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을 잡은 이 다른 손은 그렇게 달리다 숨이 차오를 때 쯤 멈추었다. 손은 꼭 잡은 채로 등을 보이고 숨을 고르다, 남자는 고개를 돌려 웃으며 눈을 맞췄다. "기분은 좀 괜찮아?" "...아, 네. 감사합니다." "아 맞다. 나이가 어떻게 돼? 나보다 어리지? 내가 후보생 중에 제일 어려서." "저 23살인데." "...아...그래..." "혹시...저보다 어리세요?" "...알바 안늦었어?" 나보가 어린게 확실하다. 이 짧은 대화가 오늘 아침부터 있었던 고된 시간들을 모두 풀어주는 것같았다. 괜히 웃음이 났다. 그 순간 대화 중에도 잡고 있던 손을 의식하게 되어서 슬며시 손을 빼며 말했다. "내가 누나지? 맞지? 나 반말한다." "...그러든가. 어차피 나도 반말할거야." 키는 나보다 더 크고, 회색 코트를 입고 있고, 손도 나보다 더 크고, 살짝 올라간 눈매에 웃는게 이쁘다. 괜히 옆에 있으니까 자세히 보게 되고, 좀 설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냥 그랬다. "알바 가는 길 이쪽이지?" "응. 아, 이름이 뭐야? 이름도 모르네." 걷던 발걸음을 멈추고 서로를 마주했다. "공찬. 니 이름은 알아. 이하란." 공찬. 예쁜 이름이다. 입 속에서 몰래 이름을 말해봤다. 역시 예쁜 이름이다. 다시 코트 주머니에 각자 손을 넣고 걸으며 대화를 했다. "내가 여기있는건 어떻게 알았어? 우연히?" "아니, 따라다녔지." "뭐?? 그럼 어제 가게 앞에 있던건?" "넌 줄 알고 있었어. 너 알바하는줄." "...근데 너 왜 자꾸 너라고해? 누나라고 해야하는거 아니야?" 웃음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굉장히 오빠이고 깊어하는 것 같아서 무슨 대답이 나올지 궁금했다. 공찬은 날 힐끔 쳐다보더니 몇 초 공백을 두고 말했다. "그래 누나. 됐지? 난 내가 부르고 싶은걸로 부를거야. 너라고 하든 누나라고 하든 하란이라고 하든. 지금은 특별히 누나라고 불러줬다." 대답도 못하고 잠깐 멍해졌다가 저 앞에 앞서가는 공찬을 보고 걸음을 빨리했다. 그렇게 가다보니 어느새 알바 장소에 도착했다. 그런데 가게 안에 손님이 있었다. 내 동생이었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주춤거리는 날 보고 공찬이 물었다. "왜? 아는 애야?...설마 그 동생?" 어디까지 알고 있길래 '그 동생'이라고 말하는 걸까. 그런 생각응 할 겨를도 없이 가게 안의 동생이 나를 보더니 가게 문을 열었다. "언니가 여긴 무슨일이야? 뭐 사려고? 팔자 좋아졌네~집나가더니 이런델 다오고. 옆에 남자는 뭐야? 꼴에 남친도 사겼나봐?" 다행히 내가 알바하는 곳이란걸 모르고 우연히 들른 모양이다. 저런 말은 늘 듣던 비아냥이고, 별로 대꾸하고 싶지도 않아서 그냥 무시하려했다. 그런데 그 때 옆에 잠자코 서있던 공찬이 나에게 무표정으로 물었다. "얘 여기서 사라지게 해줄까?" 여기서 사라지게 해준다니. 그렇게만 된다면 그보다 감사할 일은 없을 것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공찬은 여동생과 그 친구의 눈을 그냥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러자 갑자기 둘이 밖으로 나오더니 나를 그냥 지나치고 어딘가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뭐야? 어떻게 한거야? 쟤네 어디가는건데?" "경찰서 앞. 너무 가까운가? 더 멀리 보낼걸 그랬나." 맞다. 후보생에게 주어지는 한 가지의 능력. 그거였다. 그 순간 머릿속에 여긴 알바하는 곳이라는 정신이 확들었다. "그럼 나 알바한다! 도와줘서 고마워!" 다행히 사장님은 따로 나와보지 않은 모양이다. 가게로 들어가 안쪽 사장님께 왔다는 눈인사를 하고 어질러진 액세서리를 정리했다. 그리고 고개를 드니 여전히 그가 서있었다. "워...깜짝아. 안갔어?" "도와줬는데 그렇게 매정하게 바로 가라고하냐." 왠지모를 머쓱함에 헛웃음을 지었다. "아...그럼 저기 앉아서 좀 쉬다 가던지. 아님 책 아무거나 읽어도 되고." 공찬은 살짝 눈을 찌릿하더니 의자에 앉았다. 오늘은 나도 할 일이 있어 책을 읽을 시간이 없었다. 사장님께서 시키신 일이 있는데 팔리지 않아 좀 오래된 액세서리들 중 귀걸이 알이나 팬던트들을 분리해 놓는 작업이었다. 가끔 한 번씩 분리해서 새로운 디자인을 만드시는데 오늘이 그 날이었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어깨가 뻐근해 고개를 들고 스트레칭을 하려는데 공찬과 눈이 마주쳤다. "설마 계속 쳐다보고 있었던건 아니겠지?" "...맞는데?" 장난식으로 물었는데 의외의 대답이 나와 당황스러웠다. "왜 쳐다봐, 민망하게. 책이나 읽지." "그냥. 대단한 이유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오, 민망해! 얼굴이 빨개질까 두려운 그 때 짤랑 종소리와 함께 가게 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왔다. 경찰서 앞까지 갔다온 동생, 하린이었다.
![[B1A4/공찬] 도깨비 후보생과 나 - 7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7/01/17/16/5c2ffd5bfcf00bcf7b3ae3b397d79a4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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