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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현달

 

 

 

 

 

 

 

 

밤은 어둡다. 수많은 밤 중에서도 유독 어두운 밤이 있다. 그런 밤이면 아무리 착한 사람이라도 음모를 꾸미고 싶어진다. 이날 밤이 바로 그런 밤이다.

찾으셨습니까, 공작님.”

성의 상황은?”

별로 다를 바 없습니다. 시녀장과 시녀중 넷이 워낙 조심해서 딱히 새로운 정보가 없습니다.”

벨랴코프 공작이 불쾌한 기색으로 혀를 찼다. 시녀중 알리오나는 고개를 숙인다.

면목없습니다. 그래도 조금만 기다리시면....”

아니, 됐다. 꽤 오랫동안 가늠해왔다. 이쯤이면 계획을 실행해도 되겠지.”

그럼....?”

이고르, 데려와라.”

알겠습니다.”

잠시 후 이고르는 어떤 남자와 함께 들어왔다. 얼굴을 뜯어보니 고생 깨나 한 모양이었다.

프셰므스와브, 이쪽은 성에서 일하는 시녀중이다. 내가 널 성으로 들여보내주겠다는 소리지.”

정말인가?”

프셰므스와브는 벌건 눈으로 공작을 쳐다보았다. 벨랴코프 공작은 그 벌건 눈빛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하다.

이 자를 시종으로 위장해서 성으로 같이 들어가라. 옷은 알아서 준비해주고. 다른 건 말 안 해도 알겠지.”

알리오나는 순응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벨랴코프 공작은 작은 유리병을 내밀었다. 투명한 액체가 찰랑인다.

듣자하니 차를 즐기신다지. 이건 그분께 드리는 선물이니, 가능하면 조용히 전달해라.”

잘 알겠습니다, 이 일에 적합한 시녀 아이를 알고 있습니다.”

좋아.”

벨랴코프 공작의 입가가 만족스럽게 휘어진다.

***

자못 자신 있는 발걸음. 기대로 빛나는 얼굴. 제임스는 많은 대신들과 여왕 앞에 섰다. 기나긴 항해였다. 얼마나 길었던가. 좌절도 많이 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바로 이 순간을 기다리며 버텨왔다. 꿈에서나 볼 수 있던 풍경이 지금 현실이 되고 있다.

보통 같았으면 항구에 내려 부모님을 뵈고 천천히 수도로 올 것이지만, 오늘은 다르다. 항구에 도착하자마자 불같이 말을 달려 여기 수도, 성에 왔다.

여왕님, 발견했습니다. 드디어 찾아냈습니다. 새로운 땅을 드디어, 드디어 찾아냈습니다!”

그게 정말인가요?”

사실입니다. 여러 번 조사를 해 본 결과, 신대륙이 확실합니다.”

여왕이 기쁜 탄성을 지르고, 대신들도 웅성거린다. 난색을 보이는 귀족 몇몇이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여왕과 제임스에겐 그런 이들은 중요치 않다.

***

자아, 위하여!”

맥주잔이 부닥치고 왁자한 웃음소리가 퍼진다. 선원들은 자랑스러운 자신들을 위해 마시고 또 마셨다.

, 진짜 해낼 줄이야! 아직도 안 믿겨!”

믿어야지, 안 그래? 안 그렇냐?”

당연하지! 크으, 멋지다 우리! 그런 고로 한 잔 더!”

좋다!”

이거 나만 빼놓고 술판이 너무 거하군.”

제임스가 좁은 술집 문을 열고 들어왔다.

성 연회에는 여기보다 좋은 술이 많은 데 왜 여기에 왔나?”

, 비싸기만 비싸고 술맛은 영 별로드만요. 술이 뭔가 팍! 하고 쏘는 게 있어야 하는데, 에이. 그거 먹고 취하는 인간들은 술맛도 모르는 놈들입지요.”

아무렴. 선장님도 한 잔 더 하시죠!”

말 떨어지기가 무섭게 손에 맥주잔이 들린다. 제임스도 싫지 않은 듯 호탕하게 웃는다.

고맙네, 고마워, 안드레아스.”

, 한 방에 원샷! 원샷!”

안드레아스는 취기 오른 얼굴로 웃었다. 그리곤 겁도 없이 분위기를 몰아갔다.

원샷! 원샷! 원샷!”

분위기는 무르익고 슬슬 술에 뻗은 사람이 나오기 시작했다.

미숙아, 지인짜 사랑했다! !”

, 그냥 자지, 진짜.”

됐어, 나둬.”

야아아아아, 가브리에에엘! 어디 가서 자빠졌냐아아아아!”

안드레아스가 술에 흠뻑 젖은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저것보단 낫지.”

인정.”

주인장, 여기 한 잔 더 주쇼.”

선원들은 모르는 이름을 불러대는 안드레아스를 무시하고 술을 더 시킬 뿐이었다.

