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출 예약
호출 내역
추천 내역
신고
1주일 보지 않기
카카오톡 공유
주소 복사
모바일 (밤모드 이용시)
댓글
사담톡 상황톡 공지사항 팬픽 만화 단편/조각 고르기
김남길 몬스타엑스 이준혁 엑소 강동원
난슬 전체글ll조회 483l

 

 

 

상현달

 

 

 

 

 

 

 

 

 

 

 

 

 

 

찻잔을 잡은 여왕의 손이 흔들린다. 피곤한 한숨도 새어나온다.

여왕님, 괜찮으십니까?”

아니야, 시녀장. 별거 아니야.”

그래도....”

조용히.”

약희는 여전히 불안이 가시지 않는다. 요즘 여왕의 눈가는 우울하기만 하다. 물론 잠이 부족한 것도 큰 이유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귀족과 치르는 갈등이다.

요사이 들어 귀족에서 반발이 심해졌다. 벨랴코프 공작이 그동안 세를 단단히 모은 탓이다. 공격하는 방향은 다양하다. 해묵은 원정대 예산 문제부터 시작해서

다른 자잘한 문제들도 많았다. 일 진행이 자꾸만 느려졌다. 다른 중요한 일을 건드릴 수조차 없을 만큼이었다.

예를 들면 제이콥 왕자님과 마르티노 왕자님 사이 승계 문제 같은 것 말이지.’

속이 빤히 보이는 수였지만 효과는 좋았다. 다른 문제들을 질질 끌어서 본격적으로 승계 이야기를 뒤로 미루는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여왕은 불면증이 있었는데,

더 심해져버렸다. 곁에서 지켜보는 약희와 시녀중들은 애가 탔다. 민감한 시기였기에 여왕은 의사도 부르지 않았다.

여왕이 이런 상태라는 건 오직 약희와 세 시녀중들만 알았다.

“.....차를 더 가져오겠습니다.”

하지만 여왕은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다. 약희는 아무 말도 못하고 찻잔만 가져갔다. 다실에 도착하니 시녀중들이 다 모여 있었다.

성격이 급한 보채가 잰걸음으로 다가왔다.

약희 언니, 여왕님은요?”

약희가 우울하게 고개를 젓자 모두 한숨을 쉬었다.

차도 더 안 드시겠다고 하셔.”

이제 정말 큰일이에요.”

나도 알아....”

짐짓 엄하게 말하려고 했지만 약희 스스로도 말끝이 흐려진다. 잠시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다들 막막한 심정이었다.

됐다. 이러다 하루가 다 가겠어. 보채야, 너는 여왕님 침실에 가서 정리 좀 해. 밤에 쓸 향초도 좀 고르고. 탐춘이 넌 장신구들에 먼지를 닦아줘. 능파는, 능파는, ....”

저는 제가 알아서 할게요, 언니.”

사실 침실 정리나 향초 고르는 일, 장신구를 닦는 일은 오전에 다 끝난 일이다. 시킬 일이 없어서 말문이 막힌 것이다. 대드는 사람 없이 각자 흩어졌다.

약희는 텅 빈 다실에서 애꿎은 다기만 만지작거렸다.

***

능파는 하릴 없이 정원을 걸었다. 할 일을 고민하면서 복도를 몇 분 서성이다 밖으로 나온 참이다. 하지만 여전히 머릿속은 멍하다. 멀리서 시녀경들이 조잘대며

오는 게 보인다. 지위 높은 사람이 느긋이 쉬는 모양을 보이면 말이 나온다. 능파는 재빨리 구석진 데로 길을 틀었다. 늦가을 낮볕은 꽤나 덥다. 그래서 그런지

시녀경 중에 옷을 제대로 갖추지 않은 몇몇이 눈에 띈다. 시녀 옷차림은 대충 이렇다. 검은 구두에 하얀 속바지는 살짝 발목이 보이는 길이다.

그 위에 종아리 반쯤 오는 길이로 하얀 원피스를 입는다. 이 원피스는 통이 커서 그 위로 얇은 검은색 웃옷을 걸치고 허리끈을 꽉 묶는다.

가슴께에 장식 리본을 맨 다음 마지막으로 하얀 앞치마를 하면 끝이다. 여기까지는 시녀경들이다.

