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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융 전체글ll조회 831l 1
 
 
 
진기는 군대 후임으로 들어온 녀석이 종현이라는걸 깨닫자 순간적으로 머리가 번쩍했다. 조금 늦게 입대해 또래가 없었던 탓에 반가움도 있었지만 오랫동안 보고싶어했던 사람을 본 듯한 기분이 들어서였다. 아니 실은 니가 늘 보고싶어했던 사람. 니가 좋아하는 싱어송라이터. 그를 보니 너와 창가자리에 앉았던 가을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

 「이번엔 꼭 보러가야지.」

 
 
너는 김종현콘서트에 가겠다고 아르바이트를 했다. 남의 이야기를 엿듣는 취미는 없었지만 옆자리였던 내게 꽤 많은 너의 이야기가 흘러들어왔다. 야자를 튈때마다 떡볶이를 먹으러갔고 떨어진 교복단추를 꿴다는게 매번 까먹는 소리가 들려왔고 워크맨은 항상 종현의 노래들로 채워져있었다. 


  「난 산하엽이 제일 좋아. 라이브로 들을 생각하니까 온몸에 소름이 돋아!」


 아직 콘서트표도 없으면서 벌써 좋아 죽을것같다는 표정을 하는 너는 세상을 얻은듯 행복해보였다. 그 모습을 보는 나도 덩달아 행복해질것만 같았다. 앞자리에 앉은 친구와 매일 종알거리며 수다를 떠는 네 목소리는 어느새 내 일상의 라디오로 자리잡아갔다. 


한번은 김광석 테이프를 사러 레코드샵에 들른 일이 있었다. 가나다순으로가지런히 늘어선 테이프들 중 앞쪽에 위치한 김광석 테이프를 찾아 꺼내면서 얼마 안가 자리한 종현의 테이프가 눈에 들어왔다.  

 

  「….」

 
 하루종일 니가 입에 달고사는 덕에 나는 알고싶지않아도 그의 존재를 알고있었다. 그리고 일말의 궁금증이 일었다. 얼만큼 노래가 좋길래 귀가 닳도록 그의 노래를 듣는 것일까. 나는 누가 볼세라 조심스레 테이프를 집어 들었다. 두 개의 검지 손가락 끝이 닿은 그림이 앞면을 채우고 있었고 뒷면에는 아홉 트랙의 노래제목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산하엽'이 눈에 가장 먼저 띄었다. 일절 들어본 적이 없는 노래였지만 니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라고 했던게 떠올라 유일하게 알아본것이었다. 

 
나는 그의 목소리도, 노래도 알지 못한다. 행여 길거리를 지나는 중에 그의 노래가 흘러 나온다고 해도 모를것이다.  나는 그저 나의 라디오에서 하루라도 빼먹지않고 안나오는 일이 없는 이름석자에 대한 호기심때문에 그의 앨범을 사고 말았던 것이다.

공원 벤치에 앉아 재생버튼을 눌렀다. 노래는 느린 피아노소리로 시작되었다. 머지않아 종현의 목소리가 어우러지면서 조용히 귓가를 물들였다. 의외로 무겁고 어딘가 우울하기까지한 노래였다. 늘 웃는 모습의 너는 한없이 밝고 청량한 노래를 들을 것만 같았는데. 단풍에 실린 바람이 머리칼 사이로 지나갔다. 계절은 가을이었지만 겨울에 있는듯 으슬하게 추운 공기가 코끝을 스쳤다.


한동안 나의 귀에서 종현의 목소리가 떠나갈새없던 어느날, 넌 책상위에 올려두었던 내 카세트테이프를 발견했다.
 
 
「너도 종현이 노래 좋아해?」
 
 
나는 김광석노래를 좋아한다. 잠시 머뭇거리다 고개를 끄덕였다.

 

  「뭐들어?」

 

대답을 채 듣기도 전에 너는 한쪽 이어폰을 빼어가 귀에 꽂았다. 선이 당겨지지 않게 오른쪽 이어폰을 반대편으로 옮기는 사이 무슨노래인지 알아차렸는지 상기된 얼굴로 너는 반가워했다.
 
