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비타님, 리로님 감사합니다.
김성규는 여우가 아니다 13
W.여우
우현은 쇼파에 앉아 냉수를 들이키고 있었다. 요새 며칠 간 속이 좀 안 좋다 싶었는데 결국은 다 게워내고 말았다. 우현은 TV나 봐야겠다는 심정으로 리모컨을 들어올렸다. 삐리릭-하는 소리와 함께 화면이 켜졌다. 화면 속에는 15년전부터 인기가 떨어질 줄을 모르던 김명수가 수상소감을 말하고 있었다. 미친놈……. 우현은 도무지 냉수를 마셔도 가시지 않는 메슥거림에 기분이 나빠졌다. 게다가 저 속에서 생글대고 있는 김명수를 보니, 오페라의 유령이라도 본 듯한 기분에 더욱 속이 울렁거리는 것 같았다. 마치 연습한 사람처럼 당연시하게 내뱉는 말들이 하나같이 가식적이었다. 우현은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렴, 자신이 아는 김명수는 상 하나 주는 데 시간이 왜 이리 많이 걸리냐며 사회자 멱살이라도 잡아 당겼어야 했다.
"김명수가 언제부터 저렇게 말을 예쁘게 했어, 지랄하네."
하지만, 곧이어 이어진 달콤한 사랑고백, 아니 끔찍한 사랑고백에 우현이 마시던 물을 뿜어버리고 말았다. 푸하- 하는 소리와 함께 공중으로 흩어진 물들은 거실바닥을 깔끔하게 적셔버렸다. 우현이 짜증난다는 표정으로 마루를 한 번 훑어보았다. 아, 저 개새끼……. 우현이 진지하게 욕짓거리를 내뱉고는 TV속에서 들려오는 함성소리에 집중했다. 대체 그게 그렇게 문제야?-.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든, 우현은 물을 마셔도 체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게되었다. 저 게이 맞아요, 그래서요?-. 아, 당당하다 못해 아주 거시기를 분지르고 싶은 발언이구나……. 우현은 뒷골이 당겨왔다. 지금 이 순간, 김명수를 안다는 것이 굉장히 불쾌하고 부끄러웠다. 대한민국에서 영원히 매장당하고 싶은 그 마음을 누가 알아주려나……. 우현은 화면을 보며 뭐 씹은 표정을 지우지 않다가 마루를 바라보았다. 제발 꿈이길 바랬던 아밀라아제 더하기 물의 결합은 현실로서 나타나있었다.
"아, 진짜…… 만나면 죽여버릴거야."
* * * * *
우현은 마룻바닥을 돌아다니며 혹시나 잔여물이 남아있지는 않은 지 확인하고 있었다. 닦아내도 닦아내도, 여기저기에 얼마나 튀었던지 화장지가 모자랄 판국이었다. 우현은 계속해서 김명수와 이성열에 대한 속보를 보내고 있는 화면을 응시하다가 짜증나는 표정으로 전원을 눌러버렸다. 누구 좋자고, 저 못생긴 얼굴을 계속 봐야 하는 거야……. 우현은 김명수만 아니었다면 일찍 잘 수 있었다며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래도 오늘은 냉수만 마시고 바로 잠들었어야했다. 우현은 찌푸린 인상을 풀지 않은 채로 천천히 방을 향해 발을 옮겼다. 그러다, 방문을 열기 직전 바로 서버렸다. 방문을 열면, 아마 또 다시 익숙한 한기가 흘러올 것이다. 성규의 몸이 자신에 비해 차가운 편이기는 했지만, 사람의 온기만한 것이 없었는데……. 우현은 갑자기 성규가 보고 싶었다. 자신의 뺨을 때리고 나가던 그 날이 다시 상기되었다. 아마 성규는…… 돌아올 것이었다. 분명.
[띡.띡.띡.띡.]
우현이 고개를 돌렸다. 이 소리는 분명……, 김성규였다. 그리고 예상대로 우현의 눈앞에는 성규가 다가와있었다. 우현은 살짝 눈을 비볐다가 다시 떠보았다. 이거 꿈인가……. 우현은 자신의 뺨을 살짝 쳐보았다. 아, 아프네……. 우현은 타박타박 성규의 앞으로 걸어가보았다. 아직 운동화도 벗지 않은 채 현관에 서 있는 모습이 작아보였다. 우현은 살짝 뒤로 물러났다가 다시 성규의 앞에 바로 섰다. 둘 사이로 차가운 기류가 흘렀다. 성규는 현관문 사이로 들어오는 시린 공기에도 문을 닫지 않았다. 반팔 티를 입고 있던 우현이 문을 닫아보라며 이야기했지만, 들으려하지 않았다.