***

약희는 마지막 머리핀을 빼냈다. 여왕의 긴 머리카락이 흘러내렸다.

약희, 오늘 고생했어.”

여왕님께서 더 힘드셨지요.”

머리를 빗으며 약희는 여왕을 향해 웃어주었다. 여왕도 조금 웃었다.

연회가 항상 그렇지. 사람 많고 피곤하고. 오늘은 대충 하고 가봐.”

전 괜찮습니다만.....”

아냐, 오늘 저녁 계속 서 있기만 했잖아. 조금만 하고 자러 가.”

, 그럼 알겠습니다.”

쾅쾅쾅. 쾅쾅쾅. 쾅쾅쾅. 우레 같은 소리가 난다. 약희가 소스라쳐 문가로 얼른 달려갔다.

누구.....!”

말을 끝마치지도 못하고 약희가 바깥으로 끌려갔다. 쾅 소리와 문이 닫히고 일리야가 형형한 눈빛으로 서 있었다.

이게 무슨 무례죠! 여긴 나밖에 들어올 수 없어요! 당신 비롯해서 다른 부군들도 절대 들어와서는.....!”

곧장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입맞춤을 퍼부어댔다. 손목이 부서져라 잡아서 오히려 아프지도 않을 지경이었다. 왼팔에 붙잡힌 허리가 자꾸만 뒤로 넘어갔다.

여왕은 있는 힘을 다해 겨우겨우 그를 밀어냈다.

대체 나에게 왜 이러는 거지? 당신은 날 사랑하잖아? 당신은 날 사랑하잖아!”

일리야는 몸부림치는 여왕의 양어깨를 흔들어댔다. 여왕은 마침내 폭발하고 말았다.

사랑? 사랑? 언제부터 나한테 그런 달콤한 게 있었지? 지금 나를 봐! 이때까지 해 온 수많은 결혼들! 재고 계산하고 얻을게 뭘까 고민하고! 나도 다 알고 있어!

아무나 곁을 막 내주는 여자라면서 지저분하게 떠드는 말들! 그런데 더 끔찍한 건 뭔 줄 알아? 내가 어느 정도는 동감한다는 거야! 내가 진심으로 원한 게 어디 있지?

앞뒤 재지 않고 오직 내 감정으로 한 게 어디 있지? 어디 있냐고! 난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 난 그냥 더러운 정치판에 나 자신을 천하게 판 거야

그게 부끄러워! 나 자신이 혐오스러워! 지금까지 버텼던 건 부군들이 날 진심으로 대해줬기 때문이야. 그런데 지금 당신은 뭐야.

당신이 날 지금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아냐고! 날 사창가 여자처럼 찾아오고 있잖아. 거래를 했으니까 값을 받아내겠다는 식이잖아!

내가 어떻게 느끼는 지 생각해봤어? 내가 어떤 마음인지 생각해봤어? 예전엔 당신이 불쌍하기라도 했는데 이제는 아니야. 당신이 끔찍해!

더 이상 날 천하게 만들지 마! 이제 그만하라고! 난 당신이 끔찍해! 끔찍해!”

일리야는 길게 포효했다. 다시는, 다시는 저 말을 들을 수 없다. 그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을. 그 때 다반이 일리야의 뒷머리를 세게 내리쳤다.

포효는 멈췄고 약희가 여왕 앞에 서서 그를 노려봤다. 살벌하면서도 궁지에 몰린 표정. 약희는 진주 뒤꽂이를 빼들었다. 날카로운 끝부분이 마치 커다란 바늘 같다.

가십시오! 어서! 나가라고요!”

일리야는 야수 같이 눈빛을 빛내다가 천천히 움직였다. 그 눈빛이 너무 무서워 주저앉을 것 같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안 된다. 약희도 끝까지 버텼다.

마침내 일리야가 방문 밖으로 사라지자 약희는 손을 내렸다. 뒤에서 여왕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여왕님! 여왕님! 정신 차리세요!”

, , 약희야. 나 무서워, 나 무서워.”

제가 다 알아서하겠습니다, 지금 당장 누구라도 불러와서..... , 그러니까 누구를 부르지. 그러니까.....”

아니야, 그 사람이 무서운 게 아냐.”

?”

내가 무서워. 내가 무서워. 내가, 내가 너무 무서워. , 약희야, 나 어쩜 좋지? 어떡하지?”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손만 벌벌 떠는 여왕의 얼굴은, 그야말로 공포에 사로잡혀 있다.

여왕님! 여왕님! 정신 차리세요!”

무슨 일...! 아악!”

달려온 능파는 방 안을 보고 비명을 질렀다. 능파의 비명에 후닥닥 달려온 탐춘과 보채도 입을 틀어막았다.

너희들은 거기서 뭐하고 앉았어! 당장 물수건이라도 가져오지 않고!”

!”

