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정국에 뷔 예보
담임 선생이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짝지 없이 홀수로 앉던 자리에 짝을 붙여주었다. 그 덕에 정국과 탄소는 짝지가 되었다. 물론 정국의 협박 아닌 협박에 이루어진 자리었다만. 그렇다고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옆자리에 정국이 있다는 게.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것 없이 정국은 책을 들여다 보거나 저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탄소를 흘끔 봐주었고, 탄소는 엎드려 자거나 정국을 바라보는 일을 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자연스럽게 그들의 반으로 찾아온 김태형은 정국의 앞자리 의자를 빼네 앉았다.
" 넌 우리 반 좀 작작 오지 그러냐. "
" 미친 새끼. 내 친구 너 밖에 없는 거 알면서 그런 말 하면 태형이 뚁땽해. "
" 아가리 해라. "
" 야, 너 대충 시험 몇 점 나온 것 같냐? "
" 네가 왜. "
" 아, 그냥 얼마 정도 나온 것 같아. "
" 안 매겨봤는데. "
싱겁다며 입맛을 쩝 다신 태형이 탄소를 향해 윙크를 날렸다. 마치 이번 1등은 박지민일 거라는 듯. 그에 인상을 찌푸린 탄소가 엿을 날려대자 그 둘을 번갈아 보던 정국이 고개를 두어 번 젓고는 교과서를 꺼내들었다. 탄소는 그 모습이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 몸서리를 쳤다. 근 2년 가까이 공부에서 손을 뗀 터라 배워야 할 것도, 외워야 할 것도 남들의 비해 2배는 더 되었다. 요 며칠 새에 잠도 자지 않고 공부를 하는 정국에 태형 또한 잠도 자지 못 하고 성질을 내며 베개에 얼굴을 묻어자곤 했다.
" 공부 좀 적당히 해라. 존나 진절머리 나네. "
" 넌 좀 해, 병신 새끼야. 이번에 고1 짜리들 사이에서 또 꼴뜽하면 존나 씹 망신이다, 넌. "
" 야, 걔넨 사람이 아니야. 나 존나 놀랬잖아. 애새끼들이 펜을 손에서 놓질 않아요. "
" 아, 그건 존나 인정. 반에 있으면 심심해 뒤져. "
" 넌 뭘 또 인정해. 꼴통 둘이 모이니까 좋냐? "
" 꼴통이라니, 시발. "
" 욕하지 마라. "
정국과 탄소가 서로를 밉지 않게 노려봤다. 둘은 나름 잘 지냈다. 입술을 맞춘 것에 대한 언급도 없었고, 그 뒤로 다시 입을 맞추는 일도, 그렇다고 그 일로 얼굴을 붉히 거나 피하는 일은 더더욱 없었다. 자연스럽게 원래 그랬던 사람들처럼 흘러갔다. 그래서 봐줄만 했다. 여전히 티격태격 거리는 거, 딱 그거 하나만 빼면. 태형은 둘의 모습을 보며, 마치 몇 분 전 저와 탄소를 바라보던 정국의 표정을 하고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열심히 사랑 나눠라. 라며 정국의 어깨를 두어 번 툭툭 친 태형이 긴 다리를 휘적거리며 당당하게 걸어나갔다. 앞문을 열어놓고 가는 바람에 탄소의 추위에 못 이겨 열에 뻗친 욕지거리를 듣는 걸 면치 못 했지만.
" 욕 그만하라니까. "
" 춥다고! 추워! "
" 그러게 왜 옷을 그따위로 입고 와. 너 혼자 봄이야. "
" 아, 낸들 이렇게 추울 줄 알았냐? "
한숨을 푹 내쉰 정국이 저가 입고 있던 패딩을 벗어 탄소 앞에 들이밀었다. 거절? 그딴 거 없다. 탄소는 헤벌쭉 웃으며 제 옷 위에 패딩을 껴입곤 정국의 앞에 얼굴을 들이밀며 애교를 피워댔다. 그래, 자연스러웠다. 원래 그랬던 사람들처럼, 애초에 그랬던 사람들처럼. 그에 피식 웃음을 터트린 정국이 탄소의 이마를 밀어내자 금세 다시 붙어 정국의 입술에 뽀뽀를 해댔다. 그를 본 몇몇 반 아이들은 경악을 금치 못 했고.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서로 물어 뜯을 것 같이 굴던 놈년들이 입술을 부비고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럼에도 둘은 저들만의 세상이었다. 누가 보든 말든 알 바 아니라는 듯. 정국도 싫진 않은 듯 그 입맞춤을 받아내고 있을 뿐이었다.
