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슈퍼주니어 규현 - 듣죠... 그대를
요즘들어 물건들이 하나둘씩 사라져갔다.
처음에는 안대, 두 번째는 내가 먹다 놔둔 물병, 세 번째는 이어폰이었다.
그 뒤로도 물건들은 계속해서 사라져갔다. 딱히 큰 물건들은 아닌데 생각해보면 내가 늘 사용하는 물건들.
그런 소소한 물건들이 자취를 감춰갔다.
누가 가져갔나 곰곰히 생각해봤지만 딱히 확신이 서지 않았다.
물건들이 없어진 곳들이 대부분 사람들이 자유로히 왔다갔다 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의심가는 인물이 없느냐. 그건 또 아니었다.
언젠가 네가 그랬지.
이 바닥에서 살아남으려면 눈치는 필수적으로 있어야 한다고.
나도 점점 연예인이 되어가는 모양이었다. 정확한 물증도 없이 심증만으로 한 사람을 의심할 정도가 되었으니 말이다.
유명 아이돌은 연애를 할까?
04
w. 복숭아 향기
리얼리티의 전체적인 컨셉은 앨범을 작업하는 우리의 모습이었다.
녹음하는 모습도 나오고 자켓 촬영하는 모습도 나오고. 뮤비 촬영하는 모습도 나오고.
또 안무 연습을 하는 모습도 나오고.
그래. 우리 둘이서 이번에 내는 노래는 발라드나 힙합이 아닌 댄스곡이었다.
팀에서 나와 솔로로 활동한 이후 처음으로 불러보는 댄스곡이었다.
덕분에 나는 네 얼굴을 정말 질리도록 실컷 볼 수 있었다.
나에게 안무를 가르쳐주는 선생님이 바로 너이기 때문이었다.
이 역시도 방송 컨셉의 일부였다.
새로운 얼굴이 나오는 것보다 너에게 춤을 배우는 것이 더 뭔가 그림도 괜찮고 좋잖아?
하지만 너도 나도 피디님도 작가님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내가 진짜 심각할 정도로 몸치라는 것이었다.
"다리 들어봐."
"이렇게?"
"살짝 오른쪽으로 틀어서."
"이렇게?"
"허리 그렇게 빼지 말고."
"..."
분명 너와 나는 같은 동작을 하고 있는건데 왜 거울 속의 너와 나는 다른 동작을 하고 있는 걸까.
오랫동안 춤을 춰온 너와 같은 동작을 하는 건 역시 나에게 너무나도 큰 도전이었나보다.
너는 한숨을 내쉬며 내 허리 위에 손을 올렸다. 아. 아까 떡볶이 먹었는데. 먹지 말걸.
나는 배에 단단히 힘을 주며 다시 한 번 네가 말한대로 움직여보았다.
"그렇지."
"..."
"여기서 허리 한 번 돌려봐."
"이렇게?"
"조금만 더 크게."
"..."
"이름아."
"어?"
너 스트레칭 안했지?
헐. 들켰다.
그리고 너와 같이 안무를 연습하면서 느낀 것이 하나 더 있었다.
연습실 안에서의 네 모습은 무대 위 네 모습보다 훨씬 더 프로다웠다.
-
"이번에는 이어폰?"
"그렇다니까."
"진짜 짐작가는 사람 없어?"
있어.
라고 말을 하면 너는 뭐라고 말을 할까.
나는 들고 있던 커피잔을 만지작거리며 생각했다.
내가 의심하고 있는 사람은 나랑 가장 가깝게 붙어있는 사람.
매니저 언니였다.
들어온지 얼마 되지 않은 것도 있었고 가장 이상한 기색없이 내 물건을 가져갈 수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의심일뿐이었다.
내가 직접 언니가 물건을 가져가는 걸 본 것도 아니고 그럴싸한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다음에 확실해지면 말하던지 해야지.
안그래도 요즘들어 나한테 이것저것 챙겨주려고 노력하는 언니의 모습이 자꾸 떠올라서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없어."
"...진짜?"
"응."
너는 더이상 묻지 않았다.
아마 너도 대충 짐작은 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의심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하지만 너는 굳이 말을 더 꺼내지 않았다.
이유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너는 내가 그다지 말을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너는 또 확신하고 있었다. 언젠가 적당히 정리가 되면 내가 말을 해줄 것이라는 것을.
그러기에 너는 내게 더이상 캐묻지 않았다.
요즘들어 늘 옆에 있던 카메라도 스텝들도 없이 잠시 화장실 앞에서 이렇게 대화를 나누는 순간이 나는 참 좋았다.
연말이라 바빠서 한동안 보지 못했던 네 얼굴을 마음껏 볼 수 있는 요즘이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단 둘이 보는 건 드물었으니까.
왜?
네가 빨대를 입에 물며 입모양으로 물어왔다.
나는 입꼬리를 말아올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조금 있으면 연습실 안으로 다시 들어가야했다.
너무 오랫동안 밖에 있으면 스텝들이 의심을 할 수도 있었다.