내심 약희도 물수건 따위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지금으로선 생각나는 게 그것뿐이다. 우당탕 소리가 나더니 탐춘이 잔 하나를 가져온다.

약희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여왕에게 조금씩 마시게 했다. 그러더니 순식간에 동작이 느려지더니 여왕의 몸에 힘이 쭉 빠졌다.

아니, 이게 대체.....”

죄송해요, 사실.... 눈송이를 탄 물이에요. 평소보다 배로 넣었어요.”

탐춘이 너....... 아니, 일단 됐다. 지금은 여왕님이 우선이야. 얘들아, 나 좀 도와다오.”

약희는 복잡한 머리를 정리하려 애썼다. 지금은 무조건 냉정해야만 한다.

언니, 복도를 돌아봤는데 아무도 없어요. 오늘 연회 때문에 다들 바쁜가 봐요. 기껏해야 설거지 하는 사람이나 남아있을 거예요.

나머지는 다들 잘 시간이니까 아무도 몰라요.”

그래, 불행 중 다행이다.”

여왕은 침대에서 죽은 듯이 잠에 빠져있다. 손가락 하나 미동이 없어 불안해진다.

그나저나 앞으로가 더 걱정이구나. 연회가 많이 잡혀 있는데.... 의사를 함부로 부를 수도 없고....”

제임스가 신대륙 발견에 성공했기에 열린 연회다. 오늘은 선원과 원정대를 위한 연회였고, 그 다음은 후퍼 가문, 다음은 신대륙 설명회,

다음은 블레어와 함께 투자자들을 만나기로 했고, 마지막으로 다음 출정을 위한 준비 연회와 출정식까지 있다.

모두 날짜와 시간까지 정한 뒤라서 바꿀 명분이 없다. 그게 여왕의 건강이라면 더더욱. 약희는 뒤꽂이 끝에 대롱거리는 진주 장식을 뜻 없이 바라봤다.

***

날 좋은 오후, 성 안 정원에서 한가로운 다과 모임이 열리고 있다. 조르륵, 하고 차를 따르는 소리가 난다.

, 장미차 색깔 예쁘다.”

, 오늘은 유독 진하게 났네요.”

마카롱도 맛있겠다. 잔느, 네가 구운 거야?”

아뇨, 세실이 구운 거예요. 데이아나 대공께서 세실을 잠깐 데려간다고 된다고 하셨거든요.”

, 그렇구나. 맛있겠다아.”

마엘이 천진한 미소를 지었다. 시녀중 잔느도 따라 웃으며 마카롱을 접시에 예쁘게 담는다.

오늘부터 다이어트 한다고 했잖아.”

그건 어제고. 아키코 넌 좋겠다, 살이 안찌는 체질이잖아. 넌 이 고통을 이해 못해.”

그냥 안 먹고 싶을 때 안 먹는 거야. 난 먹는 거 귀찮던데.”

그게 이해가 안 가거든?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어떻게 그게 귀찮을 수가 있어? 이 세상에 맛있는 게 얼마나 많은데!”

아키코는 그저 차 한 모금을 마신다. 마엘은 조금 째려보고 마카롱을 한 입 베어문다. 언제 째려봤냐는 듯 얼굴이 금세 풀어진다.

그렇게 맛있나.”

아키코도 한 입 먹고 맛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거린다. 마엘이 자못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는다.

거봐, 맛있다니까. 그런데 유키토는 어디 있어? 오늘 데려온다고 했잖아.”

유키토는 저기..... ? 어디 갔지? 사치에, 유키토는?”

, 그게..... 저도 잘....”

아키코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발을 동동 구르며 금세 울 것 같은 표정을 짓는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금방 찾아보겠습니다.”

빨리, 빨리!”

괜찮아, 내가 찾았어.”

불쑥 들려온 목소리에 아키코는 고개를 돌려본다. 마르티노가 토끼를 안고 서 있었다.

유키토!”

마르티노는 아키코에게 토끼를 건네주었다. 아키코는 활짝 웃으며 새하얀 털을 쓰다듬었다.

어디서 찾았어?”

신경 안 쓰면 그 녀석 자기 멋대로 돌아다니잖아. 그냥 있는데 풀 뜯어먹겠다고 옆에 와 있던데?”

고마워, 오빠.”

너는 오빠보다 토끼가 좋은 거냐, 나참.”

마르티노는 살짝 속상한 표정으로 팔짱을 꼈다. 살짝 흐트러진 까만 머리에 장난기 넘치는 갈색빛 검정 눈동자.

크림색 셔츠의 윗부분이 단추도 채우지 않아 벌어져 있었다. 하늘색 웃옷도 마찬가지로 단추 없이 잠그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자유로워 보이는 인상이다.

유키토는 아키코에게 중요하거든. 잘 모르면서.”

, 뭐 먹냐? 나도.”

사람 말 무시하는 건 타고났어, 진짜.”

어차피 마지막 남은 건데 뭘.”

마지막? 그럴 리가....”

