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슈퍼주니어 D&E - 아직도 난
사람의 기억에는 늘 한계가 있다.
내가 너의 일로 모든 신경을 너에게 쏟아부었을 때 내 물건들은 계속해서 하나둘씩 사라지곤 했지만
내가 기억을 하지 못하는 것처럼.
처음에는 사소한 것들이었던 물건들은 점점 더 크기를 키워나갔다.
안대, 텀블러, 마시던 주스에 이어서 이번에 사라진 물건은 다름아닌 내 지갑이었다.
내 카드랑 온갖 것들이 들어있는 건 아니고 언젠가 팬이 선물로 줬던 동그란 동전 지갑.
유명 아이돌은 연애를 할까?
09
w. 복숭아 향기
티저가 공개 되었다.
먼저 공개된 사람은 나였다.
너는 히든 카드로 나중에 공개될 예정이었다.
티저가 공개됐다는 것은 컴백 날짜도 그만큼 가까워졌다는 말이었다.
너와 나는 오늘도 연습실에서 안무 동작들을 맞춰보고 있었다.
사실 동작은 다 외운지 오래였다.
이제는 자면서도 나도 모르게 팔다리를 움직기도 했으니까.
지금 내가 하는 건 말 그대로 몸 선을 다듬는 일이었다. 같이 춤을 추는 너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면 깔끔한 춤선과 여유로운 동작은 기본이었다.
그리고 가장 힘든 일이기도 했다.
춤이라는 거에 대해 잘 아는 편은 아니었지만 네 춤선은 확실히 뭔가 느낌이 달랐다.
오랫동안 춤을 추지 않았던 내가 따라가기에는 너무 벅찬 게 현실이었다.
"연습하는 거 힘들지 않아요?"
옆에서 찍고 있던 vj 언니가 물어왔다.
나는 땀에 젖은 머리칼을 쓸어넘기며 그저 허허 웃어보였다.
힘들지 않다고 하면 당연히 거짓말이겠지.
저녁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춤연습에 매진하느라 내 두 다리는 이제 덜덜 떨려올 지경이었다.
이게 바로 운동 부족이라는 건가.
"힘들긴 해도... 호석이가 워낙에 춤을 잘추잖아요. 비교되면 쪽팔려요."
"이름씨도 많이 늘었던데..."
"그렇죠. 늘었죠. 하지만 멀었네요."
나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내 옆에 있던 물병을 집어들었다.
방금 전 네가 화장실 가기 전에 마시라고 갖다 놓은 것이었다.
타는 듯한 목구멍 사이로 차가운 물이 한 모금 들어오자 그나마 좀 살 것 같았다.
아.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이러고 있는 걸까, 싶었지만 한편으로 기대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너도 나도 항상 각자의 무대를 아래에서 바라만 봤을 뿐 같이 무대 위에 올라간다는 건 상상도 못하던 일이었으니까.
"근데 방송 이렇게 나가도 괜찮아요?"
"왜요?"
"너무 다큐일 거 같은데..."
"호석씨가 보내준 영상 봤거든요?"
"..."
"숙소에서 찍은 영상 봤는데..."
"아... 네..."
"충분할 거 같아요."
갑자기 vj 언니의 얼굴이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아. 분량 많이 건졌구나.
저기 한 구석에서 잠자고 있는 내 핸디캠이 눈에 들어왔다.
오늘... 오늘 집 가서 뭘 찍던지 해야지...
옆에 경쟁자가 있다는 건 나 자신을 발전시키기 아주 좋은 환경이라는 말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너는 나에게 참 좋은 경쟁자였다.
이런 면으로는.
"티저 반응 보니까 기분이 어때요?"
"솔로로 나올 때하고는 또 기분이 다른 거 같아요. 저희 컴백무대 다음주가 첫방하는 날 맞죠?"
"네."
"컴백날에 리얼리티 티저 나오는 것도 엄청 긴장되고 그래요."
"되게 열심히 준비하셨잖아요."
"그렇죠. 열심히 준비하기도 했고 중간에 이런저런 일들도 많았고..."
"..."
"여러모로 남다른 그런 앨범이 될 거 같아요."
-
문이 열리고 네가 들어왔다.
그리고 네 뒤로는 너를 따라갔었던 VJ 오빠도 같이 들어왔다.
