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락비/해코] 군대 가기 전 대학생 우지호 정한해×우지호 밤잠은 없는데 아침잠이 넘쳐나는 타입이라 아침엔 항상 얼굴이 퉁퉁 부어서 둔해 보였다. 강의 시간엔 꾸벅꾸벅 졸다가도 공강이면 급격하게 활발해지는 것도 그랬고, 과내 모든 술자리에 참석하는 것도, 술에 떡이 돼서 돌아가도 다음날 졸음 외엔 다른 피해를 입지 않는 것도 모두가 우지호의 젊은 피를 새삼 느끼게 해 줬다. 내가 제대하고 복학하는 해 입학한 우지호는 신입생 OT 때 술게임 다크호스로써 신명나게 벌칙주를 마셨고, 아날로그 게임에 약한 나 역시 벌칙주의 주인이 되는 일이 잦았다. 선배도 게임 존나 못하네여 하고 말을 걸어온 우지호 덕에 우리는 급격하게 친해졌다. 그리고 OT가 있었던 날에서 정확히 삼 개월 후. 우지호는 입에 물고 있던 술을 뿜을 만큼 당당하게 저 선배가 좋은 것 같아요 사귀고 싶다, 하고 고백 아닌 고백을 했다. 이 어린 영계의 당돌한 돌직구에 설렌 나머지 우지호를 피해 다닌 지 일주일. 썩은 표정의 우지호는 내가 사는 원룸에 쳐들어와 술을 먹이며 호모새끼라서 역겨우냐는 간결한 돌직구로 날 인권따위 쿨하게 무시하는 쓰레기로 만들었다. 생각해 보니 역겹거나 싫다거나 그런 건 또 아니라서 지금은 함께 술도 먹고 밥 없을 땐 서로 집에 쳐들어가서 얻어 먹고, 평소와 같이 지내는데 사람이 이상해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 와 씨발 형, 요 앞에 술집 반값 세일. 이라며 원룸 문을 부술 기세로 쳐들어온 우지호가 낯설었다. 한참 신이 나서 떠들어대는 시끄러운 입술을 두 손으로 꼬집자 순식간에 조용해진 우지호가 가만히 눈을 굴려 아이컨텍을 시도한다. 뭔가 이상하다 했더니 샛노랗던 우지호의 머리카락이 전부 다 밀려 나갔다. 내 시선이 제 머리에 가 있다는 걸 알아챘는지 가지런히 쥐고 있던 술집 전단지가 바스락거리며 우지호의 손 안에서 구겨졌다. 아까 폭주 기관차 마냥 날뛰던 것과 상반되게 극도로 차분해진 우지호가 제 입을 꼬집고 있는 내 손을 잡아 아래로 내리더니 불쑥 얼굴을 들이밀었다. 이거 좀 설레네. 슬금슬금 거리를 좁히며 다가온 우지호는 한참을 내 눈울 바라보다가 휙 하고 몸을 돌렸다. 언듯 들리는 말로는 에이 씨발 술맛 떨어졌어, 인 것 같은데 잘 안 들려서 되물었다. 뭐라고? 한참을 씩씩대는 뒷통수 옆에 불쑥 튀어나온 귀가 상당히 발갛다. 형이 방금 날 농락했으니까 술 사요. 우지호는 당돌했고, 솔직했다. 아직은 어린 티가 나는 몸 역시 솔직하고. 그래. 나가자. 그런 우지호에게 나는 적응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불쑥불쑥 튀어 나오는 솔직한 반응에 몸에 열이 오르는 건 불가항력이었다. *** 까맣게 날이 선 머리카락을 만져 보라며 머리를 들이미는 통에 몇 번 만지다가 중독이 된 모양이었다. 심심한 손을 달래기 위해 계속 애완견 만지 듯 쓰다듬었더니 금새 발갛게 열이 오른 우지호의 얼굴이 귀여웠다. 그렇게 참한 색시의 얼굴색을 하고선 앙칼지게 팩 내뱉는 말이라곤 죄다 우지호다운 말이라서 웃음만 나왔다. 그만 만져요. 한 번 허락해 줬더니 계속 꽁으로 뜯어먹으려 하네. 돈 내든가. 아 미안. 느낌 좋아서. 언제 들어가? 뭐를? 군대. 내일 모레. 헐. 맹한 표정으로 손목 시계를 내려다 보니 마침 3시 정각에 가깝다. 