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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가 서투르신가요?
다가가길 망설이고 계신가요?
그렇다면, 찾아주세요.
웰컴 투, 오피스 시라노.
01. 오늘 당신의 날씨는 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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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닥타닥 울려퍼지는 자판소리와 자판 위를 춤추는 손끝에 의해 연분홍 바탕에 꽃피는 글자들을 읽어내는 목소리. 마침내 손끝의 움직임이 멈추고 목소리는 자판 위를 맴돌다 한 곳으로 향한다.
“다 된 것 같아요 형. 몇부 인쇄도 해둘까요?”
“아냐- 그냥 냅두고 와서이거나 한 잔해.”
“고마워요. 어휴, 비가 많이도 오네.”
가만히 창밖에 나뭇잎들을 따라 흘러내리는 빗방울들을 보던 지민은 3년전쯤, 비가 추적추적 오던, 이 사무실에 처음 발을 디디던날의 조각을 머릿속에서 모아본다.
그때는, 참 사무실이라고 말하기도 창피할 정도였다. 뭣 하나 갖추어진 것도 없이, 있는 것이라곤 달랑 사장이라는 이름을내건 남준과 골목 어귀에서 끌고 온 듯한 낡은 컴퓨터 한대가 전부였으니깐. 그리고 3년이라는 시간 동안, 남준은 꽤 많은 것을 일구어 내었다. 바뀐 것은 비가 새던 사무실 천장과 낡은 컴퓨터 뿐 아닌, 회사의명성까지 였으니.
한참을 그때 생각을 하며 지민은 쉽사리 기억에서 헤어나오질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중, 경쾌한 종소리 틈으로 추적추적한 빗소리와 함께 누군가의 인사소리가 지민의 회상을 갈랐다. 뒤이어 사무실에 스며드는 비가 적신 흙냄새에 지민은 정신을 차리고 인사소리의 주인공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예약하셨나요?”
“아, 예.”
“성함이?”
지민보다 한발 빨랐던 남준이 손님을 푹신한 쇼파로 안내하며 질문을 던졌다.
“민윤기요.”
“아, 12시 예약 딱맞춰 오셨네요. 차 한잔 드릴까요?”
“네, 커피 아무거나 따뜻한걸로부탁 드릴게요.”
남준이 굳이 말을 하거나 눈짓을 하지 않았지만 지민은 당연하단 듯 종종걸음으로 커피 머신 앞에 섰다. 3년 전 이라면, 아마 노란 봉투에 들어있는 커피믹스를 휘젓고 있었겠지만이제는 왠만한 카페 부럽지 않은 커피 머신 앞에 설 수 있었다. 커피 머신에서 나오는 커피 향기와 열어놓은창문에서 쏟아지는 비 오는 날의 향기가 적절히 섞인 공간 사이에서 남준과 의뢰인의 말이 오가고 있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를 윤기와 남준, 그리고 제 몫까지 챙긴 지민은남은 의자에 앉았다. 의뢰인의 사연을 듣는 것은 굳이 제 일이 아니긴 했다. 하지만 지민은 늘 의뢰인들과 남준의 곁에 커피 한잔을 들고 제 신발 코를 바라보며 사연을 듣곤 했다. 의뢰인들의 사연은 여느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감미로운 이야기 못지 않았다. 어떤사람일 지라도 사랑의 성공을 위해 이곳을 찾은 이들의 목소리는 담담하건 풋풋하건 간에 설렘과 애정이 담겨있었다.그런 그들의 목소리가 베어 나오는 사연을 듣다 보면 그 특유의 달달함에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가 말려 올라가곤 한다.
“그럼 다음주 월요일, 오후 1시로 예약 잡아두고 그때 뵐게요.”
