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정국에 뷔 예보
그녀의 속사정
얼마나 눈물을 뚝뚝 흘려냈을까 시간이 흐르는 것도 잊은 채 서럽게 울어댔다. 눈물 흘리는 게 싫어 눈가를 벅벅 닦아내도 삐져나오는 눈물은 더 서글프게 만들었다. 학교를 마칠 때까지도 반으로 내려가지 않던 탄소는 옥상 위에서 아이들이 빠져나가는 것을 보고 난 후에야 반으로 돌아와 가방을 울러맸다. 정국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탄소는 눈가가 벌개진 채로 연신 코만 킁킁거렸다. 텅 빈 교실 안을 훑어보다 교실 문을 걸어잠궜다.
" 어? 야, 너 이제 집, 어…. 너 울었어? "
" ……. "
뒤돌기도 전에 탄소에게 어깨동무를 해온 지민이 이제 집을 가냐며 물으려던 찰나 탄소의 얼굴을 내려다보니 벌건 눈에 코 끝이 빨감에 놀라 어깨를 잡아 시선을 맞추었다. 걱정이 서린 표정이 탄소를 더욱 서럽게 만들었다. 금방 전 그친 눈물이 마를 시간도 없이 또 흘러내렸다. 그에 당황한 지민은 어버버 거리다 그저 품에 안아 등을 다독여줄 뿐이었다. 눈물을 그칠 때까지 지민은 품 안에 있는 탄소를 달래며 기다려줄 뿐이었다. 울지 마. 울지 마. 다독이며.
겨우 진정이 된 탄소는 그저 고개를 푹 숙이고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분위기가 어색해 머리를 긁적이던 지민은 먼저 발걸음을 옮기는 탄소를 뒤따라 조심스레 학교를 벗어났다. 얼마나 침묵 속에서 길을 걸었을까. 지민은 어느 새 저도 모르게 이미 제 집의 정반대 방향을 따라왔다. 탄소의 뒤만 쫓던 지민은 우뚝 멈춰선 탄소에 저도 따라 멈춰섰다. 그러고 한참 서있던 탄소는 몸을 돌려 지민을 올려다 봤다.
" 왜 따라와. "
" 그냥, 너 혼자 보내면 안 될 것 같아서? "
" 그럼 놀이터 가자. 그네 타고 싶어. "
" ……그네? "
" 응. 그네. 왜? 유치해? "
" 아니. 나도 때마침 타고 싶었다고. "
그네라는 말에 의구심을 품었다. 뒤따라 붙는 유치하냐는 말에 손사레치자 탄소가 슬쩍 웃어보였다. 그리곤 다시 걸음을 옮기는 탄소의 뒤를 쫓았다. 그리고 들어선 아파트 단지 안 놀이터는 작은 꼬마들이 뛰돌다 간 흔적들이 남아있었다. 여기저기 어질러진 나뭇가지들, 깜빡하고 가져가지 못한 장난감들. 어두워진 하늘에 놀이터를 밝혀주는 빛이라곤 작은 가로등이 빛내는 주황빛 하나 뿐이었다. 모래를 밟고 그네로 다가간 탄소는 쇳소리를 내며 삐걱거리는 그네에 몸을 실었다. 그리곤 멍하니 서있는 지민을 향해 옆자리에 빨리 앉으라는 듯 턱 끝으로 가르켰다. 그에 정신을 차린 지민이 큼큼 헛기침을 해대며 신발 안을 파고 들어오는 모래들에 인상을 찌푸리다 탄소 옆자리에 앉아 신발을 벗고선 안에 있는 모래들을 털어냈다.