마엘은 접시를 내려다봤다. 정말 마카롱이 없었다.

설마....... 아키코가 하나 먹었으니까.... 그러니까 이걸 내가 다 먹었다고?”

, 역시. 돼지돼지.”

, ....... 나쁜 자식아아아!”

오늘 운동은 다 했네.”

도망치는 마르티노와 따라붙는 마엘, 그리고 열심히 뒤쫓는 시녀들의 뒷모습을 아키코는 지켜봤다.

두 사람 사이에는 문제가 없네. 그렇지, 유키토?”

알아들었는지 토끼는 귀를 쫑긋한다. 주전자를 보니 차도 거의 다 마셨고, 마카롱은 바닥이 났다.

오늘 오후의 차는 여기서 끝인가 보네. 조금 있다가 갈까, 어떻게 할까.”

차를 더 우릴까요?”

아니야. 차는 더 안 마실래. , 역시 걷는 게 좋겠어. 유키토가 조금 답답해하는 거 같아.”

아니나 다를까 아키코가 내려놓자마자 토끼는 귀를 두 번 쫑긋대고는 저 멀리로 뛰어갔다. 깡충대는 토끼를 아키코는 웃으며 따라갔다.

아키코는 이렇게 유키토를 쫓아가는 일이 좋다. 사람이 다니는 길이 아니라 토끼가 다니는 길을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왠지 자신이 토끼가 된 것 같아서 재밌다. 토끼는 항상 자신이 모르는 장소로 간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좋아, 잘하고 있어. 조금만 더.”

, 제이콥 오빠랑 제니퍼 언니다.’

제니퍼와 제이콥은 나란히 앉아 있었다. 제이콥이 제니퍼의 필사를 도와주고 있는 모양이다. 제니퍼도 꽤나 흐트러짐 없는 자세다.

사실 제니퍼는 어느 때보다 긴장하고 있다. 이렇게 제이콥과 가까이 있는 것도 그렇고, 혹시나 필사가 틀릴까봐 신경이 곤두섰다.

틀릴 때마다 창피해서 얼굴이 달아오른다. 하필이면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결국 끝장 날 것이 뻔한 그의 삶의 양태는 자기 자신에게서 발견되는 공허한 연민 같은 것이다.....’

양태? 공허한 연민? 제니퍼는 그게 뭔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그걸 따질 때가 아니다. 그런데 갑자기 하얗고 복슬복슬한 토끼가 깡충거리며 눈에 들어온다.

, 미안해. 유키토가 방해했나봐.”

오랜만이구나, 아키코.”

집중하고 있는데 미안해. 그나저나 무슨 책이 이렇게 두꺼워? 이건 너무 어려워 보이는걸.”

, 내 생각에도 좀 그렇긴 한데. 단어도 어렵고. ‘그 자체가 완벽한 영웅성을 표현 한다라니....... 이건 좀 심하잖아.”

제니퍼는 고개를 푹 숙인다. 정말 너무 창피하다. 제이콥이 그런 제니퍼의 어깨에 손을 가만히 올린다.

모르는 걸 부끄러워 할 필요 없다, 제니퍼. 앞으로 많이 도와줄테니, 걱정하지 말고.”

그때 베로니카가 조금 헛기침을 한다. 그러더니 편지를 올린 자그만 은쟁반을 내민다. 한눈에 봐도 고급 종이다. 금박으로 린데만 가의 문장이 찍혀있다.

제이콥의 얼굴이 한순간에 무거워진다.

제이콥 오빠.”

아키코가 조용한 목소리로 부른다.

가봐야 하지? 제니퍼 언니는 내가 도와줄게.”

까만 머리, 까만 눈동자. 달빛처럼 하얀 피부에 잘 어울리는 남색 기모노. 하얀 동백 무늬가 선명하다.

머리위엔 노란 나비 장식이 작게 매달린, 어리지만 무언가 알고 있는 여동생. 작은 여동생.

얼른 가.”

“.......그래.”

제니퍼는 영문을 모르는 표정으로 연필만 굴린다. 유키토가 다른 쪽으로 뛰어간다.

***

경치 좋다.”

내가 진짜 올라올 줄 몰랐지?”

아니, 내가 누군데.”

잘났어, 정말!”

고마워. 눈물 날 뻔했어.”

진짜.”

마엘과 마르티노는 높은 나뭇가지 위에 걸터앉아 있다. 아래에서 시녀들이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두 사람을 올려다보고 있다.

괜찮아, 금방 내려갈게!”

마엘이 손을 흔들며 밝게 외쳤다. 하지만 효과는 없었다. 오히려 얼굴이 더 창백해졌다.

근데 여기 진짜 경치 좋다.”

그럼. 내가 여기 데려온 걸로 아까 일은 없던 걸로?”

안되거든! 빨리 사과 해.”