"잠깐이면 돼, 그냥 들어."
"김성규, 너 사과하러 온 사람 태도가 참 웃기다?"
허, 사과……. 성규는 콧대 사이로 흘러나오는 어이가 모두 날아가버린 듯한 기분을 느꼈다. 사과라……, 용서를 구하는 사람이 자기란 이야기인 것 같았다. 15년동안 내가 너를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쳤다니……. 성규는 괜시리 억울해지는 느낌에 눈물이 차오를 것 같았다. 남우현, 남우현……. 성규는 지금이라도 우현을 한 대 패주고 싶었지만, 꾹 눌러참았다. 사과의 의미나 제대로 알고 있느냐고 따지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 다 모두 끝난 일이었다. 지난 일 가지고 왈가왈부하고 싶지 않았다. 그 와중에도 열린 현관문 사이로 차가운 공기가 들어오자 우현은 바들바들 떨었다. 그리고 성규는 또 걱정스러운 마음에 살짝 문을 닫고는 신발을 벗고 집안으로 들어왔다.
* * * * *
둘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마주앉은 식탁 위에는 따뜻한 커피만 모락모락 김을 올리고 있었다. 우현은 이미 한 모금 들이키고 있었고, 성규는 그저 따뜻한 컵 둘레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우현은 지금이라도 사랑한다고 말한다면 받아줄 생각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이에 반해, 성규는 그저 커피 속에 비친 형상만을 그리고 있었다. 아, 진짜……- 할 말이 뭐냐고. 우현의 딱딱한 목소리가 정적을 깨버렸다. 성규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앞에 있는 우현이 우현이 아닌 것 같았다. 성규는 무엇인가 말을 하려다가 다시 입을 다물었다. 진정하자, 진정해……. 몇 번씩이나 다짐했다. 절대 화내지 않기로, 흥분하지 않기로……. 만약 이 싸움까지도 크게 언성높인다면 그저 그런 이야기가 되고 말테니까……. 성규는 이내 다짐을 끝냈는지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다. 그리고 우현의 눈을 직시했다. 우현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두 눈을 껌뻑거렸다.
"우리 완벽하게 헤어지자……."
성규를 바라보던 우현의 눈동자가 커졌다. 다시 들어오겠다고 할 줄 알았던 성규가 헤어지자는 말을 꺼냈다. 지난 번 처럼, 그리고 지금까지의 이별처럼 그냥 한 순간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화를 내고 있지도, 술을 마시지도 않았다. 정말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소리였다. 우현은 다시 한 번 되물었다. 하지만 성규는 똑같은 소리를 내뱉었다. 우현에게 살짝의 공황상태가 찾아왔다. 우현은 멍하니 성규를 바라보았다. 이럴 순 없었다……. 우현은 한달 전까지만 해도 성규와 나누었던 사랑을 떠올렸다. 갑자기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우현은 성규의 손목을 그러쥐었다. 성규는 빠져나오려 애썼지만, 잔뜩 화가 난 우현에게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우현은 성규를 잡고서 안방으로 끌고 들어갔다. 거친 손길 끝에 성규의 옷자락이 튿어졌다.
"남, 남우현……, 너, 너 뭐하는 거야! 이거 놔!"
우현은 말없이 성규의 쇄골을 빨아들였다. 이내 빨간 자욱이 성규의 몸 곳곳에 남았다. 성규는 우현의 머릿자락을 밀다가 지쳐 이젠 주먹을 날려보았다. 하지만 우현은 굴하지 않고 성규의 몸을 이리저리 핥아대었다. 성규는 싫다는 듯 최대한 발악해보았지만, 우현은 화난 눈빛으로 으르렁대기만 할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결국 성규는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우현은 성규가 터뜨린 울음이 귀에 박히고 나서야 성규를 바라보았다. 헤어져있던 한달간 얼마나 울었던 것일까. 성규의 눈자락은 이미 퉁퉁 부어, 뜰 수 조차 없게 생겨있었다. 우현은 터질 것 같던 동공을 유하게 풀면서 슬픈 눈빛으로 성규를 바라보았다. 성규는 이에 급하게 옷 단추를 채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성규는 크게 훌쩍이면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외투를 걸쳐올렸다.
