 같아서,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옥상을
찾는 일이 잦아졌다.
평소와 같이 교실 책상에 엎드려 누워 잠을 청할때였다. 친구들의 수군거림, 그건 정말 나에겐 별것도 아닌일인데 그날따라 점점 더 또렷하게 들려온건 하늘의 계시였나
'쟤 엄마가 없대' '너무 가난해서 몸을 판다더라' '아빠랑 그거한대' 정신차렸을때 이미 나는 교실을 박차고 나온 뒤였다. 나에게 돌아갈 곳은 없었다. 머물곳도 없었다.
옥상에 올라가 하늘을 보니 오늘은 정말 날수 있을것 같은 청명한 날씨였다. 두려울것도 없었고 망설일것도 없었다. 다 헤진 운동화를 벗고 옥상 난간에 걸터앉았다.
미련 있을게 뭐가 있나 이미 이 세상이 버린게 나 아닐까. 옥상 난간에 발을 딛고 올라섰을때 무언가 내 손목을 잡아채고, 난간에서 끌어내렸다.
본인도 깜짝 놀랐는지 말을 더듬으며 연신 죽으면 안돼요 절대 안돼요 하며 내 손목을 꼭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소년의 목소리는 다급했고 나는 따뜻했다. 손목으로 시작된
내 인생 최초의 온기는 온몸으로 피어올랐다.
옥상에 올라가는 나를 봐왔다고 했다. 원래 옥상에 올라갈 시간이 아닌데 옥상에 올라가기에 다급하게 따라올라왔더니 그런 상황이 있었던 것이다. 스토킹은 절대 아니라며
손사래를 치며 혼자 억울한 표정을 하기에 그러면 왜 그랬냐고 하니까 한참을 고민하더니 그냥...그냥요 라고 했다. 그냥 봤는데 자기도 모르게 매일 쫒고 있었다고 했다.
나쁜생각 하지말라고 자기가 아끼는 거라며 주고간 곰모양 열쇠고리를 손에 꼭 쥐었다. 주머니에 얼마나 넣고 다녔으면 아직도 온기가 따뜻해서 웃음이 나왔다.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마주한 막다른 골목길의 비상구였다.
학교는 나갔다. 소문은 아무래도 괜찮았다. 일년만 더 버티면 졸업할수 있으니까, 괜찮았다. 학교에 있는 동안은 생각을 비우려고 공부도 시작했다. 책도 읽었는데 그때 읽은
책중에 키다리 아저씨가 제일 인상깊었다. 차라리 내가 고아였으면, 이렇게 키다리 아저씨가 나타나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키다리 아저씨 정도는 아니지만 종종 그때 마주친
그애가 사탕이며 먹을것들을 집앞에 두고 가는것 같았다. 마이너스 투성이였던 내 인생이 영점을 향해 조금 기울었다.
무던히도 1년을 보내는것 같았다. 그래도 아빠도 지쳤는지 그 정도도 점차 덜해졌다. 학교에서는 고등학교 원서를 쓰고 나는 무조건 1지망으로 가장 먼곳을 적었다. 그때가
겨울인데 그러니까 그 겨울에 나는 기억을 잃었다. 그 겨울의 기억을 잃었다. 겨울 방학을 하고 난 뒤, 나는 병실에 누워있었고 깨어나니 다른 집으로 옯겨졌다.
나중에 듣기론 아빠는 술을 마시고 집에서 잠들었다가 화재로 돌아가셨다고 했다. 누군가가 밖에 쓰러져 있는 나를 병원에 옮겼다고 하고 나는 그렇게 기억을 잃었다.
그날 하루의 기억과 병실에 누워 의식을 잃은 기억이 나지 않는건데 그때는 기억할려고 정말 애썼던것 같다. 근데 지금에서야 돌이켜 보면 분명 좋은 기억은 아닐듯 하고
애써 기억할 필요도 없는 일인 것이다. 사실 중학생때의 기억 조차도 그냥 오래된 필름마냥 툭툭 끊긴다.
나는 서울 시내의 한 집에 살게 되었고 서울의 한 여고에 다니게 되었고 그렇게 내 인생이 바뀌었다. 꿈만 같았고 고등학교 입학하던 첫날에는 너무 설레서 단추를 채우던 손이
자꾸 헛돌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학교에서 딱히 잘 지낸건 아니였다. 살면서 제대로 친구라고는 한명도 사귀어보지 못한 내가 어떻게 평범한 친구들을 사귈수가 있을까. 나는
평범한 사람이 아닌데, 나는 영원히 평범한 사람일수 없는데. 누군가가 내 앞에서 손만 들어도, 언성을 조금만 높여도 어깨가 바짝 올라가고 눈을 마주치며 이야기 하기가
너무 힘든 내가 다시는 돌아갈수 없는, 아니 처음부터 나의 영역이 아니였던 평범한 세계로 내가 어떻게 갈수가 있을까.
나의 사정을 딱하게 여긴 (어떻게 거기까지 내 이야기가 닿았는지 모르지만) 한 기업의 도움으로, 나는 그 기업의 후원을 받으며 대학까지 다니고 있다. 고등학생때는 학원다닐
돈도, 내가 입고 먹고 쓰는 모든 돈도 사는 집도 모두 그 곳에서 나왔다. 그 댓가로 나는 방학마다 회장님(이라 쓰고 할아버지라고 불렀던)의 댁에 가 초등학생 손녀 셋을 가르
치는 알바아닌 알바를 했다. 아마 내가 받는 돈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해주고 싶으셨던거라고 생각한다. 다행이도 머리가 나쁘지는 않았던 탓에 꽤 좋은 대학을 갈수 있었고
내가 원하던 과에 입학할수 있었다.
남들이 보기엔 누구보다 평범한 생활을 하고 정상적인척, 아무런 아픔도 없었던것 처럼 행동을 해도 나는 쭉 나 자신을 증오했다. 이렇게 가면을 쓰고 살아야 하는 나를.
비가 오면 등에 있는 흉터가 아프다. 욱신욱신. 참을수 없을만큼 아파오면 진통제를 씹어서 삼킨다. 쓴맛에 헛구역질이 나고 침이 질질 흘러도 끝까지 억지로 씹어내서 삼킨다.
나 자신을 증오하는 나를 삼키고 내가 증오하는 나를 씹어서 삼킨다. 나를 포기하고 싶은데, 포기가 되질않아서 억지로 스스로 붙들고 증오하면서도 괜찮은척 살아가는 내가
싫어서 너무 싫다. 세상이 싫고 내가 너무 싫다.
막다른 골목에서 한 발자국조차 뒤로 물러설수 없을때도 나는 나를 증오하면서도 포기하지 못할것이다. 이런 나를 잘 알기에 나는 더 스스로를 막다른 길로 몰았다.
| 안녕하세요 |
무려 한달을 꿍쳐둔 글을 이제서야 이어서 쓰고 올리네요 계속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고 올릴까 하다가 올려봅니다 ^_ㅠ 사실 이 편은 프롤로그 격이라 별얘기 없으면서도 별얘기가 있어요... 1화부터 보셔도 되는데 몰라도 되지만 알면 좋은? 그런 글입니다.... 대화가 없어서 넘나 지루하시죠? 곧 1화가....올라올....수 있겠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목은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는 드라마에서 착안했습니다... 내용은 별 연관 없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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