“예- 감사합니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신발 코를 바라보던 지민은 어느새 제 손에 들린 커피가 식은 것을 느꼈는지 고개를 들었다. 비슷한 무렵 의뢰인 윤기도 주섬주섬 자리를 정돈하며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가벼운 겉옷을 걸치는 윤기를 붙잡고 남준은 다음 예약시간을 잡고 있었고 그 후에 윤기가 우산을 펼치고 가볍게 목례를 하며 나갈 때까지도 지민은 말려 올라간 입꼬리를 펼 줄 몰랐다. 세 개의 커피잔을 치우는 지민을 뒤로 남준은 풀썩제 자리에 앉아 골똘히 생각했다. 민윤기… 민윤기. 어디서 많이 들어본거 같은데. 아무리 제 머리가 좋다고 해도 남준은어디서 윤기의 이름과 마주쳤는지 기억해내지 못하고 있었다. 때마침 사무실의 문을 박차고 달려 들어오는정국 덕택에 그 시간조차 방해 받고 말았지만.
“시키는거 사왔어요! 어휴드럽게도 멀어- 사람은 또 드럽게도 많고”
빗물을 뚝뚝 흘리는 정국의 우산을 정리해주며 지민은 푸근하게 웃었다.
“어, 예약 있다고 하지않았어요? 12시에?”
“벌써 가셨지- 사오느라고생 많았어. 어서 먹자- 형도 이리 오세요.”
정국이 손에 꼭 쥐고 온 포장백에 들어있는 점심거리를 꺼내며 지민이 남준을 불렀다. 요 근처에유명한돈까스 김밥집이 있다며 정국이 한번 먹어보자고 제안해 사오는 터였다. 이미 볼에 한웅큼 김밥을 집어넣고오물거리는 정국에서 남준이 말을 꺼냈다.
“야 정국아.”
“롸?”
“민윤기 있잖아, 어디서많이 들어본 이름 아니냐?”
“민윤기? 슈가 이름이잖아요, 슈가. 저기 내가 사다둔 앨범도 있는데”
“아, 그러네”
“슈가는 왜요?”
“아, 우리 의뢰인이라.”
“롸?”
“예?”
마치 시계를보고 ‘아, 벌써오후 2시네’ 라고 말하듯 단조로운 어조로 남준이 뱉어낸말들을 듣고 정국은 물론 그 옆에 앉아 김밥 속에 말린 돈까스를 씹던 지민까지 당황했다.
“슈가가????????? 윤기님이, 우리 의뢰인이라고요?”
“응,”
“언제?????? 언제오는데????? 지금 내가 돈까스 김밥 따위 한가롭게 씹을때가 아닌데?”
그말에 지민까지 씹던 돈까스를 꿀떡 삼켜버렸다.
“너 들어오기 금방전에 갔지. 다음예약은 다음주 월요일?”
“허??????? 에???????? 그럼 내가 이 김밥 사려고 슈가를 못봤다고요? 아니지민형도 뭐라 말 좀 해봐요.”
“아.. 그 사람이 슈가였어?”
정국의 표정은 꽤나 볼만했다. 한쪽 볼따귀엔 탁구공이라도 들어간 것마냥 볼록해서 눈은 용수철을 단 듯 튀어나오기 일보 직전 이었고. 담담한 남준에 반해 정국은 미치고팔짝 뛸 노릇이었다. 천재 프로듀서이자 랩퍼인 슈가를 모르다니! 병아리는삐약삐약, 소는 음매음매 이듯 랩퍼하면 슈가인데! 대체 이형들은 얼마나 문화와 단절되어 있는거면 슈가의 본명이자 대한민국 모든 여자들의 남자친구 이름인 윤기를 모르는걸까.아니, 그보다 슈가가 우리 의뢰인 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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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건지 비는 멈출 생각을 하지 않고 계속 내렸고 정국이 고대하던 그 다음주, 월요일에도 여전히 비는 계속되고 있었다. 지민은 홈페이지에 올라오는상담예약을 정리하느라 정신 없었고 그 말 많은 정국도 남준이 없는 덕택에 의뢰인 일지를 작성하느라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월요일 1시가 되어가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지민과 정국 사이엔 공기만 흐를뿐 그 이외의 것은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정적을 깬건 출근 전 볼일이 있다며 좀 늦는다던 남준이었다.
“정국아, 커피 좀 타다줘.”
문을 열고 들어온 남준은 여전히 내리는 비에 어깨가 살짝 축축해 보였다. 그리고뒤를 이어, 정국이 그토록 기다리던, 윤기가 들어왔다.
"아, 의뢰인분, 안녕하세요- 박지민 입니다."
"전정국입니다."
"민윤기 라고 해요. 반가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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