* * *
여전히 밥을 먹을 땐, 넷이 함께였다. 탄소의 옆엔 정국이, 그 앞엔 지민이, 대각선으로는 태형이. 나름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졌다만, 정국과 지민은 서로를 헐뜯지 못 해 안달이 난 것처럼 굴었다. 탄소는 급식 시간만 되면 피가 마르는 기분이었다. 태형은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았다만, 신경을 안 쓸래야 안 쓸 수가 없었다. 시한 폭탄같은 둘은 뭐가 좋다고 나란히 한 자리에 앉아서 밥을 쳐 먹고 있는 지 모를 일이었다. 탄소는 반찬을 깨작거리며 둘을 번갈아 봤다. 그에 지민이 고개를 갸우뚱하게 뒀다. 왜? 입모양으로 벙긋거리며 물었다. 왜라니, 왜라니! 탄소가 한숨을 푹 내쉬자 정국이 시선이 탄소를 향했다.
" 왜. "
" 엉? 아, 아니야. 밥 먹어. "
" 너랑 나랑 같이 밥 먹는 게 불편한가 봐, 탄소가. "
" 알면 네가 좀 꺼지지 그래. "
" 꺼지는 건 네 쪽이 꺼져야지. 원래 같이 먹기로 했던 건 난데. "
……시발. 또 시작이다. 목구멍까지 차오른 욕을 겨우 삼켜낸 탄소가 애써 웃으며 둘을 중재시키려고 들었으나, 그게 먹힐 리가 없었다. 태형은 입 안에 있는 음식을 오물거리며 셋을 번갈아 봤다. 염병, 또 지랄이네. 태형 또한 길게 한숨을 내뱉았다.
" 너 요즘 공부한다는 소리 있던데. 시험은 잘 쳤고? "
" 알 바냐. 네 성적 유지에나 신경 쓰지 그래. "
" 걱정 마. 너 같은 애들이 밑을 깔아주는 한 평생 유지할 테니까. "
저 새끼 저거 은근 돌려까기 신이네. 이를 뿌득 간 정국이 한 쪽 입꼬리를 당겨 웃었다. 지민은 미소가 한 없이 여유로웠다. 지민과 정국은 닮은 구석이 꽤 많았다. 그래서 섞일 수 없는 관계일지도 모르겠다. 둘 사이에 끼인 것은 공부, 그리고 탄소. 제 목숨 혹은 인생을 걸 수 있는 것들로 다투었다. 한 때 제 목숨을 걸고 공부했던 정국과 여전히 목숨을 걸고 공부를 하는 지민. 탄소에게 제 인생을 걸었고, 여전히 걸고 있는 정국과 앞으로 탄소에게 인생을 걸 수 있을 지민. 물과 기름 같은 존재였다, 둘은.
" 적당히 쉬어가며 네가 하고 싶은 것들도 누려가면서 해. 아님 내 꼴 나니까. "
" ……. "
" 굳이 네 새끼 이기고 싶은 마음도 없을 뿐더러 네가 지금 그러는 거 되게 없어 보여. "
" 야. "
" 이건, 조언이랄까. "
" ……. "
" 뭐, 익히들 말하는 친구. 급식 친구로서. "
* * *
지민의 심기가 매우 불편했다. 불편하다는 것보단 더럽다는 게 더 알맞을 지도 모르겠다. 정확히 2주가 지난 후에야 성적이 나왔다. 학교 게시판에 떡하니 걸린 성적표에 반 학생들은 하나같이 입을 떡 벌리며 놀라고 갔다. 한참동안 그 앞에 서있던 지민은 주먹을 꽉 쥐었다. 하품을 해대며 기지개를 펴고 있던 태형이 지민을 발견하곤 다가와 지민의 시선이 향한 곳을 바라보았다. 음, 성적표? 눈살을 찌푸리며 이름들을 확인했다.