시녀중들은 앞치마 대신 엉덩이까지 오는 길이인 하늘색 웃옷을 입는다. 마찬가지로 장식 리본을 맨다. 딱 한 명인 시녀장은 특별하다.

초롱꽃을 수놓은 회색 소매, 앞뒤는 검은 천인 조끼를 입는다. 그런데 몇몇 시녀경이 검은 웃옷이 없거나 앞치마를 하지 않았다.

조것들이....”

깔깔대며 지나가는 뒷모습을 보며 능파가 눈을 흘겼다.

요즘 뭐라고 안했더니. 나가서 뭐라 할까봐.”

소리 내 부르려다 이내 그만두었다. 능파는 손을 뻗어 자개 뒤꽂이를 만졌다. 이걸 하고 있으니 여왕을 전담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여왕을 전담하는 시녀중은 왼쪽으로 자개 뒤꽂이를 꽂는다. 시녀장은 오른쪽으로 진주 뒤꽂이를 한다.

아침마다 약희가 진주 뒤꽂이를 엄숙하게 꽂는 모습이 떠오른다. 민감한 시기다. 몸을 사려야 한다.

엄마야!”

뒤로 돌아선 능파가 소리를 지르고 다급히 입을 틀어막았다.

누구, , 제니퍼 공주님.....”

구석진 곳에서 제니퍼가 씨앗을 심는 중이었다. 정작 능파를 놀래킨 제니퍼는 묵묵했다. 능파가 있다는 것도 몰랐다. 제니퍼는 소리를 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능파는 주위를 살폈다. 시녀경들이 올 낌새는 없다. 능파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제니퍼에게 다가갔다. 조심스레 손을 올리니 제니퍼도 차분하게 고개를 돌렸다.

공주님, 안녕하세요?”

제니퍼는 요즘 독순법을 익히는 중이다. 능파의 입을 유심히 보고는 활짝 웃는다. 인사를 알아들은 모양이다. 주변을 두리번대더니 이내 수첩을 줍는다.

저는 씨앗을 심었어요.’

야무지게 꾹꾹 눌러쓴 글씨다. 능파는 생긋 웃었다. 제니퍼는 여러모로 성과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다.

우선 여왕이 낳지도 않았고, 생김새도 다른 공주, 왕자와 다르다. 제이콥, 마르티노, 아키코는 검은색 머리카락이고 마엘은 금발이다.

각자 아버지들에게 눈동자를 물려받아 제이콥은 따뜻한 초록, 마르티노는 갈색빛 검정, 마엘은 환한 파란색이다.

그런데 제니퍼는 불꽃처럼 빨간 머리칼에 회색 눈동자다. 게다가 지금은 흙바닥에 앉아 있어서 온통 부스스했다. 누가 보면 공주가 아니라 시녀로 볼 판이었다.

제니퍼가 꾸미는 데 익숙하지 않은 것도 이유지만 시녀들이 은근히 무시하는 게 뻔하다. 능파는 부글거리는 속을 가라앉혔다.

뭘 심으셨는데요?”

제니퍼는 다시 꾹꾹 눌러서 능파에게 보여준다.

저는 눈송이를 심었어요.’

눈송이가 뭔데요?”

데이아나 대공께서 저에게 주셨어요. 눈송이를 먹으면 잠이 온다고 저에게 말했어요.’

잠이 잘 온다고? 그럼 불면증 치료?”

***

여왕은 양손에 얼굴을 묻었다. 조금만 있으면 새벽빛이 어슴푸레 밝아올 터다. 몸은 피곤하지만 잠은 오지 않는다. 몇 시간에 걸쳐 검토한 서류는 모두 반박문이다.

혹시나 해서 다음 장을 넘기지만 결국 같은 말이다. 갑자기 짜증이 치밀어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연거푸 차를 마시니 쓴맛이 입에 남는다.

결국 다 마시지 못한 차가 식어버렸다.

약희가 속상해할 텐데.’

억지로 마시려고 손을 뻗었다. 찻잔이 너무 차갑다. 도저히 마시지 못할 것 같다. 한숨을 내쉬면서 창문 옆으로 갔다. 밖으로 탑이 보인다. 요새 자꾸만 탑에 눈에 띈다.

아무리 보지 말라고 스스로를 다그쳤지만 소용이 없다.

요즘 내가 왜 이럴까.”