, 이거 실망이다. 너 내 수준을 이렇게 밖에 안 보는 거냐? 내가 여자 먹는 거 가지고 놀릴 사람으로 보여? 그냥 농담이었는데. 여자가 뭐 많이 먹는 게 어때서.

그건 흉볼 일 아니잖아. 나도 그 정도는 안다고.”

그럼 아까는 왜 그랬어?”

네가 치사하게 마지막 꺼 양보 안 하는 줄 알았지. 내가 오빠로서 너한테 식탐을 조절하는 법을 가르쳐주겠다는데, 이거 인심이 너무 야박한 거 아냐?”

잘났어, 정말!”

어유, 눈빛 봐. 나 조금만 있으면 생일인데, 선물 준비하고 그러는 거야?”

아니.”

왜 이렇게 당당해?”

알고 싶어?”

아니.”

뭐하는 짓이야, 지금.”

그래도 준비해 줘. 제이콥 형이랑 동갑이 될 수 있는 몇 달이 시작되는 건데.”

연년생이 뭐 별건가.”

, 별거야. 이렇게 제이콥 형을 말할 수 있는 것도 별거고. 다들 내가 제이콥 형을 말할 때마다 얼굴이 변하잖아. 우씨, 머리 아프게.”

제이콥은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리며 얼굴을 찌푸렸다.

덕분에 이렇게 지루하게 너 쫓아다니고.”

언제는 안 쫓아다녔나, .”

그리고 얼마간 말이 없었다. 볕은 따뜻하고, 하늘은 맑고, 바람은 살랑거린다. 나뭇잎 냄새가 진하게 난다.

, 세상이 단순하면 좋겠다. 이렇게 예쁜데.”

마엘이 꿈꾸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세상이 예쁘다.”

제이콥도 답했다.

***

제이콥은 어두운 얼굴로 상자를 내려 봤다. 편지는 할아버지 린데만 공작이 보낸 것이다.

편지에는 짧게 성례(成禮)를 축하드립니다, 왕자님. 언제까지나 기품이 함께하길.’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리고 갈색 포장지에 쌓인 길고 가벼운 이 상자가 왔다.

편지처럼 린데만 가의 문장을 새겼다. 벚꽃나무 한 그루를 곁에 둔 수사슴. 그 번쩍이는 금박이 제이콥에겐 징그럽다. 조심스레 상자를 열었다.

역시.’

속에는 넥타이와 카라핀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귀족 가문은 성례라는 문화가 있다. 말 그대로 성년식인데, 가문마다 성인으로 인정받을 만한 나이가 되면

특별한 물건을 가주가 선물한다. 선물은 각 가문마다 다르다. 린데만 가는 넥타이와 카라핀이다. 곧 받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받으니 머리가 멍하다.

그리고 두려웠다.

분명 얼마 후에 있을 출정식 때문이다. 출정식에는 다른 연회와 달리 왕족과 귀족 모두가 참여하니까. 윌리엄스 가에서 사업가들도 보내겠지.’

그간 공주와 왕자가 참여하는 연회는 별로 없었다. 딱히 어린 왕족이 참석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은 다르다. 성례를 치른 두 왕자가 한 자리에 나온다.

수많은 귀족과 사업가들 앞에.

몇 주만 있으면 마르티노의 생일. 그렇다면 아마 마르티노도......’

땅거미 지는 하늘, 제이콥은 방에서 홀로 서 있다. 바로 그 시간, 마르티노도 손에 가죽 장갑을 들고 있었다.

옆에 놓인 초록 포장지에 몬디 가의 문장인 장미꽃을 문 사냥개가 박혔다.

***

어린 시녀가 무릎을 꿇고 있다. 어둔 새벽이고,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다.

올가.”

, 시녀중님.”

요즘 네가 일을 잘 한다지?”

, 고맙습니다.”

그래, 기특하구나.”

정작 알리오나의 표정은 딱딱하다. 흐뭇해하지도 미소를 보이지도 않는다.

, 이걸 받아라.”

이게 뭔가요?”

올가는 알리오나가 내민 작은 유리병을 불안하게 쳐다본다. 투명한 색이 불길해 보인다.

찻잎을 말리는 곳을 알고 있겠지. 이걸 여왕님의 찻잎에 뿌려라.”

?”

여왕님의 찻잎에는 리본으로 표시를 하니까 알아보기 쉬울 거다.”

올가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 시녀중님, 제발....... 이번 일은 도저히 못하겠어요. 제발........”

못하겠다니?”

, 그건 여왕님을 아프게 하는 거죠? 그런 거죠? 그런 일은 절대 못해요! 여왕님께서는 좋은 분이세요, 저도 이렇게 성에서 일할 수 있고요........

그런 분을 어떻게, 전 못해요, 정말로 못해요!”

알리오나는 올가의 양어깨를 콱 붙잡았다. 알리오나의 손가락이 마치 갈고리 같았다.

아니, 해야 돼.”