ㅣ 석차 ㅣ 이름 ㅣ 학번 ㅣ 평균 ㅣ
ㅣ 1 ㅣ 박지민 ㅣ 030910 ㅣ 98.07 ㅣ
ㅣ 2 ㅣ 전정국 ㅣ 030709 ㅣ 97.40 ㅣ
" 어? 와, 박지민 1등이네. 아싸. 만 원 내 거. "
나이스를 외친 태형이 축하한다. 라며 지민의 어깨를 토닥이곤 그를 지나쳐 갔다. 1등의 자리는 지켰으나, 왠지 모르게 밀려오는 이상한 감정은 참을 수가 없었다. 왜 이러지. 이겨도 이긴 것 같지 않은 기분이었다. 늘 맨 밑자리를 깔고서 있던 놈이 어느새 밑까지 바짝 쫓아와있었다. 그것도 펜을 잡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놈이 말이다. 놀이터에서 탄소가 얘기했던 이가 정국일 것이라는 건 대충 눈치를 까고 있던 참이었다. 근데 정말일 줄은. 자존심이 짓밟히는 기분이었다. 꽉 쥔 주먹이 얕게 떨릴 즘, 지민의 옆으로 누군가 다가왔다.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면 한껏 여유로운 표정으로 주머니에 손을 꼽은 채 성적표를 바라보고 있는 정국이었다.
" 아, 존나 아쉬워. 1등 할 수 있었는데. 아까비. "
" ……. "
씩 웃으며 고개를 돌린 정국이 지민을 내려다보았다. 늘 여유롭게 미소를 지으며 시선을 내던지던 건 지민 쪽이었는데, 아무래도 제대로 전세 역전 당한 기분을 느끼는 중일 테다, 지민은. 입술을 한 번 혀로 축인 지민이 한숨을 내쉬며 성적표를 다시 바라보았다.
" 축하한다. 밑바닥만 기더니. "
" 원래 내 자리는 한 칸 더 위지. "
" ……. "
" 아쉽다. 마지막 시험은 1등 딱, 하고 끝내고 싶었는데. "
" ……. "
" 너야말로 축하한다. "
" ……. "
" 자존심 상하게 나한테 자리 안 뺏긴 거. "
* * *
실업계 다니는 저는 인문계 다니는 친구에게 물어서 글을 씁니다. 예를 들어 모의고사 성적 언제 나와..? 평균은 뭐로 나눠...? 응...?
이과 문과..? 사탐 과탐..? 한국사는 뭐 등급으만 매겨..? 이게 무슨 다 멍멍이같은 소리야..? 내가 머리가 나빠서 이해를 모태! 모태애!
그래도 여차저차 잘 써 봤어요. 인문계 다니시는 우리 독자님들 내가 이상하게 써도 그냥 넘어가조요. 애교로 봐달란 마리야.. (쥐구멍)
앞으로 학교물 쓰면 저 인문계로 절대 안 씀. 애초에 돌대갈 양아치 탄소가 인문계로 전학온 거부터 말 안 돼. 그래도 글이니까. (외면)
개학하구 나니까 바빠요 너무ㅠㅠㅠㅠㅠㅠ 우리 독자님들은 안 바쁘신가요?ㅠㅠㅠㅠㅠ 너무 보고 시펐어요 진짜루ㅠㅠㅠㅠㅠ
얼른 양아치 완결내고 그사세 쓰고 싶고..! 진짜 나 독방에서 내 글 추천 너무 마니 봤어. 다들 주둥이 가져와요, 뽀뽀하게;; 쬽쬽 ♡
아, 그리구 저 이거 자랑하고 싶었어요! 우리 짐 정국에 뷔 님이 저번 화 정국이의 심리와 비슷한 시라구ㅠㅠㅠㅠㅠㅠ♡♡
진짜 너무 사랑스러워서 들쳐업고 도망갈 뻔 했어요. 이런 섬세한 우리 독자님들 덕분에 내가 맨날 주거. 심장 아퍼ㅠㅅ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