 
  「너 노래 좀 들을줄아는구나!」
 
 
마음 한구석을 찌르는 말에 귀가 뜨거워졌다. 그냥 너때문에 얼토당토않는 호기심으로 사 들은것뿐인데. 자신말고도 종현을 좋아하는 이가 있다는 사실이 기뻐 활짝 웃는 너의 모습에 아무말도 할수가 없었다. 그렇게 두는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이 노래 들으면 슬퍼. 가끔은 우울하기도 해.」

 
난 그 우울을 즐겼다. 우울한 노래는 그것만의 깊이가 있었는데 끝을 가늠할수없는 속을 들어가다보면 주변의 잡음들은 사라지고 오롯이 혼자가 되는 느낌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근데 그 우울함이 좋아. 가끔 혼자있고싶을때가 있거든.」

 
산하엽을 들으면 내 안의 어둠을 끌어안을수있게 해준다고 너는 말했다. 내 자신이 세상에서 점점 사라지는것같을 때 투명해지는것뿐이지 완전히 사라지는게 아니라며 위로해주는것같다고. 그 위로가 좋아서 테이프 늘어지게 들었다던 얘기를 해주었다. 묘한 동질감이 느껴졌다. 너도 그랬는지 이후에 우리가 대화하는 시간이 점차 늘어갔다. 

결론적으로 너는 종현의 콘서트에 가지 못했다. 이런저런 푸념을 나에게 늘어놓으며 가지못하는것을 원통해했다. 며칠을 시무룩해하더니 수능이 한 달 앞으로 다가오자 언제그랬냐는듯 우리는 각자 외운 영어단어에 열을 올리며 서로 검사해주었다.

우리가 다시 만날 날이 올까? 마지막을 예감한 말이었다. 만날 수도있겠지만 운이 안좋으면 아주 영영 보지 못하겠지. 그 말을 삼킨 채 나는 글쎄, 라고 대답했다. 졸업식이 끝나고 마지막 종례만이 남아있었다. 반장이 경례를 하면 우리도 이제 안녕이었다.

*

유난히 길게 느껴졌던 가을이 끝나고 눈을 뜨니 꿈같이 종현이 앞에서 바짝 군기가 든 모습으로 서있었다. 그토록 니가 좋아하던 사람인데 우리는 이미 졸업해버렸고 니가 어디대학에 갔고 무슨과를 전공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진기는 자신만 종현의 실물을 본게 아깝기도하고 그녀가 안타깝기도하여 아쉬움이 섞인 웃음을 지었다. 아니면 너는 이미 종현의 콘서트를 다녀왔을까. 오랜만에 그녀 생각을 하니 갖가지 질문들이 떠올랐다. 너는 아직 종현의 노래를 좋아하고있을까. 너는, 아직도 밝은 모습뒤에 드리워진 그늘을 사랑할까. 그리고 날 기억이나 할까.
 
완전히 잊고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너는 산하엽처럼 사라지지않고 투명해져있었다.
 
종현이 입대하고 몇달이 지나서야 진기는 그에게 서스름없이 말을 걸수있게되었다. 진기를 이전에 봤을리가 만무한 그는 진기에게 깍듯이 대했다. 그렇게 한마디씩 대화를 늘려가다 진기가 제대하기 한달전에 그에게 싸인CD를 부탁했다. 처음에는 갸웃하더니 이내 특유의 호탕한 웃음을 지으며 기꺼이 백 장도 해드리겠다며 부탁을 들어주었다.
 
종현과 지낸 일 년은 먼 훗날 밤새도록 얘기해도 좋을 멋진 안주거리가 될 것이었다. 물론 너와 함께하는 술자리여야겠지만. 어쩌자고 싸인CD를 받아두었는지 그저 종현만 보면 불현듯 떠오르던 너에게 이 앨범을 주고싶었다. 영원히 내 낡은 서랍 속에서 사라지지않고 꽃필 너에게. 진기는 그 서랍문을 닫으며 보통처럼 너없는 일상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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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7년 전
독자2
자 잠시만요 아 지금 너므 즇아요ㅠㅠㅠㅠㅠㅠㅠ 꼭 우연히 너를 만나 대화를 나눴우면 좋겠네요ㅠㅠㅠㅠㅠ 잘 읽고가요 ..♡
7년 전
하융
아니 이늦은시간에!ㅌㅋㅋㅋㅋㅋ감사합니다❤️!!
7년 전
독자3
자까님......... 만나서........ 이 후의 이야기가 필요해... 작가님의 수혈이필요해...
7년 전
하융
피가 있다면 담에 수혈하러 올게영ㅎㅅㅎ!
7년 전
독자4
수혈수혈.. 저도 수혈해주세여ㅠㅠ 아련한 이런 분위기 진짜 좋다요ㅠㅠㅠ
7년 전
하융
아련한분위기로 남겨두려했는데~ㅎㅎㅎ노력해볼게여!!
7년 전
비회원19.150
이런 감성 너무 사랑해요 ㅜ
5년 전
하융
감사합니다!! 저도 이런거 너무 좋아해요ㅜㅠㅎㅎㅎ
5년 전
독자5
지금봐도......한구절한구절이 좋네요
4년 전
하융
아직도 기억해주시다니.. 감사할따름입니다
4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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