스스로가 자꾸만 멍청하게 느껴진다. 탑에서 간신히 눈을 떼지만 결국 눈을 둘 곳은 서류다. 저들이 원하는 건 한 가지다. 여왕 자신도 너무도 잘 안다.

일리야와 나 사이에서 나온 아이.’

원래 계획은 지금부터 승계를 운을 떼고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논의하려했다. 그러면서 차근차근 다른 계획이나 복지도 건드려야한다. 이번 해 말에는 세금 문제도 있다.

그런데 모든 게 다 틀어졌다. 답은 이미 알고 있지만 마음에 걸리는 게 많다.

벨랴코프 가가 어떻게, 어느 정도로 나설지 감이 잡히지 않아. 오랫동안 웅크리고 있었지만 벨랴코프는 벨랴코프야. 유일하게 수도에 기반을 둔만큼 잠재력은 항상 있어.

지금이라도 벨랴코프 가에서 왕족이 나오면 위세를 되찾을 게 뻔해. 세력을 회복한 벨랴코프 가를 린데만 가와 몬디 가가 상대할 수 있을까? 그동안 적당히 힘을 실어주었지. 하지만 완전히 믿을 수는 없어. 아직 부족할 가능성이 높아.’

여왕은 한참 머리를 굴리다 스스로에게 놀랐다.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정치적인 사람이 되었지?’

무엇보다 이건 자기 자신을 두고 하는 거래다.

순간 스스로가 너무 소름끼쳤다.

몸이 부르르 떨린다.

창에서 밤바람이 가늘게 새어나온다.

가는 바람이 실처럼 몸을 휘감았다.

탑이다.

탑이 바람으로 자신을 부른다.

아니, 끌어당기고 있다.

탑이 속삭인다.

스텔라, 어서 와. 보고 싶어. 보고 싶어. 스텔라, 스텔라.....’

아냐, 아냐, 아냐.....”

여왕은 도리질을 하면서 뒷걸음질했다.

스텔라..... 스텔라..... 어디 가?’

아니야, 다 환청이야, 아니야.”

스텔라..... 스텔라.... 스텔라....’

그만, 그만, 그만....”

‘.......스텔라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아악! 그만 해! 오빠, 오빠! 오빠! 시경 오빠! 오빠! 오빠아!”

여왕님, 여왕님! 왜 이러세요!”

약희는 여왕을 와락 안았다. 여왕이 발작하는 것처럼 몸을 떨었다.

오빠! 오빠! 오빠 어디 있어!”

여왕님!”

그만! 그만! 그만! 오빠, 오빠! 오빠 나 무서워!”

공주님! 정신 차리세요! 공주님!”

갑자기 비명이 뚝 그친다.

공주님!”

“......, 약희야....”

, 저 약희에요.”

새하얗게 질린 약희 얼굴이 보인다. 천천히 주위도 눈에 들어온다. 문가에 보채, 능파, 탐춘이 서 있다. 모두 놀라서 얼굴에 핏기가 가셨다.

, 능파. 탐춘아, 보채도.....”

탐춘이 후두둑 눈물이 쏟더니 달려와서 여왕을 안았다. 능파와 보채도 마찬가지다.

, 전 여왕님께서 어떻게 되시는 줄 알고!”

저마다 눈물을 쏟으며 걱정을 말했다. 약희도 연신 눈물을 닦는다.

미안해.... 미안해.... 다들..... 나 때문에.....나 때문에.....”

온통 눈물이다. 고개를 푹 숙이고 눈물 그치려 애쓰는 약희.

자신을 꽉 껴안는 탐춘.

아예 소리를 내며 우는 능파.

어쩜 좋아, 어쩜 좋아라고 하면서 자신의 어깨에 얼굴을 묻는 보채.

미안해..... 내가 다 지켜줘야 하는데..... 다 지켜줘야 하는데... 내가 왜 이렇게 약해서..... 내가 너무 약해서.....”

여왕은 눈을 꼭 감았다. 아직도 지켜야할 사람들이 있다.

***

늦은 저녁이다. 일리야는 눈가를 꾹꾹 누르며 그의 방으로 가는 복도를 걸었다. 오늘따라 업무가 모두 까다로웠다. 게다가 요즘은 여러 가지로 부딪칠만한 인물이 많다.

어느덧 문 앞이다. 일리야는 문득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아무도 없다?”