너도 나처럼 인터뷰를 한 모양이었다.
무슨 말을 했으려나.
어쨌든 네가 들어왔으니 이제 다시 연습 시작이었다.
"쉬었어?"
"응."
"많이는 말고 한 두 번만 맞춰볼까?"
"그래."
컴백무대이다보니 준비해야 하는 무대는 총 두 곡이었다.
얼마 전 뮤직비디오를 찍었던 타이틀곡과 수록곡 하나.
앨범에서 수록될 곡은 총 4곡이었다. 무대를 선 보일 두 곡과 너와 내 각각 솔로곡이었다.
내 솔로곡은 늘 그랬던 것처럼 민윤기가 준비를 해줬고 네 솔로곡은 네가 직접 작사와 작곡에 참여했던 곡이었다.
언제 만들었냐고 묻자 너는 그저 빙그레 웃기만 할 뿐 대답을 해주지는 않았다.
덕분에 알 수 있었다.
네 노래는 그 때 작업실에서 오롯히 너 혼자 만들어낸 그런 곡이라는 걸.
"자몽청 다 먹었다."
"그 많은 걸?"
"입이 다섯 개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청인데..."
"정국이가 진짜 잘먹더라."
"정국이가?"
"석진이 형이랑 둘이서 거의 퍼먹던데?"
"뭐?"
이 인간이 미쳤나...
나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겨우 화를 참아냈다.
그래... 청이야 다음에 한 번 더 만들면 되는 거지...
맛있다고 맛있게 먹은 걸 가지고 내가 화를 낼 수는 없는 거지...
"근데 태형이는 좀 많이 안먹었어."
"그래?"
"쓰다고."
"아..."
"집에 꿀 있는데 그거까지 타서 먹더라."
"와..."
여러모로 입맛이 어리긴 하네.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너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너는 얼마나 먹은 걸까?
네 목관리 잘하라고 만들어준건데.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보며 스트레칭을 하던 네가 갑자기 고개를 돌려 나와 눈을 마추졌다.
나는 얼른 고개를 돌려 거울 속의 나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갑자기 눈을 딱 마주치는 건 조금 반칙이었다.
"잘먹었어."
"응..."
"내가 그래도 반 이상은 혼자 다먹었으니까 걱정마."
"..."
"설탕 때문에 살찌면 책임져."
"넌 좀 쪄도 되거든."
남자친구가 눈치가 빠른 건 이럴 때 참 좋았다.
굳이 내가 말을 하지 않아도 내가 원하는 대답을 받을 수 있으니까."
"다리 좀 더 풀어라. 안그러면 너 진짜 파스 붙히는 수가 있어."
"네. 네."
가끔 눈썰미가 너무 좋아서 잔소리를 들을 때도 있지만...
복장 터지는 것 보다는 나으니까.
늘 느끼는 거지만 일을 할 때의 너는 공과 사를 철저하도록 잘 지키는 그런 사람이었다.
옆에서 보면 부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
"저희는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죠?"
"퇴근을 하고 있습니다."
"왜 같이 가는 거죠?"
"아파트가 같은 아파트라 같이 가고 있습니다."
"가는 길에 야식이나 먹고 갈까요?"
"살찐다고 안먹는다고 했던 사람이 누군지 궁금합니다."
"내가 쏠게."
"앗싸."
내 말이 끝나자마자 너는 바로 근처에 있는 편의점으로 달려갔다.
평소에 간식이나 이런 걸 많이 먹는 것도 아니면서.
나는 입꼬리를 말아올리며 네 뒤를 따라갔다.
너는 한껏 진지한 표정으로 컵라면을 고르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아까 너도 저녁 제대로 못먹었다고 했었지.
지금 시간이 벌써 새벽 1시가 넘어가니 출출할 시간이긴했다.
"라면 먹을 거야?"
"라면 먹을까 김밥 먹을까 생각중."
"둘 다 먹어."
"안돼."
"왜?"
"김밥 먹을 거면 주스도 같이 먹을 거란 말이야. 다 못먹어."
"그럼 라면이랑 핫바 먹던가."
"오. 좋네."
너는 이제 콧노래까지 불러가며 라면과 핫바를 집어 계산대로 향했다.
