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정국에 뷔 예보
탄소는 한참 정국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진짜, 전정국이 와줬다. 다시는 마주치지 못할 거라 생각했던 놀이터에서. 그 시선을 받아내던 정국이 뻘쭘해졌던 건지 뒷목을 긁적이며 옆 그네에 앉았다. 탄소의 시선은 여전히 정국의 얼굴을 쫓으면 시선을 거둘 줄 몰랐다. 인상을 찌푸리지 않은 얼굴이 너무 오랜만이라, 제게 차갑게 굴지 않는 얼굴이 너무 오랜만이라, 쑥스러운 표정을 짓는 게 너무 오랜만이라….
" 어떻게 알고 왔어? "
" 뭐. "
" 나 여기 있는 거 어떻게 알고 왔냐고. "
" 그냥 지나가다 놀이터 있길래 와 봤는데 네가 담배피고 있었던 거야. 착각하지 마. "
" ……착각 안 했는데. "
정국의 시선이 그제서야 탄소를 향했다. 바람도 잘 드는 곳에 앉아 얼마나 오래 앉아있었는지 코 끝이 빨개져 연신 훌쩍거렸다. 한숨을 푹 내쉰 정국이 앉은지 얼마되지 않은 그네에서 엉덩이를 떼고 일어나자 탄소의 시선이 정국을 쫓았다. 한 번 감기에 걸리면 죽을 사람처럼 굴던 탄소가 떠올라 그저 이 추운 곳에 내버려둘 수가 없었다.
" 일어나. 감기 걸려. "
" 벌써 가게? "
" 이 추운데서 뭘 하겠다고. 빨리 일어나. 데려다줄 테니까. "
탄소는 고분고분 몸을 일으켜 정국의 뒤를 따랐다. 집을 데려다준다고 했다. 전정국이, 집을 데려다준다고 했다. 미치도록 싫었던 집을 가는 발걸음이 가벼운 이유는, 옆에 정국이 있음이 아니었을까. 손을 잡고 걷던 거리와는 사뭇 달랐다. 다섯 발자국은 뒤로 떨어져 앞서 걷는 정국의 뒷모습이 낯설었다. 옆으로 가 손을 잡고 싶었고, 어떻게 지냈냐며 염치없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정국의 사소한 일들을 듣고 싶었다. 저가 없는 삶은, 어땠는지. 나만큼 괴로웠는지. 묻고 싶었다. 그러다 우뚝 멈춰선 정국의 걸음에 놀라 눈에 띄게 움찔거렸다. 고개를 살짝 튼 정국이 탄소를 바라보았다.
" 너네 집 어딘지 몰라. 앞장 서. "
" ……아, 응. "
쭈뼛거리며 정국을 지나쳐 앞서 걷다 정국의 앞에 서자 정국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탄소를 훑었다. 그러자 눈을 질끈 감은 탄소가 정국의 앞에 손을 내밀었다. 작고 여린 손이 추위에 못 이겨 빨개진 손에 정국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제서야 살며시 눈을 뜬 탄소가 정국의 표정을 살피다 역시 안 되겠지? 하며 손을 거두려 하자 그 손을 잡은 정국이 제 패딩 주머니 속에 넣었다.
" 네 손이 차가워 보여서 잡은 거야. 이것도 착각하지 마. "
" ……아오, 착각 안 한다니까. "
맞잡은 손이 따뜻했다. 정국의 옆 선을 천천히 뜯어 살폈다. 여전히, 잘생겼다. 말없이 걷는 걸음들이 새삼 좋았다. 평생 이대로 시간이 멈추어도 좋을 것 같았다. 정국과 걷는 거리라며 어디든 좋았다. 함께라면 정말 어디든. 어느새 집 앞에 다다른 탄소가 발걸음을 멈추자 꼭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아쉬운 듯 오므렸다 폈다를 반복하던 탄소가 정국을 올려다 봤다. 주머니에 손을 넣은 정국이 휴대폰을 꺼내 탄소에게 내밀었다.