하루하고도 몇 시간 안 남았네. 하고선 또 습관적으로 우지호 머리로 손을 뻗었는데 뜬금없이 덥썩 잡혔다. 그니까, 형. 어, 왜. 내일 하루만 나랑 데이트 해요. 어쩐지 방방 뛰던 분위기가 착 가라앉아 어색함에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그 한 마디 하고서 한참 울먹울먹 눈물만 그렁그렁하던 우지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까짓 거 데이트 해 주지 뭐, 하자 결국 울음을 터뜨린다. 우지호는 쪽팔리다면서도 실컷 울더니 뚱한 표정으로 그랬다. 군대 가면 반은 게이가 돼서 나온다는데 왜 형은 아니야. 하여간 종잡을 수가 없는 인물이었다. *** 하얀 입김을 하아 내불며 발끝으로 바닥을 툭툭 차던 녀석은 귀신같이 내 기척을 알아채곤 고개를 처들었다. 한해 형! 하고 조심성 없이 내뱉은 반가움이 워낙 우렁차서 같은 공간에 있던 대다수의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아 이 미친놈아! 입 다물어. 목소리 존나 커. 형 좋아서 그렇죠. 퍼스트 플레이스! 형 점심 안 먹었지? 먹었어도 또 먹어요. 뭐 이런... 분명 점심은 안 먹긴 했지만 먹었으면 어쩌려고 했는지 아주 대범한 데이트 코스였다. 손 잡아도 돼요? 하고 묻고도 한참을 배회하던 그 다 튼 손을 휘어잡고 우지호가 선택한 첫 번째 데이트 코스인 국밥집에 입장했다. 취향 한번 구수한 녀석이었다. *** 밥을 먹은 터라 팝콘없이 보는 영화는 순전히 지 취향인 애니메이션. 이번에도 역시 손 잡아도 되냐고 묻던 우지호에게 안 된다고 했더니 잔뜩 삐쳐서는 두 시간 가량을 스크린만 쳐다본다. 하여간, 모든 감정이 너무 티가 많이 나는 녀석이었다. 반면에 나는 두 시간 내도록 우지호만 쳐다본 탓에 영화에 대한 건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중간 중간 감탄을 내뱉으며 나에게 치대려다 참는 게 너무 뻔하게 보였다. 수시로 움찔대는 손끝과 몸뚱이가 그랬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래딧이 올라가고 사람들이 다 빠져나갈 때까지 우지호는 미동도 없었다. 크래딧이 반쯤 올라갔을까, 그제야 나를 바라보는 우지호와 눈이 마주쳤는데 그 맹한 눈은 한참을 말없이 나를 바라봤다. 아, 진짜 우지호... 쪽. ...... ...... 충동적인 행동이었다. 나도 모르게 우지호의 입술에 짧게 입을 맞췄다. 건조하던 눈동자가 다시 촉촉해지기 시작했다. ...아, 미안. ...... 발갛게 푹 익은 얼굴이 아래로 뚝 떨어졌다. 울기라도 하는 듯 어깨까지 떨어대는 우지호를 어떻게 할지를 몰라 한참을 끙끙대는데 앞에서 크흠, 하는 인기척이 들렸다. 엔딩 크래딧마저 끝이 나고 이제는 나가야 할 시간인데... 형 진짜... 못됐다. 울먹울먹 말을 잇는 목소리가 잔뜩 젖어 훌쩍였다. 그대로 몸을 일으켜 영화관을 빠져나가는 우지호 뒤를 따랐다. 거리를 유지한 채 한참을 걷던 우지호가 멈춰 선 곳은 내 원룸이 있는 거리였다. 버스 정류장에 비치된 긴 의자에 털썩 주저앉길래 옆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더니 슬쩍 옆으로 자리를 옮긴다. 평소 같으면 더 붙어 앉아 있고 싶어서 난리를 치는 우지혼데. 