나는 뭐 먹지...
막상 들어오지 딱히 먹고 싶은 게 생각나지 않았다.
그냥 목이나 축여야지.
대충 옆에 있던 탄산수 하나를 집어들었다. 그리고는 너를 따라 계산대로 향했다.
"너 다른 거 먹어."
"응?"
"먼저 야식 먹자고 한 사람이 탄산수가 뭐냐? 탄산수가."
"딱히 땡기는 거 없는데..."
"그래도 좀 먹어. 너 저녁도 안먹었잖아."
네 말에 나는 한 켠에 놓여있는 샐러드를 집어들었다.
이 새벽에 너처럼 라면을 먹기에는 내 양심이... 너무나도 찔렸으니까.
너는 그런 나를 힐끗 보다 이내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보였다.
식단관리라는 걸 너도 해봤기에 알겠지.
지금 내 마음이 어떤지를.
때문에 너는 별 다른 말을 하지는 않았다.
그저 내가 갖고 왔던 탄산수를 우유로 바꿔왔을 뿐이었다.
나는 군말없이 네가 내민 우유를 받아들었다.
그와중에 우유는 또 무지방 우유였다. 나는 입꼬리를 말아올리며 지갑을 꺼냈다.
"잘먹을게."
계산이 끝나자마자 너는 라면에 물을 받고는 한 켠에 마련되어있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나는 네 앞에 마주앉으며 턱을 괴고 너를 바라보았다.
전자레인지가 띵하고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라면 물을 받으면서 핫바도 같에 데운 모양이었다.
"배고팠지?"
"응."
"내일 얼굴 띵띵 붇겠다."
"얼음팩 얼려놓고 자야지."
너는 옆에 있던 핸디캠을 집어들었다.
그리고는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어보였다.
아. 맞다. 우리 지금 촬영하고 있었지. 나는 그제야 너를 따라 같이 손을 흔들어보였다.
너는 간단하게 인사를 하고는 바로 카메라 전원을 꺼버렸다.
응? 우리 먹는 모습 찍으려 했던 거 아닌가?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너를 바라보았다.
"지갑은?"
아...
이 이야기를 하려고 카메라를 끈 거구나.
나는 눈동자를 데록데록 굴리며 괜히 우유 빨대만 만지작거렸다.
지난번에 너에게 흘리듯이 누가 지갑을 가져간 거 같다 말을 했던 적이 있었다.
아직 너는 기억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내 물건들이 하나둘씩 사라진다는 걸. 그리고 내가 의심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
"매니저?"
"응."
"딱히 이유는 없고?"
"그냥 감이라는 거지."
"하아..."
너도 참 고생이겠다.
너는 이미 다 퍼져서 뚝뚝 끊어지는 면발을 집었다 놨다만 반복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조용했던 편의점 안에 벨소리가 울려퍼졌다.
누구지? 알바분 핸드폰인가? 네 것도 내 것도 아닌 벨소리였다.
잠시 고개를 돌려 카운터 쪽을 보았지만 알바생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벨소리는 계속해서 울려대고 있었다.
"내 거야."
"어?"
"내 핸드폰."
너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보여주었다.
내가 매일 보는 너의 핸드폰이 아니었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너를 바라보았다.
너는 푸스스 웃으며 핸드폰 전원을 꺼 다시 주머니 안에 집어넣었다.
"이게 내 이름으로 만든 핸드폰."
"..."
"네가 알고 있는 건 우리 아빠 이름으로 만든 핸드폰."
"..."
"가끔 이렇게 전화 와. 대부분 꺼놓고 있기는 한데 의심할까봐 켜놓을 때도 있거든."
"의심..?"
"이 번호가 제이홉의 번호가 아니구나. 뭐 그런 의심이랄까."
나는 우유 빨대를 잘근 깨물었다.
너는 손가락으로 턱을 한 번 긁적이더니 핫바를 한 입 베어물었다.
김이 펄펄 올라오던 컵라면은 이미 미지근하게 식어있었다.
"나도 번호 바꿔야 하나."
"아직 전화가 오거나 그런 건 아니지?"
"응."
"한 사람이라는 보장도 없잖아."
"그렇지."
"혹시 모르니까 핸드폰 하나 더 사는 게 좋겠다."