" 난 놀이터가 그렇게 싫더라. "
" 싫다고? 그럼 왜……. "
" 오기는 그렇게 싫은데, 또 막상 오면 좋아. "
" ……. "
" 특히 이렇게 사람 하나 없고 저기 조명 하나 켜져있는 분위기라면 더더욱. "
땅에 발을 디뎌 몸을 앞 뒤로 움직임에 삐걱삐걱 소리를 내며 그네가 움직였다. 지민은 그 모습을 바라만 볼 뿐이었다. 아까 전 제 품에 안겨 울던 탄소의 모습이 자꾸 눈 앞에 아른거렸다. 소리내지 않고 숨 죽여 눈물만 뚝뚝 흘려내는 그 모습이 안타까웠다. 지민은 학교 내에서 신뢰를 많이 받는 편이었다. 전교 1등 자리를 매년 지키면서도 운동이며 사교성까지 밝아 선생님이든 아이들이든 지민을 좋아했다. 그에 반면 정국은 지민의 정반대였다. 익히 지민에게 정국의 이야기들은 듣고 싶지 않아도 들려왔었다. 우리 학교 꼴통도 너 반만 닮으면 좋을 텐데. 를 시작해 정국을 험담하는 이야기들을 들을 때면 지민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뿐이었다. 어찌되었건 정국 앞에선 한 마디도 못 하는 이들이었으니까. 지민은 그런 이야기를 듣다 보니 정국에 대한 인식은 나빠질 뿐이었다. 그런 부류의 아이들을 좋아하는 편도 아니었고. 그리고 어느 날부터인가 반 아이들 입에서 갑작스레 정국의 이름들이 오르내렸다.
" 야, 7반 전정국 있잖아. 걔한테 개기는 애가 있다더라. 그것도 여자. "
" 헐. 아직 숨은 붙어있대? "
" 걔도 만만치 않은 양아치 같던데. 성격 개판이라더라. "
지민은 한 쪽 입꼬리만 올려 그를 비웃었다. 양아치 같은 년이 또 더 늘었구나. 학교가 개판이 되어 가네. 뭐 그 따위의 생각들이었다. 그리고 그런 탄소를 급식실 앞, 정국의 싸움판을 구경하던 날 처음 만났던 둘이다. 지민은 그냥 저도 모르게 탄소에 대해 더 궁금했졌고 더 알아가고 싶었다. 이유는, 그냥. 그냥이었다. 발을 굴리다 말고 그네를 멈춘 탄소가 지민을 바라보았다.
" 그네 밀어 줘. "
" 혼자 잘 타다가 왜. "
" 나 남이 밀어주는 거 좋아해. 빨리 밀어 봐. "
" 겁나 귀찮네, 진짜. "
투덜투덜 거리면서도 발은 이미 탄소의 뒤로 옮긴 후였다. 다시끔 신발 안으로 파고 들어오는 모래들에 인상을 찌푸리다가도 제 앞에 있는 작은 머리와 등에 웃음이 터져버렸다.
" 왜 웃냐? "
" 너 진짜 작다, 야. "
" 지랄하지 말고 밀어. 자꾸 키로 열받게 하지 마라. "
" 키 작다고 안 했는데? 머리 작다고, 머리. "
" 아, 그거나 그거나! "
발끈한 탄소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여전히 입꼬리는 귀에 걸린 채 장난이라며 다시 앉혔다. 살살 등을 밀자 멈춰있던 그네가 다시 삐걱삐걱 소리를 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정한 높이와 일정한 속도를 지키며 밀어주던 지민은 아무 말 없는 탄소에 저 또한 아무런 말 없이 등만 밀어줄 뿐이었다. 한참 그러고 있다 탄소는 고개를 젖혀 하늘을 보며 지민을 불렀다.
" 야, 너 공부 잘 하냐? "
" …어, 뭐. 조금? 갑자기 왜? "
" 전교 1등은 해 봤냐? "
" 아니 왜 대뜸없이 호구 조사야. 뭐가 궁금한 건데. "
" 늘 전교 1등하던 애가 전교 1등을 포기할 정도면, 포기하게 만든 대상은 어떤 존재인 거야? "
지민은 탄소의 질문에 제법 진지하게 생각을 했다. 전교 1등에 대한 기대감은 늘 저를 옥죄이게 만들었다. 점수가 떨어져서도, 그 자리에서 벗어날 수도 없는 게 전교 1등의 자리였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1등이라는 자리를 남에게 내어준 적이 없었던 지민은 딱 한 번. 고등학교 1학년 시절, 전교 2등을 한 적이 있었다. 그 때 엄마에게 뺨을 맞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렇게 죽기 살기로 지켜낸 자리었다. 전교 1등은. 그런 자리를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 있다면, 어떤 존재일까.