올가는 겁에 질려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요즘 공주님들 처소에서 장신구가 하나씩 없어지고 있어. 누가 했을까? ? 누가 했을까? 내가 했어. 내가 훔쳤다고. 이거 보이니?”

알리오나는 올가의 눈앞에 손목을 흔들었다. 그제야 굵은 보석이 박힌 팔찌가 겹겹이 보인다. 계속 소매로 가려서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렇게 예쁜 걸 성에서 공주님 두 분만 한다니, 아깝지 않니? 조금 대담하게 했더니 눈치를 챈 것 같지만.......

하지만 내가 했다곤 아무도 생각하지 않겠지. 널 의심할 거니까.”

?”

널 도둑고양이로 만드는 건 아주 쉬운 일이야. 지금 너는 시녀라서 보는 눈이 많지. 하지만.......”

올가는 목소리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겁에 질린 눈동자를 똑바로 마주한다. 알리오나는 미소 지으며, 마지막 말을 잇는다.

성 밖에서는 어떨까?”

***

철컥, 하는 소리가 난다. 조용히 문이 열린다. 유리천장은 햇빛 대신 새카만 밤만 훤히 보여준다. 많은 찻잎 사이로 빨간 리본이 보인다.

조심스레 다가가 유리병 뚜껑을 연다. 벌벌 떠는 손으로 약을 흩뿌린다. 소리도 없이 찻잎으로 스며든다. 소리 없이 방문을 닫고 다시 잠근다.

다시 철컥, 하는 소리가 나고, 올가는 빠르게 방에서 멀어진다.

뭐냐, 저거?”

별달리 잠이 오지 않아 성을 돌아다니던 다니엘이 위에서 올가를 내려다봤다. 시녀는 작게 점으로 멀어져갔다. 뒤집어쓰고 있던 망토가 벗겨져 얼굴이 드러났다.

뭐하는 거야, 이 밤에. 하긴 나도 그렇지만.”

다니엘은 나비 문신을 한 목을 벅벅 긁었다. 그리고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렸다.

***

넓은 공간인 만큼 사람도 북적인다. 은은한 현악기 소리가 울리며 사람들 대화 속에 섞인다. 연회는 순조로웠다.

하지만 약희는 마음이 불안해 제대로 가만히 서 있지도 못할 지경이다. 며칠 째 계속되는 연회 일정을 여왕은 아무 말 없이 소화했다. 몸 상태는 최악이다.

눈송이 가루를 계속 늘려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도저히 잠에 들 수 없다. 하지만 억지로 잠이 오게 했으니 피곤함이 가시지 않았다.

지금도 여왕은 귀족과 상인들의 인사를 받으며 웃고 있다. 약희는 눈물이 나올까봐 눈을 연신 깜빡인다.

울지 마, 울지 마. 이게 마지막이잖아. 이 연회만 마치면 혼이 나더라도 의사를 불러야지. 울지 말자, 울지 마.’

마지막 연회는 출정식이다. 제임스와 후퍼 후작은 나란히 서서 주위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흥분과 자신감으로 반짝이는 눈동자는 사람들에게

신대륙을 향한 희망과 믿음을 주었다. 원정대가 다시 가져올 신대륙 소식에 사람들은 들떠 있다. 사람들을 들뜨게 한 것은 새로운 땅만이 아니다.

바로 두 왕자들 때문이다. 제이콥과 마르티노는 단연 화제였다. 더욱이 성례 표식을 두 왕자가 동시에 하고 나왔기 때문이다.

두 왕자가 풍기는 분위기나 외모는 달랐지만, 모두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하고 있다.

두 분 모두 자질이 있으시죠, 여왕님께서 어떤 선택을 하실지 궁금하군요.”

게다가 반란의 주역에서 나온 왕자들 아닙니까. 배경도 그렇고, 자질이나 몸가짐이나....... 여왕님께서 고민이 많이 되시겠습니다.”

과연 그럴까? 멍청이들.’

프셰므스와브는 사람들 사이로 지나갔다. 지금 그는 시종 차림을 하고 술을 나르는 중이다. 오른손엔 작은 쟁반이 들려 있지만, 왼손에는 작은 바늘이 들려 있다.

그리고 바늘 끝에는 독이 묻어 있었다.

첫 번째는 어린 사슴 새끼, 그리고 다음은 강아지.’

단 두 번이다. 몸 어디든 찌르면 5분 안에 효과가 나타난다. 숨이 가빠오고, 얼굴이 파래지며 쓰러질 것이다.

그리고 어린 자식이 죽는 모습을 지켜보는 대공들과 공작들을 본다, 이 크롬피예츠가!’

프셰므스와브는 벨랴코프 공작이 자신을 처음 찾아와 한 제안을 떠올렸다.

넌 목표가 두 왕자를 죽이는 거였겠지. 하지만 그건 실패했다. 내가 그 계획을 도와주마. 대신 나도 얻는 게 있어야지. 넌 두 왕자를 죽인 현장에서 현행범으로 체포된다.