돌이켜보니 복도에도 이상하리만치 사람이 없었다. 하물며 하급 시종이나 시녀경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평소 같았으면 문에서 기다리는 시종이 문을 열어주었을 터다.

그런데 지금은 없다. 일리야는 의아해하며 방으로 들어갔다. 방도 텅 비었다. 그의 망토나 웃옷을 받아주거나 마실 것을 갖다 주는 이들이 없다.

오직 늦가을 달빛이 훤하다. 웃옷을 천천히 벗어 벽에 걸었다.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이다. 일리야는 풀리지 않은 의문을 안고 침실로 발을 옮겼다.

그리고 여왕이 있다.

침대에 앉아서 그를 본다. 얇고 하얀 옷. 길게 풀어 내린 머리카락.

일리야는 홀린 듯 다가간다. 조심스레 손가락으로 볼을 쓰다듬어 본다. 여왕은 뿌리치지 않는다. 다만 일리야의 얼굴을 볼 뿐이다.

그때, 그날처럼 그녀의 턱을 살짝 그러쥐고 자신 쪽으로 끌어당긴다.

이번엔 억지가 아니다.

두 입술이 맞닿았다.

***

여왕의 집무실, 유력한 부군들이 모두 모였다. 곧 있을 세금 논의를 준비하기 위해서다. 일리야, 다니엘, 알베르토다. 이 셋은 귀족이자 대공으로서 왕족이다.

모두 여왕을 둘러싸고 열띤 토론을 벌이는 중이다. 그리고 유력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실무자로서 기욤과 타일러, 수잔이 참여해 세 명의 의견을 조율했다.

여왕은 몸이 좋지 않은 듯 손을 가만두지 못했다. 이 점을 눈치 챈 건 수잔 뿐이었다. 다른 부군들은 의견을 나누느라 정신이 없었다.

수잔은 여왕에게 뭔가 어색함을 느꼈다. 뭔가 평소와 다르다는 느낌이 든다.

뭔가.... 지나치게 화려하다.’

실제로 그랬다. 여왕이 평소에 치장을 아예 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나치거나 너무 많은 장식을 다는 편은 아니었다. 옷이나 장신구가 비싼 것을 알기 때문이다.

수잔은 흘금대며 여왕을 살폈다.

이건 마치 직접 한 게 아니라 누군가가 해준 것만 같다.’

머리는 정성스럽게 땋은 다음 부풀려 올렸다. 평소 같으면 쓰지 않는 두꺼운 왕관을 썼다. 귀걸이, 목걸이, 팔찌 한 쌍이 한 세트인 모양이었다.

호박(琥珀)과 금으로 만들어 번쩍거렸다. 아지랑이처럼 여러 군데를 굽이치게 했는데 단정치 않아보였다. 귀걸이는 거의 어깨에 닿을 정도로 길었다.

화려하다 못해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드레스는 피처럼 붉고 어두운 색깔로 어깨와 팔, 등이 다 드러났다. 치맛단은 세 개고 모두 주름을 잔뜩 넣었다.

입술도 붉고 눈매도 진하다. 여왕은 평소 이렇게 치장하지 않는다.

누군가 대신 했다.’

여왕을 계속 뜯어볼수록 수잔은 확신이 들었다. 뒤를 슬쩍 돌아보니 시녀장도 어딘가 불안한 눈길이다.

잠깐, 잠깐만요. 알베르토, 그러니까 남쪽 지방, 남쪽 지방........”

갑자기 여왕의 얼굴이 확 굳었다. 시녀장이 급히 다가와서 여왕의 어깨를 감쌌다. 여러 부군들도 여왕 곁으로 다가왔다. 상태는 나아지질 않았다.

급기야 시녀장이 무릎을 꿇고 여러 군데를 살폈다. 그리고 여왕이 갑자기 헛구역질을 했다.

그 때 제일 가까이 있던 수잔은 보았다.

여왕의 얼굴에 어떤 공포와 어떤 예감이 동시에 스쳐 지나감을.

얼굴을 살짝 드니 다니엘과 알베르토 얼굴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기욤과 타일러도 그랬다. 아마 그 자신도 똑같으리라 짐작했다. 시녀장도 몸을 가볍게 떠는 게 분명하다.

자개와 진주 뒤꽂이 장식이 왔다갔다 움직인다.