"남우현……, 그 날 내가 한 말 기억해……?"
"……."
"나 지금 15년 전 남우현이 너무 너무 보고 싶어, 정말로. 방금전에 나왔던 김명수처럼 들뜬 모습으로 나한테 고백했던 네 모습, 나 너무 보고싶어……. 흐읍……, 흐으윽……."
"……김성규."
"똑같은 시간이 흘렀는데……, 방향은 왜 이리 엇갈렸어. 이미 마음 떠난 사람들끼리 있어봤자…… 사랑하는 그 마음이 생기겠니, 돌아오기를 하겠니……. 이번 달 안에 동우집으로 싹 짐 뺄게……."
"허, 그래……? 그래, 어디 가봐."
"……정말, 정말 남우현 진짜 사랑했어……."
우현은 성규가 떠난 자취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방금까지 성규가 누워 발악하던 침대 위도, 그 흔적조차 아름다웠다. 내가 방금 무슨 짓을 한 거지……. 우현은 생각할 수 없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나 끔찍한 일인 것 같은 기분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그래, 내가 너무 …… 너무 자만했구나. 우현은 지금이라도 내려가 붙잡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창가 아래로 들려오는 차소리에 고개를 숙였다. 잠시나마 있던 온기가 사라지자 다시 집이 얼어붙어버렸다. 우현은 불조차 끄지 않고, 성규가 누웠던 자리에 드러누웠다. 사라지지 않은 진한 냄새가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우현은 자신 스스로를 책망하며 향기 위에 눈물을 덧칠했다.
* * * * *
성규는 핸들에 고개를 묻어버렸다. 뚝뚝- 흐르기만 하던 눈물이 입사이를 타고 흘러나와버렸다. 어떻게 해야해……. 미칠 것만 같았다. 지금 이상태로 차를 몰고 집에는 갈 수 있을까. 성규는 홍수가 난 듯 터지는 눈물자락 때문에 앞조차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정말…… 정말 어떻게 해야 해……. 답 조차 없는 시간이었다. 성규는 눈물범벅인 뺨을 닦아내었다. 자꾸만 희뿌연 안개같은 것이 끼어댔지만, 독한 마음으로 시동을 걸었다. 왈칵- 걸리는 시동이 야속했지만, 이제는 가야했다. 친구에서 애인이 되고, 애인에서 다시 친구가 되기까지. 너무 오랜시간이 걸렸으니까-, 오늘은 친구에서 친구가 될 수 있게 얼른 집에 가서 푹 쉬고 싶었다. 성규는 천천히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갔다. 거리마다 울려퍼지는 캐롤들과 다정한 연인들. 성규가 결국 더 크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흐아아앙-, 흐윽. 왜, 왜왜! 왜 나한테 그러는데!"
소리없는 오열이 이어지기를 반복, 결국 차 안은 성규의 터질듯한 음성으로 가득차버렸다. 성규는 참을 수 없다는 듯 소리치고, 울고, 생떼를 부렸다. 하지만, 천천히 그것도 가라앉아버렸다. 한참을 울며 동우의 집앞에 도착하고 보니, 차라리 속이 시원했다. 한창 박혀있던 가시를 쏙- 뽑아낸 것 처럼. 아프지도 괴롭지도 않았다. 어쩌면 자신은 우현과 헤어지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많은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성규는 평온해지는 마음이 이상했다. 이게 어쩌면 행복일 지도 몰랐다. 이제 혼자가 되었지만, 싫지 않은 느낌이었다.
"……제발, 제발 틀린 선택이 아니기를."
* * * * *
*여우 사담*
안녕하세요, 여우입니다.
제가 지금 바로 교육강의를 들으러 가야해서요 ㅠㅠ..
학교에서 급하게 올립니다, 집에 가면 12시가 넘어서요 ㅠㅠ
어엉, 그대들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밤에 답글 달러 다시 올게요!! ㅎㅎㅎㅎ
신알신, 신암호닉 그대들 사랑해여 ㅋㅋㅋ 잉, 오늘 캡쳐할..ㅋㅋㅋ
핰핰핰.. 아잌, 그럼 그대들 전 그대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라질게여, 뿅뿅!
우리 현성이들 어떡해, 흡 언제쯤 행쇼할런지
+) 댓글을 먹고 사는 여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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