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란히 무덤 두 기가 덩그러니 놓여있다. 무덤 두 기 주변에는 무성한 풀들이 자라있다. 사람의 손길도, 짐승의 흔적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곳에서 작은 풀꽃이 하나 피어 있다. 작은 민들레 꽃,가맣게 다 죽어버린 바랭이, 개밀 등 이름도 모를 잡초들이 갈색빛을 띄며 잔잔히 바람에 날린다. 12년 전. 이 무덤의 주인들이 생생하게 얼굴빛을 띄고 있을 적, 저 무수히 많은 잡초들과 들꽃, 풀꽃들은 굉장히 흥미롭고 신기한 놀이감이었다. 둘은 매일 뒷뜰에 나가 민들레 꽃을 찾아 동그랗게 입술을 벌려 후 하고 바람을 불었다. 그 날리는 홀씨들이 뭐가 그렇게 즐겁고 좋은지 활짝 웃는 얼굴에 동그랗게 살이 오른다. 콩콩 뛰어도 보고, 손을 맞잡고 빙빙 돌려도 봤다. 두 사람을 흐뭇하게 쳐다보던 한 여인이 둘을 부른다.
“루한, 민석!”
조용히 민석이 뒤를 돌아본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볼이 분홍빛을 띄고있다. 민석은 옆에 있던 남자아이의 등을 톡톡 두드렸다. 천천히 고개를 든 남자아이는 민석의 얼굴을 조용히 쳐다본다. 눈을 두어번 깜빡거린 루한이 조그맣고 통통한 손을 잡는다. 왼쪽눈에 하얗게 꽃이 핀 민석은 오른쪽 시력마저 점점 희미해져갔다. 루한이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활짝 웃고는 민석을 데리고 천천히 여인이 있는 곳으로 간다. 루한이 조용히 위를 올려다본다. 하늘이 깨끗했다. 구름 한 점 없이 둥둥 떠 있는 푸른 하늘이 루한은 참 마음에 들었다. 민석이 보고 좋아했으면 좋겠다. 여인은 루한의 등을, 민석의 손을 잡고 천천히 한 방으로 들어간다. 루한이 올려다 본 하늘을 천천히 살핀다.
‘하늘 고아원’
민석과 루한은 부모가 없었다. 태어날 때 부터 부모가 없었던건 아니다. 인큐베이터 속 눈을 조용히 감고 있는 루한은 선천적청각 장애인이었다. 루한이 태어났을 적 그들의 부모는 조용히 눈을 감고 병원 밖을 빠져나와버렸다. 루한은 그렇게 부모를 잃어버렸다. 아니 루한은 그렇게 부모에게 버려졌다. 단순 청각장애인이면 루한의 부모는 그를 버리지 않았을 것이다. 두 부부의 나이는 고작 18살과 19살. 그들에게 루한은 너무 벅차고 힘든 존재였다.
“민석아, 아 해봐”
민석은 통통한 루한이의 손을 꼬옥 잡고 고요하게 울리는 여인의 목소리에 천천히 입술을 열었다. 하얗게 꽃이 핀 왼쪽 눈동자와, 희미하게 비춰지는 오른쪽 눈동자에는 초점이 없었다. 입 안으로 달콤한 무언가가 천천히 들어온다. 천천히 혀로 그것을 굴린다. 그 것이 굴러나는 곳곳 마다 천천히 혀의 감각이 살아움직인다. 꼭 루한과 함께 어떤 꽃을 후 부는 것 처럼, 그 불어 날아간 것이 민석의 얼굴에 살포시 앉은 것 처럼 그렇게 천천히 민석의 혀를 달달하게 녹여들어왔다.
‘입을 벌려 봐’
이번에는 여인이 큰 손동작을 한다.루한은 물끄러미 여인을 보다가 활짝 웃으며 입을 크게 벌렸다.빨간색의 딱딱한 고체가 루한의 입 속으로 들어온다.루한이 눈꼬리를 휘며 웃었다. 여인은 민석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루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민석은 기분이 좋은지 루한과 맞잡은 손이 아닌 다른 손으로 천천히 앞을 더듬었다. 미지근한 바닥을 더듬다 울긋 솟은 여인의 다리에 손을 올리고 천천히 손을 찾았다. 루한은 그런 민석을 보고 빙그레 웃으며 민석의 손을 잡고 여인의 손을 쥐어주었다. 여인이 싱긋 웃는다. 루한도 따라 싱긋 웃고, 민석 또한 싱긋 웃는다.
‘루한, 민석이 잘 보고 있어야 해’
왼 주먹의 5지를 펴 손바닥을 밖으로 향하게 세우더니 오른손을 모로 세워 상하로 두번 흔든다. 부탁한다는 뜻. 루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받아들였다. 여인이 바닥에서 일어나면서 들리는 소리에 민석은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대충 머리를 돌렸다. 전혀 다른 곳이었지만 민석이 자신을 본다는걸 아는 여인은 다시 한번 민석의 머리 위로 손을 올렸다. 여인이 나가자 작은 방 안에 덩그러니 남자 아이 두명만 남았다. 루한이 민석의 앞으로 가 작은 두 손을 잡았다. 민석은 따뜻하게 전해져 오는 체온에 고개를 다시 들어올려 미미하게 웃는다. 루한은 조용히 민석을 안았다.
앞이 보이지 않는 민석과, 귀가 들리지 않은 루한은 아직 부모의 손길이 많이 필요한 작고 예쁜 8살 이었다.
입 안에 있는 사탕을 이리저리 굴려가며 녹이던 민석이가 더듬더듬 무언가를 찾는다. 루한이 그 모습을 보고 황급히 등을 벽에서 떼 도와주려다가 이내 행동을 거둔다. 민석이 조용히 박수를 두 번 쳤다. 루한은 천천히 박수를 두번 쳤다. 민석은 소리를 듣고 엉금엉금 소리가 나는 쪽으로 기어온다. 루한이 두 손을 쫙 펴 민석을 맞이했다. 민석은 두 볼에 닿아오는 루한의 짧은 손가락에 활짝 웃었다. 루한이 민석의 팔을 당겨 제 품에 안았다. 고아원의 아이들은 하나 둘씩 자리를 떠나갔다. 같은 나이의 둘은 곧잘 어울렸으며, 둘이서 서로의 부족한걸 채워줬다. 민석은 루한의 귀가 되어주었고, 루한은 민석의 눈이 되어 주었다. 작은 몸집의 아이가 서로 꼬옥 껴안고 있었다. 이 작은 두 생명이 두근두근 심장이 천천히 뛰어온다. 따뜻하게 가슴언저리를 감싸는 심장의 노래가 천천히 민석의 귀에 울려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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