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도 들어가면 안 돼? "
" 니가 뭔데 들어와. 우리 집을. 아빠 있을꺼야 안돼. "
" 그럼 기다릴까 밑에서? "
" 뭐 우리집 들어가는데 기다려. 지랄한다 진짜 "
"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해 알지? "
" 아니 우리 집 들어가는데 무슨 연락. 가. "
" 아아! 너 짐! 너 장 본거! 그거 무거우니까 내가 갖고 올라갈께. 가자! "
" 너 그렇게 우리 집이 오고 싶어? "
" 응. 오랜만에 이모도 보고 아버님도 보고 형님도 보고. "
" 누가보면 사촌인줄 알겠다야. 가자. "
그렇게 자칭 짐꾼 이홍빈을 데리고 집에 도착하니, 여느 때와는 다르게 맛있는 냄새가 온 집안에 퍼져있어.
" 이모! 홍빈이 왔어요! "
" 어? 홍빈이도 왔어? 오랜만이네? 같이 장봐온거야? 어이구 기특해- "
" 오랜만이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엄마 옆에 딱 붙어서는 살랑살랑 애교를 부려대는 이홍빈이 너무 어이가 없어서 넌 그냥 칫 하고 웃어버렸어.
" 홍빈이도 밥 먹고 갈래? 갈비찜 했는데. "
" 아 엄마! "
" 어 딸- "
" 아 쟤 가라그래. 오빠랑 아빠는. "
" 아빠는 회사에 급한 일 있다고 나갔고, 니 오빠는 유학가는거 알아본다고 나갔어. "
" 유학? 근데 왜 나가? 멀쩡한 컴퓨터 두고? "
" 글쎄, 엄마랑 딸의 오붓한 시간을 위해? "
" 그럼 전 이쯤에서 퇴장하겠습니다! 연락해 "
손가락으로 수화기모양을 만들어 너에게 비추고서는 그대로 나가버리는 이홍빈이야.
아니 그나저나, 왠 유학?
" 왠 유학? "
" 니 오빠. 전공 살려보겠다고 헝가리 가시겠단다. "
" 헝가리? 걔 미쳤어? "
" 건축 디자인이니까.. 유럽쪽에서 2년 정도는 살아봐야 한다고.. "
" 미친거아니야? 아빠 회사도 지금 좀 잘나가봤자 언제 망할 지 모를 중소기업에, 난 이제 겨우 대학 들어갔는데. 우리 집이 재벌도 아니고! "
따발총처럼 반론을 뱉어내다 오빠놈이 왜 나갔는지 이유를 대충 알게된 너야. 이럴 줄 알고 엄마만 남겨 놓은 거구나.
" 근데 딸.. 문제는 그게 아니구.. "
" 또 뭐. "
" 엄마도 같이 갈 것 같아. "
" 뭐?! "
" 너도 알잖아. 니 오빠 혼자 두면 불안한거. 넌 혼자도 의젓하니까 엄마라도 가서 같이 있다가 … "
" 아 엄마! "
참아왔던 설움이 물밀듯 밀려와 그자리에 주저앉아 펑펑 울었어.
아무리 의젓하다고 한들, 이제 겨우 스무살인데 이 험한 세상에서 어떻게 홀로서기를 하라고.
" 딸. 엄마 말 좀 들어봐. 응? "
" 엄마. 진짜 미안한데. 나 잠깐만 나갔다올게. "
" 응? 밥은? "
" 괜찮아. 잠깐이면 돼요. "
" 조심해. 알겠지? "
" 응 "
그렇게 대충 옷을 걸쳐입고 나와 집 앞 벤치에 앉았어.
" 어디야? "
- 저기압? 무슨 일이야.
" 나 집 앞인데. "
- 나 아직 너네 동네야. 기다려.
꽤 시간이 지났는데도 동네라는걸 보면, 이홍빈도 참.
멍하니 잠금화면을 보고 있으니 어느새 클락션소리가 들려와. 차번호도 이홍빈꺼고.
" 왔네. 벌써. "
" 싸웠어? 아니, 혼났어? "
" 아니. 그런거 아니고. 그냥. "
" 이 옷 추운데. 내 옷 입고 나오지. 기다려봐. "
마트갈 때 입고 갔던 홍빈이 옷은 집에 벗어두고 가디건을 걸치고 나왔는데, 홍빈이 눈에도 그게 얇아 보였나봐.
차에서 담요를 하나 꺼내오더니 너의 등에 덮어주는 홍빈이야.
" 무슨 일 있었어? "
" ……. "
" 안해도 돼. 응."
말하지 않아도 된다면서 널 다독이며 살짝 어깨에 기대게 해주는 홍빈이를 딱히 밀어내지도 않은 채 그대로 어깨에 기대었어.
머리 속에서는 끊임 없이 차오르는 많은 생각들과 참으려해도 참아지지 않는 눈물이 반복되길 계속한 끝에, 넌 겨우 입을 떼었지.
" 나, 아무래도 혼자 살 것 같다. "
" 응? "
" 엄마, 오빠랑 같이 유럽간대. 2년 정도라는데. 2년가지고 뭘 해. 더 오래 있겠지. "
" 그랬구나. "
더 이상의 질문도, 말도 하지 않고 홍빈이는 그저 어깨에 기댄 너의 머리를 쓰다듬어.
마치 동화 속에나 나오는 왕자님처럼 말이야.
" 춥다. 감기 걸리면 어떡해. "
" 나 튼튼한 거 알잖아.. "
잔뜩 힘이 빠진 네 목소리를 듣던 이홍빈이 주머니에 넣고 있던 다른 손을 꺼내 네 손을 잡았어.
" 튼튼하긴. 눈물이나 줄줄줄. "
" 아닌데, 튼튼한데. "
" 얼른 들어가. 어머니 걱정하시겠다. "
" 응. 나 갈게. 너도 조심해서 가. "
괜히 더 남자답게 느껴지는 홍빈이 탓에 따듯해진 마음으로 집에 들어온 너야.
그리고 겉옷을 벗으려 너의 방으로 들어온 순간, 아직까지도 가지 않고 너의 집을 바라보고 있는 홍빈이가 보여.
그렇게 이홍빈이 한 발자국 더 너에게 다가온 순간, 감정선은 서서히 변해가고 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