"그냥."
"잘생겼지?"
"못생겼어."
"상처."
"사실인데?"
홉이 상처.
너는 입술을 삐죽 내미는 시늉을 해보였다.
나는 푸스스 웃으며 네 이마를 손가락으로 톡 건드렸다.
가끔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무뚝뚝한 나에 비해 너는 이렇게 종종 애교를 부려주곤 했다.
그래서그럴까. 너를 보면 나도 모르게 자꾸 웃음이 새어나올 때가 많았다.
참으로 간만에 느끼는 그런 잔잔한 행복함이었다.
-
"호석아."
"응?"
"여기서 이렇게 딱 돌아볼 때 있잖아."
"허리 살짝 숙이고. 응. 그렇게."
"너 봐야 돼?"
"그럼 어디보게?"
그러게.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네 눈을 바라보았다.
음... 그러니까 이렇게 연습하면서 보는 건 좀 괜찮은데 말이야.
연습실이 아니라 무대에서 너랑 눈 이렇게 마주치면...
"나 보고 한 번 씩 웃어."
"웃음 안나오면?"
"억지로라도 웃어."
"싫은데?"
"너 웃기만 해봐. 너 한 번 웃을 때마다 나한테 커피 사기."
"콜."
뒤에서 작가 언니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말투는 장난기가 다분했지만 지금 우리는 굉장히 진지했다.
내가 웃나봐라. 절대 안 웃을거다. 겁나 슬픈 생각하면서 있을 거야.
사실 좀 웃을 거 같았다.
네 얼굴이 웃겨서가 아니라 조금 어색해서.
너와 대화를 할 때 눈을 마주치는 걸 좋아하는 편이지만 그건 언제까지나 사석에서였으니까.
무대 위에서 너와 눈을 마주친다는 걸 상상을 해본적도 없는지라 아직은 조금 낯설었다.
괜히 그런 거 있잖아.
내가 이래도 되는 건가 싶은 거.
"녹음이 언제라고 했지?"
"다음주부터 시작이잖아."
"아. 맞다."
목관리 잘해야겠다.
집에 있는 네가 줬던 유자청이 떠올랐다.
너는 다 먹었으려나? 나는 바닥에 내려놓은 핸드폰을 집어들며 너를 힐끗 바라보았다.
너는 핸드폰 비행기 모드를 해제하고 있는지 핸드폰 화면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집 가는 길에 마트 한 번 들려야지.
안그래도 셀프캠 찍으라고 제작진 분들이 말도 했었으니까.
숙소에 가면 멤버들이 득시글하게 있는 너와 다르게 우리 집은 참으로 썰렁하고 찍을 거리가 없었다.
젠장.
-
[정호석♥]
- 너 다음에 진 형이랑 배틀해봐
- 누가 이길지 궁금하다
시꺼 -
내가 이겨 -
- 형은
- 무조건 자기가 이긴대
- 담에 배틀 콜?
안해 -
자존심 상해 -
- 그대로 전해주마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개새끼.
나는 탁 소리나게 핸드폰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누구는 지금 자몽청 담근다고 장까지 봐왔는데.
아. 맞다. 셀프캠 찍어야지.
"저는 지금 집에 도착을 했습니다. 여기. 이렇게 재료들도 사왔어요."
처음 찍어보는 셀프캠은 참 어색했다.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재료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오늘 냉장고를 채울 이런저런 먹을 것들과 자몽 그리고 설탕이 테이블 위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내일부터 녹음이 있거든요. 내일 바로 먹을 수 있는 건 아닌데 목에 좋다니까 청이라도 담글까 해서 사봤어요."
"제가 따듯한 차 종류를 되게 좋아해서요."
"밖에서 음료수 같은 거 사먹는 건 아직 조금 힘들거든요."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리며 자몽을 집어들었다.
언젠가 팬들이 보내준 자몽 타르트를 맛있게 먹던 네 모습이 떠올라서 집은 것이었다.
잘 먹으려나. 자몽이 좀 써서 별로 안좋아할 수도 있는데.
쩝...
"담가서 저도 좀 먹고. 호석이도 좀 줄까해요. 노래하는 것도 목을 많이 쓰기는 하는데 랩하는 것도 마찬가지잖아요."
"근데 이 새... 아니 얘는 지금 나 춤 못춘다고 놀리고 있어. 그냥 주지 말까봐요."
"그래도 이렇게 카메라에도 담고 했으니 줘야겠죠."
카메라를 한 쪽에 잘 고정해놓고 자몽을 썰기 시작했다.
시큼하면서도 달달한 향기가 올라왔다. 냄새 좋다.
나는 작게 콧노래를 부르며 칼질을 계속했다. 집에서 이렇게 뭐 해먹는다고 칼이랑 도마 쓴 것도 언제더라.
만날 밖에서 사먹기만 했는데.
"집에 있는 재료들이 대부분 인스턴트라서... 딱히 막 요리하는 모습은 못담아도 좀 봐주세요."