그리고 체포는 내가 한다. 자백은 실컷 네 마음대로 해라. 내 얘기는 하지 말고. 그럼 나는 두 왕자를 죽인 범인을 체포한 사람이자, 유일한 왕자의 할아버지가 되는 거지.

그러니까, 벨랴코프 가가 드디어 왕가가 된단 말이다. 물론 넌 사형 선고를 받을 거다. 하지만 감옥에 사형수는 많고, 그 중에 너 닮은 자도 하나 있겠지.

그 자를 너 대신 죽이고 난 널 멀리 보내는 거다. 너는 복수를 하고, 살 수 있다. 어떤가, 내 제안이?’

거절할 이유도 없고, 거절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복수의 날이 왔다. 시야에 두 왕자가 들어오고 있다. 먼저 마르티노에게로 다가간다.

사람들이 둥그렇게 마르티노를 둘러싸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다.

여기 샴페인 좀.”

곁에 있던 귀족 아가씨 하나가 어깨를 툭 친다. 손짓을 하더니 마르티노 앞으로 쪼르르 달려간다.

벨루치 가의 모니카가 마르티노 왕자님을 뵙습니다.”

아가씨.”

살짝 허리를 굽힌 귀족 아가씨의 손등을 잡고 얼굴을 숙여 답했다. 흐트러짐 없이 깔끔하다. 귀족 아가씨가 얼굴을 살짝 붉힌다.

,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저와 잔을 나누지 않으시겠어요?”

물론입니다.”

기회다. 흥분을 감추고 큰 발걸음으로 다가갔다. 이제 바로 프셰므스와브는 마르티노 바로 옆에 있다. 너무 가까이 있어서 고개를 숙일 수는 없다.

하지만 재빨리 바늘을 움직였다.

찔렀다.’

자연스럽게 잔을 다시 받으려는 척 물러났다. 태평하게 잔을 부딪치는 모습이 보인다. 미소를 누르고 다시 샴페인 잔을 채웠다. 이제 마지막이다.

하지만 제이콥을 찌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마르티노 옆에는 귀족 아가씨들이 많았지만 제이콥은 중년 귀족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주목해주십시오, 후퍼 대공께서 연설을 하시겠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제임스를 향했고, 제이콥 주변도 약간 비었다. 황금 같은 기회다. 프셰므스와브는 빠른 걸음으로 다가갔다.

!”

그러다 누구와 부딪쳤다. 사과도 못하고 눈만 휘둥그레 뜨고 있다. 그다지 정성을 들이지 않은 차림새다. 불안한지 빨간 머리카락 끝을 만지작거린다.

고개만 까닥 숙이고 지나쳤다. 보아하니 벙어리인데 상대해 줄 시간은 없다. 제니퍼는 휙 지나쳐 간 시종을 돌아보았다. 뭔가 이상했다.

분명 뭔가 반짝였어.’

아까 몸을 부닥쳤을 때 바늘을 본 것이다. 그대로 뒤를 따라갔다. 마음 한 편이 불안했다. 시종이 멀리 돌아서 제이콥 뒤쪽에 섰다.

제니퍼는 소리를 들을 수 없기에 사람 표정을 읽는 데 익숙했다. 그런데 지금 저 이상한 시종의 표정은, 여태껏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무섭다.

옛날 제니퍼를 구박했던 하녀들이 지은 표정보다 백배는 더 무시무시하다. 걸음이 빨라져서 거의 뛰다시피 했다.

귀부인들과 귀족 아가씨들, 귀족들을 헤치며 제이콥에게 달려갔다. 이제야 보인다. 왼손을 쑥 내미는 모습이 보인다. 앞뒤 재지 않고 그대로 몸을 날렸다.

어어어어아아!”

쨍그랑! 유리잔이 깨지는 소리가 나 사람들이 고개를 돌린다. 샴페인을 맞은 귀족 아가씨가 비명을 지른다. 주변이 웅성댄다.

프셰므스와브는 자신의 허리를 잡고 있는 사람을 떨치며 바늘을 찾았다. 바늘은 이미 누군가의 옷자락에 들어가버린 듯하다.

여기서 끝날 수는 없다!’

프셰므스와브는 제니퍼를 주먹으로 때려 밀어냈다. 제니퍼도 소리도 내지 못하고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깨진 유리조각을 큼직한 것을 들었다.

죽어라!”

잡아! 잡아라!”

병사들이 몰려와 몸 위로 엎어졌다. 완전히 제압당했다. 손 안은 이미 유리조각으로 베여 피가 나고 있다. 여러 명이 붙어 손을 벌렸다.

마침내 피범벅이 된 유리조각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 극악무도한 자식! 당장 끌고 가라!”

벨랴코프 공작이다. 오직 프셰므스와브만이 웃음을 감춘 저 입매를 볼 수 있으리라.