" 어…. 나를 포기하는 게 아닐까. "
" 포기? "
" 어, 포기. 그렇게 힘들게 붙잡고 있던 그 자리를 포기할 정도면, 나를 포기하는 거지. 그 대상을 위해. "
" ……그럼 반대로 억지로 포기 할 수 밖에 없게 만든 대상이라면? "
" 죽여버리고 싶지 않을까. 증오, 분노, 미움. 모든 게 그 대상을 향하겠지. "
" ……. "
" 넌 안 해봐서 모르겠지만, 전교 1등 그 자리가 목 졸라대듯 막대한 부담감이 장난 아니다, 너. "
" 넌 해본 것처럼 말하지 마. 재수없어. "
지민은 딱히 반박하지 않고 다시 옆 그네에 앉았다. 한참 무언가를 생각하며 하늘을 바라보던 탄소는 하늘을 향해 젖혔던 고개를 바로 해 몸을 일으켰다. 이제야 그네 좀 타볼까 마음을 먹었던 지민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탄소를 올려다 봤다.
" 집 가자. 기분 더러워졌어. "
" 왜, 또. "
" 몰라. "
" 성질 머리 더러운 건 어딜가도 네가 1등 먹겠다. "
" 좆 까. "
지민은 저를 흘겨보며 먼저 뽈뽈 놀이터를 벗어나는 탄소의 뒤를 쫓았다. 놀이터 안은 두 사람이 머물다간 흔적도 남았다. 삐걱삐걱, 아직 멈추지 못한 채 흔들렸다. 놀이터 안을 비추는 건 여전히 주황빛을 내는 가로등 뿐이었다.
* * *
끝까지 집까지 데려다 주겠다던 지민에게 욕을 퍼붓고 엉덩이를 걷어찬 뒤에야 집으로 보낼 수 있었다. 추운 바람에 코를 훌쩍이며 몸을 웅크린 채 치마 주머니에 손을 꼽아두었다. 여전히 손에 잡히는 담뱃갑을 꼼지락 거렸고. 그러다 경쾌하게 울려대는 전화벨 소리에 오들오들 떨며 폰을 꺼내었다 액정에 뜨는 발신자를 확인하곤 얼굴을 보기 좋게 찌푸렸다. 그냥 끊을까 하다가도 받을 때까지 걸 대상이었음을 알기에 전화기를 귀에 가져다 대자마자 전화기 안에서 울려대는 클락션 소리들에 귀에서 폰을 땠다. 존나 문란한 새끼들.
[ 여보세요? 받았는데 왜 말이 없지. 여보세요. ]
" 네가 왜 나한테 전화를 해. "
[ 뭐? 와, 존나 정 없는 년. 친구한테 반응이 뭐 그따구야? ]
" 우리 시마이친 거 아니었냐? 끊어. "
[ 아아. 끊지 말고. 전학간 학교는 생활 할만 해? 애들 전부 다 고삼이 무슨 전학이냐고 지랄하던데. ]
" 좆 까라 해. 알 바야? "
[ 너 전정국 있는 학교 갔다며. ]
" …어떻게 알았냐? "
[ 널린 게 정보통인데, 뭘. 숨긴다고 숨겨지냐? 걍 그 새끼만 모르게 살아. 나도 애들 입 단속 시키는 중이니까. ]
" 아, 시발. "
[ 워워. 또 흥분하지 말고. 가끔 내려 와. 보고 싶다, 우리 지랄견. ]
" 너도 연락하지 마. 기분 잡치니까. "
[ 근데 진짜 너 왜 찾아갔냐? 반응은 어떻디. 좋든? ]
" ……. "
[ 엉? 어땠냐고! 후기 알려줘야지, 후기! ]
" 좆 까, 시발롬아. "
그대로 전화를 뚝 끊었다. 그 뒤로도 몇 번이나 울려대는 벨 소리에 신경질 적이게 전원을 껐다. 집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폰을 집어던진 채 침대에 몸을 뉘었다. 사람의 온기라곤 찾을 수 없는 집 안은 혼자 살기에 터 없이 넓을 뿐이었다. 안 먹는다는 말에도 불구하고 늘 차려놓는 밥과 국은 차게 식어갔다. 저런 거 혼자 쳐 먹어서 뭐 해. 팔을 들어 눈을 가린 탄소는 옥상에서 했던 태형의 말, 놀이터에서 했던 지민의 말, 그리고 전화로 호들갑을 떨어대던 친구 호석이 했던 말까지. 좀처럼 정리가 되지 않았다. 뭐가 어디서 어디까지 잘못된 건지 어림조차 되지 않았다.