"집에서 밥 먹는 일이 많지 않아서..."
"그래서 제가 칼질이나 이런 것도 좀 서툴러요."
처음에는 좀 어색했던 이 혼잣말도 점점 적응이 되어가고 있었다.
가지런히 썰어둔 자몽을 한 쪽으로 치워놓고 미리 소독해둔 병 안에 설탕을 먼저 집어넣었다.
그리고 그 위로 자몽을, 자몽 위에는 또 다시 설탕을 차곡차곡 쌓아갔다.
놔두면 알아서 청이 되겠지.
나름 예쁘게 잘 쌓여진 모습을 보니 괜히 뿌듯해졌다.
나는 유리병을 한 쪽에 밀어두었다.
네가 만들어준 유자청이 있는 곳 바로 옆이었다.
노란색과 분홍색이 같이 있는 모습은 꽤나 잘 어울렸다.
색감이 예뻐서 그런가?
다음에는 레몬으로 담가봐야지.
이러다가 우리 집에 과일청만 가득하겠네. 괜시리 푸스스 웃음이 흘러나왔다.
-
"언니."
"응?"
"이거 먹어요."
"뭐야, 이게?"
"자몽청이요."
집에서 만든 청은 총 3 병이었다.
네거. 내거. 그리고 매니저 언니거.
언니 몫을 따로 준비한 이유는 별 거 없었다.
그냥 좀 친해지고 싶어서. 그 때문이었다.
"웬 자몽청?"
"담갔거든요. 어제 장봐서."
"고마워. 잘 마실게."
"한 이 주 있다가 먹어요. 어제 만든거니까."
매니저 언니는 환하게 웃으며 병을 받아들었다.
나는 차 등받이에 기대 그런 언니의 모습을 보며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이 사람이 맞을까. 내 물건을 가져갔던 사람이.
아니면 어떡하지. 괜히 내가 엄한 사람을 의심하고 있는 거면 어떡하지.
어찌보면 지금 나는 나와 가장 가깝게 지내고 있는 사람을 스토커로 의심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아직은 좀 지켜볼까.
"아. 맞다. 이름아."
"네?"
"네 이어폰 찾았어."
"진짜요?"
"뒷좌석 시트 사이에 있더라."
"아, 그래요?"
"의상들 쌓아놓느라 안보였었나봐."
"그러게요."
"여기."
그래. 아직은 정확한 증거도 없었다.
그리고 언니가 가져갔다는 보장은 더더욱 없었다.
난 그저 의심스러울 뿐이었다. 언니가 아직 나와 친하지 않다는 그런 사소한 이유 하나로.
나는 입술을 잘근 깨물며 언니가 내미는 이어폰을 받아들었다.
그냥 내가 덤벙거리는 건가? 아. 머릿속이 점점 복잡해지는 기분이었다.
"언니."
"응?"
"점심 때 스케줄 다른 거 없죠?"
"응. 딱히 없는데."
"같이 밥이나 먹어요."
"밥?"
"김밥 말고. 제대로 된 밥으로."
언니는 괜찮은데...
나 오늘 김밥 먹기 싫어서 그래요. 응? 내가 살게.
언니는 내 말에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핸드폰을 꺼내 주변에 있는 맛집을 검색해보았다.
언니랑 밥을 먹어야겠다 생각한 이유는 별 거 아니었다.
그저 사소한 이유로 언니를 의심했다는 거에 대한 나만의 속죄..? 같은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언니가 완전히 의심스럽지 않다는 건 아니지만.
오랜만에 김남준에게 부탁할 것이 생긴 것 같았다.
-
[암호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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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여주가 예전에 어떤 일을 당했는지 모르시는 분들은 '무명 아이돌도 연애한다.' 를 보시면 될 거 같아요.
얼마 전에 공지 올렸었죠.
생각했던 것보다 투표가 참 치열했어서...ㅎㅎ 놀랐어요.
독자분들이 골라주신 대로 지금은 유명 아이돌에만 집중해서 연재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무명 때와 비교했을 때 여주의 성격이 변한게 느껴질지 모르겠어요.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의심하면서도 친해지겠다고 마음을 먹는다는 게 사실 쉽지는 않죠.
하지만 그래야할 때가 가끔 있어요.
아이러니하죠.
정말 내가 생각하는 대로, 원하는 대로만 살면 참 행복할 거 같은데 말이에요.
하지만 어쩌면 그렇게 원하지도 않는 일들을 의무적으로 하다가 정말 내가 원하는 일을 할 때 느끼는 행복감은 배가 되는 거 같기도 해요.
참 묘한 일이죠. 그래도 저는 제가 원하는 일만 하면서 지내고 싶네요.
너무 어린걸까요?ㅎㅎ
연휴가 끝났네요. 다들 푹 쉬셨는지 모르겠어요. 다시 힘내서 하루하루 행복하게 보내셨으면 좋겠어요.
오늘도 제 글을 사랑해주신 분들 모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