병사 하나가 프셰므스와브의 배를 칼집으로 때렸고, 프셰므스와브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제니퍼는 간신히 몸을 조금 일으켜 제이콥을 찾았다.

제이콥의 얼굴이 백짓장처럼 하얗다. 두 손을 부르르 떨며 뒷걸음질 친다. 사람들은 끌려가는 프셰므스와브와 지시를 내리는 벨랴코프 공작만 보고 있다.

제니퍼는 엉금엉금 기어서 제이콥에게 갔다. 간신히 다다라 무릎을 부여잡았다. 하지만 제이콥은 나아지질 않았다. 숨이 가쁜 듯 가슴이 들썩이더니 뒷벽에 부딪쳤다.

눈동자가 미친 듯이 흔들린다. 잡은 무릎을 꼭 잡았다.

오빠, 안 돼, 정신 차려.....’

제이콥의 등이 벽을 타고 미끄러졌다.

***

성은 혼란에 빠졌다. 제이콥은 순간적으로 과도한 공포를 겪어 기절했다. 제니퍼는 한쪽 얼굴이 퉁퉁 부어올랐다.

마엘과 아키코는 서로 꼭 붙어 있었고, 그런 둘을 마르티노가 어두운 얼굴로 지켜봤다. 이 가운데 가장 당황한 사람은 벨랴코프 공작이었다.

5분이 훨씬 넘었는데도 마르티노에게 별다른 변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제이콥 왕자는 실패했어도 마르티노 왕자는 성공한 줄 알았는데..... 대체 뭐가 잘못되었단 말인가?’

공작은 마르티노를 유심히 뜯어보았다.

아차! 가죽장갑! 프셰므스와브, 그 멍청한 자식이 저기에 독을 찌른 게 분명하다!’

머리가 아찔했다. 하지만 여기서 빈틈을 보인다면 끝이다. 아직 뒤집어씌울 일은 남아있다.

***

여왕은 잠든 제이콥의 이마를 짚었다. 약희는 그런 여왕의 뒷모습을 불안하게 쳐다보았다. 여왕은 지나치게 조용했다.

지금 방에는 여왕과 약희 둘 뿐이었다. 모든 부군과 대신을 물리쳤다. 마르티노와 아키코, 마엘 그리고 얼굴 반쪽이 붕대로 감긴 제니퍼를 모두 만나고 온 여왕이다.

차분하게 아이들을 달래고 제이콥을 마지막으로 보러왔다. 여왕은 이마에서 손을 떼어 자신의 손을 맞잡았다. 뒷모습이 너무 무겁다.

여왕은 천천히 일어나 문으로 나가려했다. 약희가 다급히 막아섰다.

조금만 있다가 나가셔도 되잖아요.”

“.......난 괜찮아.”

제발.”

난 괜찮아....... , 괜찮아....... 문 열어........”

약희는 어쩔 수 없이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온갖 소리가 쏟아진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여왕님, 왕자님께선 괜찮으십니까? 마르티노 왕자님은요?”

제니퍼 공주님께서 다치셨다는데, 어쩐 일입니까?”

벨랴코프 공작께서 범인을 체포하셨는데 그럼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겁니까?”

지금은 잠시 입장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니까 잠시만........!”

어떻게 된 일인지 조금이라도 알고 계신 게 있는 겁니까?”

제발, 그만. 나한테 조금만 시간을 줘.......’

여왕은 이상하게 비칠거리는 걸음을 옮겼다. 이상하게 심장이 빨리 뛴다. 머리도 어지럽다. 귀에서도 높은 소리가 들린다. 뒤에서 자꾸 외침이 그치지 않는다.

왜 이렇게 소리가 크지?’

여왕은 그제야 뒤로 조금씩 돌았다. 그리고 말을 간신히 내뱉었다.

약희야.......”

그 말을 마지막으로 여왕은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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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여왕 너무 안타깝네요ㅠㅠㅠㅠ
저 장위안은 앞으로 나올 일이 없는건가요...??

7년 전
난슬
아앗 읽어주셔서 감사해용 ㅠㅠ ㅎㅎ 스포일러라서 많이는 못 말합니당 죄송해여 ㅠㅠㅠ
7년 전
비회원209.80
엉엉 작가님 언제 다시 오시나요 ㅠㅠ
7년 전
난슬
아.... 죄송합니다 다음주면 시험이거든요ㅠㅠㅠㅠㅠㅠㅠㅠ 최대한 쓸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기다려주세요.....
7년 전
비회원 댓글
앗 기다릴게요! 시험 잘 치시고 천천히 돌아오세요 <3
7년 전
비회원212.232
작가님 언제쯤 돌아오시나요... 보고 싶어요 ㅠㅠ
6년 전
비회원173.86
작가님...계속 기다리고 있는데 언제쯤 돌아오세요....ㅠㅠㅜ
6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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