버스 두 대가 그냥 지나갈 동안 우지호는 말없이 땅을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평소완 다르게 알게 모르게 신경쓴 티가 나는 차림새였다. 빡빡 깎은 머리가 창피해서 쓴 줄 알았던 비니는 저번에 같이 쇼핑 갔을 때 내가 잘 어울린다고 칭찬해 줬던 비니였고 빨간 목도리는 언젠가 우지호 집에 갔을 때 마음에 든다고 농담 삼아 나 달라고 했던 그 목도리였다. 전 애인이 준 거라 하고 다니기 싫다고 가져가라고 하길래 전 애인이 준 목도리를 가져오긴 좀 그래서 그냥 내버려 뒀던 건데. 그러면... 우지호의 전 애인은 여자였을까 남자였을까. 지호야. ...저 괜찮아요. 그냥 들어가요. 추운데. 냉냉하게 얼어붙은 목소리와 어울리지 않게 코 끝도 눈가도 귀도 죄다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목도리에 파묻힌 입술이 보고 싶었다. 누가 봐도 우는 얼굴. 달래 주고 싶은 안쓰러움과 아까의 충동적인 행동에 대한 미안함에 손을 뻗었는데 채 닿기도 전에 우지호가 벌떡 일어섰다. 저 먼저 갈게요. 막 도착한 버스에 도망치듯 올라탄 우지호와 버스 창문을 사이에 두고 눈이 마주쳤다. 잔뜩 일그러진 얼굴 위로 차갑게 얼어붙은 눈물자국이 그 거리에서도 보이는 것 같았다. 그렇게 우지호는 버스가 떠날 때까지 눈을 돌리지 않고 가만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미치겠다. 어린 놈의 순정에 가슴이 아리다. 저 얼굴이 가끔 예뻐 보이는 것도 그 변치 않는 애정과 해바라기 같은 마음 때문일 거라 치부하던 게 죄다 산산조각이 난 기분이었다. 갈피를 잡지 못해 허둥대는 날 기다린 것만 일 년인데 그런 우지호에게 또다시 결정할 수도, 책임질 수도 없는 행동을 하고 말았다. 그 와중에도 내게서 눈을 돌리지도 못하는 애한테. 이게 무슨 파렴치한 짓이야. 겉으론 패기 넘치고 쿨하고 솔직한데다가 강한 것 같아도 우지호는 이제 갓 스물 한 살이 된 어린 녀석이었다. 고등학교 교복을 벗은 지 일 년이고 햇수로 이 년에 이르는, 그런 꼬꼬마란 말이다. 감정에 솔직한 만큼 어렸고, 주는대로 상처로 간직했을 우지호는 안 좋은 기억마저 잊지 못할 게 뻔했다. 재수로 일 년을 늦게 대학에 들어오고 군대까지 다녀 온데다가 졸업을 앞두고 나이가 찬 만큼 인생의 쓴맛을 어느정도 알게 된 나와는 다른 인물인데. 우지호는 알고 있었을 거다. 제가 제대하고 오면 나는 학교에 없을 거라는 것을. 그래서 이런 식으로 더 같이 있고 싶었을 텐데.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나는 택시를 잡지 않을 수가 없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나도 우지호처럼 솔직해져야 나도, 우지호도 아프지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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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밍 센스 고자) 그것보다 정한해는 팬텀인데... 어떻게 써야 하나요? 블락비팬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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