"그래야겠지..."
"누가 주는 거 함부로 먹지 말고."
"안그래."
"내가 주는 건 다 받아먹고."
이게 진짜.
나는 샐러드 포크로 너의 머리를 콩 때렸다.
너는 그저 까르르 웃으며 나에게 핫바를 내밀어보였다.
안먹는다고 고개를 저었지만 너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결국 나는 핫바를 한 입 베어물었다.
오랜만에 먹는 소시지 특유의 향이 훅 느껴졌다.
맛있었다.
[♪]
내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이 울려댔다.
순간 너와 나는 그대로 움직임을 멈춰버리고 말았다.
누구지? 뭐지? 나는 한껏 긴장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누군지 확인도 할 새 없이 바로 전화를 받았다.
(야! 성이름! 김남준 지금 떡볶이 사러 갔다는데 한 시간째 안오고 있다! 혹시 너 연락 했어?)
"..."
(아씨. 지난번에 어떤 썅년이 가서 길 물어보는 척 하면서 번호 물어보던데... 걔 또 이상한 잡것들한테 잡힌 건 아니겠지?)
"..."
(여보세요? 뭐야. 전화 불통이야? 안들려? 성이름? 여보세요?)
그리고 바로 끊어버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새끼는 답이 없는 거 같았다.
너는 민윤기의 목소리가 들려오자마자 숨이 넘어갈듯이 끅끅 거리며 웃어대고 있었다.
-
"들어가."
"응."
아무리 괜찮다고 말을 했지만 너는 결국 아파트 입구까지 나를 데려다주었다.
나는 너를 향해 손을 한 번 흔들어 보이고는 바로 안으로 들어갔다.
여러모로 딱히 한 일은 없는데 뭔가 많은 일을 한 거 같은 그런 날이었다.
하루 종일 연습실이랑 녹음실만 왔다갔다해서 그런가. 아. 화장 지우기 귀찮다.
화장이라고 할 것도 없이 그냥 썬크림에 눈썹만 그린 거긴 하지만...
그래도 귀찮은 건 귀찮은 것이었다.
엘리베이터가 7층에 멈춰있었다.
그냥 계단으로 올라갈까. 방금 전 먹었던 핫바가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나는 몸을 돌려 비상구 쪽으로 들어갔다.
계단이 그리 많지 않으니 7층은 금방 올라갈 것이다.
아직까지도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는 기분이었다.
피곤하긴 한데 집 가서 반신욕 한 번 하고 자야지. 다리 붓기 빼는 데는 그게 최고였다.
그나저나 너는 괜찮은걸까.
아이돌에게 사생이라는 것이 참 골칫거리라는 것은 이미 알고있던 사실이었다.
하지만 너도 그 사생에 의해서 피해를 입고 있을 거라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었다.
왜그랬을까. 지금까지 그런 모습을 본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이었다.
나와 연락을 하고 있는 핸드폰은 알고보니 네 주변인 몇몇만 알고 있는 그런 번호였고 노출이 되어있는 핸드폰은 아예 꺼놓고 살았다.
혹시나 방송에서 노출되었을 때를 대비해서 두 핸드폰의 케이스마저 똑같이 끼워놓은 너였다.
굳이 알려주고 싶지 않았던 걸까. 아니면 너무 익숙해서 말을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걸까.
하아...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나도 핸드폰 바꿔야 하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어느새 7층에 도착해있었다.
복도를 지나가다 힐끗 본 엘리베이터는 이미 1층으로 내려가있었다.
그냥 엘리베이터 타고 올 걸 그랬나?
후들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집 앞으로 갔다.
현관문 앞에 무언가 놓여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뭐지?
자그마한 상자였다.
상자 위에는 to 이름 이라고 적혀있었다.
누가 보낸거지. 나는 입술을 잘근 깨물며 상자를 열어보았다.
그리고는 바로 그 상자를 땅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상자 안에는 지금까지 사라졌던 내 물건들이 담겨있는 사진과 방금 전 편의점에서 라면을 먹던 너와 내 모습이 담긴 폴라로이드 사진이 들어있었다.
사진 아래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헤어지세요.'
-
[암호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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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석이와 여주가 준비하고 있는 혼성 노래는
요거랍니다.
오늘도 제 글을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