" 애새끼도 아니고, 맨날 그네 탄다고 지랄이네. "
" 말 좀 곱게 하지? "
" 그럼 네가 작작 귀찮게 하던가요. "
투박하게 손을 뻗어 저의 등을 밀어주던 그 손길도,
" 공부 좀 해라, 너. 꼴등이 뭐야, 꼴등이. "
" 야, 너만 잘 하면 됐지, 나까지 잘 하면 우리 브레인 커플이라서 안 돼. "
" 참, 말이라도 못 하면. "
볼을 꼬집으며 저를 사랑스러워 하던 그 눈길도,
" 네 말대로 예전의 네가 좋다면 장기라도 팔아 줄것 같이 굴던 새끼 아니니까, 알아서 사려. "
이제 다시는 볼 수 없겠지. 눈을 감은 채 호석이 물었던 질문을 곱씹었다. 왜 찾아 갔느냐고? 꾹 다물린 입술을 깨물었다. 다 아물지 못한 입술 위 상처는 다시 벌어져 피가 고였다. 아프다는 생각이 들지도 못할 정도로 세게 물었다. 그 질문의 답은 여전히 정국에게는 내뱉지 못할, 평생 혼자 속으로 삼켜야 할 말이었다. 찢어진 입술 사이로 흐느끼는 소리가 방 안을 가득 메웠다. 탄소는 저에게 다시 물었다. 왜, 전정국을 찾아 왔어? 눈가 옆으로 떨어지는 눈물들이 서글펐다.
" ……보고 싶어서."
* * *
마자요 맞습니다. 오늘은 여주의 들어내는 편이었어요.. 애초에 정국을 찾아온 이유가 보고 싶어서 찾아왔다는 걸! 들어내고 싶었어요!
여주 우는 걸 많이 마음 아파 하시더라고요? ㅎㅎ 그래서 오늘 왕창 울렸습니다 ㅠㅅㅠ 여주는 자존심이 세고 고집이 강한 캐릭터에요.
보통 이런 성격은 남들 앞에서 우는 걸 싫어하죠? 혼자 집에 박혀 울고.. 전형적인 나의 모습.. 지민이 앞에선 소리 죽여 울다가 집에서
오열 하시는 여주를 보실 수 있습니다.. (맴찢) 오늘 정국이는 안 나왔지만 과거의 정국이 모습을 뽐뽐 넣어봤습니다.. (풋풋 꾸기) ♡
그리고 전학 오기 전 여주의 친구였던 홉이도 나오구요! 아이들 전부 출연시킬 거예요 저는.. 게스트가 되고 말 수도 있지만! 그래도!
그리고 어서 쓰고 싶은 다른 소재도 있기 때문에 이걸 다 연재하고 죽는 게 제 목표입니다.. 만약 어느 날 갑자기 제가 사라진다면
그건 전정국 때문이에여. (사인 : 씹덕사, 치명사) 아 또! 도깨비 보세요 두 번 보세요 세 번 보세요.. 시그널 이후 제 인생 드라마ㅠㅠ
제가 가끔 중간에 지민이든 여주든 정국이든 과거 회상씬이 불쑥 나오는데 읽기 불편하실까 봐 걱정 ㅠㅅㅠ.. 제가 필력이 딸려서ㅠ
그래서 다음 화 예고는! 그의 속사정! 이랍니다! 절대 과거편이 아니고요! 글이 늘 여주 시점으로 돌아갔다면 다음 화는 정국 시점!
오늘은 어제 늦게 올린 탓에 하루에 두개 올린 셈이네요! (뿌듯) ! 저는 이제 답댓 달러갑니다, 내 겸둥이들 보러유...ㅎㅅㅎ♡♡♡
↓ 마지막으로 우리 태형이 진짜 생일 축하해! 보라해! 밑에 이미지는 글에서 태의 이미지와 가장 비슷한 사진 ㅎ ↓
♡ 제 마음 훔쳐간 양아치들 암호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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