" 민윤기 번호 찍어. "
" ……뭐? "
" 민윤기 번호 찍으라고. "
" 네가 민윤기 번호를 왜. "
" 찍어, 빨리. "
" 전정국. "
" 민윤기랑 정리 안 되면 너도 다시는 안 봐. 그러니까 찍어. "
그 말을 내뱉는 정국의 표정이 꽤나 진지해서, 그 안에 진심이 담겨져 있어서, 아직은 정국을 더 보고 싶었고, 아니. 평생을 보고 싶었던 탄소는 입술을 꾹 깨문 채 정국의 폰을 받아 들었다. 정국이 윤기를 만나지 않길 바랐다. 더이상 제 청춘을 버리게 만든 이를 만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길 바랐다. 혼자 견뎌야 했던 그 아픔 속에 또다시 스스로 발걸음을 옮기지 않길 바랐다. 번호를 치는 손길이 아팠다. 더이상 정국이 아프질 않길 바랐다. 할 수만 있다면 제 자신이 그 모든 짐을 짊어지고 싶을 정도로, 정국의 행복을 바라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저를 바라보는 저 눈빛이, 얼마나 굳건한 건지 알았기에. 이미 마음을 정한 것을 알았기에. 이젠 그를 믿고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 나 이제 당하고 살 이유 없잖아. "
" ……. "
" 그러니까 걱정 하지 말라고. 표정 좀 풀어라. "
탄소의 머리를 서툴게 쓰다듬던 정국이 손을 흔들었다. 그에 탄소도 멍하니 손을 흔들었다. 아. 아아. 행복했다. 더이상 바랄 것이 없을 정도로 행복했다. 이내 웃음이 터진 탄소가 똑같이 손을 흔들었다. 정국은 변했다. 당하고만 살던 정국이 아니었다. 그것쯤은 정국을 보러 전학을 온 첫날부터 느낀 것이었다. 공부를 하기 위해 늘 앞자리에 앉던 그가 맨 뒷자리에 앉아 주머니에 손을 꼽은 그 불량함과 내뱉어진 욕은 이미 제가 알던 그 전정국이 아니라는 것쯤은, 진즉 알았다. 혹여, 저가 그를 그렇게 만든 건 아닐까. 이미 모습을 감춘 정국과 잡았던 손을 가만히 내려볼 뿐이었다.
* * *
정국은 탄소를 데려다주고서 돌린 발걸음이 제법 무거웠다. 민윤기를 만나면 제가 맞았던 그 모든 걸 되갚아주며 때려야 하는 걸까, 아님 하나하나 따져 물어야 하는 걸까. 머릿속이 복잡했다. 휴대폰 속 찍힌 번호를 바라보다 주먹으로 벽을 내리쳤다. 분했다. 저를 이렇게 만든 것도, 탄소와 떨어지게 만들었던 것도, 용서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었다. 근데 지금 뭐가 무서워서 망설이는 걸까. 저를 처참하게 밟던 그 모습이 무서워서? 두려워서? 달달 떨리는 손으로 다시 화면을 내려다 봤다.
" 좆같은 새끼. "
통화 버튼을 눌렀다. 더이상 피할 곳도, 피하고 싶지도 않았다. 연결음은 길었다. 받지 않는 전화에 한숨을 푹 내쉬던 정국은 하늘을 올려다 봤다. 시발, 인생 참 좆같이도 살게 해주시네. 그리고 얼마가지 않아 다시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화면을 바라보니, 아까 전 질리도록 바라보던 전회번호였다. 민윤기였다. 그 화면을 바라보던 정국이 전화기를 귀에 가져다댔다.
[ 여보세요. ]
" ……. "
[ 전화를 거셨음 아가리를 벌려주시겠어요? ]
" 어디야. "
[ 뭐야. 목소리가 굉장히 낯이 익는데? ]
" 어디냐고, 너. "
[ 정국이야? ]
" 묻잖아. "
[ 예나 지금이나 너무 건방지네. 왜. 내가 어딘지 알면 찾아오게? 그러다가 저번처럼 당하, ]
" 아가리 털지 말고 얘기해. 어디냐. "
[ ……허. 이것 봐라. ]
윤기가 웃음을 터트렸다. 벽을 쳤던 주먹에는 살이 까져 피가 고였다. 이젠 정리해야 했다. 무서워서 도망쳤던 모든 걸, 다시 마주해야 했다. 더이상 도망갈 곳이 없었다. 정국은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그래. 딱, 김태형처럼만 살아보자.
" 내가 너한테 받은 게 많잖냐. 돌려 받아가야지. "
[ 야, 정국아. ]
" 겁 먹지는 않아도 돼. "
[ 뭐라는 거야, 시발 새끼가. ]
" 딱, 네가 나한테 했던 만큼만 돌려줄게. "
[ 야. ]
" 난 네가 평생 갖지 못할 김탄소를 가졌거든. "
* * *
여러분! 이제 다들 할머니댁이나, 큰 집을 가시겠죠? 저는 내일가서 월요일에 놀아온답니다.. (우럭) 그래서 그동안은 글을.. (말잇못)
3일 정도는 푸욱 쉬고! 월요일에 집으로 딱 돌아오자마자 글을 쓰기 시작해 월요일 저녁? 밤? 업뎃 할 수 있도록 할게요! (맑은 다짐)
여러분도 새뱃돈 많이 받으시고, 맛있는 거 많이 드시고, 복은 더어어어어 많이 받으세요! 저희 이제 드디어 한 살을 먹습니다! 드디어!
너무 싫어! 진짜 대애박 싫어! 즐거운 """설""" 되세요 여러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