어느새 다가온 일리야가 천천히 여왕의 손을 잡았다.

그리곤 손등에 길게 입을 맞췄다.

수잔은 그제야 깨달았다.

이렇게 여왕을 꾸며준 사람은 일리야였다. 여왕은 지금 일리야의 기준에서 가장 완벽하게 아름다운 상태였다.

그리고 아이의 아버지도 일리야였다.

***

스산하게 밤바람이 분다. 쓰레기를 태워 겨우 만든 불꽃이 이제 불씨만 남았다. 거지들은 옷깃을 여미며 저마다 바닥에 쓰러져 잔다. 오랫동안 씻지 않아 풍기는 냄새가 지독하다.

오셨습니까요, 공작나리.”

긴말 필요 없다. 안내해라.”

이쪽입니다.”

밤눈이 밝은 거지 하나가 길잡이를 한다.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그 녀석은 잠을 잘 안 잡니다. 지금도 깨어있을 겁니다요. 여러모로 사연이 있는 것 같은데, 그렇게 따지면 이 바닥에서 안 그런 사람이 한 둘입니까. , 저기 보입니다요.”

손가락 끝을 따라가니 웬 거지가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는 중이다. 기어코 썩은 사과를 조금 찾아내 입으로 가져간다.

, 약속하신 사례는....”

뚱뚱한 주머니 하나를 쑥 내밀자 거지는 입이 찢어질 듯 웃었다.

수고했다, 자히드.”

고맙습니다요, 공작나리. 고맙습니다요....”

주머니를 두 손으로 받아들고 거지는 쏜살같이 사라졌다.

쥐새끼 같은 녀석.’

비웃음을 흘리고 사과를 뜯어먹는 거지에게 다가갔다.

이런, 이거 너무 심하군.”

거지는 비쩍 마른 몸에 고생도 많이 한 모습이다. 하지만 눈빛만은 형형하다.

당신 뭐야.”

오랜만이구나. 그땐 네가 어렸지.”

꺼져. 거지 처음 봐?”

가브리엘이라.... 네 세례명인 모양이지.”

....걸 어떻......”

정말 하나도 기억 나지 않는 거냐? 잘 생각해 봐라.”

순간 눈동자 색깔이 보였다. 초록빛 얼음 조각 같은 눈동자, 먹이를 위해 야성을 가라앉힌 맹수의 눈. 그래, 본 적이 있다. 저택에서 겪은 기억이 떠오른다.

나이가 들을 대로 들어 노망이 난 할아버지. 웬일로 젊은 청년을 데려온 적이 있었다. 여러모로 훤칠한 미남이었다. 이른바 '전도유명한 젊은이'라고 했다.

노처녀 고모부터 연줄을 찾던 외삼촌, 이제 갓 스물이 된 사촌 누나까지 이 미남에게 몰려들었다.

그날 밤은 진탕 술잔치가 벌어졌고, 어린 프셰므스와브는 그 소리가 너무 싫었다. 슬쩍 방문을 여니 집안 어른들 꼴이 말이 아니었다.

붉게 물든 얼굴에 혀 꼬부라진 소리를 내고 미친 듯이 웃었다.

그 와중에도 그 자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다만 할아버지를 지금과 같은 눈으로 보고 있었다. 언뜻 그 눈과 마주친 것도 같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크롬피예츠 가는 벨랴코프 가에게 영지 하나를 뺏겼다.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벨랴코프 공작.”

이제 기억하는구나, 프셰므스와브.”

, 날 왜 찾았지?”

아마 네가 쏜 화살 때문이겠지.”

프셰므스와브가 벌떡 일어나서 공작을 경계했다.

너무 긴장하지 말게. 아주 오래 걸렸어, 오래 걸렸지. 널 찾기가 아주 힘들더구나.”

왜 왔냐고!”

이런, 옛날에는 꽤나 싹싹하더니.”

, 날 죽일 셈인가?”

아니, 절대. 오히려 널 도우려고 왔지.”

날 돕는다고?”

그래.... 네 복수 말이다.”

벨랴코프 공작은 눈을 번득인다. 멀리 성에서는 지금쯤 그의 손주가 태어나는 중일 것이다. 갓난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익명감상에 올린 글 보구 오셨나용....ㅎ 야한 장면 뺐어요 ㅠ 하하 쓸 때는 좋았습니다.

 

 

  


이런 글은 어떠세요?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작품을 읽은 후 댓글을 꼭 남겨주세요,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독자1
..!!!!!
7년 전
난슬
쪼끔 충격이었나효....?? ㅎㅎㅎㅎ
7년 전
독자2
네..ㅎ
정주행한게 어젠데 오늘또 올라와서 놀란것도 있고.. 여주인공이 그렇게 화려한 치장을 한 것을 상상한 적이 없어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저는 일리야 대공과는... 그저 살아있을때는 정치적으로만 얽히고.... 일리야에게 있어서 스텔라라는 존재는 스텔라가 죽어서야 가질 수 있는 그런 의미가 되길 바랐거든요 ㅎ. 그렇다 보니 저도 마지막 여러 대공들의 표정에 빙의되었네요.

7년 전
난슬
ㅎㅎㅎㅎ 그렇게 생각하셨군요 충분히 이해합니다! 이렇게 빠른 업데이트는 제가 쓰고 싶었던 부분이어서 그래요 오랫동안 생각했던 거고.... 장위안 부분 두 편은 하루만에 다 썼거든요 ㅋㅋㅋ 그만큼 쓰고 싶은 부분은 빨리 씁니닷! 얼마 후에 또 올라올 거니깐 지켜봐주세용~
7년 전
비회원186.70
앗 정말 감사해요ㅠㅠㅠㅜㅠㅠ 비정상회담에 치여서 열심히 읽고 있었는데 업로드라니ㅠㅠㅠ 오늘 스토리 넘 아름답네요 ;0!! 잘 읽고 갑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
7년 전
난슬
아이고 감사합니다ㅏㅏㅏㅏ 지금 열심히 쓰고 있으니까 기대해주세요!! 싸랑합니다!
7년 전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작품을 읽은 후 댓글을 꼭 남겨주세요,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분류
  1 / 3   키보드
필명날짜
      
      
      
      
      
비정상회담 God, save the Queen 28-после́дняя фа́за луны́7 난슬 02.27 20:58
비정상회담 God, save the Queen 27-по́лная луна́8 난슬 02.17 15:24
비정상회담 God, save the Queen 26-луна в первой четверти6 난슬 02.03 14:32
비정상회담 God, save the Queen 25-новолу́ние4 난슬 01.22 20:33
비정상회담 God, save the Queen 24-Koala Club2 난슬 01.14 22:40
비정상회담 God, save the Queen 23-チョウ8 난슬 12.30 23:34
비정상회담 God, save the Queen 22-うみ7 난슬 08.24 00:39
비정상회담 God, save the Queen 21-porte2 난슬 08.04 22:11
비정상회담 God, save the Queen 20-muet2 난슬 07.12 21:52
비정상회담 God,save the Queen 19-शीतकाल3 난슬 07.03 17:17
비정상회담 God, save the Queen 18-Stranger2 난슬 06.28 17:13
비정상회담 피아노 그리고 소년 (중일라인으로) Pink Cloud 06.24 00:19
비정상회담 비정상회담) 알장으로 정략결혼썰 444 3 05.05 01:13
비정상회담 비정상회담) 알장으로 정략결혼썰333 3 05.02 21:24
비정상회담 비정상회담) 알장으로 정략결혼썰22 3 03.31 22:25
비정상회담 비정상회담) 알장으로 정략결혼썰1 4 03.23 00:39
비정상회담 God, save the Queen 17-Naledi2 난슬 03.02 00:43
비정상회담 God, save the Queen 16-Tattoo6 난슬 02.26 02:37
비정상회담 God, save the Queen 15-Wisdom4 난슬 02.24 05:02
비정상회담 God, save the Queen 14-Knowledge6 난슬 02.23 01:50
비정상회담 God, save the Queen 13-skjønnhet10 난슬 02.18 01:34
비정상회담 God, save the Queen 12-Maleri2 난슬 02.18 01:24
비정상회담 God, save the Queen 11-frairie6 난슬 02.16 22:31
비정상회담 God, save the Queen 10-Library7 난슬 02.15 01:20
비정상회담 God, save the Queen 09-Raspberry cake7 난슬 02.14 01:46
비정상회담 God, save the Queen 08-Ms'ciwy grot4 난슬 02.13 10:20
비정상회담 God, save the Queen 07-Lalka2 난슬 02.12 0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